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91화 (687/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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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백산을 물어물어 찾아가며 단거리 공간이동을 하고 있는 아르티어스. 달려가는 것에 비한다면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엄청난 속도임에는 틀림없었지만, 마나의 소모에 있어서는 그야말로 ‘삽질’이라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미친 짓임에 틀림없었다. 아르티어스가 지금 이렇게까지 무리를 하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아들놈이 너무나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만나기 힘들면 힘들수록, 더욱 보고 싶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이리라. 물론 자신을 버리고, 홀로서기를 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살짝 있었고.

이렇게 죽어라 공간이동을 하고 있는 아르티어스의 앞쪽 어딘가에서 갑자기 엄청난 마나의 파동이 느껴졌다.

“오잉, 여기에도 드래곤이 사나……?”

드래곤이 이 세계에서 살고 있을 리가 없다. 만약 살고 있었다면 아르티어스가 이 세계에 도착함과 동시에, 그가 찾아왔을 것이다. 드래곤이 자신의 존재감을 의도적으로 숨기지 않는 한, 다른 드래곤들이 그것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그만큼 드래곤의 존재감은 강했던 것이다.

그런데 아르티어스가 드래곤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의 존재들이 저 먼 곳에서 싸우고 있었다. 이때, 아르티어스는 그 강력한 존재감에 가려져 있는 미약한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다.

“안 돼!”

아르티어스는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그 존재감은 바로 아들놈의 것이었으니까. 아마도 아들놈은 저 앞 어딘가에서 엄청나게 강한 존재와 싸우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아르티어스는 엄청난 마나가 느껴진 그 위치를 목표로 삼아, 곧바로 장거리 공간이동을 감행했다. 위험하기는 했지만, 이건 지금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왜냐하면 엄청난 존재감으로 미뤄봤을 때, 자신의 아들놈은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아무리 싸우고 싶다고 해도, 상대를 좀 가려가면서 싸워야지!’

묵향과 발해인의 싸움이 진행되고 있는 하늘 위로 아르티어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시작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아르티어스가 도착했을 때쯤에는, 이미 싸움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상황에까지 치닫고 있었다.

입으로 검붉은 핏줄기를 뿜으며 튕겨져 날아가고 있는 묵향. 그의 손에는 겨우 두 치 정도의 길이밖에 남아있지 않은 검이 들려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 검에서는 강맹한 검강이 줄기줄기 뿜어져 나왔었지만, 지금은 그 어떤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들과 싸우고 있는 상대가 강하다는 것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들이 이토록 일방적으로 박살나고 있는 중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아르티어스였다.

“아들아!”

묵향을 부르는 순간, 아르티어스는 날아가는 아들과의 거리를 급격히 좁히고 있는 호비트 한 마리를 발견했다.

“이익! 라이트닝 볼…, 안 돼!”

그놈을 향해 마법을 시전하려던 아르티어스는 이미 늦었다는 것을 깨닫고, 비명을 질렀다. 육안으로 포착하기도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접근해 들어가는 상대. 그의 검이 화려한 궤적을 그리며 움직인 순간, 묵향의 몸은 수십 토막으로 잘려 사방으로 터져나갔다.

“크아아악! 안돼!”

사방에 흩뿌려진 시뻘건 피와 육편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아르티어스는 오열했다. 자신이 조금만 더 일찍 왔다면, 그랬다면 아들을 살릴 수 있었을 텐데. 왜 그렇게까지 불안했고, 아들놈을 만나기 위해 서두르고 싶었는지 이제야 알 것만 같았다.

“이렇게 죽다니…, 이렇게……. 아냐! 이렇게 허무하게 널 보낼 수는 없어. 이렇게는. 아들아! 내가 무슨 댓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너를 살려낼 테다. 아버지는 그렇게 보내드릴 수밖에 없었지만, 너는…….”

