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47화 (743/930)

똑똑한 오크보다 교활한 올란도

돼지처럼 생긴 생김새만을 보고 사람들은 머리가 안 좋은 몬스터의 대명사로 오크라는 이름을 써먹고 있었지만, 사실 오크는 아주 영악한 몬스터였다.

식량 공급처로 점찍은 호비트 마을이 있으면, 일 년에 한두 번만 약탈한다. 약탈을 너무 자주 하면 호비트들이 거기에서 살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떠나버린다는 것을 놈들은 잘 아는 것이다. 그리고 약탈을 한다고 해도 몽땅 다 털어가는 것도 아니다. 굶어죽지 않을 정도는 놔두고 간다.

그렇게 해놔야 다음에도 또다시 그만큼의 식량을 얻을 수 있게 될 테니까. 그런 이유로 해마다 오크의 습격을 받으면서도 영지의 주민들이 이곳에서 끈질기게 버틸 수가 있었던 것이다.

오크는 인간과 공존하는 삶의 지혜를 터득했지만, 인간의 영주들은 그렇지 못했다. 그들은 너무나도 욕심이 많았다. 오크 떼가 쓸어가 버리니, 제대로 된 세금을 거둘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오크가 보이는 족족 씨를 말려버리기 위해 대규모 병력을 파견했지만, 성과는 그다지 신통치 않았다. 영악하기 짝이 없는 오크들은 대규모 병력이 눈에 띄면 곧바로 짐을 싸서 산속 깊은 곳으로 도망쳐 버렸기 때문이다.

이곳에 터를 잡고 있는 오크 족장 ‘췩바르’도 이런 식의 밀고 당기기에 도가 튼 오크였다.

“췩췩! 족장! 족장!”

아직 해가 지려면 한참 남은 상태. 경계병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오크들이 잠을 자고 있을 시간이다. 그리고 췩바르 역시 단잠에 취해있었다.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췩바르는 본능적으로 후다닥 일어나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느 결에 집어 들었는지 그의 손에는 창 한 자루가 쥐어져 있었다. 가끔 자신의 통솔에 불만을 품은 오크들이 반란을 일으키기도 하기에, 족장의 자리에 앉아있다고 해서 절대 안심하고 살 수는 없었다. 특히, 곤히 잠자고 있을 때가 가장 위험한 시간이었다.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야 긴장이 풀린 췩바르는 커다란 송곳니를 드러내며 입이 찢어져라 하품부터 했다.

“추익, 췩? 무슨…, 일이냐?”

“쇠 냄새 풍기는 호비트들 숲 뒤지고 있다.”

경계병의 보고에, 췩바르는 또다시 토벌군이 왔다는 것을 눈치 챘다. 그는 두 눈을 매섭게 빛내며 물었다.

“췩? 몇 놈이냐?”

“몇 안 된다.”

경계병 오크는 손가락을 주섬주섬 꼽더니 한참 만에야 대답했다.

“췩! 10마리 정도?”

“겨우 10마리?”

숲을 뒤지는 숫자치고는 너무 적었다. 고개를 갸웃하며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던 췩바르는 부하에게 명령했다.

“너, 마을 살펴라. 취익! 쇠 냄새 풍기는 놈 숫자 세라!”

오크족의 수컷이 전투에 능하듯, 호비트들 중에서 전투에 능한 것들은 짙은 쇠 냄새를 풍겼다. 철기(鐵器)로 중무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쇠 냄새를 풍기는 놈들의 숫자만 파악하면, 앞으로의 행동을 결정지을 수 있다. 이곳에 남아서 싸울 것인지, 아니면 도망칠 것인지 말이다.

4시간쯤 흘렀을까? 마을로 보냈던 오크들이 돌아왔다.

“췩! 족장, 10마리 정도다.”

자신의 손가락 10개를 쫙 펼쳐 보이는 오크.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췩바르는 어이가 없었다. 주위를 뒤지고 있다는 놈이 10마리. 마을에 남은 게 10마리. 그렇다면 겨우 20마리 정도밖에 안 된다는 건데, 그 숫자로 감히 자신들을 없애겠다고 기어들어왔다니…….

“취익! 가소로운 것들.”

“췩! 족장, 어떻게 하나?”

“족장, 마을 쳐들어가자!”

