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96화 (692/930)

* * *

“흠, 이 녀석이 죽음의 기사를 만들 줄 안다고?”

“예, 어르신.”

팔시온의 대답에 아르티어스는 흡족하다는 표정으로 미소 지었다.

치레아 대공이 굽신거리고 있는 금발의 사내. 그 사내의 정체가 뭔지 흑마법사는 곧바로 눈치 챘다. 저 정도 존재감을 뿜어낼 수 있는 사람은 아예 없다. 있다면 드래곤뿐. 특히나 금발인 점으로 미뤄봐서 골드 드래곤이 틀림없었다. 그 순간 흑마법사의 뇌리로 악독하기 그지없었던 한 골드 드래곤의 이름이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서, 설마?’

두려움에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흑마법사를 향해 아르티어스가 물었다.

“내가 아끼던 호비트가 죽었다. 그 호비트를 죽음의 기사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 그러기에 앞서 위대하신 분께 먼저 아뢸 말씀이 있습니다.”

“무엇이냐?”

“죽은 기사를 죽음의 기사로 되살리는 것은 매우 힘듭니다. 왜냐하면 상대방이 원해야 가능하지, 그렇지 않고 강제적으로 죽음의 기사로 만들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죽음의 기사라는 마물로 태어나 저에게 속박되는 것을 감수할 정도로 강한 원한을 가지고 있지 않는 한, 죽음의 기사로 재탄생되기를 원하는 기사는 거의 없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수백 명에 달하는 기사들의 영혼에게 권유해 봤습니다만, 성공한 것은 겨우 3명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그런 만큼 죽으신 분의 영혼이 만약 거부를 하여 죽음의 기사로 만들지 못하게 되었을 때, 저에게 그 책임을 묻지 말아 주시기를…….”

그제야 흑마법사 녀석이 주장하고자 하는 게 뭔지를 깨달은 아르티어스는 신경질적인 어조로 대꾸했다.

“아아, 네 녀석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그쯤 했으면 이해했으니, 더 이상 말할 필요는 없다.”

“그럼 저를 그 분이 묻혀있는 무덤으로 데려가 주십시오.”

“무덤에는 왜?”

“그 분의 영혼과 대화를 해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르티어스는 곧바로 품속에서 술병을 꺼냈다. 다크의 영혼이 봉인되어 있는 그 술병을 말이다. 아르티어스는 술병의 봉인을 해제하여 영혼이 밖으로 나올 수 있게 해줬다. 물론 다크의 영혼이 딴 데로 도망가지 못하도록 커다란 결계를 형성한 뒤 그 속에 머물도록 했다. 그런 다음 흑마법사에게 말했다.

“여기에 영혼이 있으니 주문을 외워보거라.”

흑마법사는 두 손을 하늘 위로 뻗으며 주문을 외웠다.

“잠들어 있는 위대한 기사의 영혼이여! 대마왕 크로네티오님의 권능을 받아 그대에게 명하오니 지저(地底)의 혼돈에서 깨어나 나, 카론 일족의 권능을 이어받은 제이슨의 명령에 따르라!”

흑마법사가 주문을 외우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술병 안에서 왠지 까칠한 음성이 들려왔던 것이다.

<네놈은 누군데 나를 부르는 게냐?>

“위대한 기사의 영혼이여, 죽음의 기사로 다시 태어나고 싶은 생각은 없느냐? 만약 죽음의 기사로 다시 태어난다면, 네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도록 내가 최선을 다해 도우마. 네 원한이 무엇이냐?”

애타는 그의 물음에 영혼은 퉁명스런 어조로 대꾸했다.

<원한 따윈 없다. 무사로서 후련하게 싸우다 죽었으니, 더 이상 무엇을 바랄 게 있겠는가.>

까칠한 답변에 당황한 흑마법사는 황급히 아르티어스에게 보고했다.