그때 멍하니 중얼거리던 아르티어스의 뇌리를 번쩍 하고 스치는 것이 있었다. 그건 아들놈을 되살리려면, 영혼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영혼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무슨 짓을 하더라도 살려낼 수가 없다. 물론 신화나 전설에서는 죽음의 강을 건너가서 영혼을 데려오기도 했지만, 사실 그건 불가능했다. 살아있는 생명체는 절대로 영계(靈界)로 들어갈 수 없으니까.

아르티어스는 황급히 품속을 뒤졌다. 영혼을 담을 만한 그릇 같은 게 있나 찾기 위해서였다. 이때 그의 손에 술병 하나가 잡혔다. 급히 술병을 꺼낸 아르티어스는 마개를 열고 내용물을 쏟아버렸다. 그런 다음 그 병을 들고 뭔가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아들놈의 육체를 이탈하여 영계로 날아가려는 영혼을 붙잡으려는 것이다. 하지만 영적인 부분은 드래곤의 전공이 아니었고, 설상가상으로 아르티어스는 그쪽 방면으로는 관심조차 없어서 공부한 것도 거의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급한 김에 유령과 같은 정신체 몬스터들을 제압하는 마법을 시전했다.

고오오오오…….

그 순간 하늘 위에서 흰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점점 한곳에 집중되며 더욱 밝아졌다. 아르티어스의 마음은 급했다. 유령이 이 마법을 당하면 고통에 찬 소름끼치는 비명을 질러댔겠지만, 지금 아들의 영혼은 그것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더 이상 영혼에 피해를 입히기 전에 봉인해야만 했다.

아르티어스의 인도에 따라 밝은 빛을 뿜어내는 구체는 빠른 속도로 날아와 곧바로 술병 안으로 쏙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아르티어스는 영혼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다섯 겹의 결계를 친 다음, 방금 전에 영혼을 제압하는 데 사용했던 마법을 해제했다. 겨우 아들놈의 영혼을 봉인하는데 성공을 하긴 했지만, 아르티어스는 걱정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방금 전의 그 마법으로 인해 영혼이 너무 큰 손상을 입은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젠장, 정신계쪽 마법도 좀 배워놓을 걸. 그런 건 절대로 쓸 일이 없다며 등한시 했더니, 결국 이 꼴이 되는군.”

자신이 배운 정신계쪽 마법이라고는, 예전에 아버지의 강압으로 인해 익힌 몇 가지 정도가 전부였다. 하지만 그 마법들은 이런 목적에 사용하는 게 아니다 보니, 아르티어스로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인 것이다.

이런 아르티어스의 모습을 흥미진진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는 인물. 그는 바로 묵향을 이 지경으로 만든 발해인이었다.

『허~, 오늘은 정말 운이 좋은 날이로군. 내가 어제 무슨 꿈을 꿨더라? 되놈들은 대가리 수만 많은 멍충이들이라고 지금껏 생각하고 있었건만, 오늘에야 그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겠구나. 이렇게 굉장한 고수를 보게 되다니…….』

그렇다. 그가 놀라고 있는 것은 방금 전에 자신과 대결했던 인물보다 더 뛰어난 인물이 나타났다는 데 있었다. 시대를 초월한 강자가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씩이나 존재할 줄이야. 그것도 그 둘이 서로 알고 지내는 사이일 수도 있다는 것은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던 그였다. 절대의 경지에 올라선 이후, 그는 지금껏 고독에 파묻혀 살아왔으니까. 절대자와 친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은, 상대 역시 절대자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다면 그의 수하가 되거나, 아니면 서로 죽고 죽이는 원수가 될 뿐이다. 수준이 엇비슷하면 친구가 될 수 있지 않느냐고?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생각이다. 한 산에 호랑이가 결코 둘씩이나 존재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이제 다 끝났느냐?』

회한에 젖어 있던 아르티어스는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아들을 이 지경으로 만든 놈이 서 있었다. 자신이 아들놈의 영혼에 정신을 팔고 있는 틈을 이용해 도망쳐도 쫓아가서 죽일지 말지 고심할 판에, 감히 저토록 오만한 눈빛으로 서 있다니.

