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67화 (763/930)

사람 가죽도 벗기나요?

올란도 부대가 마을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한 작업은 고블린 거주지와 인접한 마을 외곽에 방어선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방어선만 설치한다고 해서 일이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이곳에 온 목적은 놈들을 완전히 소탕하기 위해서였으니까.

사실, 겨우 열다섯 명만으로 고블린 1개 부족을 소탕한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직접 맞붙어 싸운다면 고블린의 숫자가 열 배가 넘는다고 하더라도 육체적인 능력은 물론이고, 방어구와 무기에서 월등하게 우세한 용병들이 밀릴 리가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놈들이 정면 대결을 회피한다는 데 있었다. 그렇다면 놈들이 맞붙어 싸울 마음이 들도록 상황을 만들어야 했다.

그건 바로 배고픔!

배고픔이야말로 동물적인 본성으로 가득 찬 고블린에게 취할 수 있는 가장 큰 압박 수단이었다. 하지만 놈들의 거주지역 전체를 포위해 식량 조달을 차단하기에는 용병들의 병력이 너무 적다는 게 문제였다.

한동안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소대장들이 짜낸 아이디어는 전망탑이었다. 높지막하게 건설해 놓은 전망탑은 탁 트인 시야로 인해 주변을 감시하기도 편리했을뿐더러, 만약 놈들이 보이기만 하면 곧장 화살을 날려 쏴 죽이기에도 용이했다.

더군다나 전망탑을 건설하고 보니, 앞에 언급한 것들 외에도 또 다른 잇점이 있다는 게 밝혀졌다. 그것은 바로 방어 거점의 기능이었다. 오크와 달리 고블린은 불을 사용할 줄 모른다. 놈들의 주 무기가 독침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얄팍한 나무판자 조각으로 만들어진 전망탑이라도 놈들에게는 난공불락의 요새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전망탑을 건설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제대로 된 연장도 없었고, 노동력 또한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만약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면 지금보다 몇 배나 더 고생을 해야 했으리라.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판자나 기둥을 제작하는 일을 맡았고, 용병들은 그것들을 운반해 전망탑을 만드는 일을 했다. 가뜩이나 인력이 모자라는데 이렇게 분업을 해야만 했던 이유는, 주민들이 고블린의 독침을 두려워해서 아무리 설득해도 마을 밖으로는 나가려고 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고블린의 독침이 무서운 게 사실이기는 했지만, 마을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치명적이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사거리가 짧았다. 강철도 아니고, 가느다란 나뭇가지를 다듬어 만든 가벼운 독침을 입김으로 날려 봐야 얼마나 멀리 날리겠는가.

그리고 독침에 발라져 있는 독의 성분도 그리 강한 것이 아니었기에, 한 대 맞는다고 해서 곧바로 즉사하는 것도 아니었다. 물론 몇 시간 정도 정신이 몽롱할 정도로 마비가 오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주변을 경계하는 틈틈이 해를 보며 시간을 가늠하던 라이언 소대장이 대원들에게 외쳤다.

“오전 작업 끝! 모두 돌아갈 준비를 해라.”

소대장의 지시에 따라 대원들은 작업을 끝내고 돌아갈 준비를 했다. 대원들의 몸은 마치 비라도 맞은 듯 땀으로 질척거렸다. 안 그래도 힘든데, 갑옷까지 입고 일을 하자니 죽을 지경이었다.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모두들 갑옷부터 벗어던지고는 냇물로 뛰어들었다. 대원들은 몸을 씻고 난 뒤 지금까지 입고 있던 옷들도 모두 벗어 깨끗이 빨아서 널었다. 이렇게 자주 세탁을 하지 않으면 냄새가 나서 입을 수가 없었다.

대원들은 몸을 씻은 후 모두들 여기저기 널브러져 쉬기 시작했지만, 라이는 쉬지 못했다. 고블린 토벌 의뢰를 수행하기 위해 출발한 바로 그날부터, 대원들의 식사를 책임져야만 했기 때문이다.

