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57화 (753/930)

“안녕히 가십시오, 손님.”

바텐더는 친절을 가장해서 두 사내를 문밖에까지 배웅했다. 그러면서 슬쩍 주위를 살펴봤지만, 그 어떤 이상 징후도 발견되지 않았다. 물론 조직원 몇을 시켜 벌써 주위를 샅샅이 훑어보게 한 뒤였다.

“이상하네……. 내가 잘못 짚었나?”

바텐더는 자리를 다른 점원에게 맡긴 후, 다시금 레베카를 만나러 지하로 내려갔다. 사내들이 뭘 요구했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바텐더의 질문에, 레베카는 방금 전에 있었던 일들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런 다음 그녀는 자신이 사내들에게서 받은 느낌을 말했다. 253년 전의 암호만 아니라면, 특급에 해당하는 분위기의 손님들이었다고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 점도 많았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싸구려 의뢰들 때문이다. 특히 마법사용 용병패와 용병수첩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를 하기 힘들었다. 위험한 곳만 골라서 쫓아다니게 되는 게 용병 일이다. 그런 만큼 전쟁터만 잠깐 뒤져도 용병패나 용병수첩 따위는 몇 수레를 가득 채울 만큼 흔해 빠진 게 사실이다.

“붉은 머리 사내가 말한 의미를 잘 모르겠어요. ‘이런 일 한두 번 하냐. 신분증 따위는 어떤 걸 가지고 있어도 상관없어.’ 그는 분명히 그렇게 말했거든요. 저급한 신분증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은 전혀 없잖아요. 아무리 용병단에 입단한 후, 며칠 내로 일을 끝낼 수 있다고 해도 그런 저급한 신분증으로는 할 수 있는 게…….”

그녀의 의문은 당연한 것이었다.

적군의 시체까지 뒤져 귀중품을 약탈하는 게 당연시되는 세상인 만큼, 신입 용병이 들어왔을 때 그의 신분 확인은 필수였다. 때문에 아무리 경험이 많고 실력이 뛰어난 용병이 입단했다 해도, 처음에는 중요한 임무를 맡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믿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용병단에서는 신입 용병이 들어오면 일단 비중이 낮은 일을 시키며, 그 기간 동안 용병길드에 의뢰해 상대의 신분을 검증한다. 혹시 신분을 속이고 입단한 것은 아닌지 철저히 확인하는 것이다.

이런 모든 검증을 통과한 후에야 제대로 된 동료로 받아들이게 된다. 능력이 있다면 높은 직책, 중요한 임무, 그리고 용병단 내의 고위급 간부들과도 만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붉은 머리 사내는 최하 등급의 신분증을 원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이다. 가뜩이나 눈에 띄는 마법사용의 용병패. 그것을 가지고 며칠 내로 해치울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그것도 도둑길드에서 저렴하게 구입해도 되는 것을 가지고, 그 수십 배나 많은 액수를 지불하면서까지 여기서 구입해서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아.”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바텐더는 눈살을 찌푸리며 지하 은밀한 곳에 위치한 작은 밀실로 들어갔다. 정기 연락 시간은 아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일단 상부에 보고를 해 두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급히 보고 드릴 게 있어서 연락을 넣었습니다.”

바텐더는 상관에게 방금 전에 있었던 이해할 수 없는 의뢰 내용과 손님들에 대해 상세하게 보고했다. 얘기를 다 들은 상관은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잠시 뭔가 생각하다가 갑자기 수정구 위쪽으로 손을 쓱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수정구 안에는 상관 외에 또 다른 한 사람의 영상이 더 나타났다. 탐스러운 금발을 길게 기른, 조각상처럼 잘생긴 외모의 근육질 사내.

그 모습을 보자마자 바텐더는 흥분해서 외쳤다.

“바, 바로 그자가 틀림없습니다.”

어지간한 일에는 눈썹조차 까딱 안 하던 상관의 얼굴색이 순간 노랗게 변했다.

「이자가 틀림없나?」

“예, 맞습니다. 제가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틀림없다면 그가 원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라도 최선을 다해서 처리해 주도록 하게.」

상관의 지시에 바텐더는 의아함을 감추기 힘들었다.

“예? 그렇게 중요한 인물입니까?”

「쓸데없는 질문은 하지 말게. 자네 레벨로는 그 사내의 정보에 접근하는 게 허락되지 않으니까 말일세.」

상관의 매몰찬 대답에 바텐더의 얼굴색이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지부장씩이나 되는 자신조차 접근이 허락되지 않은 정보가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곳 알카사스의 왕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밀스런 일들에 대한 접근 권한까지 다 가지고 있는 자신인데 말이다.