『하는 행동으로 보아 술사(術士)인 듯 한데, 방금 전 뿜어져 나온 엄청난 기운으로 짐작해 본다면, 너 또한 보통은 넘어가는 인물임에 틀림없을 터. 오늘은 정말 운이 좋은 날이로구나. 자, 준비하거라. 그 정도는 기다려 줄 테니까.』

물론 그가 한 발해의 언어를 아르티어스가 알아들을 리 만무했다. 하지만 그가 말하고자 하는 뜻은 명확히 전달되었다. 도망치지 않고, 가만히 서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뻔했으니까.

“크흐흣, 감히 도망치지도 않고 나에게 시비를 걸다니. 하기야, 네놈을 살려줄 생각도 없었다. 목숨에 대한 댓가는 목숨이니까.”

순간, 아르티어스의 몸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고오오오…….

너무 오랜 세월을 살아왔기에 이제는 삶이라는 것에 대해 염증까지 느끼고 있던 발해인. 그는 이 세상에서 무감각해진 자신에게 더 이상 놀라움을 줄만한 것은 없다고 생각해 왔었다. 하지만 그런 그조차도 사람이 거대한 황금빛 괴물로 변하는 모습을 보며 기절초풍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설마하니 사람이 서책에서만 봤던 용과 같은 영물로 변하는 모습을 현실에서 보게 될 줄이야……. 덕분에 아르티어스는 드래곤으로의 현신을 안전하게 완료할 수 있었다.

난생 처음 보는 거대한 황금빛 괴물. 마치 무사가 두꺼운 금속갑옷을 입은 것처럼, 황금색의 철갑을 온몸에 두른 듯이 보인다. 전설상의 용에 비해서 훨씬 더 위압적인 형상을 하고 있다.

『용인가?』

발해인은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멍하니 아르티어스의 본체를 바라봤다.

『허허, 지금까지 들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르게 생겼군.』

드래곤의 모습으로 돌아간 아르티어스는 곧바로 발해인을 향해 일격을 날리려다가 생각을 고쳐먹었다. 손에 영혼을 담은 술병을 쥐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드래곤의 커다란 손에 비한다면, 술병의 크기는 너무나도 작았다. 꼭 쥐고 있다고 해도, 어디로 새어 나가버릴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아르티어스가 주문을 외우자, 타이탄들이 드나드는 곳 같은 공간의 빈틈이 생겨났다. 공간의 빈틈은 장시간 물건을 저장하는 데는 문제가 많았지만, 싸움이 끝날 동안 보관하는 것 정도야 문제될 게 없었다.

아르티어스는 공간의 빈틈에 술병을 던져 넣은 다음, 묵향의 육편 조각도 함께 넣었다. 육체를 재구성하는데, 혹시나 아들의 육편이 필요할지도 몰랐기에 그렇게 한 것이다. 공간의 빈틈은 차원이 틀린 세계이기에, 넣어둔 물체가 부패하거나 썩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이런 목적으로 쓰기에는 안성맞춤이라고 할 수 있었다.

쿠오오오오~~!!

드래곤 로어(Dragon Roar).

드래곤의 포효소리는 모든 생명체에게 두려움을 안겨준다. 드래곤의 포효소리 한 번에 아예 굳어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식은땀만 삐질거리는 게 거의 모든 생명체의 공통사항이었다. 하지만 발해인은 오히려 전의를 다지며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그에게 드래곤의 포효소리 따위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드래곤 로어를 견뎌냈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그도 인간이었다. 인간으로서 무공이 최고봉의 위치에 올라섰다고 하지만, 드래곤이 지닌 무시무시한 공격력에 비한다면 어른과 어린애의 격차보다도 더욱 심할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아르티어스는 손쉽게 놈을 죽여 아들놈의 원수를 갚을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곧이어 그게 완전한 착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까지 아르티어스는 같은 드래곤과 싸운 적도 있었고, 타이탄과 싸워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맹세코 이렇게 맨몸으로 덤벼드는 사람과 일대일로 싸운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원수 같은 호비트놈은 드래곤이나 타이탄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았지만, 대신 눈으로 쫓기도 힘들 정도로 엄청난 속도로 움직였다.

