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티어스는 편두개의 설명대로 산 2개를 넘은 다음, 행인들에게 물어물어 그놈의 분타가 위치하고 있다는 도시를 찾아갔다. 물론 개방의 분타는 그 도시의 내부에 있지 않고, 시 동북방에 위치한 작은 산 중턱에 위치해 있었다. 반쯤 무너진 버려진 장원, 그곳이 바로 개방의 분타였다. 많은 식구들이 도시 쪽으로 구걸을 나갔지만, 그래도 아직 60여 명의 거지들이 남아있었다.
낮선 손님의 접근에 한 거지가 혐오감을 조성하기 위해 일부러 더욱 추접한 짓거리를 해댔다. 다 헤어진 낡은 옷섶 사이로 손을 넣어 북북 긁으며 중얼거렸다.
“에이, 이놈의 이! 간지러워서 못살겠네. 그렇다고 옷을 버릴 수도 없고…….”
상대가 가까워지자 그는 ‘카아아악’하며 가래를 끌어 모아서 퉤! 하고 상대의 발치 근처에 내뱉었다. 싯누런 가래덩어리였다.
하지만 거지의 바램과는 달리 상대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보통 이 정도만 해도 마치 전염병자라도 본 듯 얼굴이 핼쑥하게 질려서는 주춤주춤 도망쳐 버렸었는데 말이다.
“무슨 일이슈?”
“분타주라는 놈은 어디에 있느냐?”
“분타주? 이건 또 무슨 개 잡소리야. 거지 떼에 들어와서 분타주를 찾다니!”
녀석은 일부러 큰 소리로 외쳤다. 주위에 있는 거지들에게 들으라고 하는 소리다. 아니나 다를까, 둘이 나누는 대화에 주변의 거지들이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여기가 개방의 분타 아니냐?”
그와 동시에 사방에서 몰려나오는 떼거지들. 타구봉(打狗棒)을 들고 튀어나온 그들의 눈빛에서 진한 살기가 뿜어져 나온다.
흉악한 살기를 흘리는 수십 명의 거지들에게 포위당했음에도 상대의 얼굴에는 전혀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같잖다는 듯 이죽대는 것이었다.
“어쭈? 꼴에 반항을?”
그 뒤에 이어진 일련의 상황은 거지들을 경악케 했다. 도저히 자신들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괴변. 이건 사람을 상대하는 게 아니라, 무슨 요괴(妖怪)를 상대하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불러일으켰다. 일반인들이 고도의 무공을 익힌 무림인들을 보고 신선이라고 착각하듯, 무림의 물을 먹고 있다는 그들이 귀신이라고 생각할 정도라면 과연 어느 정도였겠는가.
“백두산이 어디라고?”
괴인의 물음에 분타주는 공손히 대답했다. 짙은 공포로 인해 그의 몸은 사시나무 떨듯 부들부들 떨리고 있다.
“자, 장백산을 보고, 그 일대 토착민들이 백두산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흠, 그럼 장백산은 어디에 있느냐?”
“요, 요동에 있습지요.”
괴인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는 듯 하자 분타주는 재빨리 거지 하나를 시켜 지도를 가져오게 했다. 그는 더 이상 괴인과 얼굴을 마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괴인이 원하는 것은 뭐든지 다 들어주는 것이 최선의 길이었다. 또, 설명도 제대로 못한다며 쥐어 터지는 것도 싫었고…….
“바로 이곳입니다.”
“흐음, 대충 동쪽으로 가면 되겠군.”
그 말을 끝으로 괴인의 몸에서 희미한 빛이 뿜어져 나오는 듯 싶더니, 갑자기 그의 몸이 사라져 버렸다. 그 모습을 지켜본 거지들은 모두 기절초풍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으아아악! 귀신이다!”
모든 거지들이 공포에 질려 숨을 곳을 찾아 사방으로 내달렸다. 분타주조차 그 대열에 합류했을 정도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그래도 도망이라도 친 거지들은 개중에 담이 큰 편에 속했다. 몇몇 거지들은 아예 그 자리에 주저앉아 오줌까지 지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것만 봐도 아르티어스가 그들에게 남겨준 공포가 얼마나 엄청났었는지 알 수가 있었다.
