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16화 (712/930)

몬스터 쇼

여기저기에 걸려 있는 횃불이 타오르고는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실내는 아주 어두웠다. 여기가 어딘지도 그들은 몰랐다. 그저 험악한 인상의 사내들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이번에는 4명! 4명 준비해!”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소리. 그에 따라 건장한 사내들은 쭈그리고 앉아 있는 노예들 중에서 4명을 일으켜 세웠다. 그 전에도 여러 명이 이런 식으로 밖으로 끌려 나갔는데, 필요로 하는 사내의 기준은 정해져 있지 않은 모양이다. 앙상하다 싶을 정도로 비쩍 마른 몸매의 라이가 포함되어 있음에도, 다른 사내로 바꿀 생각을 전혀 안 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들이 끌려간 방은 대장간과 비슷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라이가 그 방이 오크의 감옥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였으니까. 어두운 실내, 망치와 모루 같은 여러 장비들…….

“순서대로 이리로 와. 손 내밀어.”

건장한 사내 중 하나가 노예들의 손과 발을 구속하고 있던 구속구를 벗기기 시작했다. 수갑을 찬 손을 모루에 올리도록 한 후, 짤막한 정처럼 생긴 도구를 가져다가 수갑의 이음쇠가 끼워져 있는 구멍에다가 댔다. 그런 다음 쇠망치로 몇 번 때리자, 이음쇠가 뽑혀 나가면서 수갑이 떨어져 나갔다. 똑같은 순서로 족쇄 또한 풀려나갔다.

구속구를 풀어준 뒤, 그들은 한쪽에 쌓여 있는 농기구들 중에서 4개를 집어들고 왔다. 곡괭이, 삽, 낫 등등. 그것들을 아무런 말도 없이 다짜고짜 노예들에게 내민다. 무슨 뜻으로 자신들에게 농기구를 주는지 알 수가 없었기에 노예들이 멈칫거리고 있자, 사내 중 하나가 짜증을 버럭 냈다.

“빨리빨리 받아, 이 새끼들아! 주면 받아야 할 거 아냐.”

‘삽을 주는 걸 보면, 여기는 농장인가?’

그때 저쪽 방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준비 끝났나?”

“예, 조련사(調練師)님.”

“끝났으면 이리로 데리고 와.”

이동한 방에는 조련사라고 불린 건장한 사내와 함께 갑옷으로 중무장한 무사 4명이 서 있었다. 혹시, 노예가 저항이라도 하면 처리하기 위해서다. 무사들은 노예들을 자리에 앉도록 했다.

“여기에 순서대로 얌전히 앉아.”

그때 ‘우와와’하는 괴성이 들려왔다. 그리고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누군가가 떠들어대는 소리도 들려온다.

“사내놈들 준비는 끝났는데, 계집은 왜 안 오는 거야?”

조련사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묻어 있다. 그는 연결되어 있는 옆방으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늘씬한 몸매의 미녀들이 순서대로 앉아 있었다. 그녀들의 복장은 다들 달랐다. 농민처럼 소박한 옷을 입은 여자, 갑옷을 입은 여자, 아름다운 옷으로 모양을 잔뜩 낸 여자 등등…….

“로라, 순서 됐으면 이리로 와야 할 거 아냐.”

조련사의 질책에 허름한 농민 복장을 하고 있는 한 여자가 발딱 일어선다.

“잘해봐, 얘.”

“얘, 거기에 기름은 듬뿍 발랐지?”

주위 여자들의 말에 순간 얼굴이 빨개지는 로라.

“예, 예…….”

“그럼 재미 많이 봐. 호호홋.”

“잡담은 그만하고 빨리 안 와?”

조련사는 로라라고 불린 여자에게도 농기구 하나를 건네준 후, 노예들과 합류시켰다.

“준비 끝났습니다.”

“자, 모두 일어섯!”

무사들은 노예들을 붙잡아 옆방으로 이동시켰다. 옆방에 와서야 라이는 이곳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커다란 철창문 밖으로 보인 것은 높은 벽과 그 위에 앉아 있는 수많은 인파들이었다. 그렇다. 이곳이 바로 말로만 듣던 검투장(劍鬪場)이었던 것이다.

“철창문 열어!”

곧이어 철창문이 위로 열렸고, 무사들은 노예들을 밖으로 내몰았다.

“우와아아!”

