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45화 (741/930)

첫 실전 투입

올란도와 그 부하들의 등장에 그륜드 마을의 촌장을 비롯한 모든 주민들은 의심스런 눈길을 감추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몇 달 전 영주가 파견한 기사는 매우 용맹스러워 보이는 병사들을 100여 명씩이나 이끌고 왔었지만 토벌에 실패했었다. 그런데 겨우 20명도 채 안 되는 후줄그레한 모습의 용병들이 모습을 드러냈으니, 어디 당최 믿음이 가겠는가 말이다.

촌장은 아직도 질랜드 남작이 병사들과 함께 마을로 들어서던 그 광경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화려한 갑옷을 입고 있는 그가 마치 구세주처럼 보였던 게 사실이었으니까. 문제는 신분이 높은 만큼 얼마나 거드름을 떨어대는지, 그가 마을에 머무는 동안 접대한다고 혼쭐이 났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그렇게 관록이 있어 보이는 기사도 오크들과의 싸움에서 태반에 가까운 병력 손실을 입은 후, 도망치듯 마을을 떠나버렸다. 그런데 질랜드 남작이 거느리고 왔던 병사들에 비한다면 첫눈에 봐도 패잔병이나 다름없는 몰골을 하고 있는 용병들이 왔으니 그들의 눈에 찰 리가 없었다.

“어느 분께서 촌장이십니까?”

거드름을 피우지 않고, 공손하게 대한 게 오히려 역효과였다. 시골 촌장 주제에 자신에게 존대하는 올란도가 만만하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촌장은 목에 힘을 주고 거들먹거리며 대꾸했다.

“내가 촌장이올시다.”

“오크들의 숫자가 어느 정도쯤 되는지 혹시 아십니까?”

올란도의 물음에 촌장은 성의 없이 대꾸했다.

“지난 가을에 마을을 덮쳤을 때 보니, 족히 이삼백 마리는 되는 것 같았는데…….”

이삼백 마리라면 엄청나게 큰 규모의 오크족이었다. 오크는 수컷만이 사냥을 나간다. 암컷은 동굴에 남아 출산과 육아만을 전담했다. 오크들의 번식력이 대단한 것이 그 덕분이었던 것이다. 그런 걸 감안해서 암컷과 새끼들까지 다 계산해 보면 그 숫자는 무려 1천에 달한다는 얘기가 된다.

하지만 올란도는 촌장의 말을 믿지 않았다. 정말로 그 정도로 엄청난 규모의 오크족이 여기에 자리를 잡고 있다면, 이 근처 서너 개의 마을 뿐 아니라 훨씬 더 멀리까지 놈들의 영향력이 미쳤어야 했으니까. 아마 한밤중에 오크 떼가 몰려들다보니, 놈들의 숫자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음에 틀림없다고 올란도는 판단했다.

그런 올란도에게 그륜드 마을의 주민들은 너도나도 오크에게 입은 피해를 토로했다. 하지만 주민들의 고충 따위는 올란도로서는 알 바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녀석들이 난리를 치면 칠수록 그에게는 득이 되었다. 놈들의 본거지를 털었을 때 돈이 될 만한 노획품이 나올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올란도는 먼저 하늘을 봤다. 아직 해가 중천에 걸려있었다. 하지만 지금 식사 준비를 시켜서 밥 먹고 어쩌고 하다 보면 오늘 하루를 날릴 수밖에 없게 된다. 그렇기에 올란도는 결정을 내렸다.

“지금 당장 시작하자.”

“에이, 중대장님. 하루 쉬고 내일 아침부터 시작하죠.”

“잔말 말고 지금 당장 시작해. 빨리빨리 끝내고 다른 데로 가자! 그게 한 푼이라도 더 버는 길이다.”

올란도는 각 소대별로 4명씩, 8명의 이름을 호명했다. 그 중에는 라이의 이름도 끼어 있었다.

“너희들은 미끼 역할이다. 마음에 맞는 사람끼리 둘씩 짝을 지어서, 숲 속으로 들어가.”

“에이, 일을 시키더라도 밥은 먹여주고 시키라구요.”

“너 한대 맞을래? 내가 언제 굶으라고 했냐? 숲 속 산책하면서 건량이라도 씹어 먹어!”

이미 이런 역할을 많이들 해봤는지 대원들은 투덜거리면서도 짐을 주섬주섬 챙겨서 숲으로 향했다. 라이도 선임병들의 눈치를 살피며 그들이 가져가는 물건을 챙겨들고 뒤를 따라갔다.

올란도는 남은 대원들에게 고개를 돌리며 지시했다.

“너희들은 빨리 밥해먹은 다음, 오크들의 습격에 대비해서 방어진을 구축해 둬라.”

마지막으로 올란도는 각 소대에서 가장 활솜씨가 뛰어난 둘을 호명했다.

“아스탄, 모라이어스.”

각 소대에는 활솜씨가 뛰어난 인물들이 하나씩 배치되어 있었다. 그들은 정식으로 레인저(Ranger) 교육을 받았기에, 숲 속을 제집 드나들듯 할 수 있는 실력자들이었다.

“조금 있으면 놈들이 찾아올 거다. 들키지 않도록 조심해서 추격해.”

