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61화 (757/930)

아르티어스가 레어로 돌아갈 때, 즐겨 이용하는 곳은 레어의 제일 안쪽에 위치한 거대한 공동(空洞)이었다. 그곳을 애용하는 이유는 타고난 그의 신중함 때문이었다.

인간 세상을 떠돌 때, 온갖 나쁜 짓을 다 해 봤던 그가 아닌가. 공간 이동 출구에 장난을 치는 것쯤은 당연히 해 봤던 일이다.

물론 다른 놈에게 그 방법을 쓸 때야 재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역으로 그것에 자신이 당한다고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한 노릇이다. 아무리 자신이 드래곤이라고 하지만, 한 방에 끽소리도 못 내고 사망할 게 뻔했으니까.

희미한 빛이 생기는가 싶더니 공동의 중간쯤에 모습을 드러낸 아르티어스. 공간이동이 완료되자마자 즉시 비행마법을 시전했다. 그렇지 않으면 밑바닥으로 추락할 게 뻔했으니까.

그리고 그와 동시에 주변을 밝혀 주는 라이팅(Lighting) 마법도 함께 시전했다. 본체일 때는 상관없었지만, 호비트의 몸으로 변신한 상태에서는 어둠을 뚫고 사물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정령과의 소통을 차단하는 마법목걸이까지 걸고 있는 지금, 공동 안은 칠흑과도 같이 어두웠고 기괴할 정도로 고요했다.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서며 아르티어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노예들을 부리기 시작한 이래, 이 안쪽에서 광구(光球)가 떠오르면 밖에서 보초를 서고 있던 엘프들이 안으로 달려 들어와 허겁지겁 인사를 건넸었다. 그리고 그들의 기별을 받은 그랜딜도 곧이어 이쪽으로 달려왔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네…….’

공동 밖으로 나가 보니,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평소에는 그랜딜이 세워 놓은 보초병 둘이 언제나 서 있었는데 말이다. 그것을 확인하는 순간, 아르티어스는 즉시 목걸이를 벗었다. 목걸이를 벗자마자 주변의 모든 것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마치 반쯤 잠에 취했다가 완전히 잠에서 깨어나듯이.

아르티어스는 그랜딜의 집무실 쪽으로 방향을 잡아 걷기 시작했다. 그의 앞에는 자신이 만든 작은 빛의 구슬만이 빛을 뿜어내고 있을 뿐, 그 어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온기가 완전히 사라진 황량한 모습이다. 예전에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광경이었지만, 요 근래 엘프들이 만들어 놓은 따뜻한 온기를 느꼈던 그였기에 이런 모습이 아주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설마 단체로 도망쳤을 리는 없을 텐데…….”

이때, 그의 눈에 확 하고 들어오는 게 있었다. 벽에 흩뿌려져 있는 검붉은 얼룩들. 바닥에는 웅덩이처럼 붉게 고여 있는 곳도 있었다. 만져 보고 그 질감 및 냄새를 확인할 것도 없었다. 정령들이 그에게 다 알려 주고 있었으니까.

피였다.

바닥에 흥건히 고여 있는 피는 아직 완전히 굳지도 않은 상태였다. 불현듯 그랜딜 공작이 자신에게 실버 드래곤이 레어에 방문했다며 보고했었다는 사실이 그의 뇌리에 떠올랐다.

“리멤버런스 오브 더 어스(Remembrance Of The Earth;대지의 기억)!”

그러자 커다란 원반 형태의 빛무리가 생겨나더니 그 안에 엘프들의 모습과 함께 보이는 오크 한 마리. 비록 희미한 영상이기는 했지만, 그 오크의 머리털 색깔이 은빛이라는 것 정도는 충분히 알아볼 수 있었다.

아르티어스의 눈이 실쭉 가늘어지며 음산하게 빛났다. 순간, 그의 몸이 쏜살처럼 앞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비행마법이었다.

인간이나 엘프라면 아무리 마법에 능숙하다고 해도, 이렇게 장애물이 산적해 있는 비좁고 어두운 공간에서 고속의 비행마법을 쓸 엄두는 절대로 내지 못할 것이다. 한 번만 실수해도 곧바로 사망이었으니까. 하지만 드래곤인 아르티어스는 달랐다. 정령의 도움으로 눈에 보이지도 않는 저 앞쪽까지도, 이미 완벽하게 파악을 끝내 버린 상태였으니까.

