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9화 (705/930)

오크의 노예

“이러지 말아요, 제발. 나, 무기 만들 줄 안다니까요? 나한테 기회를 한 번만 줘 봐요.”

입으로는 연신 오크들에게 사정하면서도, 라이의 눈은 앞서 오크들에게 끌려간 노인의 시체가 어떻게 처리되는지 살펴보느라 바쁘게 움직였다. 스미스의 말이 맞았다. 녀석들은 바짝 말라 뼈밖에 없는 노인을 도끼로 토막을 쳐서는 불에 굽기 시작했던 것이다. 자신도 곧이어 그렇게 될 거라는 생각에 라이는 미칠 지경이었다.

“제발 내게 기회를 줘보라구요. 나는 거짓말 하지 않았어! 무기 만들 줄 안다구!”

오크들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있는 라이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노인의 시체를 능숙한 솜씨로 처리해 버린 오크는, 일이 끝나자 이번에는 라이에게로 다가왔다.

“췩췩!”

오크 말로 뭐라 중얼거리며 다가온 녀석은, 라이의 뒷덜미를 붙잡고 들어올렸다. 라이도 체격이 그리 작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대로 들려 올려질 수밖에 없었다. 인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놀라운 힘이었다.

녀석은 노인의 시체를 토막냈던 바로 그곳으로 라이를 끌고 갔다. 녀석이 우악스런 손으로 라이를 바닥에 찍어 누르자, 라이는 싫어도 납쭉 엎드린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한 손으로는 라이를 찍어누르고, 다른 한 손으로 도끼를 집어든다. 놈의 도끼가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도끼가 떨어지면 어떻게 될지, 그 결과는 뻔했다. 라이의 얼굴은 더욱 공포감에 물들었고,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라이는 애원했다. 제발 무기를 만드는 테스트라도 한번 해보라는 것이었다.

“나는 무기를 만들 줄 알아! 만들 줄 안다고…….”

다른 사람 같았으면 이 정도 상황이라면 눈을 질끈 감고 삶을 포기할 만도 하련만, 라이는 그러지 않았다. 이대로 포기하기에는 삶에 대한 집착이 너무 강했던 것이다. 악다구니를 써대는 라이의 고함소리에 켈취가 도저히 참지 못하고 외쳤다.

“호비트, 시끄럽다.”

“어허헝, 저는 죽고 싶지 않다구요. 내게 기회를 달란 말입니다, 기회를.”

악을 쓰며 외치는 라이의 고함소리에 켈취의 마음이 움직였는지, 도끼로 목을 자르려는 오크를 제지했다.

“끝까지 기회 달라는 호비트, 처음 봤다. 췩! 사실이냐?”

라이는 얼굴이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채 주절거렸다.

“죽일 때 죽이더라도, 기회는 줘야 할 거 아닙니까? 제가 정말 무기를 만들 수 있는지 없는지 말입니다.”

라이가 이렇게 끝까지 우기는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감옥은 물론이고 이리로 잡혀오는 동안, 그는 오크 소굴 그 어디에서도 쇠를 가공할 수 있을 만한 시설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어릴 때부터 마을에 있던 대장간을 봐왔던 라이다. 쇠를 다루려면 화력이 높은 화로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는 대장간과 유사한 그 어떤 시설도 없었다. 쇠를 가공하지 못한다면, 결국 무기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여기에 있는 노예들은 무기를 만드는 게 아니라, 오크의 필요에 따라 무기나 갑옷 등을 수선해 주는 것 정도만 하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아니, 라이에게는 반드시 그래야만 했다. 그것만이 살 길이었으니까. 그렇기에 그는 주장했다. 나에게 기회를 달라고.

확률은 반반. 무기를 만들어 보라고 한다면 죽을 수밖에 없겠지만, 그게 아니라 수리를 하라는 것 정도라면 어떻게 해서든지 해볼 수 있지 않겠는가. 집에 있을 때는 도끼자루가 부러졌을 때 자루를 만들어서 끼워 맞추기도 해봤고, 화살도 만들어 봤다.

