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란도 용병대는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식당을 향해 달려갔다. 식당 앞에 말고삐를 묶을 수 있는 긴 막대가 준비되어 있긴 했지만, 열일곱 필씩이나 되는 말들을 묶으려고 한꺼번에 몰리다 보니 무척 혼잡스러웠다.
이때, 식당 안쪽에서 소년 하나가 달려 나오며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손님들. 고삐는 저에게 주시고 안으로 들어가세요. 말들은 제가 마구간에 넣어 두겠습니다.”
모두 말고삐를 소년에게 건네주고 식당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올란도는 말을 탄 채 라이언을 향해 심드렁하게 말했다.
“곧 돌아올 테니까, 내 것도 시켜 놔.”
“알겠습니다, 중대장님.”
말을 몰고 어딘가로 사라지는 올란도. 그런 그의 뒷모습을 훔쳐보던 라이가 하리스를 툭 치며 물었다.
“중대장님은 어디로 가는 거예요?”
“어디로 가기는……. 뻔하잖아. 용병길드로 가는 거겠지.”
“용병길드요?”
라이가 두 눈을 끔뻑거리며 잘 모르겠다는 듯 멍하니 서 있자, 하리스는 혀를 차며 대답해 주었다.
“젠장, 그 생뚱맞은 반응을 보니 용병길드라는 말 자체를 처음 들어 보는 모양이군.”
라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하리스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말주변이 썩 좋지 못한 하리스로서는 어떻게 얘기를 해야 잘 알아들을지 잠시 궁리를 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맡은 의뢰를 완수했다는 보고를 상부에 전해야 할 거 아니겠냐. 그리고 다음에 처리할 의뢰가 뭔지에 대해서도 지시를 받아야 할 거고 말이지. 하지만 그때마다 본대로 돌아가야 한다면 얼마나 시간 낭비가 심하겠냐?”
“그거야 임무를 완수할 때마다 우편으로 보고를 하면……?”
딱!
큼지막한 주먹으로 매몰차게 군밤을 때려서인지 눈물이 핑 도는 걸 느낀 라이는 머리통을 부여잡고 거칠게 항변했다.
“아야야, 갑자기 왜 때려요?”
“이런 멍청한 놈. 특급 우편마차로 보고를 한다고 해도 답신을 받으려면 최소한 일주일은 걸린다. 그럼 그동안 우린 멍하니 앉아서 손가락이나 빨고 있으라고?”
“그럼 연락사무소 같은 걸 만들어 운영하면 되잖아요?”
“쯧쯧, 의뢰가 들어오면 어디든 가야 하는 게 우리 용병이야. 내 자랑은 아니지만, 이 나라 구석구석 안 가 본 데가 거의 없다. 그렇게 이리저리 싸돌아다니는 게 우리 팔자란 말이다. 그런데 연락사무소를 한두 개 정도 설치하는 거라면 몰라도, 이 나라 전역에 설치하려면 도대체 몇 개나 설치해야겠냐? 그리고 그 유지비는?”
“그, 그건 그러네요.”
라이가 자신의 말을 이해하는 듯하자, 하리스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다시 말했다.
“그래서 길드라는 게 필요한 거야. 그런 연락사무소 역할을 해 주는 게 바로 용병길드거든.”
“그러려면 유지비가 엄청나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용병길드란 곳은 어떻게 유지비를…….”
딱!
맞은 데를 또 맞은 라이는 그저 머리통을 부여잡고 신음을 흘리기 바빴다.
“아야야…….”
“이런 돌대가리 같은 놈. 어떻게 그렇게도 머리가 안 돌아가냐? 용병길드는 우리 용병단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모든 용병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거라구. 게다가 연락 업무만이 아니라 왕국 곳곳에서 접수되는 의뢰들을 받아들여, 각 용병단이나 용병들과 맺어 주는 거간꾼 역할도 한단 말이다. 그 외에도 왕국 곳곳에서 입수되는 정보들을 바탕으로 장사를 하기도 하고.”
“오오, 그렇군요.”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는 라이를 삐딱하게 쳐다보며 하리스가 조롱하듯 물었다.
“너 도대체 어디 출신이냐? 아무리 시골 촌구석에서 자랐다고 하지만, 너처럼 무식한 놈은 내 살다 살다 처음이다.”
