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30화 (726/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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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당당!

느긋하게 누워 차를 마시고 있던 팔시온은 노크도 없이 문을 박차고 뛰어들어온 집사를 못마땅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대, 대, 대공 전하. 밖에 드, 드…….”

팔시온은 더 이상 집사의 말을 듣지 않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집사가 경기를 일으킬 대상이라고 해봐야, 아르티어스 외에 누가 있겠는가 말이다.

“어르신, 어서 오십시오.”

팔시온의 환대에 아르티어스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마치 이곳 대공관저가 자신의 집이라도 되는 양 성큼성큼 걸어가서는 탁자에 턱 하니 자리 잡았다. 팔시온은 마치 비 맞은 강아지처럼 잔뜩 움츠린 모습으로, 아르티어스의 눈치를 핼끔핼끔 살피며 그 옆에 자리 잡았다.

“무슨 하명하실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네가 다스리고 있는 치레아 공국 말이야.”

“네.”

“인구가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 알고 있냐?”

“대충 100만 명 정도라고…….”

순간 아르티어스의 눈꼬리가 사납게 치켜 올라갔다. 그와 동시에 팔시온은 공포에 질려 온 몸에 소름이 돋아야만 했다.

“대충? 대충이라니. 말도 안 되는 헛소리 집어치우고, 당장 정확한 인구가 얼마나 되는지 알아봐!”

“그, 그게…….”

“왜? 싫다는 것이냐?”

“그, 그건 아니고…, 뭣 때문에 그러시는지 이유를 가르쳐 주시면…….”

“뭣이? 네놈 따위가 감히 내게 그딴 요구를 할 자격이나 된다고 생각하는 거냐?”

분노로 무시무시하게 번쩍이는 아르티어스의 눈동자. 지금 당장 팔시온을 씹어 먹어버릴 것만 같은 광기에 가득 차 있었다. 이미 마스터의 경지에 이른 팔시온이었지만, 그는 지금 자신이 마스터씩이나 되는 경지를 개척했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렸다. 대신 그의 머릿속을 가득 메운 것은 지독하리만큼 끔찍한 공포였다.

“이, 이봐! 집사, 집사!”

“옛!”

팔시온의 다급한 부르짖음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집사가 미친 듯이 달려 들어왔다.

“지금 당장 본국의 인구를 조사하라고 일러라!”

“예? 평민들 인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 말에 팔시온은 아르티어스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느 정도 수준까지 조사하라고 이를까요? 평민? 아니면 농노? 하명만 하십쇼.”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노예건 귀족이건, 모두 다.”

순간 팔시온의 얼굴이 왈칵 일그러졌다. 그렇다고 대놓고 싫은 내색을 할 수가 없었기에, 팔시온은 집사를 노려보며 사납게 소리쳤다.

“어르신 말씀 들었지? 지금 당장 본국의 인구를 철저히 조사하도록! 평민이건 귀족이건, 노예건, 모두 다! 단 한 명도 빠져서는 안 돼. 알겠나!”

“옛! 즉시 그렇게 지시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때 옆에서 심드렁한 표정으로 지켜보며 앉아 있던 아르티어스가 불쑥 끼어들었다.

“정확한 숫자를 파악하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지?”

“최소한 유, 육 개월은 주셔야…….”

생각보다 긴 시간에 아르티어스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유욱개월∼?”

“그게 어쩔 수 없습니다, 어르신. 제가 아무리 닦달을 한다고 해도, 휘하에 있는 영주들에게 연락을 하고, 또 그 영주들이 자신의 밑에 있는 가신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뭐 이런 식으로 해서 노예 한 명 한 명까지 다 숫자를 헤아려 보고를 받은 다음, 그 모든 보고서들을 받아서 집계하려면…….”

더듬거리면서도 필사적으로 너무 시간이 촉박하다고 말하는 팔시온의 말을 아르티어스는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전체 인구를 다 조사하려면 당연히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렇기에 아르티어스는 최대한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그렇다면 15년 전에 태어난 아이들만을 조사한다면 어떻겠나?”

아르티어스의 말을 들은 팔시온은 머리를 갸웃하며 급히 되물었다.

“그러니까 15세 정도의 아이들만 조사하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지. 대신 약간의 오차는 있을 수 있다는 거 알지? 듣자하니 너희 인간들의 경우 예정된 날짜보다 훨씬 더 앞당기거나, 아니면 조금 늦게 태어나는 경우도 허다한 게 사실이잖아.”

“물론입니다, 어르신.”

