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64화 (760/930)

“이쯤이 좋겠소.”

아르티어스의 말에 2소대장은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모두 제자리에 섯! 방패 놓고 현 상태에서 대기! 방어에 만전을 기해라.”

척! 척!

병사들은 자신의 방패와 옆의 동료들이 가지고 있는 방패가 빈틈없이 연결되도록 세심하게 신경 써서 바닥에 내려놨다. 그렇게 원형방진 안쪽으로 동그란 공터가 안전하게 확보되었다.

아르티어스는 그 안에서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마법진을 그리는 것이 무척 힘든 듯 천천히 그려 나가는 아르티어스. 게다가 자신의 품속에서 책을 꺼내 든 뒤 그것을 보며 그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가끔씩 오랜 시간 고민하는 척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시간을 질질 끌다 보니, 마법진이 완성된 것은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다.

“휴우~ 겨우 다 그렸네.”

긴 한숨과 함께 땀을 닦는 시늉을 하며 일어서는 아르티어스. 그로서는 최대한 마법이 미숙한 척하고 있었지만, 그를 바라보는 병사들의 표정에는 경외감이 어려 있었다. 그들로서는 마법사가 마법진을 그리는 것을 처음 봤던 것이다.

마법진 그리는 것을 끝낸 아르티어스는 진의 한쪽 편에 서서 천천히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한쪽 손으로는 괴이한 문양을 끊임없이 그리면서, 책에 쓰여 있는 주문을 천천히 읽어 나가는 마법사의 모습을 훔쳐보는 병사들의 눈빛은 모두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주문이 끝나면 과연 얼마나 대단한 일이 벌어질까? 혹시 고블린들이 넋이라도 빠진 것처럼 슬금슬금 땅굴 밖으로 기어 나오기라도 하는 걸까? 진이 발동된 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고 있다 보니, 병사들의 기대치는 더욱더 상승하고 있는 중이었다.

드디어 마법사의 두 손이 번쩍 들리자, 온통 기하학적인 문양이 잔뜩 그려진 마법진에서 희뿌연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굉장히 신비로웠고, 금방이라도 뭔가 대단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느낌마저 갖게 해 줬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것으로 끝이었다. 한번 번쩍하고 빛났던 마법진의 빛은 마치 불 꺼진 등불처럼 처음과 똑같은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당황한 병사들이 동료들을 바라보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뭐야? 이게 끝이야?”

“설마, 그럴 리가.”

“아냐. 지금 여기서 마법이 발동되면 우리들이 어떻게 되겠어? 우리들이 마법진에서 멀리 떨어진 후에 뭔가 큰일이 벌어지겠지.”

그럴듯한 말이었기에 병사들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 그 말이 맞겠다.”

지휘를 맡은 쿠르다인도 병사들처럼 궁금하기는 매한가지였다.

“마법사님, 이제 끝나신 겁니까?”

“소대장, 이쪽은 끝났으니 옆쪽으로 이동하세. 이거하고 똑같이 생긴 걸 3개 더 그려야 하거든.”

“그, 그러십니까? 전원 이동 준비! 방패 들어!”

순간, 쿠르다인의 얼굴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그는 급히 마법사에게 물었다.

“이거 진을 밟아도 괜찮습니까? 아니면 옆으로 헤쳐 모이라고 지시할까요?”

“아, 일단 발동하기 시작한 마법진은 짓밟아도 하등의 영향이 없다네.”

“아, 예.”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들은 쿠르다인은 부하들에게 힘차게 명령했다.

“전원 이동! 오른쪽으로!”

이동할 방향을 지시한 후, 쿠르다인은 부하들이 진형을 유지한 채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구령을 붙였다.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병사들은 쿠르다인의 지시 하에 아르티어스를 호위하여 마법진이 완성되도록 도왔다. 마법진은 정사각형의 모서리에 해당되는 지점에, 일정한 간격으로 그려졌다. 4개의 마법진을 모두 완성한 후, 아르티어스는 쿠르다인에게 부탁해 4개의 마법진 중심으로 원형방진을 이동시키라고 했다. 그곳에 마지막 마법진을 그릴 생각인 것이다.

아르티어스가 지금 그리고 있는 마법진들을 하나씩 놓고 본다면 평범한 수준의 4사이클급 마법사라면 누구나 다 만들 수 있는 수준의 마법진이었다. 하지만 그런 하찮은 마법진이라도 이런 식으로 연계해서 사용하는 것이라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마지막 마법진을 그리고 있는 아르티어스를 병사들은 의심 어린 눈길로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마법이라고 하면 뭔가 엄청난 위력이라도 발휘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한 번 빛을 번쩍 내뿜은 것 외에는 그 어떤 특이점도 보이지 않고 있었으니 말이다.

아니,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있었다. 마법진 위를 군홧발로 짓밟고 지나갔음에도 형이상학적인 도형은 전혀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였다. 그런 것을 보면, 뭔가 기대감을 가지게 만드는 게 사실이기는 했지만……. 처음에 비해 병사들의 기대감은 많이 감소해 있었다.

마침내 마지막 마법진까지 모두 완성되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그것 또한 한 번 번쩍 빛을 내뿜더니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 어떤 변화도 보여 주지 않는 마법진들. 병사들의 얼굴에 짙은 실망감이 어릴 수밖에 없었다.

“젠장. 처음에는 그럴듯한 거 같더니…….”

“마법사 혼자서 마법진을 그려 봐야 뭐 그리 대단한 위력이 있겠냐? 산이 부서지고, 들판이 불타고 하는 건 순전히 옛날 얘기 속에서나 나오는 거겠지.”