“전에 말씀드렸잖아요. 오츠아 왕국이라고.”
“그래, 그러니까 그 오츠아라는 데가 도대체 어디에 붙어 있는 나라냐고! 내 견문이 짧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최 처음 듣는 왕국 이름이라서…….”
그 말에 라이는 어색하게 웃으며 뒤통수를 긁적이다 대꾸했다. 집을 벗어나자마자 노예로 이리저리 끌려 다니다 보니 그로서도 알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헤헤, 대륙 북쪽이라는 것 외에는 저도 잘…….”
라이의 대답에 하리스는 딱하다는 듯 연신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쯧쯧, 하긴 어린 나이에 이런 곳에 끌려온 걸 보면 네 팔자도 참…….”
주문한 음식이 나올 때쯤 올란도가 돌아왔다. 테이블을 가로질러 성큼성큼 걸어온 올란도는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는 부하들을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오늘은 이 마을에서 머물고, 내일 아침에 출발한다.”
“중대장님, 술 한잔해도 괜찮겠습니까?”
올란도는 마치 큰 인심이라도 쓴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행군에 지장이 없을 정도만 마셔라.”
“우와~~.”
모두들 환호성을 내지르며 너도 나도 점원에게 술을 주문했다. 그리고 올란도도 그건 예외가 아니었다.
“브랜디 한 병 가져와.”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라이언이 심란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냥 맥주나 드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내 몸은 내가 알아서 해.”
“그건 그렇지만 중대장님 평상시와는 느낌이 왠지 다른 듯해서요. 다짜고짜 독주부터 시키시다니……. 뭐, 안 좋은 일이라도 있습니까?”
올란도는 고개를 흔들며 착잡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이번에 내려온 임무가 고블린을 처리하라는 거야.”
“옛? 고블린이라고요!”
“쉿! 목소리가 너무 크다.”
라이언이 급히 입을 다물었지만, 대원들 중에서 귀가 밝은 놈들은 이미 다 들어 버린 후였다. 식당 안이 그리 넓은 것도 아니고, 모두들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다 보니 그건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
흥겨웠던 분위기가 한순간에 싸늘하게 식는 것을 느끼며, 라이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하리스에게 슬쩍 물었다.
“고블린은 아주 허약한 몬스터잖아요. 그런데 왜 모두들 똥 씹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죠?”
하리스는 짜증이 덕지덕지 묻어나는 얼굴로 한동안 라이를 쳐다보다 퉁명스럽게 물었다.
“너, 정말 몰라서 그렇게 말한 건 아니겠지? 그냥 웃자고 한 농담이지? 하아, 빌어먹을. 도대체 이런 덜떨어진 놈이 왜 하필이면 내 밑에 배속되어서…….”
하리스는 문득 처음 용병단에 끌려왔을 때, 자신도 라이처럼 어리버리 했었는지를 생각해 봤다.
‘내 살다 살다 너처럼 대가리에 똥덩어리만 들어 있는 놈은 처음 본다!’
몇 년 전에 죽은 고참이 자신을 볼 때마다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치며 하던 소리였다.
“거참, 모르니까 그러죠. 그나저나 고블린은 정말 약한 몬스터였는데…….”
하리스는 이해하자며 마음을 넓게 먹으려 노력했지만, 라이의 말에 화가 불끈 솟구치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당시 자신은 정말 아무것도 몰랐기에 군소리 없이 고참의 말을 그대로 따랐었다. 최소한 이 덜떨어진 놈처럼 멍청한 질문을 계속 나불거리며 고참의 기분을 건드리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딱!
“에쿠!”
“이런 망할 녀석! 첫 번째 의뢰를 무사히 마쳤다고, 몬스터 알기를 길가의 돌멩이쯤으로 생각하네. 잘 들어. 네놈 말대로 고블린이 약한 몬스터인 것은 사실이야.”