다행히 그랜딜 공작은 살아 있었다. 자신의 노예가 침대 위에 처참한 모습으로 누워 있는 것을 본 아르티어스는 이를 부드득 갈았다.

“어떤 놈이냐? 혹 이름을 들었느냐?”

몸져누워 있던 그랜딜 공작은 억지로 몸을 일으키며 공손하게 인사했다.

“주, 주인님께서 오셨습니까?”

“인사는 필요 없으니, 묻는 말에나 대답해라.”

“누군지는 밝히지 않았습니다만, 그의 모습은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주인님.”

그랜딜 공작은 힘겹게 수인을 맺으며 환영마법(幻影魔法)을 사용해서 오크의 모습을 보여 줬다. 대지의 기억에서 뽑아낸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선명한 영상이었다.

영상 속에 나타난 오크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재빠른 몸놀림을 보여 줬다. 게다가 마법까지 능수능란하게 쓰고 있었다. 속수무책으로 쓰러지는 엘프들. 상대는 오크 따위가 아니라 드래곤임에 틀림이 없었다.

워낙에 많은 드래곤들과 원한 관계를 맺고 있는 아르티어스다. 범인이 실버 드래곤이라는 것 정도밖에 알 수 없었지만, 왠지 심증이 가는 놈이 하나 있었다.

그랜딜 공작의 영상을 보다 보니 그의 뇌리에 탁 하고 떠오르는 놈이 있었던 것이다. 자기 아들이 고자가 되면 어쩌겠느냐며 중얼거리던 그 팔푼이 아빠. 그놈이 범인임에 틀림없었다. 영상 속의 오크의 머리카락 색은 분명 은발이었다. 은발인 만큼 실버 드래곤임이 틀림없고, 이 정도면 증거로도 충분…….

“끄응…….”

이 대목에서 아르티어스는 신음성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문제는 저런 환영(幻影) 따위가 증거가 될 수 없다는 데 있었다. 놈이 정령마법이라도 썼으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이상 이게 실버 드래곤이 저질러 놓은 짓이라고 확신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머리카락 색깔은 자신의 취향에 따라 선택하는 것이지, 실버 드래곤이 변신하면 무조건 은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즉, 다른 드래곤이 실버 드래곤인 척 꾸미고 와서 깽판을 쳐 놨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는 말이다.

예전의 아르티어스였다면 생각해 볼 것도 없이, 바로 그 팔푼이 아빠의 레어로 달려가 박살을 내 놨을 것이다. 놈이 범인이건 아니건, 그건 중요하지 않다. 만약 놈이 범인이 아니라고 해도 치솟는 울분을 해소할 수 있을 테고, 범인이 발견될 때까지 다른 드래곤들을 박살 내다 보면 언젠가는 범인을 잡아낼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쟈크레아라는 존재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지금껏 그만한 능력을 지닌 드래곤이 자신을 손봐 주겠답시고 별렀던 적이 있었던가. 쟈크레아를 떠올리자, 자신도 모르게 한기가 들며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번쩍하며 떠오르는 게 있었다.

‘맞아! 그거였어…….’

닳고 닳은 아르티어스는 곧바로 감을 잡았다. 놈이 왜 겁대가리를 상실해서 이런 맹랑한 짓을 저질렀는지, 그 이유를 말이다. 아르티어스는 콧방귀를 뀌며 중얼거렸다.

“흥! 내가 이런 얄팍한 수법에 멍청하게 걸려들 거라고 생각하다니……. 가소로운 놈.”

호비트들은 100년도 안 되는 짧은 수명에 비해 처절하게 부대끼며 삶을 살아가는 특별한 종족이다. 엘프나 드워프 같은 놈들의 삶은 몇백 년을 살아서인지 느긋하면서도 지루했다. 그렇기에 아르티어스가 주로 유희를 즐기기 위해 선택한 곳은 호비트들의 세상이었다. 그곳에서 얼마나 많은 못된 짓을 보고 따라했는지……. 그러면서 그는 자연스럽게 호비트 찜 쪄 먹을 정도의 교활함을 배웠다.

‘내가 자기를 찾아가는 그 순간, 쟈크레아를 불러들이겠다는 것이겠지. 어쩌면 쟈크레아 놈과 함께 이 계략을 꾸민 것인지도 모르고 말이야.’

아르티어스가 그렇게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그랜딜 공작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예? 그건 무슨 말씀이십니까, 주인님. 제가 주인님께 무슨 짓을 했다고…….”

