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지 수상쩍은 마법사
정보 단체로부터 넘겨받은 자료를 분석한 후, 아르티어스와 브로마네스는 ‘페가수스’ 용병단을 선택했다.
유희의 첫 시작을 제대로 된 신분증으로 하고 싶다며 똥고집을 부리는 브로마네스를 뒤로하고, 아르티어스는 홀로 페가수스 용병단을 향해 떠났다. 공간이동 마법을 썼기에 그곳에 도착하는 데 걸린 시간은 얼마 되지도 않았다.
“헉, 마법사?”
용병단에 지원하는 마법사가 드물기는 드문 모양이다. 곧바로 행정관실로 안내된 것을 보면 말이다.
“어서 오게.”
“랄프 디겔이라고 합니다.”
붉은 머리를 길게 기른 3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남자다운 생김새의 마법사. 평소 아르티어스가 애용하는 여성스러운 얼굴이 너무 눈에 띈다는 브로마네스의 조언에 따라, 그는 이곳에 오기 전에 얼굴을 남성적인 모습으로 바꾸어 놓은 상태였다.
“자, 이리 앉게. 그나저나 자네 안목이 높구먼. 우리 페가수스 용병단에 지원한 것을 보면 말이야.”
행정관은 페가수스 용병단이 얼마나 좋은지 한참 동안이나 떠벌여댔다. 그러면서도 그 사이사이에 어느 정도 수준의 월급을 원하는지 타진하는 것을 보면, 꽤나 말재주가 화려한 인물이었다.
행정관을 보며 아르티어스는 이곳을 선택하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했다. 밀고 당기면서도 매끄럽게 분위기를 이끌어 가는 행정관 녀석이, 나중에 자신에게 꽤나 쓸모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그 전에 있던 곳보다는 조금 더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암. 그건 당연하지. 그래, 그 전에는 얼마나 받았나?”
엄청나게 많이 줄 듯 얘기했지만, 막상 행정관이 제시한 금액은 예전에 받았다고 했던 금액보다 고작 10실버 더 많은 액수였다.
“적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자네의 오산일세. 우리 용병단은 성공 수당을 꽤나 후하게 지급하는 것으로 유명하니까 말이야.”
“그 정도면 괜찮은 것 같군요.”
“그래, 잘 생각했네. 다른 용병단에 가 봐야 이쪽보다 더 좋은 대우를 받기는 힘들 걸세.”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서도 행정관은 의심스런 눈초리로 사내를 은근슬쩍 살펴보고 있었다. 그건 사내가 자신이 처음에 제시한 금액을 너무 쉽게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마법사가 용병단에 들어오는 목적이라고 한다면, 돈 말고 또 무슨 이유가 있겠는가.
‘흐음……. 이건 좀 수상쩍군. 용병단에서 굴러먹었다는 인간이 순진하다는 건 말도 안 되고 말이야.’
용병단 내에 있는 마법사라고 해 봐야 채 30명도 되지 않는다. 그들을 통신기로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인력이 모자라는 판에, 화력 지원을 위해 최전선에 동원할 여력은 없었다. 즉, 마법사로 입단해서는 성공 수당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말이다.
다른 용병단에서 일했다며 용병패와 용병수첩까지 제시한 인물이 그런 내막을 모를 리가 없다. 즉, 저자가 용병단에서 일했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뜻이다.
이곳 용병단에 잘 왔다는 말을 하는 와중에도 행정관의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이 교차하고 있었다.
‘당장 저놈을 붙잡아다가 족쳐 볼까? 아냐, 모르는 척 그냥 놔두고 관찰을 해? 대체 무슨 목적으로 우리 용병단에 침투하려고 하는 건지…….’
하지만 그렇게 생각을 하려 해도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구석이 있었다. 은밀한 침투를 목적으로 한다면, 굳이 이렇게 눈에 확 띄는 마법사라는 직종으로 올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아마 마법사라는 건 사실일 거야. 그렇지 않았다면 굳이 마법사라는 병과를 고집할 이유는 없었을 테니까.’
머릿속은 복잡하기 짝이 없었지만, 행정관은 겉으로는 태연자약하게 행동했다. 그는 입단지원서에 사내가 받게 될 혜택과 급료 따위를 꼼꼼하게 작성한 다음, 그것을 건네주며 말했다.
“잘 읽어 본 다음, 여기에 서명하게.”
사내가 서명을 마치자 행정관은 소탈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 용병단의 한 식구가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하네. 절대 후회는 하지 않을 게야.”
새로 온 마법사 랄프 디겔이 자신의 집무실을 떠나자마자 행정관의 안색은 급격히 어두워졌다.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지?’
제대로 된 용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수상쩍은 놈이었지만, 그렇다고 첩자로 단정하기에도 문제가 있었다. 정식으로 첩자 교육을 받은 인물이 저렇게까지 어수룩하게 행동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일단은 거리를 두고 관찰하는 게 좋겠어.’
