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0화 (696/930)

공간이동 마법진으로 다가간 아르티어스는 그것을 자세히 살펴봤다. 101개의 마법진들 중 최소한 1개 이상은 공간이동 외에 다른 기능을 갖추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게 어느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곧 찾을 수 있으리라. 드래곤의 기억력은 너무나 정확했기에, 아무리 101개의 마법진이라도 지금처럼 찾으려고 작정한다면 아주 미세한 차이조차 금방 집어낼 수 있었으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아르티어스는 어렵지 않게 문제의 마법진을 찾아낼 수 있었다. 이동마법진 안에 숨겨진 또 다른 마법진. 아르티어스의 손이 숨겨진 마법진 위를 쓱 훑고 지나가자, 그 부분이 붉은 빛을 뿜으며 발동했다. 그리고 이동마법진의 모양이 스르르 변하는 게 보였다. 목표 지점이 다른 곳으로 바뀐 것이다. 아마도 비밀창고로 가도록 변형된 것이리라.

아르티어스는 콧노래를 부르며 마법진 위로 올라섰다. 이번에는 확신이 있었기에, 그의 발걸음에 망설임은 없었다.

곧 환한 빛이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순간, 그의 앞에는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습기가 듬뿍 함유된 후덥지근한 공기. 하늘을 뚫을 듯한 거대한 삼림이 우거져 있었는데, 견문이 꽤나 넓은 아르티어스로서도 처음 보는 이국적인 식물들이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아르티어스가 모습을 드러낸 마법진 앞쪽으로는 마치 징검다리처럼 돌판이 점점이 박혀 있었다. 마치 이곳으로 가면 된다는 듯.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도 돌판을 밟으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세상에, 여기는 도대체 어디야? 아버지는 취향도 참 독특하셔. 하고 많은 곳을 놔두고 적도 주변이라니. 침입자를 경계해야 할 테니까, 여기는 아마 섬이겠지?”

아르티어스는 이국적인 식물들과 후덥지근한 날씨로 미뤄보아, 이곳이 열대지방에 위치한 외딴 섬이라고 판단했다.

돌판을 따라 걷던 아르티어스의 걸음이 순간 멈칫했다. 그는 본 것이다. 아버지의 비밀창고를. 하지만 이건 창고라 불리기엔 너무나도 웅장한 건물이었다. 아니, 창고가 아니라 신전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거대했다.

아르티어스가 생각했던 비밀창고는 이렇게 거대한 게 아니었다. 확실히 그의 아버지는 통이 컸다. 그 어떤 드래곤보다도. 대체 어느 드래곤이 이렇게 엄청난 규모의 비밀창고를 건축할 생각을 하겠는가. 원래 비밀창고라는 것은 아주 소중한 물건만을 보관하기 위해서 은밀한 곳에 지어져야 하는데, 이렇게 크고 웅장하게 지어놔서야 비밀이 유지될 턱이 없었다.

창고(?) 앞에 도착한 아르티어스는 문을 슬쩍 밀어봤다. 하지만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좀 더 세게 밀어봤다. 역시 미동도 하지 않는 문짝. 결국 아르티어스는 파워 업(Power Up) 마법까지 동원해가며 밀어봤지만,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헉헉! 이건 밀어서 여는 문이 아닌 모양이군.”

그걸 이제야 눈치 챈 아르티어스가 둔감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로서도 할 말은 있었다. 이곳까지 오는 것만으로도 꽤나 고생을 했기에, 더 이상의 방어 장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이런 웃지 못 할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그는 주위를 꼼꼼히 살펴봤다. 뭔가 문을 열 수 있는 스위치 비슷한 것이나, 아니면 마법장치라도 있는가 싶어서였다.

찾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그는 마법장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생각없이 지나쳐 온 작은 비석 모양의 돌 위에 손바닥 문양이 그려져 있는 것을 찾아냈던 것이다.

“바로 이거로군. 어떻게 하는지는 한눈에 척 봐도 알겠어. 여기에 손바닥을 대라는 말이겠지.”

