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날수록 중간에 새겨져 있는 마법진에서 흘러나오는 빛의 강도는 점차 강해졌다. 마법사가 마법진이 발동될 것이라고 예측했던 날이 되자, 마법진에서 흘러나오는 빛의 강도는 더욱 강해져서 대낮에도 명확하게 인지될 정도였다. 그리고 그 빛이 강해지는 만큼, 사람들의 호기심과 기대치 역시 급격히 상승하고 있었다.
마법진이 발동될 거라고 예측한 시각이 되자, 용병들은 물론이고 마을사람들까지 몽땅 다 몰려들었다. 마법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구경조차 못해 본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모두들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밝게 빛나고 있는 마법진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사람들의 기대는 정오가 되었을 때 극에 이르렀다. 하지만 황당하게도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10분, 20분…….
1시간, 2시간…….
처음에는 호기심 어린 눈길로 마법진을 바라보던 사람들이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뿔뿔이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속았다고 생각하면서…….
몇 명인가는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바라봤지만, 그것도 한두 시간이지 3시간이 넘어가자 보초를 선 일부 용병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모두들 일상으로 돌아갔다. 요리를 하는 아낙, 밭을 가는 농부, 휴식시간을 이용해 낮잠을 즐기는 용병들…….
슬슬 해가 기울어져 가고 있을 때, 보초를 서고 있던 용병들 중 하나가 문득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어? 저거 좀 더 밝아진 거 아냐?”
“정오에서 해가 기우니까 그런 거겠지. 어두울 때 더 밝게 빛이 나잖아.”
기분 탓이라고 생각하며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리려고 하는 그 순간, 쿵! 하는 거대한 울림이 그의 몸을 강타했다. 쿵 하는 소리만 귀에 들린 게 아니라, 그야말로 오장육부를 진동시키는 듯한 커다란 울림이 몸 전체를 훑고 지나갔던 것이다.
“흐윽! 이게 뭐야?”
그 순간 용병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들은 본 것이다. 마법진에서 강한 빛이 뿜어져 나오는 듯하더니, 그 빛이 사라졌을 때는 마법진도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그리고 곧이어 마법진이 그려져 있던 곳의 땅이 갑자기 위로 불쑥 솟아올랐다. 마치 잔잔한 호수 중간에 돌멩이라도 던진 듯이. 그와 동시에 들려오는 무시무시한 떨림음.
쿠쿠쿠쿠쿠…….
지축을 울리는 듯한 괴성이 울려 퍼지며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호수에 돌멩이가 떨어진 지점을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리며 넓게 파동이 퍼져 나가듯, 그곳의 땅도 그렇게 엄청난 동심원이 솟아올라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 경이로운 모습을 직접 목격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놀라서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는 이미 마법은 끝나 가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요란한 굉음과 함께 사방으로 넓게 퍼져 나가던 흙의 파동은 점차 잦아들더니 이윽고 사라져 버렸다.
“세, 세상에…….”
중대장을 비롯한 장교들이 자신들의 거처에서 후다닥 튀어나와 방어선 쪽으로 달려왔다.
“대체 무, 무슨 일이냐?”
그들이 와서 봤을 때는 예전과 별로 달라진 것도 없었다. 달라진 게 있다면, 들판 중간에 그려져 있던 5개의 마법진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 정도?
보초들은 저마다 방금 전에 봤던 믿을 수 없는 장면에 대해 중대장에게 보고했지만, 완전 미친놈이 횡설수설하는 느낌이 들 뿐이었다.
이때, 아르티어스가 숙소에서 천천히 걸어오는 걸 본 중대장은 그쪽으로 달려갔다.
“마법사님, 마법진이 발동된 겁니까?”
“자네는 느끼지 못했나? 내가 있는 곳까지 충격파가 느껴졌었는데 말일세.”
“물론 느끼기는 했습니다만…….”
중대장은 고블린이 서식하던 벌판 쪽을 빙 둘러본 후 말을 이었다.
“마법사님 생각은 어떠십니까? 잘된 거 같습니까?”
중대장이 그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마법이 발동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어떤 변화도 느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겉으로 봤을 때는 아무런 변화도 느낄 수 없겠지. 하지만 땅속은 지상과 달리 쑥대밭이 됐을 거야. 파동이 휩쓸고 지나가면 제아무리 튼튼하게 지어 놓은 지하구조물이라도 버틸 수가 없거든. 지하 전체가 동시에 무너져 내리는데, 제아무리 고블린이 땅을 잘 판다고 해도 살아남을 수가 없지.”
그 말에 중대장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오오, 정말 감탄했습니다. 이런 위대한 마법사님과 함께 의뢰를 수행할 수 있어 정말 영광입니다.”
아르티어스는 별것 아니라는 듯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그리 대단한 마법은 아닐세. 대부분의 마법사들이 대지 계열의 마법을 익히지 않기에 자네가 처음 보는 것일 뿐이야.”
“저렇게 위력이 대단한데, 왜 안 익힌다는 말씀이십니까?”
“이런 특수한 상황에서는 꽤 위력적이지,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기 때문일세. 생각을 한번 해 보게. 지하에 가만히 숨어 있기만 하는 고블린들한테나 저런 마법진을 쓸 수 있지, 그 외에 어디에다가 저런 걸 쓰겠나?”