마을을 습격할 때는 밤에 하는 게 최고라는 것을 췩바르도 잘 안다. 하지만 노회한 그는 쇠 냄새 풍기는 놈들을 상대로는 그게 썩 좋은 선택이 아니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오크가 겨우 몽둥이나 창 정도를 사용할 수 있는데 반해, 호비트들은 활이라는 무시무시한 무기를 쓸 줄 알았다. 더군다나 놈들도 이 근처에 오크가 있다는 것을 아는 이상 필히 대비를 철저히 하고 있을 게 아닌가. 완벽하게 대비 태세가 갖춰져 있는 곳으로 쳐들어 간다면 막심한 피해를 각오해야만 했다.

“췩췩! 숲에 들어온 놈 죽인다! 그게 호비트 죽이기 쉽다. 편하다.”

족장이 결정을 내리자마자 오크들은 저마다 무기를 들고 밖으로 달려 나갔다. 쇠 냄새 풍기는 호비트들이 상당히 잘 싸운다는 것을 오크들도 잘 알고 있었지만, 울창한 숲 속에서 싸운다면 자신이 있었다. 더군다나 숲을 뒤지고 있는 호비트의 숫자는 겨우 10여 마리 남짓. 자신들의 숫자는 그 6배가 넘는 만큼, 겁날 게 없는 것이다.

오크들이 호기롭게 달려 나갔지만, 그들은 빈손으로 동굴로 돌아와야만 했다. 숲 속에 들어왔던 호비트들이 어느새 모두 다 철수하고, 한 마리도 없었던 것이다.

췩바르는 저 멀리 보이는 마을을 아쉽다는 듯 바라봤다. 지금 당장 쳐들어갈까 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첫날인 만큼 놈들의 대비 태세 또한 가장 철저할 게 뻔했으니까.

“오늘 밤 사냥 없다.”

오늘 밤에는 사냥을 하지 않는다는 췩바르의 선언에 모두들 동요했다.

“사냥 없으면 고기 없다. 그럼 뭐 먹나? 족장.”

“저장한 거 먹는다. 푹 쉬고 내일 새벽 싸운다!”

호비트 마을에서 약탈해 온 곡식류는 장기 보관이 되기에 동굴 안 깊숙한 곳에 보관해 뒀다. 사냥이 잘 안 되는 어려운 시기에 먹기 위해서다.

“마을 공격하나?”

“아니, 내일 숲 들어오는 놈 매복해서 죽인다.”

오크들 중 경험이 많은 놈들은 췩바르가 왜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인지 곧바로 이해했다. 새벽에 출발해서 숲 속 여기저기에 매복하고 있다가, 정탐하기 위해 들어오는 호비트들을 공격한다면 최소한의 손실만으로 놈들을 몽땅 다 때려죽일 수 있을 가능성이 컸다.

그렇기에 그들은 자신들이 현명한 족장을 모시고 있는 것을 행운이라 생각하며 소굴로 돌아갔다. 내일의 전투를 고대하며…….

밤이 깊어서야 아스탄과 모라이어스가 돌아왔다. 하리스의 말대로 그들은 오크의 후각을 피해가는 재주가 있는 모양이다. 그 어떤 상처도 없는 것을 보면 말이다. 라이는 그들을 존경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봤지만, 두 사람은 신경도 쓰지 않고 곧장 올란도에게로 다가갔다.

“그래, 알아냈나?”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오크 족장 췩바르는 자기 딴에는 꾀를 부린다고 부린 모양인데, 오히려 그게 올란도 일행을 도와준 결과가 되어버렸다. 지금껏 수많은 오크들을 상대해 본 올란도는, 오크들이 자신들을 살펴보기 위해 정찰병을 보낼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아스탄과 모라이어스는 그 정찰병의 뒤를 밟아 역으로 그들의 소굴을 포착해 냈던 것이다.

“자, 이제 놈들의 소굴을 알아냈으니, 토벌하는 일만 남았군. 토벌작전은 내일 모래 새벽에 할 거니까, 내일은 모두들 푹 쉬도록 해라.”

“예, 중대장님.”

올란도는 오크들이 다음에 어떤 식으로 행동할지 이미 예측하고 있었다. 놈들이 지금까지 제대로 된 임자를 만나지 못했기에 아직까지 번성하고 있는 것이라면, 올란도 패거리는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오크족들의 씨를 말리면서 그 노하우를 터득한 강자들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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