물론이다. 그것을 라이는 투기장에서 있었던 격투로 이미 체험한 상태였다. 덩치가 크고 힘이 쎈 오크에 비해 고블린은 정말 나약한 존재다. 키도 겨우 1.3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는 데다가, 오크처럼 근육질의 체형을 지니고 있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그놈들도 자신들이 약하다는 것을 잘 안다는 거야. 그래서 외부로부터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두더지처럼 땅굴을 파고, 그 속에서 생활을 하지. 즉, 땅속에다가 땅굴을 그물망처럼 수십 개를 연결하여 판 뒤, 마을을 건설해서 사는 몬스터란 말이다. 그런 놈들을 어떻게 잡아 죽일 수가 있겠냐?”
“여우 사냥하듯 굴 입구에 불을 피워서 연기를…….”
하리스는 한심하다는 듯 라이를 바라보더니 대꾸했다.
“크크, 고블린이 네놈처럼 멍청하다면야 우리가 왜 똥 씹은 얼굴을 하고 있겠냐? 연기는 물론이고, 굴속에 물을 퍼부어도 씨알도 안 먹히는 게 현실이야. 놈들은 연기가 흘러 들어오는 쪽을 재빨리 틀어막아 버리거든. 워낙 굴이 좁다 보니 틀어막기도 쉽겠지.”
“그럼 어떻게 잡습니까?”
“놈들의 서식지 전체에 걸쳐 포위망을 구축해 놓은 다음, 그놈들이 기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그런 방법으로 어느 세월에 놈들을 다 잡습니까?”
“그럼 삽이라도 들고 가서 땅이라도 팔 거냐? 내가 말한 방법이 최선이야. 놈들이 아무리 땅속 깊은 곳에 처박혀 있는 걸 좋아한다고 해도, 배가 고프면 밖으로 기어 나올 수밖에 없으니까.”
여기까지 말한 하리스는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녀석들의 조상이 두더지도 아닌데, 왜 그렇게 땅굴을 잘 파냐고! 빌어먹을! 의뢰도 어떻게 이따위 의뢰가 걸려 가지고…….”
생각만 해도 짜증이 솟구치는지 하리스는 앞에 놓여 있던 커다란 맥주잔을 집어 마치 기갈이라도 들린 듯 벌컥벌컥 단숨에 들이켜 버렸다. 빈 잔을 거칠게 탁자 위에 내려놓은 하리스는 점원을 향해 소리쳤다.
“여기 맥주 두 잔 더 가져와!”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용병 중 하나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거참, 성질머리 하고는. 시키려면 아예 술을 한 통 시키든지, 아니면 한 잔씩 시키지 두 잔은 뭐야?”
“쳇, 그게 아니라 첫 출동에서 살아남았으니 이 녀석 축하주로 먹이려고 그런다.”
그 말에 라이는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에? 나, 나는 됐어요.”
그때 점원이 시원한 맥주 두 잔을 가지고 왔다. 하리스는 그 중 한 잔을 라이에게 건네며 말했다.
“어허, 술맛을 모른데서야 어찌 당당한 사나이라고 할 수 있나. 그리고 술도 마실 줄 모르는 좀생이 같은 놈에게 내 등 뒤를 맡기긴 싫거든. 그러니 군소리하지 말고 잔이나 들어!”
거품이 부글부글 흘러나오고 있는 흑갈색 액체가 가득 담긴 잔을 앞에 두고 어쩔 줄 몰라 하는 라이. 그런 라이의 등을 툭 치며 하리스가 으르렁거렸다.
“야, 뭘 그렇게 보고만 있어. 쭉~ 마셔. 오늘같이 더운 날 마시는 맥주는 정말 끝내주니까 말이야. 일을 끝낸 다음에 시원한 맥주 한잔! 이런 재미조차 모르는 놈은 남자도 아냐. 그러니 눈 딱 감고 마시는 거야.”
“그, 그게 아직 술을 마셔 본 적이 없어서…….”
“어허, 맥주가 술이냐?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어서 마셔.”
하리스의 강권에 못 이겨 라이는 잔을 입가로 가져가 한 모금 살짝 마셔 보았다. 시원한 지하에 저장되어 있던 맥주였기에 상당히 차가웠다.
‘뭐가 이렇게 써?’
마시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하리스의 눈치를 보며 몇 모금 억지로 삼켰다. 그런 라이의 등을 토닥이며 하리스가 말했다.
“오늘 수고했다. 첫 실전이라는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잘 싸웠어.”