아르티어스의 지적은 옳은 것이었다. 순간순간 변화하는 전쟁터에서 쓸 수 있는 마법은 절대로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번 마법이 준 감동이 희석된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그 지독하기 짝이 없는 고블린을 이렇게 쉽게 몰살시킬 수 있을 거라고는 모두들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대체 어떤 놈의 씨야?
용병단을 움직이는 핵심 부서라고 하면, 단연 행정부와 운용부가 손꼽힌다. 행정부는 용병단에서 필요로 하는 각종 물품 따위와 인원 관리에 관여한다. 신병을 모집하여 인원을 보충하는 것은 물론이고, 각자의 급료를 계산해서 지급하는 것도 행정부의 몫이다.
이에 반해 운용부에서 하는 일은 용병들을 적절히 운용하여 돈을 벌어들이는 것이다. 일거리의 대부분은 길드를 통해 들어온다. 의뢰인이 용병을 원하는 곳은 왕국 전체, 어떨 때는 왕국 밖으로 나가야 하는 일까지 있다. 운용부에서는 의뢰인과 협의하여 언제 그곳으로 용병부대를 투입할 것인지 하는 계획을 수립했다.
적절하게 인원 배치를 하여 적은 숫자의 용병으로 최대한 많은 의뢰를 수행할 수 있도록 조절하는 게 운용부에서 하는 일이었다.
즉, 운용부는 용병단의 수입을, 행정부는 지출을 관리한다고 보면 옳다.
운용부가 얼마나 효율적으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용병단의 수입이 결정되기에, 규모가 작은 용병대의 경우에는 부단장이 직접 운용부를 챙기는 게 관례였다. 하지만 페가수스 용병단처럼 규모가 큰 경우에는 전문적으로 운용부를 담당할 사람을 따로 임명하였다.
갑작스레 자신을 찾아온 운용관을 보며, 단장은 하던 일을 멈추고 물었다.
“무슨 일인가?”
“얼마 전에 입단한 마법사에 대해서 보고드릴 게 있어서 왔습니다.”
“마법사라……?”
잠시 생각하던 단장은 이윽고 기억이 떠오른 모양이었다.
“아! 그 덴코 왕국 출신이라는 마법사?”
“예, 그 마법사 말입니다.”
운용관은 344중대에서 행한 고블린 토벌 작전에서 그 마법사의 활약이 어떠했는지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제가 섣불리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기에 수석마법사님께 조언을 청했지요.”
단장도 꽤나 흥미로운 모양이었다.
“흠. 그래, 수석마법사는 뭐라고 하던가?”
“마법진 자체는 그리 놀라운 게 아니라고 하시더군요. 평이한 수준의 마법진들이라고 말이지요. 하지만 서로 다른 5개의 마법진을 연계하여 자체적으로 마나를 끌어모아 폭발을 일으키도록 설계하는 것은 엄청난 고난도의 작업이라고 하셨습니다.”
말을 듣던 단장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물었다.
“그렇다면 중범죄자라는 뜻인가?”
“수석마법사님의 결론도 그랬습니다.”
마법진 5개 연계 구동 같은 고난도의 작업을 용병단을 떠도는 마법사가 구사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의 수준이 4사이클급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마법진에 대한 연구를 깊이 있게 한 인물이라면, 3사이클급이라고 해도 여러 마법진을 동시에 구동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용병단에서 그를 중범죄자라고 단정 짓는 이유는, 마법진 연구는 곧 타이탄의 심장인 엑스시온의 연구와 맞물리기 때문이었다.
알카사스 왕국의 경우, 마도왕국이라는 위상에 걸맞게 마법사 길드에서도 타이탄이나 엑스시온을 생산하여 외국에 수출하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 주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왕실 직속으로 철저히 관리할 만큼 중요도가 높은 산업이었다.
그러니 어디를 가든 대접을 받으며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마법사가 신분을 숨긴 채 외국을 떠돌 이유가 뭐겠는가. 반역 등의 중범죄 외에는 답이 없었다.
“흐음, 어떻게 보면 기회라면 기회일 수도 있긴 한데…….”
“조사를 좀 해 볼까요?”
운용관의 질문에 단장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해서 뭐 하겠나. 만약 중범죄자가 맞다면 그가 제시했던 신분 증명은 몽땅 다 위조된 게 뻔할 텐데 말이야. 그리고 괜히 조사한답시고 여기저기 들쑤셔 봐야 좋을 게 있을까? 자칫 하이에나들만 끌어들일 뿐이야.”
중범죄자가 맞다면 엄청난 현상금이 붙어 있을 것은 당연했고, 현상금 사냥꾼들이 전 대륙을 이 잡듯 뒤지고 있을 게 뻔했다. 이런 상황에서의 섣부른 행동은 자칫 현상금 사냥꾼들에게 마법사의 신상 정보를 노출시키는 최악의 결과를 부를 수도 있었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잠시 고민을 하던 단장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말했다.
“그냥 놔둬. 일단은 조용히 지켜보는 거야. 그러다가 틈이 보이면 회유해 보기로 하지. 이런 인재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그리 흔하게 오는 것은 아니니까.”
“알겠습니다, 단장님. 그렇게 처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