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49화 (745/930)

치열한 전투

이미 여러 번 오크 사냥을 해본 경험이 있는 부하들이였기에 휴식시간을 이용해서 횃불을 넉넉히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 주변에서 장만한 나무 몽둥이에 천을 둘둘 만 다음, 거기에다가 기름을 듬뿍 묻혀놓은 것이다. 모두들 동굴 속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모닥불을 이용해 횃불에 불을 붙였다.

중대원들의 전투 준비가 끝났음을 확인한 올란도는 소대장들을 불렀다.

“론도, 라이언!”

“예.”

“너희들이 앞장서라. 자, 모두들 주변 경계에 만전을 기하도록. 안쪽은 어두우니까.”

횃불로 앞을 밝히며 동굴 안으로 들어서자 지독한 악취에 토악질이 절로 나올 것만 같았다. 밖에서 맡았을 때에 비한다면, 그야말로 코가 썩어 들어간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크윽! 냄새! 이 새끼들은 평생 씻지도 않고 사나.”

“오크 냄새 한두 번 맡냐? 웬 호들갑이야. 빨리 들어가.”

어두운 곳에서 전투를 벌여야 하는 만큼 어려움이 많았다. 특히 횃불 때문에 더욱 문제였다. 놈들의 공격을 막아 줄 방패도 들어야 했고, 놈들을 공격할 무기도 들어야 했다. 그렇다면 횃불은 어느 손으로 들어야 하겠는가? 사람 몸에 손이 3개가 달려있지 않다 보니, 문제가 생긴 것이다.

때문에 가장 앞장서서 가는 사람들은 방패와 횃불을 들고 있었다. 오크를 만나게 되면, 방패로 막은 다음 횃불은 던져버리고 무기를 뽑아 싸워야 했다. 바닥에 떨어진 횃불이 곧바로 꺼지지는 않기에, 그게 빛을 밝혀주는 동안 적을 해치워야만 했다.

그리고 뒤에서 따라오는 동료가 들고 있는 횃불의 불빛에 의지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나중에 난전이 벌어져 뒤죽박죽 엉키면 그때는 빛도 거의 없는 상황에서 악전고투를 벌일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두툼한 방패로 앞을 가린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앞서 나가는 론도와 라이언. 각 소대의 소대장들인 만큼, 둘의 실력은 소대원들보다는 훨씬 더 뛰어났다. 그런 만큼 올란도는 그들에게 앞길을 뚫는 중책을 맡긴 것이다.

이때, 앞쪽에서 돼지 멱따는 듯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꾸웨에엑!”

그것은 오크들과의 본격적인 싸움의 시작을 뜻하는 신호나 다름없었다.

밝은 데 있다가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는 것인 만큼, 빨리 움직여서는 안 된다. 눈이 적응할 수 있도록 천천히 들어간다. 또한 언제든지 방패를 쓸 수 있도록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

오크 소굴에 붙잡혀 들어가 이미 뜨거운 맛을 경험해 본 적이 있었던 라이였기에, 오크를 소탕한답시고 동굴 안으로 들어가자니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나를 구해줬던 용병들의 마음도 이랬을까?’

동굴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굴은 점점 더 복잡하게 얽히기 시작했다. 앞쪽의 일정구간은 자연동굴인지 모르겠지만, 그 뒤쪽부터는 오크들이 필요에 따라 파고 들어가며 확장을 해놓은 부분이었기에 천연동굴에 비해 훨씬 더 복잡한 구조를 지니게 된 것이다.

처음 얼마간은 제일 앞에서 걸어가는 소대장들이 모든 싸움을 도맡아 했다. 횃불로 길을 밝히며 가야 했기에, 그들의 접근을 오크 경계병들이 눈치 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꾸웨에엑!”