“사자(死者)가 다시 태어나고 싶은 마음 따위는 없답니다. 무사로서 후련하게 싸우다 죽었으니,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느냐고…….”

“이런 망할! 그 녀석한테 전해. 제발 나를 버리지 말아달라고 말이야. 죽음의 기사면 어떠냐. 나는 네 외모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아. 그러니 내 곁에서 말벗이라도 해다오. 앞으로 기나긴 생을 홀로 살아야 할 아버지가 불쌍하지도 않냐?”

그 말을 사자의 영혼에게 전한 흑마법사는 곧 황당한 표정으로 말을 전했다.

“싫다는데요.”

“이런 못된 놈! 애비는 자기를 살리겠다고 이렇게 애를 태우고 있는데, 감히 들은 척도 안 해?”

성질 같아서는 그냥 영혼을 순리대로 떠나게 해주고, 모든 것을 끝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아르티어스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동안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어 그 빈자리가 너무 컸던 탓이다. 무미건조하던 그의 삶에 커다란 활력소가 되어줬던 호비트인 다크. 그 다크와의 짧았던 유희는 이 전에 해왔던 어설픈 유희와는 달리, 그에게 엄청난 삶의 즐거움을 선사했다. 그래서 다크를 친아들처럼 애지중지하며 돌봐줬는지도 모른다.

유희라는 게 언제나 그렇듯, 골치 아프게 꼬이다 보면 나중에는 신물이 나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그냥 다 때려치우고, 다른 곳에 가서 다시금 유희를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아들인 다크와의 유희는 그렇지가 않았다. 호비트인 주제에 드래곤인 자신에게 겁도 없이 달려들던 그 무모함, 그리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마구 부려먹는 그 악독함. 언제부터였는지는 몰라도 아들놈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을 때,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하루하루가 재미있고, 너무 행복했었다. 그래서였을까, 예전에 유희 중 대륙을 정복해 보겠다고 날뛰었을 때보다, 다크의 눈을 피해 구석에 처박혀 농땡이 필 때가 더 통쾌하고 행복하게 느껴졌던 것이.

그만큼 아들의 존재가 자신의 많은 것을 바꿔놨던 것이다. 이제 그에게 있어서 아들이 없는 삶은 생각하기 힘들었다. 또다시 동굴 속에 처박혀 잠이나 자면서 그 기나긴 삶을 지루하게 보내야만 한다는 걸 떠올리면…….

“안 돼! 절대 그럴 수는 없어.”

아르티어스가 머리털을 쥐어뜯으며 분노에 잠겨있을 때,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팔시온과 미디아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팔시온은 궁금증을 도저히 참지 못하고, 아르티어스에게로 다가가 뭔가를 물으려 했다. 그때 미디아가 황급히 다가와 그의 팔을 잡고는 뒤로 잡아당겼다.

“당신 지금 뭘 하려고 하는 거예요?”

“설마 다크가 죽은 거야? 말도 안 돼. 어르신께 확실히 물어봐야겠어.”

“당신 미쳤어요? 지금 어르신께 뭘 물어볼 만한 상황이냐구요.”

미디아가 겁에 질릴 정도로 아르티어스의 분노는 대단했다. 눈치를 보아하니, 지금 제정신이 아닌 듯 했다. 이럴 때 자칫 그의 심기를 건드리기라도 했다가는, 오늘이 바로 제삿날이 되는 수가 있다.

하지만 팔시온은 그런 것조차 느끼지 못하는 듯 그저 멍하니 중얼거릴 뿐이었다.

“그럴 리가 없어. 그 녀석이 얼마나 강했는데. 코린트가 자랑했던 키에리 드 발렌시아드 대공조차도 이긴 녀석이잖아. 그런 놈이 죽었다는 게 말이나 돼?”

“아무래도 안되겠어요. 일단 우리 밖으로 나가요.”

