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14화 (710/930)

네일은 라이가 들어 있는 푸대자루를 어깨에 이고 두목의 거처를 나왔다. 거처 앞에는 그가 몰고 온 짐마차가 한 대 매여 있었다. 그는 습관적으로 주위를 한번 쓱 둘러봤다. 도둑길드의 본거지가 있는 곳답게 평소에도 인적이 거의 없는 곳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라이를 푸대자루 안에 집어넣는 수고를 아끼지 않은 것은, 짐마차 안에 있는 사람들이 납치된 거라는 게 들통났다가는 끝장이었기 때문이다.

네일은 감자 자루를 마차에 옮겨 싣듯 태연자약하게 움직였다. 놀랍게도 짐마차 안에는 라이가 담겨 있는 것과 유사한 형태의 푸대자루 6개가 더 있었다. 즉, 납치되어 온 아이들이 여섯 명씩이나 더 있었던 것이다.

네일은 라이를 푸대자루 사이에다가 던져두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끈으로 그들과 함께 꽁꽁 묶어버렸다. 몸과 다리 부위를 말이다. 이렇게 해놔야 어느 한 녀석이 마차를 발로 차서 밖에다가 신호를 보내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는다. 어쨌건 아이들은 모두 다 제대로 된 신분증명이 없는 불법노예들이었기 때문에, 최대한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한 다음, 영감은 푸대자루들을 누가 보지 못하도록 그 앞에 야채나 잡다한 생활용품 등으로 가려서 눈가림을 했다. 노예시장으로 가려면 성문을 통과해야 하는 만큼, 혹 검문을 당할 경우도 신경을 써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성문에서 당직을 서는 경비원은 이미 그가 예전에 구워삶아 놓은 놈이기는 했지만.

따그닥, 따그닥…….

변경지역의 도시들이 그러하듯 바레인 시 역시 높직한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 때문에 성문을 통하지 않고는 출입 자체가 불가능하다.

“어이, 오늘은 자네가 근무인가 보지?”

“안녕하십니까, 네일 씨. 오늘도 브레가 시에 가시는 모양이죠?”

이곳 사람들은 네일을 운송업자로 알고 있었다. 강도, 산적, 몬스터 등등……. 안전한 성을 벗어나기만 하면 워낙에 위험요소들이 많다 보니 각 도시 간에 물류를 운반하는 것도 꽤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기에 네일처럼 은퇴한 용병들이 이런 종류의 사업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네일이 겨우 40대 후반 정도밖에 안 되는 나이임에도, 두목이 그를 영감이라고 부른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용병으로서 그 정도 나이까지 살아남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렇다네. 먹고 살아야 하니 어쩔 수 있나?”

“들리는 소문으로는 브레가 시 근처에서 강도에게 털린 사람이 있는 모양이던데, 조심하십시오.”

“걱정 말게. 나도 현역에 있을 때는 꽤나 날리던 사람이었으니까 말일세.”

“근데 마차에 실린 화물은 뭡니까?”

네일은 마차 안쪽에 손을 넣어서는 커다란 햄 한 덩어리를 꺼내 경비병에게 슬쩍 건네주며 말했다.

“이번에 가져가는 화물의 태반은 이걸세. 자, 자네도 맛이나 한번 보게. 맛이 아주 훌륭하다네.”

색상이나 향기로 보아, 꽤나 품질이 좋은 햄이었다.

“이거 번번이 감사하기는 합니다만, 부탁받은 물건인데 이렇게 주셔도 괜찮습니까?”

“괜찮아. 일전에도 말했지만, 식품의 경우 몬스터라든지 쥐새끼라든지…, 뭐 이런저런 이유로 약간의 손실이 생기는 것 정도는 눈감아 주는 게 관례니까 말이야.”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경비병은 마차 안쪽을 확인해 보지도 않고 종이에다가 뭔가를 대충 쓱쓱 적은 다음, 네일에게 말했다.

“그럼 잘 다녀오십시오.”

“그래, 자네도 수고하게.”

일반적인 경우 성문을 통과하는 마차는 경비병이 반드시 안을 살펴본다. 혹시 불법적인 물건을 반출하거나, 혹은 반입하지 않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라이는 거기에 희망을 걸고 있었다. 그런데 오가는 대화를 엿듣다 보니, 아예 조사를 할 생각조차 없지 않은가.

라이는 악착같이 옆으로 기어갔다. 아이들과 함께 몸이 묶여 있었기에 그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옆의 아이가 은근슬쩍 도와줬기에 가능했다. 라이는 유일하게 자신의 몸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부위인 머리로 마차 벽을 쿵쿵 박아댔다. 그리고 그 반응은 곧이어 밖에서 들려왔다.

“햄 외에 뭘 실으셨기에, 저렇게 버드럭거리는 겁니까?”

그러자 막 마차를 몰고 성문 밖으로 나가려고 하던 네일의 능청스런 대꾸가 들려온다.

“한번 볼 텐가? 돼지 2마리를 묶어놨다네. 똥 싼다고 어제부터 먹이를 주지 말라고 그렇게 일렀건만, 아직도 찔끔찔끔 싸대는 걸 보면 내 말을 듣지 않은 모양이야. 젠장, 똥냄새가 햄에 배면 큰일인데…….”