<이런, 빌어먹을!>

호비트 따위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한 방이면 끝이라고 생각했던 아르티어스였지만, 그는 곧이어 그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호비트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데다, 덩치마저 작다 보니, 공격을 퍼부어도 맞추기조차 힘들었다.

눈알이 핑핑 돌 만큼 빠르게 움직이던 호비트가 갑자기 아르티어스의 몸에 바짝 붙어서는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녀석이 뽑아든 거무틱틱한 광택을 띈 검은 표면이 매끄럽지 못하고 우둘투둘했다. 그것은 검 날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대장간에서 만들다가 실패해서 버린 듯한 검을 들고 나온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 흑묵검이 호사가들이 중원 최고의 검으로 꼽는 보검이라는 사실을 아르티어스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검의 표면이 매끄럽지 못한 것은, 워낙에 검이 단단해서 더 이상 가공할 방도를 찾아내지 못했기에 그렇게 된 것이다. 흑묵검은 10년 이상을 숫돌에 갈았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갈리지 않았다고 전해질 정도의 전설적인 보검이었다. 강기를 이용하여 검의 파괴력을 높일 수 있는 상승의 검술을 익힌 검객에게 있어서 흑묵검은 최고의 동반자였던 것이다.

순식간에 품속으로 파고 들어 공격을 퍼붓는 발해인. 워낙에 가깝게 접근해 있다 보니, 공격하기도 용이하지 않았다. 손과 발을 이용해서 버둥거려 보았지만, 워낙에 재빨라서 녀석의 움직임을 따라잡기도 힘들었다. 즉, 놈은 아르티어스의 거대한 몸체를 방패막이로 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찰나의 빈틈이라도 찾아내면 곧장 황금빛 몸체에 검을 휘둘러댔다.

슈슈슈슉!

묵향과 지내면서 외갑(外甲)에 마나를 집어넣어 강화하는 비법을 깨닫지 못했다면, 초전에 아르티어스가 도리어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를 만큼 놈의 공격은 치명적이었다. 하지만 그런 발해인의 무시무시한 공격을 아르티어스는 버텨냈다. 마나를 받아들여 더욱 강화된 그의 외갑으로.

<크아악! 이런 망할 자식! 좀 떨어져라.>

드래곤처럼 덩치가 크면서, 강력한 화력을 가진 존재들은 근접전투를 선호하지 않는다. 적과 적당한 거리를 둔 상태에서, 무지막지한 화력을 퍼붓는 싸움에 익숙했다.

물론 아르티어스는 드래곤치고는 근접전투 경험이 많은 편이기는 했다. 하지만 이토록 빠르게 움직이며, 몸 가깝게 다가오는 적과 싸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슬로우 마법까지 걸어봤지만, 놈의 움직임은 전혀 느려지지 않았다.

개가 벼룩을 상대하기 어렵듯, 그렇게 아르티어스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쉽게 무너질 아르티어스가 아니었다. 실전 경험이라면 그도 과할 정도로 쌓은 드래곤이었으니까.

짜증이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아르티어스는 곧장 하늘 저 위쪽으로 공간이동을 시도했다. 우선 놈과 거리를 둘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날개로 날아오르는 것도 한 방법이기는 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날개는 상대적으로 매우 취약한 부분이었고, 놈의 능력이라면 쉽사리 찢어발길 수 있다는 것을 감안했던 것이다.