행정부 병사가 아르티어스를 안내한 곳은 대기대(待機隊)였다. 처음 입단한 신병들이 기거하는 곳이라서 그런지, 남루한 차림의 앳된 병사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아마 저들은 오늘 입단한 애들이리라. 정상적인 신병이었다면 지금 이 시간에는 훈련대로 가서 훈련을 받고 있어야 했으니까 말이다.
“이 방입니다. 거처가 정해지시기 전까지, 당분간 여기서 기거하시면 됩니다.”
병사가 방문을 활짝 열자, 단정하게 정리된 실내가 드러났다. 열 명씩 기거할 수 있도록 짜여 있는 일반적인 숙소와 달리, 이 방은 침대가 하나만 놓여 있는 독실이었다.
병사는 침대 옆쪽에 놓여 있는 사물함을 가리키며 말했다.
“짐은 여기에 정리해 두시면 됩니다. 그리고 식사는 조금 수고스러우시겠지만, 훈련대로 가셔서 그곳의 교관 식당을 이용하십시오. 이쪽에 있는 건 훈련병용 식당밖에 없으니까요. 나중에 드셔 보시면 아시겠지만, 훈련병용으로 지급되는 식사는 정말 형편없거든요.”
병사는 아르티어스가 짐을 정리하는 것을 도와주면서도 쉬지 않고 부대의 상황에 대해, 알아 두면 편리할 만한 것들에 대해 조언을 해 줬다. 별로 가지고 온 게 없었기에, 짐 정리는 금방 끝났다. 정리가 끝나자 병사는 아르티어스에게 제안했다.
“용병단 내를 좀 구경하시겠습니까?”
지금까지 그가 안내했던 다른 사람들은 이 제안에 대해 모두들 쌍수를 들고 고마워했었다. 하지만 이번은 그의 예상과 달랐다. 상대는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안 해 줘도 돼.”
“그래도…….”
“아, 괜찮아. 그러니까 가 봐. 나는 좀 쉬고 싶어.”
잠시 머뭇거리는 병사. 지금 이렇게 내보내 놓고는 나중에 뒤에서 무슨 소리를 할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한 번 안내를 해 줘도 나중에 혼자 찾아다니려면 길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태반인데, 이렇게 안내조차 받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다.
“이곳 용병단의 규모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여기서 보면 안쪽이 다 보이지 않기에 작다고 착각하시는…….”
하지만 아르티어스는 병사의 말을 냉정하게 잘라 버렸다.
“용병 숫자만 7천 명 내외. 그리고 용병단에 빌붙어서 사는 것들의 숫자는 약 3천 정도……. 합계 1만 명 정도가 생활하는 작은 도시 규모라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네. 내 말이 틀렸나?”
“아, 아니…, 틀린 것은 아닙니다만…….”
병사가 머뭇거리면서도 밖으로 나갈 생각을 하지 않자, 슬그머니 짜증이 난 아르티어스 어르신. 갑자기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품속에 손을 넣어 주머니 안을 뒤졌다.
“오호, 그러고 보니 팁을 주지 않아서 그러는 모양이군. 가라는데도 왜 안 나가고 버티고 있나 했지.”
아르티어스는 주머니 속에서 동전 한 닢을 꺼내 앞으로 내밀며 이죽거렸다.
“여기 있네, 수고료.”
자신의 순수한 호의가 무시당한 건 그래도 참을 만했다. 수고료랍시고 돈을 준 놈을 지금껏 단 한 명도 만나 본 적이 없었지만, 무엇보다 그 액수가 치가 떨릴 지경이었다. 겨우 단돈 1타라. 순간적으로 병사의 얼굴이 모멸감으로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이런 개자식이! 나를 뭐로 보고. 그래, 길을 잃고 한번 고생을 죽어라 해 봐야 정신을 차리지. 망할 놈. 콱, 시궁창에 머리를 처박고 죽어 버려랏!’
병사는 분노로 인해 떨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정중한 어조로 말했다. 상대는 마법사였으니까.
“수고료를 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럼 편히 쉬십시오.”
“그래, 수고했네.”
병사를 내보낸 후, 아르티어스는 안쪽에서 열쇠를 걸어 문을 잠그며 투덜거렸다.
“망할 자식! 꺼지라면 재깍재깍 꺼질 것이지 군소리는…….”
교관 식당의 밥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레어에서 대기 중인 노예들이 차려 준 밥만 하겠는가. 그 전에는 밥을 차려 줄 노예들이 없었기에 이리저리 식당을 찾아다닌다고 고생을 했었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었다.
아르티어스는 노예들이 차려 준 맛있었던 요리들을 주르륵 떠올리며 입맛을 다셨다.
“룰루루, 오늘은 과연 어떤 메뉴가 기다리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