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사막
링카 성은 서쪽 대륙으로부터의 접경지역에 자리 잡고 있는 커다란 성이었다. 서쪽 대륙에서 생산된 희귀한 산물들이 사막을 넘어 들어왔고, 동쪽 대륙에서 생산된 물자들이 서쪽 대륙으로 팔려나가는 출구이기도 했다.
엄청난 물자가 끊임없이 들락거리는 만큼, 그것을 노리는 날파리들 역시 꼬이게 마련이다. 그렇기에 링카 성은 상업의 중심지이기도 했지만, 왕국 서쪽 방어선의 중추이기도 했다. 이 성에 주둔하고 있는 정규군만 해도 거의 1만에 다다를 정도였다.
라이는 이곳에서 사막을 건너온 대상(隊商) 무리를 구경할 수 있었다. 수백 마리에 달하는 엄청난 숫자의 괴상한 동물들. 그리고 그 동물들의 등 위에는 커다란 짐이 잔뜩 실려 있었다.
“저게 무슨 동물이죠? 정말 희한하게 생겼네요.”
“저건 낙타라는 짐승이야.”
“그런데 왜 저렇게 짐을 싣고 오는 거죠? 커다란 마차에다 실으면 훨씬 더 효율적일 텐데…….”
“왜냐하면 사막에서는 마차를 쓸 수 없기 때문이지.”
사막이 무엇인지 모르는 라이였기에 올란도의 말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못 쓴다는 말입니까? 마차는 어디든지 달려갈 수 있는데. 아, 혹시 사막이라는 곳이 밀림처럼 나무가 촘촘히 우거져 있는 곳인가요? 그럼 마차가 지나다니지 못할 수도 있겠네요.”
순간 올란도의 얼굴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설마 사막이 뭔지도 모르는 무식한 놈이 이 세상에 존재할 거라고는 상상도 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모래로 된 지역을 몰라? 온 천지가 모래로 뒤덮인…….”
“죄송합니다만, 모래가 뭡니까?”
올란도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사막은 고사하고, 설마 ‘모래’라는 단어가 뭘 뜻하는지도 모르는 멍청이가 있을 줄이야. 모래가 뭔지도 모르는 놈에게 어떻게 사막이라는 지역을 설명해 줄 수 있단 말인가.
“에효, 말을 말자. 그냥 모래라는 게 있어. 그 모래라는 걸로 뒤덮여 있는 땅이 사막이고 말이야. 여기 성문 밖을 나가면 실컷 볼 수 있을 테니까, 그건 그때 가서 얘기하자.”
“알겠습니다.”
“어쨌거나 사막을 건너는 데는 낙타가 최고야. 그렇기에 저렇게 낙타 등에 물건들을 바리바리 싣고 움직이고 있는 거지.”
“낙타보다 더 좋은 건 없습니까?”
“물론 있지. 하지만 가격대비 효과라는 게 있지 않느냐. 사막을 건너는 데 있어서 낙타보다 좋은 것도 많지. 하지만 그런 놈들은 희귀할뿐더러 가격 또한 엄청나게 비싸서 저렇게 많은 숫자를 동원할 수 없다는 게 문제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지만 라이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군요.”
“그 대표적인 게 바로 저놈이다.”
말을 하던 올란도는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고, 라이는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하늘을 쳐다봤다. 그러자 커다란 박쥐같이 생긴 게 하늘을 날고 있는 게 보였다. 하지만 박쥐는 아니었다. 박쥐라고 보기에는 기이할 정도로 긴 목과 꼬리를 가지고 있었다.
“저, 저게 뭡니까?”
“와이번(Wivern)이라 불리는 몬스터다. 야생 와이번이 저렇게 하늘을 날고 있다고 하면 난리도 아니지. 저놈들은 다 자란 황소도 채가서 잡아먹을 정도로 엄청난 몬스터니까. 하지만 와이번을 길들이는 데 성공하기만 하면, 저렇게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게 되는 거지.”
