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29화 (725/930)

여긴 내 땅이야, 나가!

과연 그의 예상대로 어린 드래곤 한 마리가 들어와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저희 집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자신의 기척을 읽고 밖으로 달려나오는 드래곤의 모습을 보고서야 아르티어스는 왜 이놈이 이 악명 높은 말토리오 산맥으로 제 발로 기어들어 왔는지를 알 수 있었다.

물빛과도 같은 푸른 머리카락을 하고 있는 엘프. 아무리 엘프들의 외모가 특이한 데가 있다고는 하지만, 저런 색깔의 머리카락을 자연적으로 가지고 태어난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호오, 이번 손님은 실버였군. 그나저나 머리카락 색깔이 꽤나 근사한걸?”

아르티어스의 비꼬는 말투를 알아채지 못한 애송이 드래곤. 그는 자신의 머리카락 색깔의 칭찬에 활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손님. 그런데 저희 집에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아르티어스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이 말토리오가 내 영토라는 것을 모르는 드래곤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말이지. 네놈은 지금 내 영토를 무단으로 침입하여, 내 드워프들을 강탈해 갔어. 네놈의 죄를 알겠지?”

애송이 실버 드래곤은 아연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 그건 무슨 말씀이십니까? 여기는 말토리오 산맥이 아니라, 쟈코니아 산맥입니다만…….”

“저쪽으로 가서 지나가는 호비트놈들을 붙잡고 물어봐라. 여기가 말토리온지, 쟈코니아인지. 내 영토에 들어와 자리를 잡은 것도 괘씸한데, 감히 내 드워프들까지 강탈해가?”

반대편인 아르곤 쪽 주민들은 이 산맥을 쟈코니아라고 불렀지만, 아르티어스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쪽에 사는 치레아 주민들은 자신들의 눈앞에 보이는 모든 산맥을 말토리오라고 불렀다. 거대한 산맥이 쭉 연결되어 있는데, 어디에서 어디까지가 말토리오고, 쟈코니아인지 헷갈렸기에 그렇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하늘 저 높은 곳에서 볼 수 있는 드래곤의 입장에서는 말토리오와 쟈코니아가 헷갈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엄연한 쟈코니아 산맥에 와서 말토리오라고 강짜를 부리고 있는 아르티어스의 저의가 의심스러워진 애송이 실버 드래곤. 그는 의혹이 가득 찬 시선으로 아르티어스를 탐색하며 대꾸했다.

“제가 백번 양보해서 여기가 말토리오라고 해도, 이 주변에는 그 어떤 드래곤의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는데요.”

“흥, 대답할 가치조차 없다. 정 알고 싶으면 네놈 애비한테 가서 물어봐. 말토리오 산맥의 주인이 누구인지 말이야. 그리고 어린놈의 새끼가 감히 꼬박꼬박 말대꾸나 하다니, 너 오늘 한번 죽어봐라!”

“아, 아니……. 다짜고짜 왜 이러십니까? 우리 말로 하자구요. 꾸에에엑!”

처음부터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풀기 위해 찾아온 아르티어스가 곱게 말로 끝낼 리가 있겠는가. 몇 번 투닥거린 결과, 애송이 드래곤은 절실히 깨달아야만 했다. 마법으로는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을.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이런 미친 드래곤 같으니라고! 내가 이대로 당하고 그냥 넘어갈 줄 알았냐!”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엘프의 몸에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드래곤으로 현신하여, 상대를 짓밟아줄 생각인 것이다. 하지만 실전 경험이 전혀 없는 그는 알지 못했다. 드래곤으로 현신하는 그 짧은 순간이 가장 취약하다는 것을.

아르티어스는 그 모습을 보자 콧방귀를 뀌며 이죽거렸다.

“흥! 가지가지 하고 있네. 적을 코앞에 두고 현신을 하다니…….”

퍼퍼펑!!

현신을 하는 동안 아르티어스의 공격에 고스란히 노출되었지만, 드래곤의 외갑은 막강한 방어력을 자랑했다. 그렇다고 고통까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크으윽! 이런 젠장!>

나지막한 신음 소리와 함께 자욱한 먼지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는 은빛 거체. 성인식을 거친지 얼마 지나지도 않은 어린놈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실버 드래곤은 엄청나게 커다란 덩치를 지니고 있었다.

오랜 세월 바다에 적응된 탓인지 실버 드래곤의 몸체는 군더더기가 거의 없는 완벽한 유선형에 가까웠다. 그리고 육상 드래곤과는 달리 날개가 붙어있지 않았다. 대신 물속을 헤치고 다니기에 알맞도록, 조금 넓적하게 진화한 꼬리는 두텁고도 강인해 보였다. 꼬리가 워낙에 튼튼해 보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뒷다리가 부실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호오, 실버 일족의 본체를 보는 건 정말 오랜만이로군.”

본체로 현신하는 도중에 두들겨 맞았기 때문인지, 애송이 실버 드래곤의 몰골은 처참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겉모습처럼 상태가 그렇게 엉망인 것은 아니었다. 본체로 현신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아주 짧다. 그 짧은 시간동안 공격을 퍼붓는 방법은 주문을 필요로 하지 않는 용언마법 뿐이다.