손바닥을 갖다 대기만 하면 곧바로 문이 스르륵 열릴 줄 알았다. 하지만 문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일그러지기 시작한 아르티어스의 얼굴.

“빌어먹을! 이게 아니라면, 대체 어디에 문을 여는 스위치가……?”

하지만 이때, 공간이 이상하게 뒤틀리며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투명한 뭔가가 있었다. 이런 괴이한 현상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기절초풍했겠지만, 아르티어스는 이미 그 존재를 예전에 본 적이 있었다.

아르티어스는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리엘(Ariel), 네가 왜 여기에……?”

모습을 드러낸 투명한 뭔가는 바람의 정령왕 아리엘이었다.

“호오, 아르티어스였군. 너라면 ‘큐로바’의 문을 열 자격이 있지.”

큐로바.

아르티엔이 만든 창고의 이름이었다. 아르티어스는 정령왕 아리엘의 설명을 듣고서야, 이곳 창고가 정령계에 만들어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설명이 끝나자마자 아르티어스는 새삼 주변을 다시 한 번 둘러봤다. 정령계가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 곳이었다니.

지금까지 정령계로 들어갔던 드래곤이 있다는 말을 아르티어스는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제아무리 드래곤이라고 하더라도 정령계에 들어가면 정령왕의 적수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무슨 꼴을 당할지 짐작도 되지 않는데, 감히 정령계로 들어갈 생각을 할 드래곤이 있을까? 아르티어스도 만약 이 마법진이 정령계로 들어가는 통로라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절대로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아르티엔님은 큐로바를 이어받을 수 있는 대상으로 너와, 골드 일족만을 지명하셨다. 그 외에 다른 것들이 그분의 유산을 탐내 이곳에 발을 들이게 될 경우, 그 처리를 나에게 일임하셨지.”

“설마 드래곤이라도?”

“실버 드래곤이 너희들이 살고 있는 세계에서는 최강이라고 하지만, 정령계로 들어오면 내 밥일 뿐이야.”

“실버라면, 정령왕 나이아드(Naiad)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있잖아.”

“침입자를 징계하는 걸, 그가 막을 권한은 없다.”

“하지만 예전에 내 아들이 이리로 왔을 때는……?”

“그건 경우가 다르다. 그 아이가 자발적으로 이리로 온 것이 아니라, 나이아드에게 끌려왔기 때문에 모두가 참견할 수 있었던 거지.”

바람의 정령왕 아리엘과 대화를 나누던 아르티어스는 기가 막힌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허어~, 참. 어찌되었든 아버지는 어떻게 여기에다가 비밀창고를 만들 생각을 하실 수 있었을까? 정말, 놀랠 노자로군.”

“아르티엔님만큼 강한 드래곤은 아마 두 번 다시 나오지 못할 거야. 그분은 아주 특별한 드래곤이셨거든.”

잠시 눈을 감고 뭔가를 회상하는 듯 하던 아리엘은 아르티어스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큐로바로 들어가는 모든 결계는 해제되었으니, 이젠 들어갈 수 있을 거야. 그럼 다음에 보세나.”

비밀창고로 들어가는 최후의 관문은 바로 정령왕이었던 것이다.

“정말 대단한 아버지야. 이 정도라면 신이라면 모를까, 이곳 비밀창고를 털만 한 존재는 아예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군.”

어마어마한 규모의 창고였기에, 그 안에 들어있는 보물들 역시 엄청나게 많을 것이라고 아르티어스는 기대했었다. 하지만 예상외로 창고 안에 있는 보물과 물건의 양은 그리 많지 않았다. 물론, 그 하나하나가 인간세계로 풀려나갔다가는 커다란 회오리 바람을 일으킬 만한 물건들이었지만 말이다.

“세상에……. 아버지가 미쳤지. 이런 걸 창고에 보관해 두다니. 이런 건 보자마자 불태워 없애버렸어야지.”

창고 한 컨에 쌓여있는 수천 권이 넘는 흑마법서들. 아마 예전에 대마왕 크로네티오를 없애기 위해 싸웠을 때, 그때 수집한 것들인 모양이었다.