공간이동을 하고 보니 놈과의 거리는 무려 2킬로미터. 이 정도라면 느긋하게 브레스를 준비해서 내뿜을 수 있는 거리였다. 목표는 저 밑에 있는 호비트 놈. 산만한 덩치의 드래곤이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져 버리자 당황해서는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는 중이다.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숨을 깊이 들이마시기 시작하던 아르티어스의 인상이 팍 일그러졌다. 갑자기 사라진 용이 어디로 갔는지 찾지 못해 두리번거리던 발해인과 시선이 마주쳤던 것이다. 하늘 저 멀리 떠있는 황금빛 용을 발견한 그의 입꼬리가 살짝 말린다. 즐거운 모양이다.

『훗, 도망갔다는 게 겨우 거기냐?』

가소롭다는 듯 비웃음을 짓는 발해인. 곧이어 그의 몸이 하늘 위로 쏜살처럼 날아올랐다.

날아오르는 상대가 방향 전환을 하지 못한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브레스가 먹혀들 리가 없다. 브레스를 쏨과 동시에 방향 전환을 하여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잘 아는 아르티어스였기에 브레스를 내뿜는 것을 일단 포기했다. 3번밖에 쏘지 못하는 만큼, 최대한 아껴둘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아르티어스는 놈이 하늘을 나는 상태에서, 방향 전환이 얼마나 자유로운지를 우선 시험하기 위해 마법공격을 시작했다. 놈이 방향 전환을 못하고 직선으로 날아온다면 그 마법을 몽땅 다 뒤집어 쓸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후속타로 브레스를 먹여줄 생각이었다.

고오오오, 슈슈슉!

하지만 놀랍게도 놈은 마치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움직이며 아르티어스의 마법공격들을 모두 피해냈다. 지상에서처럼 공중에서도 놈의 기동력은 발군이었던 것이다.

<허어, 호비트 따위가 저럴 수 있다니! 하기야 저 정도 실력이니, 아들 녀석이 그렇게 된 거겠지만…….>

발해인과의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들었고, 결국 아르티어스는 다시 한 번 공간이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놈과의 근접전은 자신이 압도적으로 불리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 이후, 한동안은 똑같은 방식의 전투가 계속되었다. 적과의 거리를 벌리기 위해 10킬로미터 정도 공간이동 한 후, 그곳에서 엄청난 마법공격을 퍼붓는다. 그러다가 적이 가깝게 접근하면 또다시 공간이동……. 마법에 능한 드래곤들이 흔히 쓰는 공격 방식이기는 했지만, 가장 큰 문제는 마나의 소비가 너무 크다는 점이었다.

저렇게 기동력이 뛰어난 적을 상대로 공방전을 펼칠 때는 정령왕을 불러내어 함께 싸우는 게 최선의 방법이었지만, 아쉽게도 이곳에서는 정령왕을 소환할 수가 없었다. 목표를 추격하여 타격하는 계통의 마법들은 화력이 약해 놈의 방어막을 뚫을 수가 없었고, 강한 마법은 미꾸라지처럼 피해버리니 미치고 팔딱 뛸 지경인 것이다.

물론 그건 상대 쪽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실컷 쥐어터지며 거리를 좁히면 갑자기 뿅 하고는 사라졌다가 멀찍이 떨어진 거리에서 모습을 드러내니 말이다. 상대가 너무나도 얄미워 머리통 위에서 김이 뿜어져 나오지 않는 게 신기한 지경일 것이다.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끝나갈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아르티어스가 드래곤 하트 속에 보유하고 있던 마나의 양이 별로 남지 않았다는 것을 자각한 다음부터였다. 본체인 상태를 유지한 채 계속된 공간이동이 그의 예상보다 더욱 심한 마나의 소모를 유발했던 것이다.

마나의 소모를 걱정한 아르티어스가 멈칫한 그 순간, 발해인은 아르티어스의 몸 가까이 접근하는데 성공했다.