듣다 못한 미디아가 팔시온의 팔을 잡아끌고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그 와중에도 팔시온은 멍한 표정으로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친구 중 하나가 다크였어. 그 빌어먹을 놈은 내가 죽은 후에도 몇 백 년은 더 살 만큼 강했다구. 그런데 그런 놈이 죽었다고 나보고 믿으라는 거야?”

텅 빈 눈으로 미디아를 향해 물어보던 팔시온은 갑자기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관저 안으로 터덜터덜 들어갔다.

실내로 들어온 팔시온은 벽장에 장식되어 있던 독한 술병을 꺼내 주저없이 마개를 땄다. 그리고는 목이 타는 듯 한잔 가득 부어서는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런 다음 또다시 한잔 따라서는 미디아에게 내밀며 물었다.

“당신도 한잔 할래?”

“나는 됐어요.”

살며시 고개를 흔든 미디아는 창가 쪽으로 다가가 아르티어스가 지금 뭐하고 있는지부터 살폈다. 아르티어스는 분노를 참기 힘들었던지 발을 연신 동동 구르면서도, 화를 애써 참으며 계속 흑마법사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마도 죽음의 기사가 되기 싫다는 다크의 영혼을 달래고 있는 것이리라.

* * *

아르티어스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채, 자신의 레어로 돌아왔다. 거의 1시간에 걸쳐 애걸복걸하며 매달렸건만, 매정한 아들놈은 그의 요청을 거절했다. 좀 더 설득해 보고 싶었지만, 이제 더 이상의 형식적인 대답조차 하지 않는다는 흑마법사의 말에 그만 포기하고 돌아온 것이다.

“망할 놈의 새끼! 내가 자기를 얼마나 사랑했는데, 나를 이따위로 대해? 또다시 네놈을 살릴 생각을 하면 내가 드래곤이 아니라 도마뱀이다.”

아르티어스가 도착하는 것을 보고 엘프들이 허겁지겁 달려와 인사를 건넸다. 잠을 자고 있는 줄 알았던 주인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 후, 그들은 아예 지하공동에다가 보초까지 세워놓은 상태였다. 안 그래도 성질 더러운 주인이 들락거리는 꼴이 왠지 꼬투리를 잡으려고 하는 건 아닌가 하는 불길한 예감에 그렇게 했던 것이다.

“어서 오십시오, 주인님. 시키실 일은 없으십니까?”

아르티어스는 귀찮은 듯 손짓하며 대꾸했다.

“됐다. 너희들은 가서 일 봐.”

힐끔힐끔 눈치를 보며 사라지는 엘프들. 아르티어스가 그들을 서둘러 내보낸 것은 성질 같아서는 무슨 짓을 해버릴지 자신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름 쓸 만한 노예들인데, 화풀이 대상으로 없애버리기에는 좀 아까워서였다.

“빌어먹을. 다 때려치우고 잠이나 자자.”

그때 막 드래곤의 본체로 변신하려고 하던 아르티어스의 뇌리를 스치는 생각 하나가 있었다. 죽음의 기사로 만드는 데는 상대방의 의사를 물어봐야 한다지만, 키메라의 경우에는 그런 작업이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흠, 호비트들이 키메라를 만드는 실력이라고 해봐야, 별 볼 일 없을 게 뻔하고…….”

어느새 본체로 돌아가서 잠이나 즐기겠다는 생각은 사라지고, 그의 머릿속은 키메라로 꽉 들어찼다.

“이왕에 이렇게 된 거, 내가 한 번 키메라를 만들어 봐? 드래곤도 한 마리 필요하다고 했으니까, 정 안되면 브로마네스를 잡아서 쓰면 되겠네. 큭큭큭.”

자신의 생각이 꽤나 마음에 든 듯 흡족한 웃음을 터트리던 아르티어스는 갑자기 고개를 가로저으며 중얼거렸다.