생사경의 경지?
묵향은 옥화무제의 안내를 받으며 장백산에 도착했다. 옥화무제가 체력이 딸려서 몇 번 지체된 것을 제외한다면, 이곳까지 쉬지도 않고 줄곧 달려온 셈이었다.
“저 멀리 보이는 저 산이 장백산이에요. 토착민들은 저 산을 백두산이라고 부르지요.”
“호오, 과연 대가리가 하얗긴 하얗군.”
“여기까지 달려오느라 힘들었을 텐데, 하루 쉬었다가 가는 게 어때요?”
옥화무제의 물음에 묵향은 활기찬 어조로 대답했다.
“괜찮아, 전혀 안 힘들어.”
“내가 힘들어서 그래요.”
옥화무제의 대답이 의외였던 묵향이다. 물론 먼 거리를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달려왔으니 피곤하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몇 시간 정도 운기조식을 취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지, 하루의 휴식을 필요로 할 정도는 결코 아니었다.
정말 함정이라도 파놓은 건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지만, 묵향은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그녀가 마련해 놓은 함정이라는 게 있다면, 구경해 보고 싶다는 호기가 일었던 것이다.
“그래? 그렇다면 어디 쉴만한 데가 있나 찾아보기로 하지.”
“그럴 필요는 없어요. 아는 곳이 있으니까요. 나를 따라와요.”
앞장 서서 내달리기 시작하는 옥화무제. 그 뒤를 따르며 묵향은 갑자기 옥화무제가 객잔으로 가고 싶다고 하는 진정한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 해답은 엉뚱한 곳에 있었다. 옥화무제는 묵향에게 하룻밤만이라도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안 그래도 실력차가 클 텐데, 지쳐서 제대로 싸우지도 못한다면 억울하지 않겠는가.
‘이게 내가 당신에게 해주는 마지막 배려에요.’
그녀가 안내한 객잔은 중원을 기준으로 본다면 매우 허름했다. 하지만 주위에 있는 다른 건물들에 비교한다면 그래도 개중에 나은 편에 속했다.
놀랍게도 객잔에는 그녀의 수하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처음에 옥화무제가 이곳으로 왔을 때 이끌고 왔던 수하들이었다. 중원까지 가서 묵향을 만나려면 혼자 움직이는 게 나을 것 같아, 모두 이곳에서 대기하고 있으라고 명령을 내려놨던 것이다.
“다녀오셨습니까, 태상문주님.”
인사를 건네는 수하들을 바라보던 옥화무제는 묵향을 향해 살짝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별 다른 뜻은 없어요. 통역이 필요해서 대기시켜 놓은 거니까요.”
묵향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별소리를 다하는군. 난 상관없으니 신경 쓰지 마.”
중원의 제대로 된 음식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비교적 괜찮은 음식으로 배를 채운 두 사람은 객잔에 있는 방들 중 가장 좋은 곳에서 하루를 푹 쉬었다.
다음날 아침을 배불리 먹은 두 사람은 장백산을 향해 출발했다. 험악한 산길이었지만, 중원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그들이었기에 피곤한 줄을 몰랐다. 두 사람의 발목을 잡는 것은 그녀가 데리고 온 통역이었다. 그녀가 이끌고 온 수하들 중에서 가장 무공이 뛰어난 녀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발걸음은 턱도 없이 느렸다.
두 사람은 통역이 따라올 수 있도록 천천히 산을 올랐다.
“이쪽이에요.”
정상에 오르자 놀랍게도 산꼭대기에 드넓은 호수가 펼쳐져 있었다. 그 때문에 다른 산들에 비교한다면 아주 색다른 경치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묵향의 표정은 전혀 변화가 없었다. 그는 지금 주변의 경치에 신경을 쓸 여유 따위는 조금도 없었던 것이다.
묵향은 무감각한 어조로 대꾸했다.
“예상조차 하지 못했던 꽤나 색다른 경치로군.”
“무슨 대답이 그래요?”
“경치는 됐고, 북명신공을 요구한다는 녀석들은 어디에 있지?”
“여기서 기다리면 올 거예요.”
옥화무제의 대답에 묵향은 그제야 그녀가 자신을 이리로 안내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