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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세계의 미개하기 짝이 없는 호비트들은 마법이라는 것을 쓸 줄 몰랐다. 대신 그 반대 급부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술 쪽으로는 과거 자신이 살았던 세계에 살던 호비트들에 비해 훨씬 더 체계적인 발전을 보이고 있었다. 서로가 장단점이 있긴 해도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그게 너무 불편하게 느껴지는 아르티어스였다. 왜냐하면 마법이 발달해 있지 않은 만큼, 공간이동 좌표를 기록해 놓은 책자를 구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아르티어스는 가장 단순무식한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다. 일단 시야를 통해 멀리 보이는 지평선 위쪽의 한 지점을 정한 다음, 그곳으로 단거리 공간이동을 연속적으로 시행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크으윽! 이런 개망신이 있나. 여기에 드래곤이 살고 있지 않다는 게 정말 다행이군.”
아마도 다른 드래곤들이 있어서, 아르티어스가 장거리 이동을 함에 있어 이토록 멍청한 짓거리를 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모두들 비웃을게 뻔했다. 물론, 그놈들도 여기에 데려다 놓으면, 똑같은 짓을 할 수 밖에 없을 테지만. 공간이동 좌표를 모르는 한, 시야를 벗어난 장거리 공간이동은 자기 무덤을 파는 거나 다름없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저긴가?”
멀리 보이는 도시. 도중에 계속 길을 물으며 이동해 왔기에 착오가 있을 리가 없었다. 도시 안으로 들어간 아르티어스는 곧바로 묵향과 무영문주와의 접선장소인 객잔으로 달려갔다.
“어서 옵쇼, 손님. 혹시 동행이 있으십니까?”
“물어볼 말이 있는데…, 대략 일주일 전에…….”
설명을 하려던 아르티어스는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아들놈의 생김새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자니, 꽤나 답답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고.
“손님 접대는 자네 혼자 하나?”
“아뇨. 저 말고 한 명 더 있긴 합니다만…….”
“그럼 너 잠시 이리로 와봐.”
아르티어스가 슬쩍 손을 흔드는 순간, 점소이의 눈빛이 몽롱하게 바뀌었다. 마치 몽유병에라도 걸린 듯 비틀비틀 다가오는 점소이. 아르티어스는 그런 점소이의 머리 위에 자신의 손바닥을 올렸다.
점소이의 기억을 살펴보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운 좋게도 이 점소이의 기억 속에서 아들의 영상을 찾아낸 순간, 아르티어스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운이 좋…….”
하지만 그의 말은 거기에서 딱 멈췄다. 녀석이 아들을 본 건 사실이지만, 더 이상 쓸 만한 정보는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놈의 기억을 통해 그날 객잔의 정경까지는 파악할 수 있었다. 그 영상에 따르면, 아들놈 근처에서 대화를 엿들을 만큼 가까운 위치에 자리잡은 놈이 없었다는 게 문제였다.
“이놈, 설마 공무를 보는 척 하며 여행을 떠난 거 아냐? 예전에도 저쪽 세상에서 이런 일이 몇 번 있었잖아. 물론 그 아랫것들이야, 개고생을 했지만.”
그런 생각이 들자 아르티어스는 마음이 더 다급해졌다. 아들 녀석이 마음먹고 흔적을 감추기라도 한다면, 아무리 자신이 드래곤이라고 해도 찾을 방법이 없으니까 말이다.
이때, 아르티어스의 머리를 번쩍 스치는 게 있었다. 점소이놈은 아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던 여자의 얼굴을 몰래몰래 훔쳐보고 있었다. 아르티어스의 기준에서 본다면 이곳에 서식하는 호비트들의 겉모습은 거의 다 비슷비슷했다. 검은 눈, 검은 머리, 약간 갈색을 띄고 있는 피부……. 그 중에서 바깥일을 하는 놈들의 피부색이 좀 더 짙다는 것 외에 별 차이점이 없었다.
“겨우 그런 계집이 뭐 그리 볼 게 있다고 정신을 못 차려. 하지만 덕분에 좋은 걸 얻었어.”
