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62화 (758/930)

원래 이 정도는 다 하잖아

실버 드래곤의 예상과 달리, 아르티어스는 레어에 있지 않았다. 레어에 있어 봐야 신경질만 더 날 것이 뻔했기에, 곧바로 용병단으로 공간이동해 버렸던 것이다.

며칠 후, 드디어 아르티어스가 기다리고 있던 명령이 하달되었다. 344중대의 임무 수행을 도우라는 것이다. 원칙대로라면 신입 마법사에게 이런 임무를 덜컥 맡기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지만, 이번 경우는 얘기가 달랐다.

행정관의 건의에 따라 상부에서는 이번 임무를 통해 신입 마법사가 얼마나 성실하게 일을 하는지, 그리고 대인관계는 어떤지 등등……. 마법사가 내밀었던 용병수첩에 적힌 내용만으로는 판별할 수 없었던 것들을 알아볼 요량이었던 것이다.

아르티어스는 통보받은 시간에 맞춰 344중대를 찾아갔다.

이미 중대원들은 출발 준비를 완료해 놓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50여 기(騎)에 달하는 인마(人馬)가 도열해 있는 모습은 꽤나 위압적이었지만, 드래곤인 아르티어스에게 있어서 그 모습은 애완동물 한 떼거리 정도로밖에 인식되지 못했다.

‘그놈들에게서 받은 정보대로 그런대로 훈련은 잘되어 있는 것 같군.’

“어서 오십시오, 마법사님.”

서로 인사가 오고 간 뒤 7시가 넘었지만 중대원들은 출발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아직 신관(神官) 2명이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여튼 신관이라는 것들은…….”

어쩌고저쩌고……. 도열해 있던 중대원들 중 몇 명이 차마 입에 담기 힘들 만큼 지독한 욕설을 내뱉으며 투덜거렸다. 물론, 아르티어스에게 들리지 않도록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이다. 혹시 저 붉은 머리털의 마법사가 신관에게 고자질을 할 수도 있으니까.

“신관이 오기는 오는 건가?”

기다림에 지친 아르티어스가 짜증이 나서 중얼거려 본 것이었는데, 소대장 중 한 명이 곧바로 응대해 왔다. 그는 마법사가 신관이 오지 않는 게 아닌가 걱정하는 것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물론입니다, 마법사님. 신관도 없이 어찌 의뢰를 수행하러 가겠습니까.”

“내가 이곳 용병단은 처음이라 잘 몰라서 그러는데, 여기 신관들은 원래 이렇게 늦게 오나?”

“처, 처음 오셨다구요?”

아르티어스를 바라보는 장교들과 고참병들의 눈빛이 수상쩍다. 옷차림으로 봤을 때는 꽤나 실전 경험이 많은 마법사라고 생각됐는데, 처음이라고 하니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던 것이다. 의심이 들기 시작하자 너무 젊어 보인다는 점까지도 수상쩍게 느껴졌다.

신관들의 경우 신성력으로 젊음과 미모를 유지하기에 미남미녀가 아닌 자들이 없다. 그리고 그것은 마법사에게도 어느 정도는 통용되는 말이다. 처음에는 아르티어스의 젊음이 마법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진짜로 젊어서 그런 것이라면? 당연히 입 안이 씁쓸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래, 여기에 온 지 3일쯤 되었다네.”

“이런 질문 드리는 것을 오해하지는 마십시오. 혹시 그 전에 계셨던 곳을 알려 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그러자 아르티어스는 상당히 불쾌하다는 듯 퉁명스럽게 물었다.

“혹시 내가 초짜가 아닌가 걱정하는 건가?”

“그, 그건 아닙니다. 저희들이 어찌 감히…….”

“아니면 됐어.”