하지만 본체로 현신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높은 레벨의 용언마법은 사용이 불가능했다. 그 때문에 수십 방을 두들겨 맞았지만, 실버 드래곤의 외갑을 뚫고 내부에까지 충격을 안겨줄 만큼 강한 공격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아주 박살을 내주마! 후우욱!>

본체로의 현신을 완료하자마자 머리끝까지 신경질이 나 있던 애송이 실버 드레곤의 입에서 엄청난 브래스가 터져 나왔다. 물의 기운을 지닌 실버 드래곤의 브래스는 막강한 파괴력을 자랑한다. 세찬 물줄기가 강철을 잘라버리듯, 브래스는 그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파괴하고 지나갔다.

콰콰콰콰!

하지만…, 문제는 아르티어스 어르신이 그런 브래스를 정면으로 맞을 만큼 멍청하지 못하다는 게 애송이 실버 드래곤의 불행이었다. 드래곤끼리의 싸움이라면 이미 도가 튼 아르티어스는 애송이를 상대로 본체로의 변환조차 하지 않았다.

마법만으로도 충분히 요리가 가능한데, 뭐하려고 귀찮게 본체로 현신하는 수고까지 하겠는가.

바로 코앞에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아르티어스는 브래스가 날아오기 직전에 초단거리 공간이동을 해버렸다. 덕분에 애송이 실버 드래곤이 내뿜은 브래스는 아르티어스가 있었던 지점 위를 헛되이 쓸고 지나갔을 뿐이다.

그리고 곧이어 애송이 실버 드래곤은 아르티어스가 자신의 옆구리 근처로 공간이동 했음을 눈치 챘다. 약이 바짝 오른 애송이 실버 드래곤은 재빨리 목을 늘여 아르티어스를 아예 씹어버리려고 했다.

콱!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이빨은 헛되이 허공을 씹었을 뿐이다. 그 이후로도 애송이 실버 드래곤은 아르티어스를 향해 자신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이빨과 꼬리를 미친 듯이 휘둘렀다.

하지만 죽어라 공격해도 미꾸라지처럼 살살 빠져나가는 아르티어스. 머리 뚜껑이 열릴 정도로 약이 바짝 오른 애송이 실버 드래곤은 아르티어스가 자신의 몸통 바로 근처에 있다는 것도 잊고 공격마법을 펼쳤다. 그만큼 열이 받은 것이다.

퍼펑!

<쿠엑!>

온몸으로 전해져 오는 엄청난 충격에 애송이 실버 드래곤은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내질렀다. 자신의 몸통에까지 피해가 올 것을 각오한 공격이었다. 물론 자신의 몸은 조금 아픈 정도에서 끝나겠지만, 상대는 아마 살아남기 힘드리라. 본체로의 현신조차 하지 않은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그 순간, 애송이 실버 드래곤은 자신의 코앞으로 날아오는 시뻘건 불덩어리를 볼 수 있었다. 그동안 요리조리 도망 다니던 아르티어스가 큰 거 한방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워낙 지근거리에서 가해진 공격이었기에, 실전 경험이 전혀 없었던 애송이 실버 드래곤은 당황해서 그저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하기야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헬파이어가 갑자기 날아온다면, 성체 드래곤이라고 해도 방법이 없기는 매한가지일 것이다. 처음부터 방어주문으로 몸을 튼튼하게 감싸놨다면 또 몰라도…….

콰콰쾅!

<꺼윽!>

턱밑을 정통으로 직격당한 애송이 실버 드래곤의 머리통이 뒤쪽으로 확 꺾였다. 막강한 위력의 공격마법을 정면으로 허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애송이 실버 드래곤은 죽지 않았다.

다만 그 엄청난 충격에 정신이 오락가락 하고 있는 상태! 그 순간, 아르티어스는 애송이 실버 드래곤의 다리와 꼬리가 연결되는 그 치명적인 급소 부위로 이동했다. 마법에 능한 아르티어스는 처음부터 트리플 스펠(Triple spell)로 헬파이어 주문을 외웠기에, 그의 손바닥 위에는 아직도 시뻘건 구체가 2개씩이나 남아있었다.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아르티어스 어르신은 그 남은 두 방을 녀석의 거시기(?)에다 사정없이 던져버렸다.

콰쾅!

<꿱!>

쿵.

외마디 비명과 함께 애송이 실버 드래곤의 거체가 땅바닥에 처박히며 자욱한 먼지를 피워 올렸다.

부르르르.

난생 처음 느껴보는 그 지독한 고통에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온몸을 그저 부들부들 떨고만 있는 애송이 실버 드래곤. 드래곤으로 태어난 이후, 아마 처음 느꼈을 것이다. 너무 아프면 비명조차 지르기 힘들다는 것을.

그런 실버 드래곤을 보며 아르티어스는 으르렁거렸다.

“또 다시 내 영토 주변을 기웃거리면, 그때는 아예 죽여 버릴 줄 알아. 알겠냐?”

애송이 실버 드래곤은 대답을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너무 극심한 고통에 비명도 제대로 못 지르고 있는 상황인데, 대답할 정신이 어디에 있겠는가.

“이 정도로 타일렀으니 알아들었겠지. 쩝. 좀 더 큰놈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이건 너무 애송이가 되어놔서 스트레스 해소가 안 되잖아.”

말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거시기 부분을 꽉 움켜쥐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애송이 실버 드래곤의 애처로운 모습은 그의 속을 확 풀리게 만들어 주었다.

‘어쨌거나 대충 기분은 풀었으니, 팔시온이라는 놈에게 가봐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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