대화는 들리지 않았지만, 입모양에 대한 영상은 얻었다. 물론 놈의 촛점이 계집에게 맞춰져 있었기에, 제대로 된 대화를 파악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어쨌거나 계집이 떠든 말이 뭔지는 대충 파악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녀가 말한 내용들 중에서 가장 그럴 듯해 보인 것은 바로 백두산이라는 지명이었다.
“백두산이라……?”
이곳에서 습득한 지식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은 지명이었다.
객잔을 나온 아르티어스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혹시 백두산이라는 산이 어디에 있는지 수소문해 봤다. 하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모두들 그런 산 이름은 처음 들어봤다는 것이다. 몇몇 사람이 백두(白頭)라는 명칭이 붙은 것으로 봐서, 산꼭대기에 만년설이 쌓여있는 대단히 높은 산일 거라는 추측만을 내놨을 뿐이다.
산세가 높고 험한 것으로 따진다면, 중원의 서쪽이나 동쪽으로 가야 했다. 그곳에 높은 산들이 즐비하다는 것은 상식이었으니까. 아르티어스는 그쪽을 향해 또다시 단거리 공간이동을 시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만에 하나 아닐 경우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아들과의 거리는 더욱 멀어지는 사태에 직면할 우려가 있었다.
아르티어스는 손바닥을 탁 치며 외쳤다.
“참, 이럴 때는 아들 녀석이 쓰던 방법을 쓰는 게 좋겠군. 뭔가 알고 싶은 게 있으면, 거지를 찾아서 족치면 된다고 했지, 아마?”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그날 마을에 살던 거지들의 입에서는 곡소리가 흘러나왔다. 구걸로 밥 빌어먹는 거지들이 다 개방에 몸을 담고 있을 리 없었지만, 아르티어스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수백 명이 넘는 거지들을 족쳤을 때쯤, 재수없는 개방도가 한명 걸려들었다. 물론 이것도 아르티어스가 그를 찾아낸 게 아니라, 거지를 괴롭히는 미친놈이 있다는 소문을 접한 호기심 많은 개방도가 스스로 찾아온 것이었지만.
“거지를 괴롭힌다는 변태 놈이 바로 네놈이냐?”
사실 이 말은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아르티어스 앞에는 이미 걸레쪽이 되어 있는 거지 몇 명이 엎어져서 신음하고 있었으니까.
“어? 이번에는 제법 마나의 기운이 느껴지는 놈이로군. 지금까지는 성과가 없었지만, 저놈은 가능성이 있겠는데?”
괴인이 무공을 익힌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비할 시간을 주는 것은 오히려 자기 무덤을 파는 행위였다. 특히나 저런 변태 놈은. 생각을 정한 편두개는 즉시 선제공격을 날렸다. 서로간의 거리는 4보(步). 웬만한 고수가 아니고서는 그의 일격을 막아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허억!”
편두개의 두 눈이 휘둥그레진 것은 괴인이 자신의 공격을 막아냈기 때문이 아니었다. 도대체 무슨 변괴인지 알 수 없지만 자신의 주먹이 괴인의 코앞에서 딱 멈춰버렸기 때문이다. 마치 허공에 뭔가 보이지 않는 벽이라도 있는 것처럼.
“무슨 사악한 술법을 부린 것이냐?”
이제는 몸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는지, 움직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건 혈도를 제압당한 것 같지는 않았다. 뭔가 눈에 보이지 않는 밧줄에라도 포박당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눈을 아래로 깔아보니 자신의 손가락이 마음먹은 대로 움직이고 있지 않은가. 만약 혈도를 제압당했다면 절대로 손가락을 움직일 수 없었을 것이다.
난데없는 괴변에 편두개가 공황상태에 빠져있건 말건, 괴인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런 것까지 네놈이 알 필요는 없고, 내가 묻는 말에 대답부터 해줘야겠다. 백두산이라는 산에 대해서 알고 있느냐?”
자존심이라는 게 있지, 겨우 구속 정도 당한 것 가지고 순순히 대답을 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편두개는 고집스럽게 외쳤다.