드래곤들은 대부분 흑마법서를 발견하면, 그 자리에서 없애버린다. 자신에게 하등의 쓸모도 없을 뿐더러, 세상에 떠돌아봐야 좋을 게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아르티어스 같은 변태 드래곤의 경우, 마왕 사냥을 한번 해보고 싶어 일부러 적당한 인간을 찾아 전해주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 외에도 구하기가 극히 어렵거나, 혹은 아주 위험한 시약과 같은 마법에 관련된 물품들이 꽤나 많이 쌓여있었다. 하지만 예상외로 마법도구들은 전혀 없었다. 아마도 아버지는 다른 드래곤이 제작해 놓은 완제품에는 별로 매력을 느끼지 못하셨던 모양이다.

아버지가 수집해 놓은 마법서의 양은 그리 많지 않았다. 더군다나 공격이나 방어 마법서를 제외하고 보니, 백여 권 남짓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키메라, 키메라, 키메라…….”

중얼거리며 마법서들의 제목을 훑어나가는 아르티어스. 마법서의 수량이 얼마 되지 않다 보니, 금세 찾아낼 수 있었다.

“오옷! 바로 이거야. 하지만 제목이 뭐 이래? ‘키메라 제작에 사용되는 하급 마법들에 대한 연구’라니. 이거 말고 다른 건 없나?”

아버지가 직접 쓴 마법서였지만, 제목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기에 다른 마법서가 있는지 찾아봤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키메라’라는 글자가 들어가 있는 마법서는 더 이상 찾을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좀 전에 본 ‘키메라 제작에 사용되는 하급 마법들에 대한 연구’라는 제목의 책을 펼쳐보았다.

“젠장, 하급 마법들에 대한 연구라니? 그런데 뭔 놈의 책이 이렇게 두꺼워?”

투덜거리며 자세히 읽어보는 아르티어스. 하지만 그는 채 몇 장 읽어보지 않았어도 금방 깨달았다. 이건 절대로 하급 마법이 아니라는 것을. 지금까지 키메라 제작에 사용되었던 거의 모든 고차원적인 마법 및 마법장치들이 총망라되어 있는 책이었던 것이다.

“젠장, 이걸 가지고 연구해서 키메라 한 마리 만들려면 1~2년 가지고는 어림도 없겠다.”

어쩌면 10년이나 20년이 걸릴 수도 있다. 아니, 처음 시작하는 것인 만큼 100년 가지고도 어림도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천년이 걸리면 또 어떤가. 남는 게 시간뿐인데 말이다.

일단 아르티어스는 마법서의 내용 중에서 영혼을 넣은 것은 없는지부터 찾아보았다. 아무리 완성도 높은 키메라를 제작한다고 해도, 영혼을 넣을 수 없다면 그건 헛고생이나 다름없었으니까.

1시간, 2시간…….

두터운 마법서 구석구석을 눈알이 빠져라 샅샅이 훑었지만, 결국 찾아내지 못했다. 마법서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키메라를 만드는 것에 국한되어 있었을 뿐, 영혼을 제어하는 것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뭐, 어쨌든 일단은 키메라를 만드는 데는 이걸 이용하면 될 테니까, 절반은 성공했다고 봐도 무방하겠군. 그렇다면 이제는 영혼을 제어해서 키메라 속에 쑤셔 넣는 방법을 찾기만 하면 되는데…….”

중얼거리던 아르티어스는 시선을 마법서들쪽으로 옮겼다. 물론 그는 지금 이 서가에 꼽혀있는 마법서들의 제목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드래곤의 기억력은 엄청났으니까. 더군다나 100권 남짓한 수밖에 안 되는 제목을 그가 기억하지 못했을 리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던 이유는, 혹시 키메라나 영혼이라는 단어 말고 그와 관련된 뭔가를 못보고 지나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이때, 그의 시야에 수상쩍은(?) 제목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전생(轉生)의 비술(秘術)』

“전생의 비술? 이게 뭐야.”