오크 경계병들은 커다란 소리로 외친 다음, 곧장 침입자들을 공격해 들어왔다. 그리고 곧이어 놈의 신호를 접한 더 많은 오크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동굴이 처음에는 직선으로 쭉 뻗어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리저리 분기점들이 나오며 미로처럼 얽히기 시작했다. 그 분기점에서 오크들이 달려 나오다 보니 전투는 앞쪽만이 아니라 사방에서 벌어지게 되었다.

“뒤를 조심해! 뒤를 받쳐줄 동료가 없을 때는 등을 벽 쪽에 붙여라.”

“예.”

하리스의 조언을 받으며 맹렬히 싸우고 있는 라이. 6급 용병패를 받은 자답게, 오크와 정면대결을 펼치면서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오크가 휘두르는 몽둥이 공격을 방패로 가볍게 막으며 도끼를 휘두르는 라이.

퍽!

첫번째 오크를 아무 생각 없이 찍어버린 탓에 흠뻑 피를 뒤집어썼다. 비록 온몸은 피투성이가 되어 있긴 했지만, 한 군데도 다친 곳은 없었다.

그런 라이를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올란도의 눈빛은 조금 착잡한 것이었다. 그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잘 싸우고 있었는데, 오히려 그 점이 그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흥! 저게 실전 경험이 전혀 없다는 놈의 움직임이야?’

실력이 뛰어난 신병이라 해도 실전에 접어들면 자신의 실력을 100% 발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제아무리 연습을 실전처럼 치열하게 받은 놈이라고 해도 말이다. 왜 그런가 하면 연습은 아무리 해도 연습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어두컴컴한 곳에서 생사를 걸고 싸우는 연습을 하는 용병단이 이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더군다나 사방으로 비릿한 피 냄새까지 자욱하게 퍼지기 시작하면, 그냥 이성을 잃기 십상이다.

‘흠, 가만히 보니 경험이 그리 많은 것은 아니군. 저렇게 아무 생각 없이 도끼를 휘둘러서 피를 그대로 덮어쓰다니……. 하지만 그래도 이해할 수가 없어. 초짜 주제에 엉성하긴 해도 제대로 싸우고 있잖아. 어지간히 피 냄새에 중독이 되어 있지 않고서야, 저게 가능이라도 한 건가? 아무리 봐도 부하로 두기에는 찝찝한 놈이란 말씀이야.’

올란도는 직접 전투에 뛰어들지는 않고 있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부하들이 싸우는 모습을 살펴보고 있는 중이다. 만약 어느 한쪽이라도 부하들이 밀리는 곳이 있다면 그쪽으로 달려가 지원해 줄 요량으로 말이다.

이때였다. 갑자기 한쪽에서 싸우던 부하들이 뒤로 밀리는 게 보였다. 그는 즉시 그쪽으로 달려갔다.

“취익! 꾸억, 꾸어어억!!”

뭐라 떠들어 대는지 모르겠지만, 요란한 소리로 외쳐대고 있는 덩치 좋은 오크 한 마리가 있었다. 그놈 때문에 부하들이 뒤로 밀리고 있었던 것이다. 놈은 십여 마리의 부하들을 이끌고 한쪽 방향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마도 그쪽 방어선을 돌파한 다음, 숲 속으로 도망치려는 속셈인 모양이다.

놈과 놈의 직속부하들은 다른 오크들과는 달리 강철제 무기를 들고 있었다. 무기는 가지각색이었다. 도끼를 들고 있는 놈, 창을 든 놈, 심지어는 부러진 검(劍) 토막을 긴 나뭇가지에다가 묶은 것을 든 놈도 있었다.

순식간에 부하 2명이 부상을 당하며 밀리기 시작했다. 이때, 적시에 도착한 올란도. 만약 그가 도착하지 않았다면 2명의 부하들은 부상을 당하는 것 정도가 아니라 죽임을 당했을 게 확실했다.

올란도는 도착하자마자 어느 결에 뽑아들었는지 검을 들고 있었다. 부하들과는 달리 그는 방패를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그저 왼손에는 횃불만을 들고 있을 뿐이다.