부하들이 투덜거리는 소리를 마법사가 행여 들을세라 쿠르다인은 급히 외쳤다.

“시끄러! 언제 내가 대화를 나눠도 좋다고 허락했나? 모두들 입 닥치고 주위를 경계하는 데나 신경을 집중해라!”

그러면서 쿠르다인은 아르티어스의 눈치부터 살폈다. 아르티어스가 부하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을까? 자신도 들었는데, 듣지 못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의외로 아르티어스의 표정은 전혀 변화가 없었다. 신경질이라도 낸다면 꽤나 난감할 텐데 말이다.

아니, 어쩌면 돌아가서 중대장에게 따질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자 쿠르다인은 신경질적인 눈초리로 부하들을 노려봤다.

‘중대장에게 한소리 듣기만 해 봐라. 너희들은 오늘 죽었어!’

이때, 아르티어스의 음성이 들려왔다.

“이제 그만 돌아가지, 소대장.”

부하들을 노려보던 것을 그만두고 쿠르다인은 황급히 대답했다.

“아, 예. 그, 그러시죠.”

처음에는 삼삼오오 모여 앉아 마법사를 비웃던 용병들이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더 이상 비웃을 수가 없었다. 해가 져 사위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자 그들은 볼 수 있었다. 시커멓게 타 버린 들판의 중간쯤에서 희미하게 빛나고 있는 마법진들의 모습을.

처음에는 5개의 마법진들에서 흘러나오는 빛의 강도가 거의 엇비슷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새벽녘쯤 되었을 때는 중간에 그려진 마법진이 훨씬 더 밝게 빛나고 있다는 게 육안으로도 뚜렷이 구별이 가능할 정도로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중간에 있는 게 훨씬 더 밝은 것 같지 않아?”

“확실히.”

처음에는 실패한 것으로 생각했던 중대장이었지만, 밤에 보초를 섰던 부하들의 보고를 종합해 본 결과 그게 아니라고 판단했다. 실패한 마법진이 밤새도록 빛을 내뿜고 있을 리가 없지 않겠는가. 더군다나 중간에 있는 마법진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빛은 점점 더 밝아지고 있다고 한다.

“마법사님, 한 가지 여쭤볼 게 있습니다.”

“뭔가?”

“저쪽에 그려져 있는 마법진들……. 언제 발동하는 겁니까?”

“이미 발동된 상태야. 여기서 육안으로 봐도 식별이 가능하니까, 직접 확인해 보면 알 게 아닌가. 낮에는 태양빛에 가려 잘 보이지 않겠지만, 주변이 어둑해지면 마법진에서 흘러나오는 빛을 확연히 구분할 수 있을 거야.”

“그럼 저 마법진이 하는 일이 뭡니까? 일을 도와주시겠다고 하셨으니…, 고블린들을 땅굴에서 밖으로 쫓아내는 그런 종류의 마법입니까?”

아르티어스는 피식 웃은 뒤, 중대장이 바라던 대답을 해 주었다.

“그거보다 더 좋은 거지. 한꺼번에 몰살시켜 버리는 거니까. 땅속에서 죽어 버릴 테니, 시체 처리도 하지 않아도 되고…….”

그 말에 중대장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사, 살상용이라고요?”

“물론이지. 살상용도 아닌 것을 저기에다가 발동시켜서 뭐에 쓰려고?”

“그렇다면 저 마법이 언제 발동되는 겁니까? 미리 말씀을 해 주셔야, 저희도 대비를 할 게 아니겠습니까.”

잠시 생각해 보던 아르티어스는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대답했다.

“그건 뭐라고 확답을 줄 수가 없구먼. 발동 시기를 내가 조종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

아르티어스는 손가락으로 마법진들을 가리키며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바깥을 싸고 있는 4개의 마법진은 중간에 있는 마법진에 마나를 공급해 주는 역할을 하지. 중간에 있는 마법진이 주위의 마법진보다 훨씬 더 밝은 빛을 띠는 게 바로 그 이유야.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조금씩 마나가 쌓이게 되고, 결국 마법진이 발동하기에 충분할 정도의 마나가 쌓이게 되면…….”

아르티어스는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양 손바닥을 옆으로 확 펼치며 말했다.

“펑! 하고 터지게 되는 거야. 어때, 이해가 되었나?”

하지만 중대장은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오차가 좀 커도 상관없습니다. 대략적으로라도 말씀해 주십시오. 펑 하고 터지게 되는 게 대체 언제쯤입니까?”

“흠, 날씨가 이 상태로 지속된다면 아마 모레 정오쯤?”

“위력은 어느 정도입니까?”

“마을까지 여파가 미치지는 않을 테니 걱정할 필요는 없을 걸세. 그런 걱정보다는 고블린들이 포위망 밖으로 도망치지 못하도록 붙잡는 데 신경을 쓰게나.”

아르티어스의 말에 중대장은 답답하다는 듯 되물었다.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아야 포위망을 구성할 수 있을 게 아닙니까?”

“현재 상태대로만 하면 돼. 아슬아슬하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위험하지는 않을 거야. 충격파는 지하로 흘러 들어가는 거지, 지상으로 뿜어져 나오는 게 아니니까.”

아리송한 대답만을 하는 아르티어스가 짜증스러웠지만, 중대장은 그쯤에서 질문을 멈췄다. 자신이 원하는 제대로 된 대답을 해 준다고 해도, 자신이 그걸 알아들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데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다. 사실 그가 무술에 대해 심도 깊은 설명을 해 준다고 해서, 마법사가 그걸 알아들을 리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결국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이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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