아르티어스는 급히 그 마법서를 꺼내 펼쳐보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첫 장에는 아버지가 이 마법서를 어떻게 얻게 되었는지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적혀 있었다.

수천 년 전에 있었다고 전해지는 마법의 황금기.

그 당시의 호비트 대마법사들은 엘프보다도 더 뛰어난 마법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는 전설들이 전해진다. 인간들은 ‘전설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 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인간들에게 있어서 수천 년은 역사책으로도 접하기 힘들 정도의 오랜 과거다. 하지만 망각을 모르는 드래곤들은 그 오랜 시간을 마치 몇 년 전에 겪었던 일들처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인간사회에서는 수천 년 전의 일들이 점차 왜곡되고 변형되어 후세에 전해지기도 하지만, 드래곤들은 그 모든 것들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마법의 황금기는 전설이 아니라, 사실이라는 것을.

아르티어스가 어렸을 때만 해도, 인간들의 마법은 엘프의 마법을 월등하게 초월해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그가 성장하여 유희를 시작할 무렵쯤에는, 인간들의 마법이 점차 쇠퇴해 가고 있었다. 마법의 황금기가 끝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엄청난 실력을 지닌 호비트 대마법사들이 어딘가에 숨어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유희를 하는 동안 그들을 단 한 명도 만나보지 못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면서 수많은 거짓과 진실이 뒤섞여 하나의 전설이 되는 과정을 직접 경험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어떤 드래곤도 이 전설은 거짓이고, 저 전설은 진실이라고 목 놓아 주장하지는 않았다. 자신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 한, 웬만한 일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 게 드래곤이었기에 수많은 진실들이 땅속 깊숙이 묻히고 잊혀져 가는 것을 방관해 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 아르티어스는 왜 갑자기 호비트들의 화려했던 마법의 시대가 급격히 쇠퇴해 갔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건 바로 그의 아버지 때문이었다. 인간들의 급격한 마법 실력 상승에 의구심을 가진 그의 아버지가 자세히 조사해 본 결과, 전생의 비술이라는 희한한 수법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낸 것이다.

전생의 비술이란 것을 간단히 정의하자면 자신의 영혼을 새로운 몸으로 옮기는 일련의 작업을 말하는 것이었다.

즉, 이 비술을 통해 자신의 영혼을 여인의 뱃속에 들어있는 태아의 것과 바꿔치기 함으로서 완벽하게 새로운 신체를 얻게 된다. 더군다나 일정 연령이 되면 전생의 기억을 각성하게 되니, 일석이조인 셈이었다. 마법은 깨달음의 학문인 만큼 전생의 기억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젊은 육체의 인간은, 예전보다 더 높은 경지의 마법을 익힐 수 있는 가능성이 훨씬 더 커지게 되는 것이다.

인간들은 이 비술을 이용해 수명의 한계를 극복하고, 찬란한 마법의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그 마법의 황금기가 종말을 고하게 된 것은, 전생의 비술의 위험성을 직감한 아르티엔이 전 대륙을 떠돌며 비술에 대한 모든 흔적을 깨끗이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마법서는 물론이고, 그것을 익힌 마법사까지 하나하나 찾아내어 모두 다 없애버렸다.

수많던 대마법사들이 갑작스레 하나 둘씩 행방불명되어 버리면서, 마법의 황금기는 무너져 버렸다. 대마법사들이 익힌 고차원의 마법들과 깨달음이 후세에 전달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비술이 사라져 버리자, 인간들의 마법은 일정 수준 이상 높아질 수가 없었다. 수명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인간은 마법적 능력을 높이기보다는 또 다른 편법을 찾아내게 되었다. 그건 바로 마법병기 타이탄이었다. 짧은 수명에도 불구하고 끝없는 욕망으로 살아가는 인간들은 언제나 강한 힘을 원했고, 그 결과 차츰 제국의 틀을 갖춰가기 시작했다. 제국이라는 거대한 힘은 마법병기 타이탄을 만들 수 있는 과학과 마법, 그리고 재료의 수급을 가능하게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마법병기 타이탄은 지금껏 절대 상대할 수 없는 존재라고 알려진 드래곤에게 맞서 싸울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인간들에게 가져다 주었다.