중대원들은 아르티어스가 소대장의 질문에 자신들이 원하는 대답을 해 주기를 간절히 원했다. 하지만 아르티어스는 그러지 않았다. 저등한 호비트들 따위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든지 그런 것은 그의 안중에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그의 자신감을 중대원들은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 겉모습은 꽤 경험 많은 마법사처럼 보였지만, 알고 보니 쥐뿔도 모르는 생초보였던 것이다. 중대원들은 내심 한숨을 푹 내쉬었다. 실력 있는 마법사가 용병단에 들어올 리 없다는 것을 그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쩐지 마법사를 지원해 준다기에 이게 웬 떡이냐 했더니……. 그러면 그렇지. 쓸 만한 마법사를 중대 단위 임무에 보내 줄 리가 없잖아. 휴~ 이번 임무도 고생문이 훤하게 열렸구나.’

용병들은 출동할 때, 마법사와 신관을 지원받기를 간절히 원했다. 신관에게서는 치료를, 그리고 마법사에게서는 막강한 화력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요구는 거의 대부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대라면 혹 모를까, 중대 단위에까지 지원해 줄 만큼 마법사의 숫자가 많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이번에 마법사를 대동할 수 있게 된 것은, 의뢰를 수행할 곳이 워낙에 외진 곳이라서 본대와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는 방법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즉, 이번 출동에서 아르티어스 어르신의 주된 용도는 장거리 통신기였던 것이다.

의뢰를 수행해야 할 곳은 엄청나게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이동마법진을 통해 거리를 대폭 단축시켰는데도 불구하고, 무려 한 달에 걸쳐 말을 타고 이동해야만 했다.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과연 상부에서 마법사를 지원해 줄 만도 했다. 이렇게 외진 산골마을에 용병길드의 지부가 건설되어 있을 턱이 없었으니까.

이때, 중대장은 경이로운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마법사가 말에서 내리지도 않은 채, 품속에서 작은 수정구를 꺼내더니 그 위쪽으로 손바닥을 쓱 훑었다. 그 순간 수정구는 마치 살아 있기라도 하듯 그 움직임에 반응해 번쩍하고 빛났다. 빛이 사라졌을 때, 놀랍게도 수정구 안에는 깐깐해 보이는 인상의 마법사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중대원들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금까지 장거리 통신마법을 저토록 쉽게 행하는 마법사를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여기는 페가수스 용병단입니다. 무슨 일로…….」

공용 채널이었기에 습관적으로 주절거리는 마법사. 그런 마법사에게 아르티어스가 말했다.

“여기는 344중대입니다.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했기에 보고 드리는 겁니다.”

「아, 자네가 이번에 새로 들어왔다는 신입이로군. 열심히 해 보게. 하기야, 고블린 때려잡는 것 정도를 가지고 능력을 발휘할 수도 없긴 하겠지만 말이지. 하지만 이번에 자네가 가진 능력을 제대로 보여 준다면, 다음부터는 그런 하찮은 임무에 동원되는 일은 없을 걸세.」

“친절하신 조언 감사드립니다. 그럼 중대장을 바꿔 드리죠.”

아르티어스는 중대장 앞으로 수정구를 쓱 들이밀었다.

순간 중대장은 당황했다. 그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말 위에 앉은 채 수정구를 가동시키는 마법사를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었다. 대부분의 경우는 땅바닥에 마법진부터 그리고, 그 중간에다 수정구를 놓아 통신을 했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마법사가 수정구를 갑자기 자신 앞으로 들이밀자, 그는 너무 당황해서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급히 손을 내저으며 황급히 말했다.

“저,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중대장이 따로 보고할 사항은 없다고 합니다.”

「그럼 귀 중대가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했다고 상부에 보고하겠네.」

“예, 감사합니다.”

「그럼 고생하게.」

“예, 수고하십쇼.”

고블린이라는 것은 덩치도 작고, 힘도 약한 몬스터다. 하지만 고블린만큼 상대하기 까다로운 몬스터도 드물었다. 땅굴을 파는 데 있어서 두더지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실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놈들은 땅속에 자신들의 마을을 건설한다. 놈들이 얼마나 넓은 면적에 걸쳐 땅굴망을 구축해 놨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그 속에 얼마나 많은 고블린들이 득실거리고 있는지도…….