생각지도 못했던 고참의 칭찬에 라이는 잔을 내려놓으며 급히 감사의 말을 꺼냈다.
“감사합니다, 선배. 선배께서 잘 가르쳐 주신 덕분이죠.”
그러자 하리스는 지금까지의 장난스러웠던 표정을 지우고 라이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술을 마셔 본 적이 없다는 걸 알지만, 오늘은 아무래도 좀 권해야겠다. 그래야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을 테니까.”
“그, 그게 무슨 말인지……?”
“몇 번이나 물어볼까 생각을 하긴 했었는데 말이야. 너, 왜 그러는 거냐? 전투가 끝난 후부터 왠지 착 가라앉아 있는 거 같은데…….”
“아무것도 아닙니다, 선배.”
“아니기는 뭐가 아무것도 아니야. 어서 말을 해 봐.”
순간 라이의 어깨가 아래로 축 처졌다. 오늘 아침, 동굴에서 벌어졌던 일이 또다시 떠올랐기 때문이다.
당시 라이가 도끼로 찍어 잡은 수컷 오크는 겨우 두 마리. 활약이 그리 대단했다고는 볼 수 없었다. 더구나 오크가 몽둥이를 휘두르며 무서운 기세로 달려들었을 때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하고 거의 본능적으로 싸웠었다. 그렇기에 라이는 자신이 어떻게 오크 두 마리를 때려잡았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대신 지금 라이의 뇌리를 짓누르고 있는 것은 앞뒤 분간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캄캄한 동굴 속에서 치러졌던 치열했던 전투 장면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암컷과 새끼들을 때려잡은 기억이었다.
전투가 끝난 후, 암컷과 새끼들을 처리하게 된 게 바로 라이언의 소대였다. 그리고 그런 궂은일은 쫄따구가 떠맡을 수밖에 없었다. 새끼들을 보호하기 위해 암컷들은 몸으로 막아섰다. 머리 위로 도끼날이 떨어지는 그 순간에도 암컷들은 피하지 않았다. 다만 애절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어미가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지자, 비명을 질러대던 새끼들……. 라이는 정신없이 도끼를 휘둘렀었다.
하리스도 그 일을 함께하기는 했지만, 그는 라이가 이토록 큰 정신적 충격을 받았을 거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어두운 동굴 속이었기에 라이의 표정을 살펴보기가 힘들었던 탓이다. 더군다나 라이가 핏물을 흠뻑 뒤집어쓴 상태라 주위가 훤하게 밝았다고 해도 그의 표정을 알아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 그게 계속 생각이 나서요. 오크가 생김새는 돼지 같지만…, 몸은 사람과 흡사하게 생겼잖아요. 그래서인지 마지막에 새끼들을 처리할 때 마치 어린애를 죽여 버린 것 같아서…….”
하리스는 혀를 차며 라이의 등을 토닥인 뒤 위로해 줬다.
“쯧쯧, 이 녀석 큰일 날 생각을 하고 있었네. 아무리 사람과 비슷하게 생겼다고 해도, 몬스터는 몬스터야. 새끼나 암컷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아. 암컷들은 새끼를 낳고, 또 새끼들은 나중에 자라서 사람들을 죽이고 잡아먹겠지. 그것들은 죽여 없애야 할 몬스터들일 뿐이야. 우린 당연한 일을 한 거지. 그러니 그런 쓰잘데기 없는 죄책감 따위 느낄 필요가 없어. 알겠어? 자, 조금 더 마셔. 오늘의 승리를 위하여!”
분위기에 휩쓸려 맥주 한 잔을 벌컥벌컥 마셨더니 몽롱하게 눈이 풀리며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이런 기분 때문에 고참들이 술을 마시는 모양이라고 라이는 생각했다.
하리스는 그 후로도 계속 몬스터와 사람은 완전히 다르니 마음에 두지 말라며 라이를 위로해 주었다. 하지만 라이는 도저히 잊을 수가 없었다. 새끼를 감싸 안으며 자신을 향해 등판을 내보이던 암컷 오크. 그 오크의 두려움 가득했던 눈길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때 라이가 그 암컷을 어떻게 했던가. 도끼로 인정사정없이 찍어 버렸지 않은가. 암컷이 죽자 미친 듯이 비명을 질러대던 그 새끼들까지도…….