‘코린트나 크루마 제국과 같은 초강대국의 황족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뭐, 알려 주지 않아도 상관없어. 어차피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수 있게 될 테니까.’

정보에 대한 다란스 지부장의 호기심이 얼마나 대단한지 상관은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밑바닥에 있을 때, 그의 소질을 발견하고는 자신이 직접 키우다시피 한 녀석이었으니까. 그런 근성의 소유자가 저렇게 간단하게 물러설 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입가에 미묘한 미소까지 머금고 있지 않은가.

「벌써 아이들을 붙였군.」

“…….”

지부장은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상관은 자신의 짐작이 옳다고 확신했다.

「뒤를 밟으라고 내보낸 조직원들을 모두 불러들여. 지금 당장!」

상관의 명령에 지부장은 마지못해 변명을 늘어놓았다.

“명령대로 불러들이기는 하겠지만 지금 당장은 어렵습니다. 은밀하게 뒤를 쫓으라 했기에 다음 정기 연락 시간은 되어야…….”

상관은 뭔가 심각하게 고민하는 듯한 눈치였다. 이윽고 한숨을 푹 내쉬더니,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봤다. 마치 누군가 엿듣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상관은 긴장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수정구 쪽에 얼굴을 바짝 들이댔다.

상관이 특급 정보를 털어놓으려 한다는 걸 눈치 챈 지부장 역시 긴장감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 사내는 드래곤이다. 금발을 길게 기른 것으로 보아, 아마 골드 드래곤이겠지.」

얘기를 듣던 지부장의 얼굴에 경악감이 떠올랐다. 상관은 그런 지부장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 드래곤은 몇 번인가 우리와 거래를 했었지. 그리고 그때도 자네처럼 그의 신분에 대해 과도한 호기심을 드러낸 지부장이 있었네. 그 결과가 어땠는지 아나?」

말을 하던 상관의 얼굴에는 어느새 짙은 공포심이 어려 있었다. 그의 얼굴만 봐도 결과가 어땠는지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지부장은 갑작스런 한기에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 오는 것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명심해라. 드래곤을 상대로 섣부른 호기심은 금물이다. 그리고 쓸데없이 입을 놀리지도 마라. 드래곤의 분노는 공포 그 자체니까.」

“며… 명심하겠습니다.”

고블린이 우습게 보여?

올란도 용병대는 이동을 시작했다. 중대장인 올란도를 포함한다고 해도 겨우 열일곱 명밖에 되지 않는 단촐한 인원. 소수 정예로 움직이는 모험가 파티에 비한다면 꽤나 많은 숫자였지만, 일반적인 용병대를 기준으로 본다면 그리 많은 숫자도 아니었다. 2개 소대의 정원조차 제대로 채우지 못한 상태였으니까.

그런 악조건에서 오크 떼와 격전을 치르고도 단 한 명도 죽지 않았다는 것은 꽤나 운이 좋았다고 볼 수 있었다. 출동한 후 첫 번째 의뢰를 수월하게 처리한 다음이라, 용병대의 사기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그래서인지 이번 출동에서는 얼마나 벌 수 있을까?

모두의 관심사는 바로 그것뿐이었다.

산을 넘은 뒤 제법 커다란 마을의 모습이 보이자 하리스는 라이의 옆구리를 툭 치며 말했다.

“아마 오늘 저 마을에서 묵을 것 같다. 첫 번째 출동에서 살아남은 걸 축하하는 의미에서 내가 한잔 찐하게 쏠 테니까 기대하라구.”

라이는 난처했다. 술이라고는 마셔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 그러실 필요까지는…….”

“뭐야? 고참인 내가 쫄따구에게 한잔 사 주겠다는데, 설마 싫다는 거야?”

하리스의 눈꼬리가 위로 쭉 올라가는 것을 보자 가슴이 뜨끔해진 라이는 과장되게 호들갑을 떨며 둘러댔다.

“아, 아뇨. 그럴 리가 있나요. 말만 들어도 감사합니다. 와, 이거 무진장 기대되는데요.”

열심히 손사래를 치던 라이는 옆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몰고 가는 모라이어스를 슬쩍 훔쳐봤다. 용병대 안에서 가장 친하게 지내고 싶은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그였다. 만약 모라이어스가 한잔 사 주겠다고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래,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자.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다가가다 보면, 결국에는 마음을 열겠지.’

물론 친하게 지내는 데 실패해도 상관은 없었다. 하리스에게 들으니, 모라이어스가 제대할 날도 그리 멀지 않았다고 하니까. 그가 제대한 다음에 탈출을 도모해도 늦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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