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56화 (752/930)

여종업원은 두 사람을 데리고 복도를 지나 계단으로 내려갔다. 잠시 후, 도착한 곳은 지하에 위치한 어느 방 앞이었다.

“이곳입니다.”

문이 열리자, 허름한 술집의 지하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화려한 실내가 드러났다. 여종업원은 문을 연 다음, 앞장서서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 함정 따위가 설치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줘 손님들을 안심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녀는 한 발자국 정도 들어간 후 멈춰 서서, 손짓으로 안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쪽입니다, 손님.”

접객실로 손님들을 안내한 다음에야, 여종업원은 이들이 어쩌면 범상치 않은 신분을 지니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화려한 실내에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표정에는 그 어떤 변화도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그녀가 경험해 본 대부분의 손님들은 실내를 장식하고 있는 화려한 그림이나 예술품에 시선을 빼앗기곤 했었다.

“잠시만 기다리시면 담당자께서 오실 겁니다.”

손님들에게 의자를 권한 후, 그녀는 접객실 옆에 마련되어 있는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손님들에게 권할 차를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잠시 후 향긋한 차가 나왔지만, 담당자라는 사람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얼마나 더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거지?”

붉은 머리의 사내가 입을 열기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상대가 여자인 줄만 알았다. 길게 기른 머리카락도 머리카락이지만, 여자라고 해도 속을 만큼 아름다운 미모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음성은 분명 까칠한 남자의 것이었다.

“조금만 기다려 봐. 곧 오겠지, 뭐.”

여성적으로 생긴 것과는 달리 붉은 머리 사내 쪽이 노랑머리 사내에 비해 인내심이 부족한 모양이다.

이때, 반대편 문이 열리며 미모의 중년여인이 들어왔다. 그녀가 바로 여종업원이 말한 담당자인 모양이다. 그녀는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오래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저는 레베카라고 해요.”

인사를 건네는 그녀에게 노랑머리 사내가 무뚝뚝한 어조로 말했다.

“현재 왕국 내에 있는 용병단들 중에서 그 전력상 상위 10위권 안에 들어가는 용병단들의 목록과 구체적인 전력(戰力)까지.”

미모의 여성이 들어와서 나긋하게 인사를 건넴에도 불구하고, 인사조차 받아 주지 않고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노랑머리 사내. 그런 사내의 태도가 레베카로서는 뜻밖이었다. 더군다나 나이도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 젊은 놈이 초면에 반말 짓거리라니…….

하지만 레베카는 참았다. 상대는 손님이다. 그것도 최고 등급의 금화를 제시한. 더군다나 신분도 좀 수상쩍은 인물이었다. 그런 참에 상대방이 내뱉는 저런 오만방자한 태도는 그의 신분을 유추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되기 마련이다. 어쩌면 하고 있는 겉모습과 달리 꽤 높은 신분을 지닌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무엇보다 그녀를 당황스럽게 만든 것은 사내가 의뢰한 정보의 내용이었다. 이곳은 최고 수준의 정보들만을 취급하는 곳이다. 당연히 한번 의뢰를 하려면 엄청난 액수를 지불해야만 했다. 그런데 도둑길드에만 가도 충분히 알아낼 수 있는 싸구려 정보를 이곳까지 찾아와서 의뢰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말이다.

‘확실히 지부장님의 말씀대로 뭔가 꿍꿍이가 있어 찾아온 놈들이거나, 아니면 여기가 어떤 곳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기어 들어온 애송이들이거나 둘 중 하나겠군.’

하지만 이어진 요청은 그녀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각 용병단 단장의 성격에 대한 자세한 자료를 원하는데……. 언제쯤 준비해 줄 수 있지?”

아무리 방대한 정보를 보유하고 있다 해도 개개인의 성격까지 파악하고 있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레베카는 망설이지 않고 즉시 대답했다.

“내일 이 시간에 다시 들러 주시면, 그때까지 준비해 놓겠습니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우리 두 사람의 용병패와 용병수첩을 마련해 줘.”

“용병 등급은 몇 급 정도로 해 드릴까요?”

“당연히 특급이지.”

이때, 지금까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앉아만 있던 붉은 머리 사내가 불쑥 끼어들었다.

“특급은 무슨 얼어 죽을 특급. 2급 정도로 해.”

레베카도 붉은 머리의 사내를 여자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듯하다. 아름다운 미모에 갑작스럽게 까칠한 사내의 목소리가 튀어나오자, 얼마나 당황했는지 깜짝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하지만 그녀가 입을 헤벌리고 바라봄에도 불구하고, 둘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고 말다툼을 벌였다.

“2급이라니? 내 체면이 있지… 어떻게 날 2급 따위 용병으로…….”

퍽!

“쿠엑!”

“이 녀석이 내가 그렇게 말했는데도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있어.”

붉은 머리 사내는 주먹 한 방으로 가볍게 노랑머리 사내를 제압한 뒤 레베카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우리 둘 다 2급으로 해.”

“얼마나 오랫동안 사용하실 건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사용기간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기에…….”

그녀의 질문은 당연한 것이었다. 한 며칠 사용하고 버릴 신분증명서와 몇 달, 혹은 몇 년간 사용할 신분증명서의 정밀도는 천지 차이다. 며칠 사용하고 버릴 것은 죽은 시체에서 슬쩍한 것을 사용하는 정도만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장기간 사용할 것은 얘기가 다르다. 신원조회를 아무리 꼼꼼하게 한다고 해도 헛점이 드러나지 않도록 모든 것을 철저하게 짜 맞춰야 했다. 사용자의 외모는 물론이고, 말투나 지나간 행적까지도……. 그런 만큼 장기간 사용할 신분증명서일수록 그 가격은 기하급수적으로 비싸지는 게 당연했다.