상대가 방패를 들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안 오크들의 눈에 자신감이 어렸다. 자신들의 공격을 가로막는 방패라는 저주받을 마물만 없었다면, 진즉에 호비트놈들을 몰살시켜 버릴 수 있었을 거라고 그들은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오크 중 한 놈이 앞으로 달려 나오며 다짜고짜 도끼를 휘둘렀다. 그리고 그에 맞서 올란도의 검이 화려하게 공간을 가르기 시작했다.

“꾸어억!”

오크는 방패를 쓸 줄 모른다. 오크들도 인간들이 사용하는 방패가 얼마나 뛰어난 효능을 지니고 있는지 아는 이상, 노획한 방패를 써봤을 게 틀림없다. 하지만 방패라는 게 들고만 있다고 해서 방어를 해주는 게 아니었다. 방패를 쓰는 요령을 익혀야만 했다. 하지만 그 요령을 익히는데 성공한 오크는 거의 없었다.

방패를 쓰지 않다 보니, 강한 근력에서 뿜어져 나오는 막강한 공격력을 지니고는 있었지만, 방어력은 아주 취약한 게 바로 오크의 약점이었다. 트롤은 취약한 방어력을 재생력으로 보완하고 있었지만, 오크에게는 그런 게 없었던 것이다.

“쿠에엑!”

10여 마리씩이나 되는 오크를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만큼, 엄청나게 어려운 전투가 되어야 했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겨우 용병대 중대장밖에 안 되는 올란도의 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어김없이 오크 한 마리가 피를 뿜으며 나뒹굴었다.

한 놈 한 놈 없애다 보니, 결국에는 마지막 한 마리만 남았다.

“꾸엑?”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의심 가득한 눈길로 자신의 배에 난 커다란 상처를 바라보는 췩바르. 그 사이로 핏물은 물론이고, 내장까지 쏟아져 나오고 있는 중이었다. 상대가 언제 어떻게 검을 휘둘러 이런 상처를 낸 것인지, 그로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케엑!”

췩바르가 남긴 마지막 비명이었다. 다음 순간 올란도의 검이 그의 목을 휩쓸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흠, 오크 치고는 제법이었어. 설마, 그 순간에 창을 집어던질 생각을 다 하다니.”

방금 목을 벤 오크가 자신에게 창을 집어던진 것은, 여덟 번째 오크의 몸을 토막내고 있었을 때였다. 창 하나가 갑자기 그 오크의 몸을 꿰뚫고 튀어나와 자신의 코앞에 들이닥쳤을 때, 올란도는 등골이 서늘했었다.

단순무식한 오크가 이런 공격까지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기에, 전혀 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것이다. 오크의 몸을 꿰뚫고 튀어나온 것이었던 만큼, 창의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았다는 게 올란도에게는 행운이었다.

다급히 마나를 끌어올려 간신히 뒤로 빠져나갈 수 있을 만큼 실낱같은 여유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한 놈을 해치웠지만, 깜짝 놀란 가슴은 아직까지도 진정이 되지 않고 있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강렬한 긴장감. 오크 따위에게서 이런 긴장감을 느끼게 될 줄은 올란도로서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더군다나 이런 보너스까지 안겨주는군.”

두목 오크 놈이 목에 걸고 있던 목걸이. 어떤 사람의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꽤나 무게가 나가는 금반지를 가죽끈으로 묶어놓은 것이었다.

올란도는 방금 전에 자신이 해치운 오크들의 몸을 차근차근 뒤져나갔다. 여기 쓰러져 있는 놈들의 무기로 봤을 때, 꽤나 신분이 높은 오크들임에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다른 오크들보다는 값나가는 장신구를 많이 걸치고 있을 게 아니겠는가.