방금 전에 아르티어스가 중얼거린 말만 듣고는, 그가 그렇게 오해할 만했다. 그렇기에 아르티어스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말했다.

“너에게 한 말이 아니다. 그 침입자라는 놈에게 한 소리지. 자, 조사해 볼 것이 있으니, 가만히 있거라.”

아르티어스는 마법을 사용해서 그랜딜 공작의 머릿속을 차근차근 훑어 나갔다. 혹 놈이 그랜딜 공작을 세뇌해 놓은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서, 자신이 만약 놈의 처지였다면 그랜딜 공작을 세뇌해 놨을 것이다. 목표물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데는 그게 가장 효용성이 높았으니까.

마법으로 들여다본 그랜딜 공작의 머릿속은 수많은 정보들로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아무런 감정의 색깔도 씌워져 있지 않은 것들도 있었지만, 복잡한 감정의 색깔을 띠고 있는 것들도 많았다. 분노, 흥분, 회한(悔恨), 아쉬움, 사랑 등등…….

정보에 덧씌워져 있는 감정의 다채로운 색깔들로 인해, 기억의 실타래는 더욱 복잡하게 얽히게 된다. 다른 기억과 엉켜 버리거나 심지어는 끊어져 버린 것들도 많았다. 오래된 기억의 경우, 서로가 뒤엉켜 있어 어떤 게 더 최근의 것인지 그 구분조차 모호하다.

그 어떤 규칙도 없이 다채롭게 엉켜 있는 기억의 실타래를 왜곡시킨다는 것은 신의 영역에나 들어가야 가능할 정도의 고난도 작업이다. 그렇다 보니 기억을 조작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흔적을 남길 수밖에 없었다. 그 흔적이 크냐, 작냐의 차이가 있을 뿐.

초보자들의 경우, 너무 심하게 정신 체계를 헤집어 놓아 도저히 회복할 수 없을 정도의 상처를 만들어 놓기도 한다. 그 결과 기억의 붕괴를 초래하여 백치가 되는 사태가 벌어진다. 물론, 드래곤들이 그런 멍청한 실수를 저지르는 경우는 없었지만 말이다.

‘놈이 남겨 놓은 흔적만 찾아낸다면, 어떤 놈이 그랬는지 조금이라도 범위를 좁힐 수 있을 거야. 드래곤들이 모두 다 똑같은 정신계 마법을 배운 것도 아니고, 연구하는 방향도 종족에 따라 조금씩 다르니까.’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고 그랜딜의 정신세계를 끈질기게 훑어댔지만, 결국 아르티어스는 포기했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그 어떤 이상 징후도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이다.

“세뇌를 해 놨을 거라는 추측은 내가 너무 앞서 나간 거였나?”

하지만 그랜딜 공작이 괜찮다고 해서 안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랜딜 공작 말고 다른 엘프를 세뇌해 놨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아르티어스는 레어 안의 모든 엘프들을 다 불러들여, 그들의 기억을 샅샅이 훑어보는 중노동을 해야만 했다. 맛있는 요리를 먹으러 왔다가 쫄쫄 굶으며 고생만 실컷 하고 있는 셈이다.

아르티어스는 새벽이 다 될 때까지 쉬지 않고 작업을 했지만, 그 어떤 엘프에게서도 정신계 마법에 걸린 흔적은 찾아낼 수가 없었다.

‘젠장. 범인이 누군지 뻔히 알면서도 그냥 놔둬야 하다니…….’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다. 과거 같았다면 증거 따위는 무시하고 일단 박살부터 내 놨었겠지만, 쟈크레아가 놈의 뒤에 떠억 버티고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자기 무덤을 팔 정도로 아르티어스는 멍청하지 않았다.

‘망할 놈의 새끼들. 내 노예들을 두들겨 패 놓고, 레어를 부숴 놨다고 해서 내가 이성을 잃고 날뛸 줄 알았냐? 그런 얄팍한 수에 내가 걸려들 거라고 생각했다니, 가소로운 것들.’

그런데 생각과는 달리 자꾸만 울화가 치미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호비트들 세상에 나가서 서로 속고 속이며 아웅다웅할 때에는 이렇게 기분이 더럽지 않았다. 처음부터 유희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실제로 같은 드래곤에게 이런 꼴을 당하고 나니, 기분이 아주아주 더러웠다. 옆집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얘기를 듣는 것과, 자신이 직접 그 일을 당한 것과의 차이라고나 할까? 울화가 치밀어 오른 아르티어스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주먹에서 우드드득 하는 소리가 울려 나왔다.