노예들의 등장에 관중들은 환호성을 질러댔다. 지금까지 이런 경우는 단 한 번도 당해본 적이 없는 노예들이었기에, 모두들 잔뜩 주눅이 들어 있다. 경기장의 여기저기에는 핏물이 잔뜩 묻어 있었다. 그것만 봐도 자신들이 곧이어 어떤 꼴을 당하게 될지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이때,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초라한 농민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변방의 농민들은 참으로 어렵게 살고 있죠. 탐욕에 가득 찬 욕심 많은 영주에게 엄청난 세금을 납부해야 하며, 동시에 목숨을 위협하는 몬스터들과 싸워서 살아남아야 하거든요. 하지만 영주의 군대가 도와주러 오지 않는 한, 농부들만의 힘으로는 몬스터들 중에서도 가장 약한 축에 낀다는 고블린조차도 상대하기 힘든 게 사실입니다. 자, 저기를 보십시오. 농부들의 목숨을 호시탐탐 노리는 고블린이 모습을 드러냈군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반대쪽 철창문이 열리며 모습을 드러내는 고블린 한 마리. 흉악하게 생긴 데다가 온몸에 실오라기 한 올 걸치지 않고 있다 보니 더욱 야만적으로 보였다. 그리고 농부들과 달리 놈은 무기를 지니고 있었다. 활과 약간의 화살, 그리고 허리에는 도끼까지 하나 차고 있다.

원래 고블린이 주로 애용하는 무기는 독침이다. 조잡한 활 따위에 비했을 때 그것이 훨씬 더 위협적인 게 사실이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놈이 활을 가지고 있는 것은 독침은 너무 작아서 관중들에게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자의 목소리는 마법으로 인해 경기장 깊숙한 곳까지 울려 퍼졌다. 사회자는 먼저 고블린이라는 몬스터에 대해 자세히 소개했다. 그 크기라든지, 녀석이 뭐를 먹는다든지, 뭐 그런 소소한 것들을 말이다.

이곳은 마도왕국이라 불리는 알카사스 왕국이다. 오랜 세월 태평성대를 누려온 덕분에 태어나서 지금껏 단 한 번도 몬스터를 보지 못한 시민들이 부지기수였다. 그렇기에 몬스터들이 나오는 쇼를 한다는 선전에 경기장 안은 관객들로 꽉꽉 들어차 있는 상태였다. 물론 동물원에도 고블린이나 오크, 트롤 따위가 전시되어 있긴 했지만, 놈들의 흉폭성은 구경할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자, 이제 고블린이 농부들을 어떻게 요리하는지 구경해 보도록 하시지요.”

고블린은 이런 쇼에 여러 번 나와본 듯 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많은 관중들이 함성을 질러대는 것만으로도 주눅이 들어서 아무 짓도 하지 못했을 테니까. 하지만 놈은 침착하게 먹잇감을 어떻게 요리할지 궁리하는 듯 했다. 교활하게 생긴 눈으로 노예들을 노려보며 시뻘건 혓바닥으로 슬쩍 입술을 적신다.

고블린이 활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자마자, 라이는 슬그머니 몸을 움직여 다른 노예의 뒤편에 자리 잡았다. 그것 외에는 화살을 피할 방법이 없었으니까.

쉭!

고블린이 화살을 쏘는 것을 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만큼 놈의 움직임은 재빨랐다. 노예들 중에서 가장 덩치가 좋은 사내가 갑자기 풀썩 무릎을 꿇는다. 그의 배에는 화살이 깊숙이 박혀 있었다.

잠시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너무나도 순간적으로 벌어진 일이라 어떻게 된 일인지 관중들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곧이어 정신을 차린 사회자가 외쳤다.

“저 놀라운 고블린의 움직임을 보십시오. 저런 고블린 떼와 숲에서 마주친다면 얼마나 공포스럽겠습니까.”

그제서야 관중들은 환호했다. 노예의 죽음을 보며 평소 숨겨두었던 야만과 잔혹성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우와아아!”

순식간에 노예의 숫자는 3명으로 줄어들었다. 고블린이 가지고 있는 화살은 1발, 일부러 화살을 적게 준 것이다. 나머지는 도끼로 쪼개 죽이라는 뜻이리라.

겉모습은 사람과 비슷하게 보일지라도 몬스터들의 신체구조는 인간과 완전히 다르다. 고블린은 사람보다 작았지만, 힘은 웬만한 장정들보다 훨씬 셌다. 두뇌를 사용하기 적합하도록 진화한 사람과 달리, 놈들의 육체는 동물에 더욱 가까웠기 때문이다. 작고 가벼운 몸에 강한 근력. 그렇기에 일반인이 예상하는 것 이상으로 고블린의 움직임은 재빨랐다. 그런 재빠른 몸놀림으로 화살을 쏴대니 피할 재주가 없는 것이다.

쉭!

또다시 파공성이 울려퍼지자 겁에 질려 떨고 있던 노예 하나가 화살에 맞고 쓰러졌다. 고블린은 자신에게 가장 위협이 된다고 판단된 목표부터 먼저 죽인 것이다. 이윽고 화살이 다 떨어지자, 놈은 미련 없이 활을 내던지고는 허리춤에 매여 있던 도끼를 뽑아들었다. 이제 남은 사람은 둘. 비쩍 마른 놈과 여자였다. 여자는 놈에게 주어지는 보너스였다. 남자들을 몽땅 다 해치운 다음, 강간하라는.