퍼퍼퍼펑!

그와 동시에 쏟아진 가공할 만한 공격. 드래곤의 몸에서 1장(약 3미터)도 안 되는 거리를 유지한 채 요리조리 움직이며 막강한 공격을 퍼붓는다. 거리가 너무 가깝다 보니 아르티어스로서는 상대를 공격할 수단이 딱히 마땅치 않았다. 강한 마법을 사용하기에는 거리가 너무 가까웠고, 또 너무 빨리 움직였다. 자신이 쏜 마법의 대부분이 자신의 몸에 명중하는 수모를 당한 아르티어스는 짜증이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그렇다고 체격이 작은 호비트로 변신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한칼에 목이 떨어져 나갈 우려가 있었으니까.

<젠장! 젠장! 정말 미치겠구만!!>

상대가 이제는 목까지 타고 올라와 자신의 목에 칼질을 해대려고 하는 것을 보자 아르티어스는 어쩔 수 없이 또다시 공간이동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발해인과 10여 킬로미터쯤 떨어진 허공 위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아르티어스. 드래곤 하트 속에 들어있는 마나도 거의 없어졌고, 놈을 공격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

‘저놈이 드래곤쯤 되는 크기였다면, 이렇게까지 상대하기가 힘들지는 않았을 텐데…….’

상황이 여의치는 않았지만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다. 호비트따위에게 쫓겨서 도망친다는 게 싫었다. 더군다나 놈은 아들을 살해한 원수이지 않은가.

이때 문득 아르티어스의 눈에 하늘을 날고 있는 새들이 보였다. 공간이동을 할 때마다, 주위를 나는 새들을 관찰하는 것은 필수적인 사항이었다. 만약 새떼 사이로 공간이동하는 날에는 자신이 아무리 드래곤이라고 할지라도 그날이 바로 자신의 제삿날이 될 가능성이 컸으니까.

‘공간 충돌?’

그 순간 아르티어스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기가 막힌 착상. 그것은 바로 공간이동으로 인해 야기되는 최악의 사태인 공간 충돌이었다.

방법이 생각나자마자 자신을 향해 무시무시한 속도로 거리를 좁혀오는 녀석을 대상으로 아르티어스는 공간이동 마법을 시행했다.

‘대상은 저놈. 목적지는 바로 저곳!’

주문을 외우자 곧바로 마나가 발해인을 감쌌다.

만약 이곳이 아르티어스가 태어났던 세계였고, 저놈이 그곳에서 살고 있는 토종 호비트였다면 이런 간단한 함정에 빠질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상대는 마법이 뭔지도 모르는, 마법 쪽으로는 애송이가 아닌가.

상대는 지금까지 그래왔듯, 강한 위력을 지니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지는 마법은 피하고, 약한 것 같은 공격은 자신의 몸을 감싸고 있는 강력한 방어막으로 버텼다. 그렇게 했기에 아르티어스가 뿜어낸 그 엄청난 화력에도 불구하고, 거의 피해를 받지 않고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런 방법이 그의 생명을 옭죄고 있었다. 아르티어스가 시전한 것은 공격마법이 아니라, 공간이동 마법이었으니까.

아르티어스를 향해 날아오던 발해인의 몸에서 일순 희뿌연 빛이 뿜어나오는 듯 하더니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꽈꽈꽈꽈꽝!

그리고 그와 동시에 천지연 안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아르티어스는 자신이 아닌, 발해인에게 공간이동 마법을 걸어 천지연 안에다가 날려버린 것이다. 그 결과 발해인의 몸은 천지연 속으로 공간이동 되었고, 이미 그곳을 채우고 있던 물과 공간 충돌을 일으켰던 것이다.

이런 경우는 드래곤이라고 해도 살아남기 힘들었다.

<휴우, 호비트 한 마리 해치우는 게 이렇게 힘들어서야…….>

아르티어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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