“우와, 그럼 저게 길들인 와이번이라는 건가요?”
“그래, 군(軍)에서는 와이번을 길들여서 정찰용으로 아주 유용하게 써먹고 있지.”
“그럼 와이번이 오크처럼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할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까?”
올란도는 잠시 라이가 하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곧이어 그 말뜻을 이해한 그는 도저히 참기 힘들다는 듯 배를 잡고 웃음을 터뜨렸다.
“으하하핫! 세상에 이렇게 무식한 놈이 있을 줄은 내 꿈에서도 상상해 본 적이 없거늘. 너 광대 해도 먹고 사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겠다. 으하하핫.”
마치 비웃는 듯한 올란도의 웃음에 기분이 상한 라이가 황급히 질문을 던졌다.
“아니, 정찰용으로 쓴다기에 드린 말씀이었는데, 그렇게 비웃으시다니요. 그럼 말도 못하는 와이번이 어떻게 적의 동태를 살펴보고 돌아와서, 설명을 해줄 수 있단 말씀이십니까?”
“너 저렇게 작게 보이니까, 와이번이 혹시 참새 새끼만큼 작다고 착각하고 있는 거 아니냐? 방금 전에도 말했지만, 저놈들은 다 자란 황소도 잡아가는 몬스터란 말이다. 저게 생각보다 엄청나게 커. 등에 안장을 놓고 사람이 탈 수 있을 정도로 말이야.”
“아…….”
라이는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어떻게 와이번 위에 사람이 탈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원래 라이의 성격은 꽤나 단순하고 즉흥적인 구석이 많았다.
하지만 노예로 잡히고 난 후, 그의 성격은 점차 변해가기 시작했다. 주위 환경을 최대한 파악하려 노력했고, 그런 자신의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 식으로 말이다.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이제 알겠냐?”
“예.”
“저렇게 와이번을 부리는 기사들을, 우리는 용기사(龍騎士)라고 부른단다. 적으로 만났을 때는 꽤나 까다로운 상대지. 왜냐하면 속도가 워낙 빨라서 활로 쏘아 잡는다는 게 쉬운 게 아니거든. 더군다나 상대방은 하늘 위쪽에 위치해 있으니, 어지간한 활로는 저 위까지 화살을 날리지도 못한다는 게 가장 큰 문제지.”
올란도는 그 후로도 거리를 지나치는 예쁘게 생긴 여자만 눈에 보이면 쳐다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니, 빤히 쳐다보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몇몇 여자들에게는 윙크를 날리기도 했다. 또 어떤 때는 낯부끄럽게도 손바닥에 뽀뽀를 해서는 여자 쪽으로 손을 뻗기도 했고.
“흥!”
물론 그런 수작에 차갑게 돌아서는 여자들. 그런 여자들의 싸늘한 대응에 라이의 얼굴이 다 화끈거릴 지경이었지만, 올란도는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꿀꺽! 시간만 좀 있었어도…….”
군침을 꿀꺽 삼킨 그는 라이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역시 미녀들은 도도한 맛이 있어야 해. 그래야 정복욕이 더욱 불타오르거든. 안 그래?”
“그, 그렇죠.”
“올라가기 어려운 산을 정복했을 때 그 쾌감이 배가 되듯, 그건 여자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지. 도도한 미녀야말로 정복할 만한 가치와 재미가 있는 유일한 대상이라고나 할까.”
‘하아, 세상 참 편하게 사는 사람이군.’
올란도라는 사람은 라이의 시각에서 봤을 때,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의 인물이었다. 어떤 때는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처럼 보이다, 또 어떤 때는 완전 방탕아가 따로 없을 만큼 호색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분명한 건 라이가 그런 분위기에 점차 휘둘리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왜냐하면 식당에서 자신의 처지가 노예라는 걸 다시금 곱씹었던 라이가 어느 샌가 올란도를 편하게 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자신은 모르고 있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