“장사 한두 번 합니까? 염려하지 마십시오, 중대장님.”

3소대에서 미끼 역할을 맡은 사람들은 쟈코, 바트, 하리스, 라이였다. 쟈코와 바트가 한 조가 되었고, 라이는 하리스와 짝을 지었다.

하리스가 앞서가며 라이에게 물었다.

“뺀질이! 너 오크에 대해서 잘 아냐?”

하리스의 물음에 라이가 볼멘 목소리로 항의했다.

“자꾸 뺀질이, 뺀질이 하지 마십쇼. 제가 언제 뺀질거렸다고…….”

“허, 이놈 말하는 거 보게. 내가 눈치 채지 못한 줄 아는 모양인데, 너 뺀질이 맞거든. 그러니 잔말 말고, 내가 묻는 거에나 대답해.”

오크와 1년씩이나 함께 생활한 게 사실이긴 했지만, 라이는 잘 모른다고 대답했다. 잘 안다고 해도, 상대가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아서였다.

하리스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을 시작했다.

“오크는 넓은 들판에서 싸운다면 그리 어려운 상대는 아니야. 하지만 지금처럼 숲 속에 들어가서 상대해야 한다면, 상당히 까다로운 적이 되지. 어디서 튀어나올지 알 수가 없거든.”

“오크는 밤에만 움직인다고 하던데요. 그러니까 지금은 안전한 거 아닙니까?”

“흠, 틀린 말은 아니야. 오크는 피부가 너무나도 연약해서 햇빛에 노출되면 금방 익어버리거든. 그래서 낮에 돌아다니는 것을 싫어하는 거지.”

“예, 저도 그렇게 들었어요.”

“하지만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게 있다. 싫어한다는 것이지, 못한다는 게 아니라는 점이야.”

하리스는 짙은 녹음이 우거져 있는 숲 속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주위를 한번 둘러봐라. 햇빛이 잘 들어오냐?”

“아뇨.”

고개를 가로저으며 라이는 자신이 잘 안다고 대답하지 않았던 것을 천만다행으로 생각했다. 사실, 그는 오크들의 동굴 밖 생활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으니까.

“이런 환경에서는 오크들도 대낮에 돌아다닌다. 놈들이 밤에 돌아다니는 이유는, 사냥감을 기습하기에는 낮보다 밤이 더 좋기에 밤을 주된 활동시간으로 삼고 있는 것일 뿐이야. 저쪽을 봐라. 만약 저렇게 그늘진 곳에 오크가 숨어있다면, 쉽게 눈에 띌 거 같으냐?”

“아뇨.”

“놈들이 어디에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만큼, 너와 나의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중대장님이 무슨 생각으로 너를 데려가라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네가 나를 제대로 엄호해 주지 않으면 우리 둘 다 살아서 돌아가기 힘들다. 알겠냐?”

“명심할게요.”

자신의 엄포에 바짝 긴장하는 라이를 바라보며 하리스는 키득거리더니 다시 말했다.

“그렇게 잔뜩 긴장해서 주위를 두리번거릴 필요까지는 없다. 내 말은 걸을 때 주의하라는 거야. 그리고 서로간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 명심하고 말이지. 만약 매복하고 있던 오크 경계병이 나를 덮친다면, 뺀질거리고 있지 말고 즉시 나를 도와줘야 해. 알겠냐?”

“예, 알겠습니다.”

하리스와 라이는 대략 여섯 걸음 정도의 거리를 두고 걸었다. 하리스는 아주 능숙한 움직임으로 숲을 헤쳐 나가고 있었다. 과연 고참병다운 관록이 묻어나는 모습이었다.

그에 비해 라이의 움직임은 누가 봐도 초보 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자기 딴에는 주위를 살핀다고 살피고 있었지만, 그 행동이 영 어설프기만 했다. 하지만 하리스는 모르고 있었다. 라이는 지금 시각보다는 후각에 의존해서 오크를 찾고 있다는 것을. 오랜 세월 오크 굴 속에 갇혀 지냈었던 만큼, 녀석들이 풍기는 냄새에 있어서는 이미 이골이 나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살금살금 앞서 걷던 하리스가 갑자기 쭈그려 앉으며 손을 살짝 들더니 주먹을 쥐어보였다. 정지 후 주위를 경계하라는 신호다! 라이는 재빨리 그를 따라 자세를 낮춰 앉으며 주위를 경계했다.

하리스가 살짝 자기 쪽으로 손짓을 했다. 라이가 살며시 다가가자, 그는 땅바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바닥에 있는 이끼가 뭔가에 밟혀 푹 꺼져있었다.

“이게 오크가 남겨놓은 발자국이야. 형태를 잘 기억해 두도록 해라. 녀석들은 보통 낙엽더미 위를 밟고 이동하기에 거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데, 운이 좋군.”

하리스는 짓밟혔던 이끼가 천천히 복원되어 가는 과정을 라이에게 설명했다. 그런 다음 이 정도 복원되었다면 대략 3일쯤 전에 오크가 지나간 거라고 설명했다.

그 후로도 오크들이 남긴 발자국이 몇 개인가 더 발견되기는 했다. 하지만 겨우 그 정도만으로는 놈들의 규모라든지, 어디에 본거지가 있는지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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