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37화 (733/930)

중대장실에서 라이를 데리고 돌아온 라이언 소대장은 약간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누군가를 호명했다.

“하리스!”

그러자 침상에 누워있던 사내 하나가 몸을 부시시 일으키더니 고개를 돌렸다. 그리 체구가 큰 사내는 아니었다. 특징이 있다면 덥수룩한 수염을 기르고 있다는 점과 귀쪽으로 커다란 흉터가 나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창 같은 무기가 그쪽을 훑고 지나간 모양인 듯, 그의 오른쪽 귀까지 통째로 뜯겨 나가고 없었다.

“무슨 일입니까?”

“이번에 우리 소대에 새로 들어온 녀석이다. 두어 달 시간 여유를 줄 테니, 네가 책임지고 한 사람 몫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라.”

하리스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그 말씀은…, 임무가 생겨 소대가 출동하게 된다 해도 저보고 여기 남아서 저 녀석을 가르치라는 겁니까?”

“당연하지. 어쩌면 내 등 뒤를 맡겨야 할지도 모르는 동료인데, 제대로 훈련을 시켜서 써먹어야 할 거 아니겠냐.”

“흐흐, 그거 농담이시죠? 소대장님 성격을 내가 빤히 아는데, 저놈한테 등 뒤를 맡겨요? 그 말을 내게 믿으라구요?”

하리스의 말에 라이온 소대장의 얼굴이 왈칵 일그러졌다.

“말이 그렇다는 거야, 임마! 잔소리 말고 해.”

“싫어요. 다른 사람 시켜요. 한 푼이 아쉬운 판에…….”

용병 월급은 매우 빈약하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한건씩 임무를 수행할 때마다 따로 수당을 책정해서 주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누가 목숨을 걸고 임무를 수행하러 달려 나가겠는가.

“아, 정말 두세 달만 좀 하라니까. 네가 임무를 받지 못해 손해를 보는 건 맞으니, 내가 신병을 교육시키는 것에 대한 수당을 위쪽에 청구해 주도록 하지. 어때?”

“흐음, 얼마나 줄 건데요?”

“그건 나중에 이놈을 어느 정도 수준까지 끌어올려 놨는지에 따라 다르지.”

라이언은 라이에게로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너 테스트에서 몇 급 받았냐?”

“6급 받았습니다.”

“뭐, 6급이라고?”

6급이라는 라이의 말에 라이언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진다. 마치 봉 잡았다는 듯한 표정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저 바짝 말린 멸치 같은 체구로 봤을 때 잘 받아봐야 8급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6급이라니! 그 정도라면 체력만 좀 보완시켜 놔도 한 사람 몫은 충분히 해내고도 남는다는 말이 아닌가.

“완전 재수! 내가 뽑기 운이 있었군. 흐흐, 론도 녀석이 배 꽤나 아파하겠는데.”

기분이 좋은 듯 라이언은 환하게 웃으며 라이에게 다시 물었다.

“너 딴 데서 용병 생활 해봤었냐?”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럼 실전 경험은?”

“없습니다.”

실전 경험이 없다는 대답에 라이언의 환하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죽어라 훈련만 받았다는 말이군.”

“예.”

초짜라는 게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다. 다른 용병대에서 나쁜 버릇을 배워오지 않았다는 장점도 있으니까. 라이는 지금 몸도 마음도 백지인 상태. 이쪽에서 가르쳐 주는 것만을 진리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놈인 것이다. 라이온은 그렇게 생각하며 애써 마음을 위안했다.

“목검으로 말뚝을 두들겨 패는 것과 진검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완전히 다르지. 네가 6급 용병패를 받았다고는 하지만, 지금 이 상태로 실전에 나간다면 첫 임무도 제대로 완수하지 못하고 시체가 될 게 뻔해.”

라이언은 하리스에게로 다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두어 달 뒤에 라이가 5급을 통과할 수 있는 실력으로 만들어 놓으면 내 수당으로 3골드를 받도록 해주지.”

목숨을 거는 것도 아닌데, 3골드씩이나 준다니. 그 정도라면 꽤나 보수가 후하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제안을 받은 하리스는 실쭉 눈을 가늘게 뜨며 의심스럽다는 듯 되물었다.