돼지 똥냄새가 난다는데 일부러 마차에 들어가서 살펴볼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더군다나 돼지가 그리 신기한 동물도 아닌데 말이다.

경비원은 마차 안을 볼 생각도 없는 듯 네일 곁에 서서 말했다.

“살아 있는 것 치고는 꽤 조용한 편이네요.”

“당연하지. 운반하던 도중에 돼지가 쓸데없이 꿀꿀거리거나 지랄을 하면 큰일 나게? 몬스터 놈들이 돼지고기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그래서 아예 재갈을 물려놓고 마차에 실었지. 에휴, 그냥 때려잡아서 소금에 절여 운반하지. 서로가 고생스럽게 왜 이렇게 살아 있는 놈을 고집하는 건지…, 쯧쯧.”

“수고가 많으시네요. 그럼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그래, 자네도 수고하게. 나중에 술이나 한잔 하세.”

“그거 좋죠.”

성문을 통과한 네일은 느긋한 표정으로 마차를 몰았다. 길 가다가 만나는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인사까지 건네면서. 네일처럼 불법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 의도적으로 주위 사람들과 잘 지내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놔야, 주변에서 애들이 사라졌다고 해도 자신을 의심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인적이 없는 곳에 도착하자마자, 그의 가식적인 태도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는 겉에 묶었던 줄을 풀고, 애들에게 뒤집어 씌워 놨던 푸대자루를 벗겼다. 그러자 하나씩 드러나는 아이들의 얼굴들. 여자아이 5명에, 남자아이 둘이다. 그는 아이들의 입을 틀어막고 있던 재갈을 풀어주며 으르렁거렸다.

“아까 어떤 새끼가 소리를 냈어? 내가 경고했지! 쥐죽은 듯 조용히 있으라고 말이야. 어떤 놈이야?”

안 그래도 무서운 얼굴에다가 눈까지 희번뜩거리며 협박을 하니, 그야말로 공포스러웠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오냐, 말을 안 한단 말이지? 좋아, 네까짓 것들이 실토하지 않고 얼마나 견디는지 두고 보기로 하지.”

푸대자루는 벗겨졌지만, 아직 아이들 개개인을 묶어놓은 줄은 풀어주지 않았다. 그렇기에 애들은 저마다 마차 바닥에 쓰러진 채 끙끙댈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마을 주변을 벗어날 때까지 애들이 소변을 본다든지 하는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네일은 물도 먹이지 않았다.

밧줄로 꽁꽁 묶여 피도 잘 통하지 않다 보니 팔다리에 감각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더군다나 배고픔뿐만 아니라, 지독한 갈증까지…….

그때 한 여자아이가 더 이상 두려움을 참지 못하고 실토했다.

“제 앞쪽에 묶여 있는 애가 그랬어요. 나는 안 그랬어요. 제발 용서해 주세요.”

한 애가 입을 열자, 모두들 언제 침묵을 지켰냐는 듯 자신이 한 게 아니라고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푸대자루까지 뒤집어쓰고 있었던 만큼, 범인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라이도 얼른 주변 애들의 눈치를 살피며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다.

“이것들이 정말! 다들 안 했다니, 그게 말이 돼? 브레가에 도착할 때까지 꽁꽁 묶여 있어 볼래!”

그 말에 겁을 집어먹고 엉엉 울며 조잘대는 여자애들을 보며, 네일은 용의선상에서 여자아이들을 지워버렸다. 저 정도 간덩이로 어찌 그런 짓을 했겠는가. 그렇다면 사내놈 둘 중 하나라는 말인데…….

“너냐?”

“아, 아닙니다, 네일 씨. 저, 저는 절대로…….”

덩치 큰 사내놈은 너무 놀라 말까지 더듬고 있다. 흠, 저렇게 작은 간뎅이로는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지.

“그렇다면 네 녀석이로군. 못 먹어서 비쩍 마르다 보니, 간뎅이만 부은 모양이지? 응?”

네일은 쓰러져 있는 라이를 지근지근 밟았다. 물론 큰 상처는 입지 않도록 적당히. 일주일 후, 좋은 가격에 팔려면 물건에 하자가 생겨선 곤란했기 때문이다.

“이 개새끼, 오늘부터 한동안 음식은 물론이고 물 한 방울 먹이지 않겠다. 너희들도 이 녀석에게 아무것도 나눠주지 마. 알겠느냐? 만약 그런 짓을 하다 들키면 반쯤 죽여버릴 테다.”

인상을 왈칵 일그러트리며 소리치는 네일의 말에 아이들은 두려움에 떨며 황급히 대답했다.

“예.”

이번엔 라이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또다시 그런 개 같은 짓을 하면, 이번처럼 굶기는 것 정도로 끝내지 않을 거다. 알겠냐?”

라이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렇다고 절대 탈출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상황이 불리하면 눈치를 보며 기회를 기다린다. 이것이 라이가 세운 탈출 원칙이었던 것이다.

그 후로도 라이는 틈만 나면 탈출을 시도했지만,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네일은 지금껏 수없이 많은 노예를 다뤄본 전문가였다. 더군다나 라이의 경우 처음부터 요주의 인물로 찍힌 상태. 탈출하는 라이의 수법이 점차 발전했지만, 그만큼 주위의 감시 또한 삼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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