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병들의 71중대
대기대 건물 밖으로 나오려고 하니, 경비병이 가로막았다. 훈련병 하나가 무기를 들고 밖으로 나왔으니, 그건 당연한 대응이었다.
“서라! 어디로 가는 거냐?”
라이는 주머니 안에서 발령장을 꺼내 경비병에게 건네주며 물었다.
“71중대로 가려고 하는데요. 어디로 가면 되죠?”
71중대라는 말에 경비병들은 흠칫 했다. 하지만 라이의 얼굴을 자세히 보더니, 그가 아직 어리다는 것을 알고 안심하는 게 역력했다.
“거기에는 왜 가는 거냐?”
“거기에 써져 있잖아요. 길게 얘기하고 싶은 기분 아니거든요. 빨리 길이나 가르쳐 줘요.”
71중대는 3연대의 한쪽 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얼핏 보면 71중대를 3연대 전체가 포위하고 있는 것 같은 위치였다. 그 때문에 라이는 중대를 찾아가는데 애를 먹어야만 했다. 71중대의 위치를 물었는데, 모두들 3연대 쪽을 가르쳐줬기에 아주 헷갈렸던 것이다.
“저기가 71중대다.”
“예, 감사합니다. 드디어 찾아왔네.”
다른 모든 병영에서는 자신들이 맡은 구역을 경계하고 있었는데 반해, 71중대에서는 단 한 명의 경계병도 밖에 나와 있지 않았다.
똑똑!
“이 한밤중에 누구야?”
막사 문을 두드리자 곧바로 터져 나온 거친 응대에 주눅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들어가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빼꼼히 문을 열고 슬쩍 머리를 들이미는 라이. 안을 들여다보니 모두들 한 성깔 할 것 같은 험악한 인상의 사내들뿐이다.
“넌 뭐야?”
찔끔해 하는 라이가 불쌍하게 보였는지, 한 사내가 막아서며 물었다.
“야, 전령한테 겁줘서 뭐하려고 그래! 중대장 찾아왔냐?”
그도 다른 사내들 못지않게 덩치가 좋았다. 행동은 꽤 친절했지만, 얼굴을 가로지르는 커다란 흉터로 인해 인상은 더욱 무시무시했다.
“예.”
“저쪽으로 가봐.”
“감사합니다.”
꾸벅 인사를 하고 긴장감에 쭈뼛쭈뼛 걸어가는 라이를 바라보며 모두들 키득거렸다.
“쓰벌. 저런 초짜를 전령으로 보내다니. 저러다가 길 잃으면 어쩌려고.”
“귀엽잖아.”
“이런 미친 새끼. 사내놈이 귀엽긴 뭐가 귀여워? 귀여운 거라면 당연히 어린 여자애지. 그런데 왜 우리 대대에는 여자 용병이 없는 거야? 젠장.”
“너 같은 놈이 있는데 여자를 넣겠냐?”
그러자 모두들 왁자지껄하게 웃는다. 그리고 또다시 이어지는 대화 속에는 걸쭉한 욕설이 난무했다. 라이가 지금껏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원색적인 욕지거리들이…….
똑똑!
“들어와!”
빼꼼히 문을 여니, 침대 위에 반쯤 드러누워 책을 읽고 있는 올란도가 보였다. 올란도는 라이가 이런 한밤중에 찾아온 게 뜻밖인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모두들 발령이 난 그날 밤은 편안하게 대기대에서 자고, 그 다음날 자대로 들어가는 게 보통이었기 때문이다. 서둘러 들어간다고 해서, 월급을 한 푼이라도 더 주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당혹스러운 표정이었던 올란도는 이내 활짝 웃으며 라이를 맞이했다.
“어이구, 우리 순둥이.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쪄? 이렇게 급하게 달려온 걸 보면 말이야.”
일부러 혀 짧은 소리를 내며 자신을 놀리는 올란도의 짓궂음에 라이는 울컥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미 여기까지 와버린 것을 어쩌란 말인가.
라이는 퉁명스레 대꾸했다.
“누가 보고 싶었다고 그러십니까.”
“뭐, 어쨌거나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네. 어제 축 늘어져 버렸을 때는 파묻어야 되는 게 아닌가 걱정했었는데 말이야. 너도 모래를 파봤으니 알 거 아니냐. 시체를 묻을 만큼 구덩이를 깊게 파는 게 얼마나 힘든지.”
“말도 안 되는 농담 그만 하시구요. 자요, 이거나 받으세요.”
라이가 건넨 것은 발령장이었다. 발령장을 보던 올란도의 눈동자가 약간 커진다.
“어라, 6급 용병? 녀석 제법 인심 후하게 썼는데? 젠장, 술 한 잔 더 사줘야 하는 거 아냐?”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넌 알 것 없다.”