이때, 갑자기 요란한 발소리가 울리더니 라이언이 2명의 대원들과 함께 달려왔다. 그들 모두 핏물을 흠뻑 뒤집어쓴 듯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벌어진 오크들과의 전투가 그만큼 격렬했다는 뜻이리라.

그들은 부상을 당한 부하로부터 중대장이 혼자 10여 마리의 오크들과 싸우고 있다는 기별을 받고, 황급히 달려오는 길이었다.

그런데 위급한 상황에 빠져 있어야 할 중대장은 태연히 오크 시체를 뒤지며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는 게 아닌가. 그것도 몸 어디 한곳에 핏물 한 방울조차 묻지 않은 채로.

순간 라이언은 어이가 없었다. 그 부하 놈들이 제대로 말을 해준 것인가? 아니면 그놈들이 뭔가 착각을 한 것인가? 중대장의 검술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작금의 상황은 그의 이해력을 훨씬 넘어서 있는 상태였다.

설마 그 짧은 시간에 10여 마리씩이나 되는 오크를 혼자서 다 해치웠다는 건가?

“무, 무사하셨습니까?”

그러자 올란도는 별것 아니라는 듯 대꾸했다.

“아, 이쪽은 별일 없었다. 그쪽은 다 끝났냐?”

“예, 거의 끝나가고 있습니다. 마지막 방어선을 뚫고, 오크 암컷과 새끼들을 확보했으니까요.”

“오, 그래? 수고했군.”

남은 오크들의 몸을 뒤적였지만, 돈이 될 만한 것은 나오지 않았다. 이미 커다란 금반지로 한몫 단단히 챙겼음에도 불구하고, 올란도는 시침을 뚝 떼고는 오크 한 놈을 발길로 걷어차며 투덜거렸다.

“에잇, 거지같은 놈들. 어째 돈 될 만한 게 하나도 없냐. 그래, 넌 뭐 좀 건졌냐?”

그러자 하리스는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아뇨. 이놈들이 털어먹던 게 가난한 농민들 아니겠습니까. 돈이 될 만한 게 잔뜩 쌓여있다면, 그게 더 이상한 거겠죠.”

“하긴, 자네 말이 맞는 거 같군.”

“이제 나가시죠. 완전히 정리가 된 거 같은데 말입니다.”

동굴 안쪽 그 어디에서도 오크와 싸우는 듯한 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오크들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게 바로 암컷과 새끼들인 만큼, 라이언이 이끄는 소대가 그들을 찾아냈다는 것은, 이 동굴 속 가장 깊숙한 곳까지 다 훑었다는 뜻이었다.

“암컷들과 새끼들을 확실히 처리하라고 일러놨겠지?”

“예,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놈들을 살려줘 봐야, 좋을 거 하나도 없으니 말입니다.”

그렇게 대답하는 라이언의 표정이 조금은 착잡해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오크 새끼는 노예시장에서 상당히 고가에 거래되고 있었다. 암컷과 새끼를 워낙에 소중히 아끼고 보호하는 오크들의 특성상, 수컷들을 완벽히 전멸시키지 않고서는 새끼 한 마리조차 포획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어떻게 새끼를 포획했다고 해도, 오크들의 소굴이 산골짝 깊숙한 곳에 위치하고 있는 만큼, 데리고 나오는 과정에서 태반 이상이 스트레스와 탈진 등으로 죽어버리곤 했다.

살려서 데리고만 가면 꽤 짭짤한 돈이 될 게 뻔한데도 올란도는 지금껏 단 한 번도 몬스터의 새끼를 살려서 데리고 나간 적이 없었다. 공돈이라면 환장을 하는 올란도를 잘 아는 라이언이었기에, 그런 올란도의 행태가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잘했군. 내가 확인 안 해봐도 되겠지?”

“염려 놓으십시오. 대원들이 확실히 처리했을 겁니다.”

“그럼, 이제 나가지. 더 이상 이놈의 악취를 맡았다가는 내 코가 썩어버릴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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