물론 에이션트급 고룡은 무리였고 적당히 어린 드래곤을 사냥할 수 있는 정도였지만, 그래도 그 막강한 힘에 인간들은 열광하며 더욱 강력한 타이탄을 만들기 위해 박차를 가해왔다.

추억삼아 마지막 한 권은 불태우지 않고 창고 안에 보관해 놓은 아르티엔. 그 덕분에 아르티어스가 이곳에서 『전생의 비술』이라는 마법서를 접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가 마법서를 자세히 판독해 본 결과, 이것이라면 충분히 아들을 되살릴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물론 몇 가지 해결해야 할 문제점이 있긴 했지만, 키메라에 영혼을 집어넣는 것처럼 아예 해결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첫째, 현재 비술은 자기 자신을 대상으로 마법이 구동된다. 즉, 아들의 영혼을 대상으로 사용하려면, 약간의 개량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둘째, 영혼이 자리잡을 상대를 지정할 수가 없다. 즉, 이 마법을 시행하게 되면 아들의 영혼이 어느 태아의 몸에 스며들지 전혀 알 수가 없다는 점이 문제였다.

셋째, 각성의 시기였다. 책을 보니 대략 20~30세쯤 되었을 때 전생을 각성한다고 나왔지만 그 시기가 너무 애매하다는 점이었다.

아르티어스가 걱정하는 것이 바로 둘째와 셋째의 문제였다. 첫 번째야 조금만 노력하면 수정이 가능하겠지만, 둘째와 셋째의 가장 큰 문제는 자칫 다크의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전생의 비술을 시행하게 되면 각성을 통해 과거의 기억을 조금씩 되찾다가, 어느 순간 과거의 자아로 완벽하게 돌아간다고 적혀있었다. 물론 전생의 육체적 능력은 모두 다 상실하게 되겠지만, 싱싱하고 새로운 육체를 얻을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이 마법은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문제는 그동안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점이다. 운 좋게 귀족이나 왕족의 후예로 태어나면 좋겠지만, 노예의 자식으로 태어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재수 없게 각성을 하기도 전에 사고로 어처구니없이 죽을 수도 있고, 병에 걸려 죽을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아들의 가장 힘없고 나약한 시기를 아르티어스가 옆에서 지키며 도와줄 수가 없다는 말이었다. 다크의 영혼이 여러 개여서, 몇 번씩 재시도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젠장, 무슨 마법을 이따위로 만들었어. 아예 대상을 지정할 수가 없다니…….”

책을 보며 고민하던 아르티어스는 연신 툴툴거렸지만, 사실 그 부분은 예전에 비술을 사용했던 대마법사들 역시 시행 전에 언제나 고심하던 문제였다.

전생의 비술은 시간과 공간 그리고 영혼이라는 차원의 틈새를 교묘하게 뒤틀어 시행되는 역천의 비술인 만큼, 마법에 능통했던 아르티엔쯤 된다면 모를까 아르티어스의 능력으로는 손을 댈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아르티어스가 그렇게 생각했을 정도인데, 호비트들이야 더 이상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많은 문제점이 있었지만, 그들은 전생의 비술을 마지막 한 수로 써먹기 위해 소중히 간직했다. 수명이 다되었거나, 아니면 누군가에게 살해당하기 직전 최후의 힘을 짜내어 사용하기 위해서. 어차피 죽을 것, 마지막 희망을 걸어본다는 심정에서 사용했다는 말이다.

호비트들이야 밑져봐야 본전이니 그렇게 사용했다고 하지만, 아르티어스 옹으로서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젠장, 딴 건 다 용납해도 이건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어. 이러다 잘못되면, 다시 시도할 수도 없는데…….”