단호하게 말을 끊으며 대충 넘겨버리는 올란도였지만, 눈치 빠른 라이는 그 반응만으로도 자신이 어떻게 6급 용병패를 받게 된 것인지 금방 이해했다. 그러자 로크로 인해 더러웠던 기분이 더욱 더러워지는 것을 느껴야 했다.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올란도는 성큼성큼 문 쪽으로 걸어가서는 문을 벌컥 열고 머리를 밖으로 내밀며 외쳤다.
“각 소대 소대장들 집합!”
올란도의 명령에 사내 2명이 그의 방으로 들어왔다. 그들 중 한 명은 이미 면식이 있는 사내였다. 방금 전에 이곳 중대장실의 위치를 가르쳐 줬던 바로 그 친절했던 사내였다.
“무슨 일이십니까? 중대장님.”
“또 출동 명령이라도 떨어졌습니까?”
“그게 아니라 신입이 들어왔기에 너희들에게 소개나 시켜줄까 하고 불렀다. 너희 둘 다 결원이 있지? 누가 데리고 갈래?”
신입이라는 말에 소대장들의 표정이 떨떠름하게 변했다. 겉모습으로만 봤을 때, 라이를 쓸 만한 용병이라고 판단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 그래서인지 약간 마른 체형에 사나워 보이는 인상의 사내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이놈이 신참이라고요? 젠장! 어쩌다 하나 들어오나 싶었더니, 저런 비쩍 마른 꼬맹이가 들어오다니. 햇빛에 바짝 말린 멸치도 이놈보다는 통통하겠네요.”
“너는 포기야? 그렇다면 너는?”
그러자 뭔가 탐색하는 듯한 눈길로 라이를 노려보는 사내. 안 그래도 무서운 얼굴에다가 흉터까지 있다 보니 더욱 인상파로 보였다. 긴장한 라이가 마른침을 꿀꺽 삼키는 순간, 그 소대장이 한숨을 푹 내쉬며 대답했다.
“제가 데리고 가죠. 어차피 충원이 언제 될지 알 수도 없는데…….”
그 말에 올란도는 휘파람을 불며 감탄스럽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아무리 들어도 놀리는 것 같은 말투다.
“오오, 과연 현명한 라이언. 언제 올지도 모를 대어를 기다리느니, 눈앞의 피라미라도 키워서 잡아먹겠다?”
‘누굴 보고 피라미라는 겁니까?’하고 콱 쏘아주고 싶었지만, 한 덩치 하는 위압적인 인상의 소대장들 앞에서 감히 숨소리도 내지 못하고 눈치만 살피고 있는 라이.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소대장 중 한 명은 올란도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방 밖으로 나가버렸다. 사내의 그런 행동에 올란도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여기서는 원래 그렇게 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런 군기 빠진 행동을 지금껏 촌장네 기사들에게서는 단 한 번도 본적이 없었던 라이였기에 내심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올란도는 빙글빙글 웃으며 두 사람을 서로에게 소개했다.
“이쪽은 라이, 그리고 이쪽은 내가 총애하는 3소대장 라이언이야. 그리고 방금 전에 나간 녀석은 2소대장 론도. 그 외에 3명의 소대장이 더 있지만 모두들 임무를 맡아 밖에 나가 있으니 한동안은 만날 수 없을 거다.”
“더 이상 하실 말이 없으시면 저도 가보겠습니다.”
3소대장 라이언은 라이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짐 챙겨서 나를 따라와라.”
돌아서는 라이언에게 올란도는 문득 떠올랐다는 듯 급히 말했다.
“참, 라이언.”
“예, 뭔가 지시하실 게 있으십니까?”
올란도는 손가락으로 라이를 가리키며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저 녀석 상태를 좀 봐. 지금 당장 써먹을 수는 없겠지?”
“그렇겠죠.”
“그러니까 누구 한 명 붙여서 단련 좀 시켜.”
올란도는 라이가 받은 실력 평가가 제대로 된 것이라는 것을 몰랐다. 그렇기에 자신의 협박과 뇌물에 의해 획득한 엉터리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 라이를 지금 당장 일터(?)에 투입했다가는 곧바로 시체가 되어 돌아올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사실. 때문에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훈련을 시켜 생존율을 높이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올란도의 속마음을 알 리 없는 라이언은 인상을 찡그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되면 소대원을 한명 증원 받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가뜩이나 모자라는 인원에서 한 명이 더 없어진다는 뜻이었으니까.
라이언은 불만어린 어조로 대꾸했다.
“그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길어봐야 한두 달이야. 기왕에 들어온 놈인데 제대로 써먹어야 할 거 아냐?”
“그건 그렇죠.”
아무리 규율이 엉망인 용병단이라고 해도 계급이 깡패다. 라이언은 올란도의 말에 불만이 많았지만, 애써 참으며 방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