다른 소대들의 경우 식사 당번을 돌아가면서 했는데, 유독 3소대에서만큼은 라이 혼자 식사 준비를 했다. 하리스는 쫄따구가 식사 준비를 하는 게 3소대만의 전통이라고 둘러댔지만, 사실은 라이가 술주정을 하는 척 자신을 속인 거라고 오해한 그의 자그마한 보복일 따름이었다.

식사 준비를 처음 했을 때야 힘들었지만, 지금은 숙달되어 누가 도와주지 않아도 척척 알아서 만들었다. 라이는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솥단지를 걸어 놓고 불을 피워 놓은 다음 씻으러 갔다. 라이가 씻고 돌아왔을 때쯤에는 물이 끓기 시작하고 있었다.

아침에 대원들에게서 거둬 두었던 재료에 마을 촌장이 건네준 식재료들. 이것들을 뭉텅뭉텅 썰어 넣은 다음, 소금을 대충 뿌려 넣으면 끝이다. 요리라고 하기 힘들 만큼 단순했고, 양념이라고는 소금밖에 없었지만 의외로 짭짤한 게 맛있었다. 매일, 하루 3번씩 이런 요리를 만들다 보니 간을 얼마나 해야 할지가 완전히 몸에 익어 버린 것이다.

내용물이 익을 때쯤 밀가루를 풀어 넣고 걸쭉하게 만들기만 하면 된다. 라이가 내용물을 국자로 휘저으며 언제쯤 밀가루를 집어넣을까 눈대중을 하고 있을 때였다. 이때, 옆쪽에서 들려오는 거친 론도 소대장의 목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그쪽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왜 벌써부터 그렇게 조급해 하냐? 참아, 앞으로 최소한 한 달은 더 이러고 있어야 하잖아.”

라이언 소대장이 말리고 있었지만, 그게 오히려 론도 소대장의 울화를 더욱 치밀어 오르게 만든 모양이었다.

“그걸 누가 몰라서 그래? 저 고주망태 중대장이 나만 보면 잡아먹지 못해 닦달을 하잖아. 내가 능력이 없어서 고블린 따위도 빨리빨리 없애 버리지 못한다면서. 젠장! 자기는 손끝 하나 까딱하지도 않으면서 말이야. 빌어먹을!!”

한 달이라는 말에 우연히 두 사람의 말을 엿듣게 된 라이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한 달? 이미 두 달 동안 포위망을 구축한 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데, 그것도 모자라 또다시 한 달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 말인가?

다행히도 아직 밀가루를 집어넣기 전이었다. 즉, 불 곁을 떠날 수 있다는 말이다. 라이는 슬그머니 하리스에게로 다가가서 그의 옆구리를 톡 치며 물었다.

“한 달 동안 더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 진짜예요?”

“아, 너는 이거 처음이지? 젠장, 잘 들어. 비축 식량이 바닥났다고 해서 놈들이 곧바로 기어 나오는 줄 알아? 고블린은 인간이 아니야. 그 점을 착각해서는 안 돼. 최악의 상황이 닥치면 자기들끼리도 서슴지 않고 잡아먹는 놈들이란 말이야.”

맞다. 그 부분을 생각하지 못했다. 라이가 오크들에게 붙잡혀 있었을 때, 겨울 식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던 게 그들의 동족인 오크 고기였지 않던가.

“그, 그렇군요.”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눈다고 나눴는데도 하필이면 그걸 라이언이 들은 모양이다. 라이언은 라이를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엄한 목소리로 질책했다.

“식사 준비는 끝난 거냐?”

“아, 예. 곧 끝납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쇼.”

라이는 허겁지겁 솥단지를 향해 달려갔다.

론도 소대장은 얼마나 짜증이 나는지 머리카락을 거칠게 쥐어뜯으며 외쳤다.