‘흥! 내가 그냥 참고 넘어갈 거라고 착각하지 마라. 오늘의 치욕! 반드시 몇 곱절로 갚아 줄 테니.’

* * *

쟈크레아로부터 밀명을 받고 아르티어스의 레어로 가 마음껏 분탕질을 친 실버 드래곤은 지금 자신의 레어로 돌아가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아르티어스가 자신이 던진 미끼를 덥석 물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이상하네……. 박살이 난 엘프 놈들이 아르티어스에게 보고를 했을 텐데, 왜 아직까지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거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는 차례대로 자신의 노예들을 호출해서 확인했다.

「아무런 이상도 없습니다, 주인님.」

「드래곤은커녕 개미 새끼 한 마리 얼씬도 하지 않았습니다, 주인님.」

아르티어스가 미쳐 날뛰며 쫓아갈 만한 실버 드래곤들의 레어에는 모두 다 자신의 노예들을 배치해 뒀다. 만약 그곳에 이상한 낌새라도 보인다면 노예들은 즉시 자신에게 보고를 올릴 것이다. 그럼 그 정보를 곧바로 쟈크레아에게 전해 주기만 하면 된다.

자신은 아르티어스와 만날 일이 없는 만큼, 혹여 아르티어스가 그곳에서 운 좋게 살아남는다고 해도 후환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그야말로 완전범죄.

곧 끝날 거라고 예상했는데, 이게 의외로 감감무소식이다.

“이상하네. 이럴 리가 없는데…….”

이번에는 아르티어스의 레어를 감시하기 위해 파견해 놓은 노예들을 불렀다.

“그쪽 동태는 어떠냐?”

「아무런 움직임도 없습니다, 주인님.」

“그럴 리가 있나. 혹시 네놈들이 게으름을 피우다가…….”

그가 채 질책을 쏟아 놓기도 전에 노예는 고개를 연신 가로저으며 다급하게 변명했다.

「절대로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주인님. 지엄하신 명령을 받고, 저희들이 어찌 감히 한눈을 팔 수 있겠습니까. 단언컨대 드래곤은커녕 엘프 한 마리도 밖으로 빠져나간 적이 없습니다. 믿어 주십시오.」

여기저기에 파견해 놓은 노예들을 닦달해 본 결과, 놈이 아직까지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게 확실해졌다.

‘흐음. 급한 성질을 억제하지 못하고 곧바로 튀어나올 거라고 예상했었는데……. 의외로군. 이제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한 번 더 놈의 레어로 쳐들어가서 쑥대밭을 만들어 버려?”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지만, 그는 곧이어 고개를 가로저으며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너무 위험하다는 것을 그는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놈의 노예들이 아직까지도 놈에게 보고를 하지 않았을 리 없다. 즉, 놈은 이 모든 사태를 다 알고 있으면서도 아직까지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설마…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가?”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봐야 했다. 성격이 급하고 호전적인 것은 사실이었지만, 놈은 절대로 바보가 아니었으니까.

방금 전, 그가 기다림을 참지 못하고 아르티어스의 레어에 한 번 더 분탕질을 치러 갈까 하는 생각을 떠올렸듯, 그놈도 자신이 가만히 앉아 있으면 범인이 못 참고 한 번 더 분탕질을 치러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음에 틀림없다.

분명 놈은 만반의 준비를 다 갖춰 놓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마치 거미줄 위에 앉아 먹잇감이 걸려들기를 기다리는 거미처럼…….

“결국 인내심이 강한 자가 이긴다는 소린가?”

그는 노예들에게 명령하여, 술과 안주를 준비하라 일렀다. 기다리는 것이라면, 그놈 못지않게 자신도 일가견이 있는 드래곤이다.

그는 확신했다. 반드시 놈이 먼저 움직일 것이라는 것을. 왜냐하면 자신은 적이 누군지 알지만, 아르티어스는 적이 누군지 모른다. 아는 것이 없는 만큼, 인내심도 그만큼 빨리 바닥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아르티어스라는 골드 드래곤은 인내심이라는 게 천성적으로 부족한 놈이 아니던가.

그는 의자에 푸근하게 몸을 묻으며 중얼거렸다.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겠지. 씩씩거리며 뛰쳐나와서 근처 실버 드래곤들의 레어를 기웃거릴 때가 바로 네놈의 제삿날이니까. 크흐흐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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