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헨 영지를 향해 이동한다는 상관의 명령에 대원들은 모두 환호했다.
“드디어 이 빌어먹을 마을을 떠날 수 있게 됐다!”
“전쟁이다! 전쟁!”
“도렌 영지하고 싸운다는데, 도렌이 도대체 어디야? 누구 거기 가 본 사람 있어? 아니면 들었거나…….”
“아무려면 어때. 그냥 작은 군소 영지인 모양인데, 우리는 쳐들어가서 약탈이나 하면 되는 거지.”
“한몫 짭짤하게 챙길 수 있겠군.”
“우와! 신난다.”
대원들의 얼굴에 기대감이 어리는 것을 보며, 라이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그는 두려움이 앞섰다. 아마도 그것은 지금껏 그가 단 한 번도 살인을 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는데 왜 저렇게 좋아하는 거죠, 선배?”
하리스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걸 몰라서 묻는 거냐?”
“모르니까 묻는 거죠.”
“너 저번에 오크족 토벌할 때, 뭐 건진 거라도 있냐?”
하리스의 물음에 라이는 자랑스러운 듯 대답했다.
“송곳니를 8개나 뽑았어요.”
하리스는 손가락까지 꼽아 보이며 말하는 라이를 한심하다는 듯 바라봤다.
“그래. 몬스터 때려잡아 봐야 얻을 수 있는 건 뻔하지. 이빨이나 발톱, 가죽……. 하지만 그런 거 팔아 봐야 몇 푼이나 벌겠냐?”
그러자 라이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잡화점에 가져다 주면 짭짤하게 벌 수 있다고 열심히 챙기라고 하신 건 선배잖아요.”
“물론 그렇게 말했지. 하지만 아무리 짭짤하다고는 해도, 사람을 때려잡았을 때의 수입에 비하면 그건 푼돈이나 마찬가지야.”
라이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급히 반문했다.
“설마… 사람 가죽도 벗겨요?”
그 겁먹은 표정에 하리스는 박장대소했다. 한동안 배꼽이 빠져라 웃던 하리스는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사람 가죽을 벗겨다가 어디에 쓰게. 가죽을 벗기는 게 아니라, 그놈이 가지고 있는 물품을 노획할 수 있다는 말이야.”
그제야 이해가 된다는 듯 라이는 ‘아…’ 하고 탄성을 내뱉었다.
“쓸 만한 갑옷 한 벌…, 아니 검 한 자루만 챙겨도 떼돈을 벌 수 있거든. 그래서 모두들 환성을 질러대고 있는 거야.”
그러면서 하리스는 예전에 자신이 영지전에서 적병을 죽인 뒤 그의 품속을 뒤져 값나가는 물품을 약탈했었던 무용담을 들려줬다.
“꽤 실력 있는 놈이라서 맞서 싸울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도 않았지. 그래서 녀석은 무시하고, 그 옆에 있는 다른 만만해 보이는 놈들을 하나씩 해치우고 있었거든. 그런데 그놈이 나한테로 달려오는 게 아니겠어? 마음 같아서는 당연히 달아나고 싶었지. 그런 놈과 목숨 걸고 싸워 봤자 수당을 한 푼이라도 더 주는 것도 아니고…….”
여기까지 말하던 하리스는 자신의 롱 소드를 검집에서 쑥 뽑아 들었다. 그의 애검은 용병들이 쓰기에는 너무 고급스러운 것이었다. 용병들은 대체로 얄팍한 롱 소드보다는 파괴력이 뛰어난 브로드 소드 같은 중병기를 즐겨 쓴다. 대인격투에는 가벼우면서도 긴 롱소드가 유용할지 모르지만, 몬스터들을 상대하는 데는 튼튼하고 묵직한 브로드 소드가 훨씬 낫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이놈이 눈에 확 들어오는 거야. 정말 멋진 놈이지?”
결국 하리스의 말은, 롱 소드를 뺏기 위해 그자와 목숨 걸고 싸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자신의 멋진 애검이 생긴 것이고.
“괜찮은 게 눈에 띄면 바로바로 주워. 안 그러면 다른 놈이 금방 채 가 버리니까 말이야. 하기야, 도끼는 그리 인기 있는 품목이 아니니 경쟁자가 그리 많지는 않겠군. 물론 도끼를 쓰는 놈도 그리 많지 않다는 것도 문제기는 하겠지만 말이지.”
자신이 사용하는 도끼가 그만큼 비인기 무기라는 것에 라이는 씁쓸한 표정을 감추기 힘들었다.
“다, 다행이네요.”
“한 번 더 말하지만, 좋은 걸 보면 절대 기회를 놓치지 마.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테니까 말이야. 이건 흔히 오는 기회가 아니거든.”
“선배님 얘기를 들어 보니, 영지전이라는 게 그리 자주 벌어지는 것은 아닌 모양이죠?”
“당연하지. 전쟁 한판 벌이는 데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가는지 알기나 하냐? 영지에 소속된 병사들만으로도 모자라, 우리들 같은 용병들까지 고용하려면 가히…….”
오랜만에 큰돈을 벌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하리스가 신이 나서 입을 연신 나불거리고 있을 때, 라이언 소대장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리스! 이 자식, 헛소리 그만하고 빨리 짐이나 챙겨!”
“옛, 소대장님! 분부대로 합죠.”
즉시 대답하는 하리스. 하지만 말과 달리 그대로 할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라이언 소대장이 딴 데로 시선을 돌리자마자, 라이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투덜거리는 것을 보면 말이다.
“젠장. 말 안 해도 다 알아서 할 건데, 딱딱거리기는…….”
이때, 어디선가 나타난 올란도가 다가오더니 큰 목소리로 부하들에게 외쳤다.
“자자, 모두들 주목!”
중대원들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쏠린 것을 확인한 후, 올란도는 말을 이었다.
“제군들! 영지전에 참여하기 위해 이동할 거라는 얘기는 소대장들을 통해서 들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메르헨 영지에 5일 내로 무조건 도착해야 한다. 시간이 아주 촉박하다. 강행군을 해야 하는 만큼, 최대한 군장의 무게를 줄여라. 꼭 필요하지 않은 짐은 이곳에 놔두라는 말이다. 내가 촌장을 직접 찾아가서 양해를 구해 뒀으니, 잘 보관해 줄 거다. 그러니 그 점은 걱정하지 말도록.”
“그럼 영지전이 끝나면 다시 이 마을로 돌아올 거라는 말씀이십니까?”
한 대원의 질문에 올란도는 짐짓 장난스런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럼 너는 이 마을로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었냐? 여기 있는 고블린들은 누가 잡고?”
순간 얼굴이 확 일그러지는 중대원들.
“이런 젠장! 다시 돌아와서 고블린을 잡아야 하는 거였어?”
“좋다 말았네.”
투덜거리는 중대원들을 향해 올란도는 손뼉을 짝짝 치며 지시했다.
“자자, 시간이 없다. 모두들 빨리 짐 챙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