“정말요? 하지만 나중에 그런 일 없었다고 시침 뚝 떼시면 나만 바보 되는 거 아닙니까. 제가 소대장님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그만한 재량권을 쥐고 있는 것도 아니고…….”

하리스의 의심스런 시선에 라이언은 울컥해서 소리쳤다.

“이 망할 새끼! 날 못 믿겠다고? 좋아. 지금 당장 중대장한테로 같이 가자. 중대장 말이라면 믿겠냐?”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는데…, 헤헤. 뭐, 저야 그래 주시면 좋죠.”

하리스는 슬쩍 라이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저쪽 자리를 써. 내 옆자리니까 여러모로 편리할 거야. 너는 우리가 다녀오는 동안 짐 정리나 하고 있어.”

“예.”

“자, 그럼 중대장실로 가시죠.”

그런 뒤 기분 좋은 얼굴로 중대장실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는 하리스. 그런 하리스를 어이가 없다는 듯 바라보던 라이언은 이빨을 으드득 갈 수밖에 없었다.

“이 개새끼. 나중에 두고 보자.”

“에이, 사내가 왜 그리 꽁해요. 그리고 제가 지금 틀린 소리 하는 게 아니잖아요. 계약은 언제나 확실하고 명확하게! 이게 좋은 겁니다, 흐흐흐.”

그 둘이 중대장실로 떠난 후, 라이는 하리스가 권한 침상에 살며시 앉았다. 건초를 잔뜩 넣은 매트는 향긋하면서도 푹신했다. 대기대와 달리 이곳에 있는 매트는 건초를 자주 갈아주는 모양이라고 라이는 생각했다.

‘이제부터 여기에서 살아야 되는 건가?’

집 떠난 이후 참으로 험난한 인생을 살아왔다. 여기도 평안한 곳은 결코 아닌 것 같았지만, 일단 매트 하나만큼은 마음에 들었다. 꼭 고향의 자기 침대 같았으니까.

매트를 가만히 매만지던 라이는 누군가의 시선을 느끼고 흠칫 고개를 들었다. 옆쪽 침대에 누워있던 사내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라이는 눈이 환해질 만큼 대단한 미남자를 이런 노예부대 안에서 보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멍하니 라이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자, 상대는 되려 불쾌하다는 듯 툭 내뱉었다.

“뭘 봐?”

‘먼저 보고 있었던 놈은 자기면서…….’

울컥했지만 라이는 슬쩍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 저쪽은 고참이었고, 자신은 신입이니 괜히 다퉈봐야 좋을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자도 괜찮겠습니까?”

“마음대로 해. 임자 있는 침상만 아니라면, 자리를 선택하는 것은 자유니까 말이야.”

생긴 것과 달리 말투는 아주 퉁명스럽고 싸가지가 없었다.

‘젠장, 내가 참아야지.’

라이는 무기류를 자신의 사물함에 쑤셔 넣은 다음, 갑옷을 벗었다.

‘이대로 잘까?’

무척 피곤했지만 아직 이곳의 분위기를 잘 모르는 상황이니만큼 안심하고 잠을 청할 수도 없었다. 더군다나 방금 전에 소대장과 하리스라는 인간이 주고받던 얘기를 떠올려보면, 아무래도 나중에 다시 돌아와서 자신을 찾을 것만 같았다.

이때, 그의 시야에 낡아빠진 갑옷이 들어왔다.

‘그래, 노니 뭐해. 기름이나 먹이자.’

가죽제품을 오래 쓰는 데는 기름을 듬뿍 먹여두는 게 최고였으니까.

라이언의 얘기를 들으며, 올란도는 내심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라이가 받은 6급 용병패는 자신이 교관에게 협박과 뇌물을 퍼부어서 받게 만든 완전 엉터리 자격증이었으니까. 그런 놈을 두세 달 교육시켜 5급으로 만든다? 하리스가 초특급 능력을 지닌 교관이라고 해도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올란도는 희망에 들떠 환히 웃고 있는 하리스에게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사실을 알려줄 수는 없었다. 그건 자신의 비리와 관련된 일이었으니까.

“좋아. 만약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내가 위에 건의해서 수당 3골드를 받을 수 있도록 해주지. 그럼 됐나?”

하리스는 희희낙락해서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중대장님. 그럼 약속하신 겁니다?”

“그래, 내 약속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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