곧이어 즐길 수 있을 쾌락에 대한 기대감에 녀석의 성기가 부풀어 올랐다. 난생 처음 보는 고블린의 짐승 같은 성기에 관중석의 여자들은 괴성을 지르고 난리도 아니었다.

“자, 이제 고블린이 여자를 차지하기 전까지 한 명이 남았을 뿐입니다. 인간형의 몬스터는 여자들을 겁탈하기도 한다는데, 오늘 고블린은 어떤 선택을 할까요? 여자를 잡아먹을까요? 아니면 강간하려고 할까요? 정말 기대가 되는군요.”

순간 결투장을 지켜보던 관중들의 눈빛이 붉게 달아올랐다. 몬스터가 여자를 강간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구경할 수 있는 기회, 흥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여자를 차지한다’는 사회자의 말에 라이는 여자 뒤로 슬쩍 몸을 옮겼다. 그제서야 그는 고블린이 여자를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고블린은 흡사 쥐를 어떻게 때려잡을까 고민하는 고양이처럼 여유롭기 짝이 없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다가오는 고블린. 욕정에 달아오른 시뻘건 눈동자가 무시무시하게 번쩍인다.

암컷은 고블린이 주는 위압감에 질려 꼼짝도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수컷을 죽이자니, 암컷이 걸리적거린다. 지금까지 이렇게 암컷을 앞으로 내세워 그 뒤에 숨는 수컷은 본 적이 없었다. 그런 만큼 고블린은 지금 고민하고 있었다. 수컷을 어떻게 공격할 것인지를.

좀 더 살피며 하나 남은 사내를 관찰했어야 했지만, 욕정에 눈이 먼 고블린은 성급하게 움직였다. 여자를 돌아서 움직여야 했기에 녀석의 움직임은 그리 빠르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라이가 노리던 기회였다.

여자와 즐기기 위해서는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렇기에 놈의 공격방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다년간 검술을 익혀온 라이에게 있어서 죽여달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퍽!

“끄르르르…….”

라이는 고블린의 도끼날을 피하며 삽날을 창처럼 해서 놈의 목을 깊숙이 찔렀다. 단 한 방이었다. 그 한 방으로 놈은 목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는 피. 녀석은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입으로 연신 피거품을 토해내며 꺽꺽거린다. 급기야 천천히 앞으로 무릎을 꿇는 듯하더니, 쓰러져 버리는 고블린.

“헉헉…….”

고블린의 목에서 터져나온 피를 고스란히 덮어써 버린 라이. 얼굴 여기저기에 핏방울이 튀어 있었지만, 닦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라이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힘이 들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공포에 질린 것도 아니다. 난생 처음 몬스터를 죽인 충격에 떨고 있었던 것이다.

비릿한 피냄새, 갑자기 속이 뒤집어지는 것만 같다.

“우우욱!”

라이는 한동안 구토를 멈출 수가 없었다.

“우우우~~, 때려치워라!”

“저 새끼, 죽여버렷!”

몬스터가 여자를 겁간하는 장면을 기대하며 지켜보고 있던 관중들은 라이를 향해 야유를 보냈다. 어떻게 저런 나약한 놈이 몬스터와 싸워 이길 수 있단 말인가.

포스터에 쓰여져 있던 글처럼 관중들은 몬스터와 여자 노예 간의 엽기적인 섹스를 구경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모든 걸 저 거지 같은 노예가 망쳐놨으니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품고 있었던 기대심이 깨지자 그보다 더욱 강한 실망감이 관중들을 휩쓸었다.

“이, 이럴 수가…, 크흐흐흑. 나의 사랑하는 루이스가…….”

몬스터 쇼 단장은 오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관객들에게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아온 귀염둥이였는데, 이렇게 비명횡사를 할 줄이야.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그놈을 당장 이리로 끌고 와! 내가 직접 녀석의 멱줄을 따줄 거다. 루이스! 네 원수를 내가 꼭 갚아주마.”

몬스터 쇼 단장이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길길이 날뛸 만도 했다. 살아 있는 고블린 한 마리가 얼마나 비싼데. 저 먼 변방에서 산 채로 잡아다가 여기까지 수송해 와야 하는 만큼, 그 가치는 저런 싸구려 노예 따위와는 비교조차 하기 힘들 정도였다. 게다가 쇼에 내보내기 위해 엄청난 시간과 돈을 들여 훈련까지 시켜놨으니 말이다.

“그러지 마시고 다음 순서에 내보내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노예도 한 명 절약할 겸 말입니다. 안 그래도 루이스가 죽어 손해가 큰데, 이렇게라도 손해를 줄이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조련장(調練長)의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단장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외쳤다.

“그래, 그게 좋겠군. 그래, 죠지. 너만 믿는다. 루이스의 원수를 꼭 갚아다오.”

단장은 사랑하던 루이스의 복수를 오크 죠지가 갚아줄 거라고 굳게 믿었다.

단장의 허락을 받은 조련장은 고개를 깊숙이 숙이며 대답했다.

“그렇게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단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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