붉은 머리 사내의 폭력에도 굴하지 않고 노랑머리 사내는 머리통을 부여잡고서 줄기차게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저 녀석은 2급이라도 상관없지만, 난 무조건 특급으로 해!”

레베카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 정밀도의 위조 신분증을 만들어 줄 수 있는 곳은 왕국 전체를 뒤진다고 해도 자신들 외에는 찾을 수가 없을 테니까.

“특급으로 준비하려면 최소한 2주일은 기다리셔야…….”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붉은 머리 사내가 인상을 왈칵 찡그리며 소리쳤다. 곱상하게 생긴 얼굴과 달리 성격은 엄청나게 급한 모양이었다.

“뭐야! 그럼 2주일이나 여기서 손가락이나 빨고 있으라고?”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노랑머리 사내가 히죽 웃으며 대꾸했다.

“어허,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완벽한 게 좋잖아?”

“완벽한 거 좋아하고 있네.”

붉은 머리 사내는 시선을 획 레베카에게로 돌리며 물었다.

“마법사 용병 신분증으로 대충 만들어 놓은 거 없어?”

레베카는 난감한 듯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대충이라고 하시면… 어느 정도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용병단 정문만 통과할 수 있을 정도면 돼.”

그 말에 레베카는 충격을 받았다. 그런 싸구려를 여기서 구하는 멍충이가 있을 줄이야. 하지만 그녀는 급히 표정을 감추며 공손하게 말했다.

“그것조차도 내일은 되어야 드릴 수 있습니다.”

“여기에 따로 준비해 놓은 것은 없어?”

“여러 직업군의 신분증을 비치해 두고 있긴 합니다만, 유감스럽게도 용병용은 미처 준비해 두지 못했습니다. 지금껏 그런 걸 찾으신 손님은 단 한 분도 없으셨으니까요.”

레베카는 자신들 쪽의 잘못이 아니라는 점을 피력하기 위해 그따위 싸구려 용병 신분증을 찾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마법사는 아주 눈에 띄는 직업이다. 그런데도 굳이 신분을 위장해야 한다면, 마법사일 때 오히려 사람들의 시선을 적게 받는 곳에 침입할 때뿐이다. 즉, 마법사들이 많이 들락거리는 마법사 길드라든지, 연구소와 같은…….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마법사로 침투하기에 가장 부적합한 곳이 바로 용병단이다. 용병단 내의 마법사 수가 워낙 극소수이다 보니, 어떻게 해도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때문이다. 용병들 사이에 끼어들어 흔적 없이 묻혀 지내려면, 마법사보다는 검사(劍士) 계열의 직업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상식이었다.

“젠장! 없다면 어쩔 수 없지. 그럼 내일 올 테니까 모두 다 준비해 둬.”

“내일? 친구, 이 아가씨는 2주일 후에 오라고 했네만…….”

노랑머리 사내가 끼어들자, 붉은 머리 사내가 신경질적으로 대꾸했다.

“2주일씩이나 어떻게 기다리고 있냐?”

“친구, 기다리는 게 짜증난다는 건 이해하지만, 그래도 확실한 게 좋지 않겠나.”

그러자 붉은 머리 사내는 콧방귀를 뀌며 대꾸했다.

“확실한 거 좋아하네. 이런 일 한두 번 하냐? 신분증 따위는 발가락으로 만든 거라도 상관없어! 왜 중요하지도 않은 걸 가지고 2주일씩이나 시간을 낭비해.”

“하지만… 그렇다면 여기에 나 혼자 2주일씩이나 있으라는 말인가, 친구?”

“그게 싫다면 나하고 함께 움직이든지.”

잠시 망설이는 듯하던 노랑머리 사내가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에이, 그래도 기왕에 여기까지 왔는데…….”

“그럼 마음대로 해.”

붉은 머리 사내는 신경질적으로 획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내일 다시 올 테니, 확실히 준비해 놓도록.”

“알겠습니다, 손님.”

사내들과 대화하면서 레베카는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손님들은 의뢰를 함에 있어서, 얼마나 많은 액수를 지불해야 하는지부터 물었었다. 그들이 요구하는 정보료가 그만큼 비쌌기 때문이다. 물론 최상위급 고객들이야 그깟 돈에 그리 연연하지도 않는 게 사실이긴 했지만.

레베카는 환하게 웃으며 정보 이용료 가격을 말했다. 슬쩍 찔러보는 것인 만큼 바가지를 듬뿍 씌워서.

“금액은 모두 합해서 650골드입니다.”

650골드라는 거액을 말했는데도 불구하고 두 사내는 얼굴 표정조차 변하지 않았다. 처음 이곳에 온 손님들의 대부분은 정보 이용료가 너무 비쌈에 경악을 금치 못하곤 했었다. 그런데도 두 사내는 그 어떤 반응도 없었다. 평소보다 2배나 되는 금액을 불렀는데도 말이다.

레베카는 내친김에 한 번 더 슬쩍 찔러봤다.

“관례상 절반은 선금(先金)으로 주셔야겠는데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노랑머리 사내가 품속에 손을 집어넣더니 묵직해 보이는 가죽주머니를 하나 끄집어내 그녀 앞에 던졌다. 그 어떤 표정 변화도 보이지 않고, 거액을 태연히 지불하는 사내를 보며 레베카가 오히려 기가 질려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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