“흥! 내가 왜 그런 걸 대답해 줘야 하느냐?”
괴인의 미소가 더욱 짙어진다.
“호오, 대답해 주는 게 신상에 좋을 텐데?”
“개소리 하지 마라!”
호기롭게 외친 편두개였지만, 강도 높은 고문을 당한 후에는 생각이 바뀔 수밖에 없었다.
정신계 마법을 꽤나 깊은 부분까지 섭렵하고 있는 아르티어스인 만큼, 마법으로 간단히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마법이라는 게 전능한 것은 아니었다. 매혹의 주문을 통해 상대를 현혹하여 친구로 인식시켜 물어보는 방법이 가장 좋기는 했지만, 아쉽게도 그는 그런 것은 배우지 않았다. 고문만 해도 충분히 파악해 낼 수 있는데 뭐하려고 귀찮게 그런 쓸데없는 마법을 배우겠는가. 더군다나 아르티어스는 고문이라는 무식한 행위를 그리 싫어하지도 않았다. 아니, 오히려 즐기고 있다고 보는 게 옳았다.
매혹 외에 그가 잘 하는 것은, 상대의 머릿속을 통째로 읽어버리는 것이었다. 문제는 호비트의 머리통 속에 기억된 데이터의 양이 워낙에 방대하다 보니 그거 하나 읽어내자고 시간을 보내느니 차라리 고문을 가하는 게 빠를 수도 있었던 것이다.
“어때?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나?”
“배, 백두산이라니. 그런 산 이름은 처음 들어 봅니다요.”
편두개는 공손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꼭 도둑놈처럼 생긴 험악한 두상에 억지 미소까지 짓고 있다 보니 영 꼴이 말이 아니다.
“헛소리 하지 마. 방금 전에는 말해주지 않겠다고 했잖아. 순순히 실토하지?”
“알면 제가 알려드리지요. 저는 결단코 모른다니까요.”
시간이 흐를수록 아들놈과의 거리가 벌어질 것을 염려한 아르티어스는 가차 없이 편두개에게 고문을 가했다. 예전에 아들놈이 모른다고 뻗대는 놈들도 이렇게 고문을 가하면, 모든 걸 털어놓는다는 말을 철떡 같이 믿기에.
“모르긴 왜 몰라?”
“크아아악! 저는 모릅니다. 몰라요!”
“이놈이 아직 고문이 부족한 모양이군.”
“제, 제발 살려주십쇼. 제가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늙으신 부모님과 토끼 같은 자식들이…….”
아르티어스는 피식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걸 듣는 독두개에게는 악마의 음성처럼 들렸지만.
“거지주제에 토끼 같은 자식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군.”
“으아아악!”
강도 높은 고문에 한동안 비명을 질러대던 편두개는 마침내 마지막 수단을 제시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그건 다른 놈을 팔아먹는 것이었다.
“저, 저는 모르지만, 알 만한 사람이 하나 있습니다.”
“누군데?”
“저희 분타주님이요. 아마 분타주님이라면 잘 아실 겁니다.”
아르티어스의 눈동자가 실쭉 가늘어진다.
“아마? 나는 불확실한 걸 싫어해. 잘 알지?”
독두개는 필사적으로 대꾸했다.
“아, 아니요. 소인이 말을 실수했습니다요. 틀림없습니다! 분타주라면 틀림없이 알고 있습니다. 소인이 보장하겠습니다!”
아르티어스는 마지못해 부탁을 들어준다는 듯 능청스레 말했다.
“허,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내가 참고하도록 하지. 그래, 그 분타주라는 놈은 어디에 있는데?”
“저쪽으로 가시다 보면…….”
편두개는 분타의 위치를 알려주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물론 분타의 위치를 외부인에게 발설했다는 게 알려지면 문책이야 당하겠지만, 우선 자신부터 살고 봐야 할 게 아니겠는가. 그리고 한편으로는 분타에 뒹굴거리고 있는 고수들과 분타주가 이 망할 놈을 처치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도 있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