켈취는 갑옷을 입은 오크 한 마리와 뭔가 얘기를 나누더니, 자신이 가지고 있던 창을 라이에게 던져주며 명령했다.

“이걸 고쳐라, 췩.”

아주 낡아빠진 창이었다. 창촉은 녹이 잔뜩 슬어 있었고, 창날은 여기저기 이빨이 빠져 있다. 낡은 창대는 제대로 관리를 안 해 완만하게 휘어져 있다. 이런 엉터리 같은 창을 던져서 꽤나 멀리 떨어져 있었던 죠셉을 즉사시키다니. 머리는 잘 돌아가지 않는지 몰라도, 무기를 다루는 데 있어서는 동물적인 감각을 지니고 있는 게 틀림없다.

시험은 창을 수리하는 것. 이것이라면 자신이 있었다. 라이의 얼굴은 삶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찼다.

“우선 긴 나무 막대기가 있어야 해요. 창대를 만들 나무 말이지요. 그리고 그걸 깎을 칼과 도끼도 있어야 하구요…….”

잠시 후, 라이는 오크가 가져다 준 막대기를 깎고 다듬어 창대를 만든 뒤, 창날은 아쉬운 대로 돌에 갈아 녹을 벗겨냈다. 그런 다음 가죽끈을 얻어 창촉을 창대에 꽉 묶었다. 창을 직접 손본 적은 없었지만, 화살은 수도 없이 만들어 봤던 라이다. 창이라고 다를 게 뭐가 있겠는가. 크기가 좀 더 커졌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라이가 비지땀을 흘리며 혼신의 힘을 다해 창을 수리하고 있는 동안, 오크들은 사람 고기를 구워먹으며 라이의 행동을 구경했다. 처음 창을 손보는 것인 만큼 꽤나 시간이 걸렸지만, 오크들은 끈기 있게 기다렸다. 한번 기회를 준 이상 시간 제한 같은 추접한 짓은 안 하는 통 큰 오크들이었다.

“다 됐습니다. 자요.”

“췩췩!”

길게 쭉 뻗은 창대. 세심하게 다듬고, 불길로 열을 가하면서 휘어진 부분을 손봤기에 창대는 그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곧게 쭉 뻗어 있다. 그리고 창촉의 녹을 벗겨낸 데다가, 화덕 근처에서 요리하는 과정에서 흘러내렸음직한 기름을 발견해 그 위에 발라놨기에 창날은 제법 반질거리고 있었다.

켈취는 꽤나 흡족한 듯한 표정으로 새롭게 고쳐진 자신의 창을 구경하며 감탄했다.

“췩췩, 호비트 잘했다. 췩, 그런데 왜 너 무기 못 만든다고 했나?”

“나는 그런 말 한 적 없다. 라그만은 내가 자기보다 실력이 좋으니까, 나를 없애려고 그런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한 거다.”

“췩췩!”

켈취는 즉시 다른 오크에게 명령을 내렸고, 그 오크는 라이를 다시 감옥으로 끌고 갔다. 감옥이 가까워지자 눈이 동그래져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의 놀란 표정을 보니 통쾌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내가 죽은 줄 알았겠지? 나쁜 새끼들. 너희들은 오늘 다 죽었어. 특히, 라그만 이 개새끼! 내가 용서할 줄 알고.’

나이가 많으면 뭐 하나. 모두들 못 먹어서 비쩍 말라 있는데. 경로사상이고 뭐고, 안면 몰수한다면 3대 1로 싸운다고 해도 저놈들을 모두 다 반쯤 죽여 놓을 자신이 있는 라이다.

감옥 안으로 들어온 라이는 살기 어린 미소를 라그만에게 보내며 이죽거렸다.