중대장은 우선 마을 사람들을 통해, 놈들의 대략적인 서식 지역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그동안에 소대장들은 각자 자신의 부하들을 거느리고 마을로 들어오는 통로에 방어선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중대원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보며, 아르티어스는 페가수스 용병단원들에 대한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그가 마지막 유희를 즐겼던 것도 꽤나 오래전의 일이다. 하지만 호비트들의 세상이 바뀌어 봐야 얼마나 바뀌었겠는가. 그때나 지금이나 마법사들은 마법을 쓰고, 용병들은 칼질을 하면서 먹고사는 건 똑같은데 말이다. 드래곤의 입장에서 봤을 때, 호비트들이 하는 짓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전혀 없었다.

“하는 짓을 보니 완전히 쓰레기들은 아니군.”

마을 사람들과 대화를 통해 고블린의 대략적인 서식지를 알아보고 돌아오던 중대장의 눈에 이런 아르티어스의 모습이 보였다. 아르티어스는 나무 그늘에 반쯤 드러누운 채 중대원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문제는 중대원들이 땀을 줄줄 흘리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음에도, 마치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듯한 저 나른한 표정이었다. 순간 중대장은 짜증이 왈칵 치솟았다.

‘아무리 본대와 연락을 주고받는 게 저 인간의 주 임무이기는 하지만, 저렇게까지 태평하게 늘어져 있는 모습을 보니 왠지 열이 받는군. 젠장, 우리들은 뺑이를 쳐야 돈을 벌 수 있는데, 저 인간은 대체 뭐야.’

눈치 없는 마법사에 비한다면 신관들은 그나마 좀 나았다. 게으름을 피우더라도, 중대원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늘어져 있을 테니까. 하지만 불만이 있다고 하더라도, 마법사에게 뭐라 따지지는 못했다. 아무리 그가 중대장이라고 하지만, 신관과 마법사에게 육체노동을 강요할 권한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봐, 호크! 방어진 작업은 모두 끝났나?”

“예, 중대장님.”

“그럼 포위망을 구축하러 가자.”

전통적인 고블린 사냥법은 엄청난 인내심을 요구했다. 먼저 고블린 서식지 전체에 걸쳐 광범위한 포위망을 구축한 뒤, 놈들이 식량을 구하지 못하도록 차단한다. 그리고 하염없이 기다리면 된다. 녀석들의 비축된 식량이 다 떨어지기만을.

결국 식량이 바닥난 고블린들은 굶주림을 참지 못하고 땅굴 속에서 기어 나올 수밖에 없는데 이때 한 놈도 남김없이 다 죽이면 일은 끝난다. 정말 무식한 방법이긴 했지만, 그것만큼 효과적인 사냥법도 없었다.

물론 처음에는 전통적인 방법과는 다른 방식으로 고블린 사냥을 시도해 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문제는 땅굴의 폭이 워낙 좁아서 그 안으로 몸을 비집고 들어가기도 힘들었고, 워낙 넓은 지역에 걸쳐 땅굴망을 구축해 놓았기에 땅을 파서 놈들의 본거지를 밖으로 드러나게 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여우 사냥하듯 연기를 땅굴 속으로 불어넣어도 봤지만 고블린들이 통로를 재빨리 막아 버리자 그걸로 끝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물이나 기타 다른 것을 통한 공격에도 해당되었다.

결국에는 전통적인 방법, 즉 식량 조달을 차단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얘기다. 이런 이유로 인해 고블린 사냥은 보통 봄에 집중적으로 행해졌다. 왜 그런가 하면, 겨울을 나는 과정에서 비축해 놨던 식량의 대부분을 소진했을 게 뻔했기에, 포위망을 구축한 뒤 기다리는 시간을 대폭적으로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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