깊게 고심하던 아르티어스는 결국 전생의 비술 사용을 포기했다. 여벌의 영혼이 수십 개쯤 있는 것도 아니다. 단 한 번밖에 없는 기회다. 전성기에 있는 호비트 전사(戰士)라고 해도 형편없이 나약하게 보이는 그에게, 사랑하는 아들이 아무 힘도 없는 아기로 다시 태어난다니.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인간들은 별 볼일 없는 병에 걸려도 떼죽음을 당할 정도로 허약하기 짝이 없는 생명체. 더군다나 옆에서 지켜보며 보살펴 줄 수도 없는 만큼, 이건 그로서는 절대 선택할 수 없는 비술이었다. 물론 생명이 경각에 달한 호비트 대마법사 놈들이야,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그런 모험을 감행했던 것이겠지만…….

* * *

아르티어스는 그로부터 3년여를 세상을 떠돌며 뭔가 다른 돌파구가 있는지 찾아 헤맸다. 흑마법과 백마법, 그리고 키메라……. 다크의 영혼을 되살릴 수만 있다면 그 어떤 분야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로서는 희망을 찾아 헤맨 것이었지만, 돌아온 것은 더욱 깊은 절망뿐이었다. 아버지의 마법서 ‘키메라 제작에 사용되는 하급 마법들에 대한 연구’가 그에게는 최후의 희망이었다. 이것만 있다면 최소한 아들의 신체만이라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마법서의 제목을 봤을 때 이미 깨달았어야 했던 것이었지만, 아버지가 흥미를 느낀 것은 ‘키메라’가 아닌 ‘키메라를 만드는 데 사용된 마법’이었던 것이다. 즉, 키메라를 제작하려면 책에 기록된 마법들 외에도 아버지가 흥미를 느끼지 못한 하급 마법들이 꽤나 많이 필요했고, 생체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도 따로 해야만 했다.

물론 충분한 시간만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아르티어스는 키메라를 제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키메라 제작의 마지막 관문이 그를 괴롭혔다. 그것은 바로 영혼이었다.

흑마법을 연구한 결과 알아낸 것이, 영혼을 다루려면 어쩔 수 없이 마왕의 손을 빌려야 한다는 점이었다. 영혼을 다루는 데 있어서 가장 능통한 존재들이 바로 그놈들이었으니까.

문제는 아르티어스가 마왕을 전혀 믿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녀석들은 약속을 지키려고 하지 않는 음흉한 족속이다. 계약의 헛점을 교묘하게 이용해서, 어떤 방식으로든 아들을 이용하려 들게 뻔했다. 예전에 나이아드가 아들을 손에 넣으려고 했듯이. 그런 쓰레기 같은 놈에게 잠시라도 아들의 영혼을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흐아아함!”

아르티어스는 점점 더 쏟아지는 잠을 참기 어려워지는 걸 느꼈다. 이계에서 만난 그 망할 놈 때문에, 그의 육체는 지금 휴식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그동안 소모한 방대한 마나와 함께, 그의 몸을 재구성할 수 있는 시간여유가 필요했으니까.

“다 때려치우고 한숨 푹 잔 다음에 다시 시작할까?”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상황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제대로 된 키메라를 만들려면 최소 100년은 필요했고, 무엇보다 영혼을 제어하려면 마왕과 뒷꽁무니로 협상을 해야 했으니 말이다. 그것도 성공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협상을…….

“에잇, 젠장! 그냥 스켈레톤으로 만들어 버려? 그건 협상 따윈 필요도 없으니까, 제까짓 놈이…….”

하지만 아무리 방법이 없다고 해도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귀여운 아들놈을 어떻게 뼈다귀만 덜거덕거리는 스켈레톤으로 만들 수 있겠는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막다른 길에 몰린 아르티어스는 갑자기 주먹을 꽉 움켜쥐며 외쳤다.

“에이! 어차피 그놈 성격에 제대로 된 육체를 만들어 주지 않으면, 살기 싫다고 자살이라도 할 놈이니까. 그래, 일단 한 번 해보자. 뭐, 만약에 잘못된다 하더라도, 그때는 그때 생각해 보기로 하지.”

도저히 자신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영혼이라는 문제와 지친 심신으로 인해 밀려드는 졸음에 짜증이 난 아르티어스는 결국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기로 결심했다. 그것은 바로…….

『<묵향> 29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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