“개새끼. 두고 보자고 내가 말했지? 너는 오늘 죽었어! 고기 몇 조각 더 먹겠다고 나를 팔아?”

정말로 죽일 생각은 없었다. 라이는 지금껏 단 한 번도 사람을 죽여본 적이 없다. 다만 저 라그만의 얄미운 낯짝에서 쌍코피가 터지게 만들어 주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라이는 그러지 못했다. 그가 라그만에게 달려들기도 전에, 오크가 먼저 그에게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라이를 감옥에 데리고 온 오크는 라그만을 붙잡아서 질질 끌고 가버렸다. 라그만은 라이처럼 악을 쓰며 저항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슬픈 표정으로 동료들을 바라봤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라그만의 모습은 곧이어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이건 또 무슨 일이죠? 왜 오크가 라그만 씨를…….”

라이가 던진 질문에 대답을 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신, 루겐이 벌떡 일어나 질문을 던졌다.

“네가 살아서 돌아올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어떻게 된 일이냐?”

“간단하죠. 돼지들에게 제 실력을 보여줬거든요. 내가 손봐준 창을 흡족하게 바라보더니, 곧바로 여기로 돌려보내 주더라구요.”

“역시 그렇게 된 거였군.”

우울한 안색으로 다시 자리에 앉는 루겐에게 라이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언성을 높여 말했다.

“나도 좀 알자구요. 아저씨들끼리만 알고 있지 말고.”

루겐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알아봤자 뭐 하겠나. 그건 그렇고, 살아서 돌아온 걸 축하한다. 오늘부터 잘 해보자.”

끝내 그들은 라이에게 라그만이 왜 오크에게 끌려갔는지 말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눈치 빠른 라이는 라그만에게 뭔가 일이 벌어졌다는 것 정도는 짐작했다.

‘거짓말한 죄로 무슨 벌이라도 받나?’

독방에 수감하는 정도. 라이가 가진 상식으로는 이 정도가 예상할 수 있는 전부였다. 설마 그가 자기 대신에 오크들의 뱃속에 들어가기 위해 끌려갔을 거라고 어떻게 짐작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겨우 거짓말 한 마디 했다고 말이다. 하지만 오크들은 그랬다. 그들은 용서(容恕)라는 단어를 몰랐다. 그리고 관용(寬容)이라는 것도.

노예들은 하루에 단 한 번 바깥공기를 쐴 수 있었다. 해질 무렵, 그들은 경비 오크의 감시를 받으며 똥통을 지고 감옥 밖을 나선다. 똥통 안은 하루 동안 쌓인 똥과 오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걸 버리기 위해 가지고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 물통도 함께 가지고 나간다. 들고 나갈 때는 빈통이지만, 돌아올 때는 물을 가득 채워서 돌아온다. 그 물통 하나가 하루 동안 그들이 쓸 수 있는 물의 전부였다. 마실 물도 부족한 상황인 만큼, 씻는다는 것은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대신 땔감은 오크들이 가져다 줬다. 물론, 노예들의 체력이 도끼질을 하기에는 너무 약하다고 생각해서 그런 배려를 해주는 건 아니다. 신주단지 모시듯 아끼는 자신의 도끼를 노예에게 빌려줘야 하는 게 꺼림칙했기에 그러는 것이다.

똥통을 비우고, 신선한 물을 길어오는 것은 한순간에 끝난다. 그 이후에 그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약간의 식량을 나눠먹는 것과 오크들이 가져온 일감을 처리하는 것뿐이었다.

일이라고 해봐야 못쓰게 된 무기를 수선하는 정도였다. 어쩌다 한 번씩 갑옷을 수리하라고 가져오기도 했다. 물론 멀쩡한 갑옷을 뜯어서 오크들이 입을 수 있도록 만드는 작업이다. 오크는 워낙에 가슴부분이 두꺼워, 사람이 입는 걸 그대로 걸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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