아르티어스는 집사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그렇게 하면 시간이 좀 절약이 되겠나?”

“14~16년 전에 태어난 아이들만을 추려서 파악하려 한다면 시간이 단축되긴 할 것이옵니다. 하오나, 생각보다는 그리 많은 시간이 단축되지는 않을 듯 하옵니다. 왜냐하면 휘하의 영주들에게 지시를 내려, 그들로부터 답신이 올라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동일하니 말이옵니다.”

아르티어스는 잠시 생각을 정리한 다음, 다시 명령을 내렸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지. 방금 전에 말한 그 나이대의 아이들을 말이야, 치레아 공국만이 아니라 스바시에 그리고 크라레스 제국 전체로 확대해서 끌어 모으도록 해.”

그 말에 팔시온은 경악했다.

“크, 크라레스 제국 저, 전체를 다 말씀이십니까?”

“그래, 전부 다!”

말도 안 되는 명령이라는 건 알지만, 팔시온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지금 바로 죽임을 당하고 싶지 않다면, 시키는 대로 하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는 것이다. 어쩔 수 없다는 듯 가볍게 한숨을 내쉰 팔시온은 허탈한 음성으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어르신. 가스톤에게도 어르신의 명령을 전하겠습니다. 그리고 루빈스키 대공에게도 말입니다.”

“단 한 놈도 빠져서는 안 돼. 알겠어?”

“명심하겠습니다. 그런데 그 나이대의 아이들 숫자만 파악해서 알려드리면 되는 겁니까?”

아르티어스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금단의 비술을 썼으니, 분명 그 아이들 중에 자신의 아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들을 무슨 재주로 알아낼 수 있단 말인가. 환생 전처럼 마나를 잔뜩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러다 문득 과거 아들놈이 크루마에 납치되어 행방불명되었을 때가 떠올랐다. 마나의 기운이 전부 사라져 버린 상황에서 그가 아들을 찾아낼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때는 나이아드의 도움을 받았었지만, 이번에는 육체까지 바뀌어 버렸으니 제 아무리 나이아드에게 용빼는 재주가 있다 하더라도 아들을 찾아내지는 못하리라.

“끄응…….”

이때, 기가 막힌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아들의 영혼을 가지고 있는 만큼, 아들의 재능 역시 가지고 태어났을 가능성이 크지 않겠는가. 그리고 아들이 지닌 재능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것은 바로 검술에 대한 것이었다.

“숫자를 알려줄 필요는 없고, 그 아이들에게 검술을 좀 가르쳐 봐.”

“검술을…, 말씀이십니까?”

“그래, 검술. 기초적인 것이라도 괜찮아. 그래서 딴 애들보다 평균 이상으로 검술에 재능이 있는 애들은 몽땅 다 이쪽으로 끌어 모아. 알겠냐?”

“알겠습니다. 즉시 시행하라고 이르겠습니다.”

기운차게 대답한 팔시온은 곧 뭘 생각했는지 애처로운 눈빛으로 아르티어스를 잠시 바라보더니, 주저주저하며 물었다.

“그렇게 하려면 제법 시간이 걸릴 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팔시온의 걱정은 당연했다. 크라레스 제국 전역에 걸쳐 검술에 재능이 있는 아이들을 끌어 모으자면, 인구 조사를 하는 것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성질 더러운 드래곤이 그때까지 참아주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가 아는 아르티어스는 그 더러운 성질머리에 비례할 만큼, 인내심이라고는 두 눈을 씻고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는 드래곤이었으니까.

“물론이지. 네가 농땡이만 부리지 않는다면 내 기다려 주지.”

걱정과는 달리 아르티어스가 시원스럽게 허락하자, 팔시온은 내심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느 분의 명령인데 제가 감히 농땡이를 피우겠습니까. 그런 염려는 접어두십시오. 제가 직접 나서서 독려하도록 하겠습니다.”

“대신! 단 한 명이라도 빠트려서는 안 되는 거 잘 알지?”

“옛, 어르신!”

호기롭게 대답하는 팔시온을 못미덥다는 눈초리로 쳐다보던 아르티어스는 갑자기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이죽거렸다.

“흐흐, 나중에 단 한 명이라도 빠트렸다는 것이 밝혀지면, 그때는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도록 만들어 줄 테다. 알겠냐?”

“며, 명심하겠습니다, 어르신.”

아르티어스라는 절대적인 폭력 앞에 나약한(?) 팔시온으로서는 납쭉 엎드리는 것 말고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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