어느새 라이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구요. 훌쩍…….”
“어허, 사내새끼가 청승맞게 눈물은. 뚝 그치지 못해! 이래서 술은 처음 배울 때가 중요한 거야. 그때 울면, 다음부터는 술만 마시면 자동적으로 울게 된다구. 자자,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고, 좋았던 기억만 떠올리도록 해. 술은 즐거운 기분으로 마셔야 되는 거야. 그래야 보약이 되는 거지.”
고참답게 하리스는 라이의 마음을 잘 어루만져 줬다. 지금껏 용병 생활을 해 오며 첫 살생을 한 후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신병들을 많이 봐 왔던 하리스였기에, 이런 라이의 모습이 결코 낯선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는 성심껏 위로해 주고 있었다.
하지만 라이를 좋게 본 하리스와는 달리, 올란도는 삐딱한 시선으로 라이를 보고 있는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오크 암컷과 그 새끼를 죽인 게 충격이었다고? 하기야 그럴 수도 있겠지. 사람과 비슷하게 생겨 먹은 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말이 되지 않잖아. 핏물을 온몸에 뒤집어쓰고서 미친놈처럼 죽어라 도끼를 휘둘러댔던 놈인데.’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올란도는 석연치 않은 표정으로 라이언에게 불쑥 물었다.
“마지막 끝처리는 누가 했지?”
“끝처리라뇨?”
뜬금없는 질문이었던 만큼 라이언으로서도 알아듣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부하가 자신의 말을 재깍재깍 알아듣지 못하는 것에 올란도는 짜증이 밀려왔다.
“동굴에서 빠져나오기 전에 내가 물었었지. 암컷과 그 새끼들 처리는 어떻게 했느냐고 말이야. 그때 넌 잘 처리했다고 대답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 그거요? 하리스에게 라이와 함께 마무리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아무리 암컷과 새끼들이라지만 처음 들어온 신참에게 그런 일을 시키면 어떡하나? 워낙 사람과 비슷하게 생겨 먹은 오크들을 상대로 말이야.”
올란도의 지적에 라이언은 걱정도 팔자라는 듯 태연하게 대꾸했다.
“그때는 워낙 손이 모자라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제가 하리스에게 슬쩍 물어봤더니 걱정할 필요 없이 잘하더랍니다.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도끼를 휘두르는 게 아주 타고난 용병 체질이라면서 말이죠.”
“그래? 그거 잘됐군. 꽤나 적응이 빠른 놈이 들어왔어.”
“예.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뽑기를 정말 잘한 거 같습니다.”
그러자 라이언의 옆에서 묵묵히 술을 마시고 있던 론도가 퉁명스러운 어조로 중얼거렸다.
“젠장, 내가 눈이 삐었지. 설마 그 멸치같이 삐쩍 골은 놈이 6급 용병패를 가지고 있었을 줄이야…….”
하지만 올란도는 론도의 투덜거림에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라이를 힐끗 쳐다보며, 가소롭다는 듯 미소를 짓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꽤나 적응이 빠른 놈이라고? 흥! 어리숙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속에 능구렁이 몇 마리는 들어 있는 놈인데 아직 모르는 모양이군. 어쭈, 이젠 눈물까지 줄줄 흘리며 하리스를 가지고 놀고 있구먼.’
라이가 눈물을 흘리자 하리스가 열심히 달래 주는 모습이 보였던 것이다. 올란도의 시선이 이번에는 말없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모라이어스에게로 넘어갔다.
‘네놈이 하리스에게 한 것처럼 모라이어스도 꼬시기 위해 순진한 척 접근하겠지? 모라이어스의 묵인이 없다면 탈출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네놈도 확실히 깨달았을 테니까 말이야.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닐 게다.’
노예로 팔려 오는 도중에 인간에게 환멸을 느껴 버린 모라이어스는 지금까지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어 준 적이 없었다. 마치 단단한 껍질을 뒤집어쓴 조개처럼 마음을 굳게 닫아걸고, 누구라도 일체의 접근조차 허용하지 않고 있었다.
그걸 잘 알고 있는 올란도였기에 앞으로의 전개가 더욱 흥미로웠다. 놈은 과연 어떻게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