“아니, 꼭 죽일 필요는 없을 거야. 겨우 키메라 한 마리 만드는 것 정도라면, 드래곤의 본체가 다 필요하지는 않겠지. 그 정도라면 내 피와 살을 조금 잘라서 쓰면 되지. 그렇게 되면 아들놈과 나는 같은 피로 연결되는 게 아니겠어?”

정말 괜찮은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빨리 키메라 제작법이나 배우는 게…….”

중얼거리던 아르티어스는 갑자기 인상을 확 구겼다.

그러고 보니 키메라 제작법을 누구에게 배우느냐 하는 문제가 있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친 것이다. 호비트한테 가서 배운다고? 녀석들의 연구 수준이라고 해봐야 뻔할 뻔자가 아닌가. 브로마네스 녀석의 말에 따르면 제대로 말도 할 줄 모르는, 그런 허접한 놈들 밖에 만들지 못할 정도로 저급한 수준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자신이 직접 연구하며 레벨을 올릴 수밖에 없을 텐데, 어느 세월에 그 짓을 하겠는가.

아르티어스는 공동 안을 서성이며 중얼거렸다.

“뭔가 방법을 찾아내야 해. 아르티어스, 너는 일족들 중에서 가장 머리가 뛰어나다는 칭송을 받고 있는 아버지의 아들이잖아. 너는 생각해 낼 수 있어. 너는…….”

이때, 그의 머리를 번쩍 하고 스쳐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그렇다. 그의 아버지인 아르티엔이 생애 대부분을 마법에 미쳐서 사셨던 분인 만큼, 키메라에도 손을 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마법생물 키메라를 제조하는 것에도 엄연히 고난도의 마법이 필요했다. 거기에 흥미를 느끼셨을 지도 모를 일이 아니겠는가.

“아버지의 레어를 뒤져봐야 해.”

아르티엔이 죽은 지 꽤나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그의 레어에 있는 보물들은 도둑맞지 않고, 모두 다 제자리에 있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는 아르티어스였다.

* * *

골드일족이 낳은 최강의 드래곤 아르티엔.

하지만 의외로 그의 레어는 소박했다. 아마도 그건 대부분의 드래곤들이 시간을 주체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쫓아다니며 금은보화와 보물을 모으느라 정신없었던 것에 비해, 그는 마법 연구만으로도 바쁜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리라. 더군다나 아르티어스를 낳은 다음에는 그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바빠서, 금 쪼가리나 모은다고 돌아다닐 여유도 없었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르티엔이 전혀 금은보화를 수집하지 않았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른 드래곤에 비한다면 비교적 소량이기는 했지만, 수집하기는 했었다. 그런데 레어 안이 텅 비어있는 것은 이미 아르티어스가 몽땅 다 털어먹었기 때문이었다.

레어에 도착한 아르티어스의 인상이 확 일그러졌다.

“얼레, 침입자가 있었나?”

금은보화야 이미 다 털어갔지만, 그 외에도 아르티엔의 레어에는 방대한 마법 자료들이 쌓여있었다. 그것들을 몽땅 다 자신의 레어로 옮길 생각이었지만, 당시 다크에게 얽매여 있던 아르티어스에게는 그럴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다른 놈들이 들어와서 아버지의 유산을 훔쳐가지 못하도록 각종 방어망을 쳐놓는 것으로 그쳐야만 했었다. 그런데 그 방어망들이 전부 다 해체되어 있는 것이다.

드래곤답게 아르티어스는 어떤 위험이 저 어두컴컴한 레어 안에 감춰져 있는지는 생각도 하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이때, 그의 귀에 이해하기 힘든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봐, 거기 조심해!”

“그래, 그렇게…….”

뭔가를 퉁탕거리며 두들기는 듯한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목소리들.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는 보지 않아도 뻔한 일이었다. 드워프 특유의 억양과 어조가 가미되어 있기에, 아르티어스는 보지 않고도 레어 안쪽에 드워프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챈 것이다.