“으아아악! 정말 미쳐 버리겠네. 돈은 돈대로 못 벌어! 중대장한테는 능력 없다는 소리까지 들어! 왜 하필이면 이런 빌어먹을 임무가 걸려 가지고!”

이때, 경계를 서고 있던 대원들 중 하나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보고했다.

“론도 소대장님, 중대장님을 뵙기를 청하는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누군데? 데리고 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대원은 낯선 젊은이 한 명을 데리고 왔다. 론도 소대장은 그 젊은이를 향해 의심스런 시선을 보내며 물었다.

“누구신데 중대장님을 뵙겠다는 겁니까?”

젊은이는 공손하게 인사를 건네며 대답했다.

“예, 저는 용병길드에서 나왔습니다. 여기가 붉은 전갈 용병단 71중대 맞죠?”

용병길드에서 나왔다는 말에 론도 소대장의 의심쩍은 시선이 약간은 누그러졌다.

“그렇긴 합니다만, 왜 중대장님은……?”

“중대장님께 전할 긴급 서신이 있어서 말입니다.”

긴급 서신이라는 말에 론도 소대장은 잠시 할 말을 잊었다. 지금 중대장은 손님을 맞을 상태가 아닐지도 몰랐다. 보나마나 밤새 퍼마셨을 테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그 서신을 자신에게 달라고 할 수도 없었다. 중대장이 없다면 몰라도, 그건 규정 위반이었다.

잠시 망설이던 론도 소대장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술집을 향해 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중대장님께서는 저기에 계십니다.”

젊은이는 왜 론도 소대장이 중대장의 위치를 알려 주기 꺼려했는지 금방 눈치 채고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저는 가 보겠습니다. 수고들 하십시오.”

인사를 건넨 후 술집으로 걸어가는 젊은이를 향해 론도 소대장과 라이언 소대장은 우려의 시선을 보냈다.

문득 론도 소대장이 중얼거렸다.

“젠장, 완전 떡이 돼서 뻗어 버린 건 아닌지…….”

“설마. 아직 낮이잖아. 그 정도까지 마시지는 않았을 거야.”

라이언 소대장의 추측이 옳았던 모양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술집에서 올란도가 뛰어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올란도는 소대장들을 보자마자 급히 외쳤다.

“이봐! 모두 출발 준비 하라고 해!”

올란도를 뒤따라 밖으로 나온 용병길드의 젊은이는 용건을 모두 끝마쳤는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럼 저는 가 보겠습니다, 중대장님.”

“어, 수고하셨소. 먼 길 오셨는데 술이라도 한잔 대접해야겠지만, 지금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올란도의 입에서 술 냄새가 짙게 풍기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할 리 없었지만 젊은이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전 괜찮습니다. 그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십쇼.”

올란도의 출동 명령에 식사를 하다 말고 후다닥 뛰어온 소대장들. 두 사람은 말을 타고 마을 밖으로 벗어나고 있는 젊은이의 뒷모습을 힐끔 바라본 뒤 올란도를 향해 다급히 물었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생겼는지 술에 쩔어 팍삭 찌그러져 있던 상관의 얼굴이 오랜만에 생기를 띠고 있었다.

“갑자기 출발 준비라니요? 대체 무슨 일인데 그러십니까?”

“다른 임무가 떨어졌다.”

“예? 그럼 여기 임무는 어떻게 하고요?”

“현재 맡고 있는 임무는 일단 중단하고, 5일 내로 메르헨 영지에 집합하라는 상부의 명령이다.”

“메르헨 영지라고요? 거기에는 왜…….”

올란도는 명령서를 론도 소대장에게 건네주며 기분 좋게 말했다.

“전쟁이다! 지금까지 벌지 못한 것을 충분히 벌충할 수 있다는 뜻이지. 대원들을 출동 준비시키도록!”

“알겠습니다, 중대장님. 식사가 끝나는 대로 출발할 수 있도록 조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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