“이상하네……? 아무리 드래곤이 살지 않는다고 해도, 레어에 드워프들이 정착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줄 알았는데 말이야.”

왜 그런가 하면, 이곳에 다른 드래곤이 둥지를 틀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되면 그날로 둥지를 튼 드래곤의 노예 신세로 전락해 버린다. 그런 위험을 뻔히 알면서도 이곳에 정착할 간 큰 드워프는 없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수많은 드워프들이 북적거리며 일을 하고 있었다. 아르티어스가 다 털어가버려 휑하기 그지없게 변해버린 을씨년스러운 공간을 새로운 예술작품들로 채워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 그의 모습을 발견한 드워프들 중 한 명이 안쪽으로 달려 들어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우람한 덩치의 오크를 한 마리 데리고 나왔다. 오크들 중에서 붉은 털을 지닌 개체는 꽤나 드물다. 더군다나 저렇게 불타오르는 듯한 선명한 붉은 털을 가진 놈은 지금껏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아르티어스는 그제야 알겠다는 듯 콧방귀를 뀌며 이죽거렸다.

“킁, 손님이 들어온 거였군.”

하기야, 드래곤이었으니 그가 여기에다 쳐놨던 각종 방어 마법들을 무위로 돌릴 수 있었던 것이리라. 물론 그것도 다 아르티어스가 이곳에 없었기에 가능했던 것이겠지만 말이다.

“췩! 누구시죠? 췩! 무슨 일로 남의 영역에 침범하신 겁니까. 취췩!”

말을 할 때마다 커다란 송곳니 사이로 바람 빠지는 소리가 울려나왔다.

“여기가 어떻게 네 녀석의 영역이라는 말이냐? 이 레어는 골드일족 최강의 드래곤이셨던 아르티엔님의 것이다.”

“췩! 그건 알고 있어요. 그리고 그분이 돌아가셨다는 것도. 췩!”

“그렇다면 이 레어가 그분의 아들인 나 아르티어스에게로 상속되었다는 것도 잘 알겠군. 안 그래?”

“췩! 당신은 이곳에서 살고 있지 않잖아요. 췩! 그리고 드래곤이 둥지를 두 개 이상 가진다는 말은 여태 들어본 적이 없다구요.”

“흥! 2개를 가지건, 3개를 가지건 내 마음이지. 주인의 허락도 받지 않고 남의 레어에 침입한 녀석은 이만 여기서 나가줘야겠어.”

“그렇게는 못하겠어요. 췩!”

“호오, 못하겠다고?”

피식 미소 짓는 아르티어스. 말로 하니까 감히 어린놈이 주제파악도 못하고 덤비고 있는 것이다. 안 그래도 다크 때문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있는 상태였는데, 아르티어스는 마침 잘되었다 싶었다. 이놈을 어떻게 박살내야 울화가 풀릴까? 뼈다귀 한두 개 부러트리는 정도로는 화가 풀릴 것 같지도 않았다.

“크크, 어쩔 수 없지. 주인의 허락도 받지 않고, 남의 영역에 멋대로 침입하는 놈이 어떻게 되는지 내가 몸소 가르쳐 주는 수밖에.”

광기로 번들거리는 아르티어스의 눈을 보고, 오크는 자신도 모르게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지금까지 거의 느껴지지 않았었는데, 갑자기 자신의 온몸을 짓누르는 상대방의 거대한 존재감.

“취익, 맙소사…….”

자신이 아는 한 가장 강한 존재였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보다도 훨씬 더 강맹한 기운이 뿜어져 나와 자신을 옭죄고 있었다.

“꾸애애액! 오, 오크 아니, 드래곤 살려~.”

잠시 후, 광장 안에는 처절한 오크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고, 겁에 질린 드워프들은 손으로 양쪽 귀를 꽉 막고 한쪽 구석에서 바들바들 떨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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