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놈들이 아니잖아!
하늘을 천천히 날고 있는 와이번 위에 앉아 있는 두 사람. 그 중 앞에 앉아 있는 건장한 사내는 분견대장 스트론에게 사내 3명으로 이뤄진 파티를 체포해 오라는 명령을 받고 출동한 도튼이었다.
도튼은 주위를 대충 둘러보는 정도였지만, 뒤에 앉아 있는 그의 파트너는 열심히 아래쪽을 살피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숲이 우거져 있는 곳에서는 마법을 쓰지 않는 한, 나무 밑에 뭐가 있는지 알아볼 방법이 없다. 그렇기에 마법사인 그만이 아래쪽을 살펴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도튼은 서쪽 하늘을 향해 저물고 있는 해를 바라봤다. 해가 지려면 3시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시간이 없었다. 와이번은 밤눈이 어두웠기에 밤에 비행하는 것을 본능적으로 싫어했다. 요새로 돌아가는 데 필요한 시간까지 감안한다면, 수색을 감행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넉넉한 게 아니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이리저리 주위를 둘러보던 도튼은 조바심이 났다.
“젠장, 짜증나는군. 금방 찾아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 새끼들이 어디로 튀어 버린 거야? 분명, 이 근처 어디쯤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도튼이 짜증을 내는 게 한두 번이 아니었는지 마법사는 대꾸조차 하지 않고 그저 열심히 아래쪽을 살필 뿐이었다.
“이봐.”
“예?”
“제대로 잘 보고 있는 거야?”
“걱정 마십쇼. 눈알이 빠지게 보고 있으니까요.”
공손한 말투로 대답하긴 했지만, 마법사의 목소리 저 깊은 곳에는 짜증이 잔뜩 묻어나왔다. 여기까지 오면서 계속 용기사의 짜증을 받아 주고 있었으니 그건 당연한 결과이리라. 하지만 대놓고 뭐라고 하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용기사 쪽이 자신보다 계급이 훨씬 높았으니까.
물론 마법사들 중에는 용기사보다 계급이 높은 사람도 많다. 하지만 용기사와 짝을 지어 ‘통신기’로 이용되는 마법사들의 경우, 딱 그 정도의 실력을 갖춘 인물들이 배속되는 것이다.
“젠장, 도중에 샛길로 빠져 버린 거 아냐?”
분견대장으로부터 명령을 받았을 때만 해도 그는 아주 쉽게 이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 일대라면 워낙 오랜 세월 순찰을 돌아왔기에 작은 샛길 하나하나까지도 훤히 꿰뚫고 있었으니까.
“어쩌면 우리 예상보다 좀 더 빨리 이동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대장님한테 들은 그 도망자들의 위치가 3일 전의 것이라면서요.”
“흠, 그럴지도 모르겠네. 좀 더 앞쪽으로 가 보자.”
마법사의 예측이 맞은 모양이다. 그들은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목표물을 찾아냈다. 마법사가 저 밑, 짙은 수풀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급히 외쳤다.
“아! 저쪽에 세 사람이 걸어가고 있습니다.”
마법사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빽빽한 나무들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도튼은 잘 알고 있었다. 마법사의 말대로 저 아래쪽 어딘가에 놈들이 걸어가고 있을 거라는 것을. 도튼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곧 귀찮은 임무를 끝마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흐흐흣! 제깟 놈들이 뛰어봤자 벼룩이지. 빌어먹을 놈들, 대체 뭔 죄를 지었기에 방울소리 나게 튀고 있는 거야?”
음흉하게 웃던 도튼이 와이번의 목을 툭툭 두들기며 신호를 주는 것을 본 마법사가 급히 말했다.
“나이 먹은 두 놈은 반드시 생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데려가기 귀찮다고 괜히 목을 날리시면 절대 안 됩니다. 아시죠?”
이런 잔소리를 들은 게 한두 번이 아니었는지 도튼은 짜증스런 어조로 대꾸했다.
“젠장, 그 말 내가 너한테 해 준 거잖아! 마누라처럼 쫑알거리지만 말고 너나 잘해, 새꺄.”
도튼은 더 이상 대화하기 싫다는 듯 아래쪽을 향해 몸을 날렸다. 지상 수십 미터 높이에서 저렇듯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몸을 던질 수 있다니. 마법사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지상을 향해 떨어지고 있는 도튼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몇 번이고 저런 모습을 봐 왔지만, 아무리 봐도 적응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처럼 마법으로 몸을 보호하는 것도 아니면서…, 저렇게 뛰어내릴 수 있는 용기는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거지?”
물론 맨땅에 처박혀 죽지 않으리라는 것도 잘 안다. 도튼은 저 아래쪽에 있는 나뭇가지를 목표로 뛰어내린 것이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마법사는 기가 질렸다. 그는 자칫 부러질지도 모를 저런 얇은 나뭇가지 하나를 목표로 허공에서 뛰어내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니까.
도튼이 뛰어내린 후, 와이번은 그 자리를 빙글빙글 선회하기 시작했다. 용기사로부터 새로운 지시가 떨어지기 전까지 그곳에서 대기하고 있는 것이다.
마법사는 비행 주문을 발동시킨 후에야 와이번에서 뛰어내렸다. 쏜살같이 지상을 향해 처박히던 도튼과는 달리 그의 몸은 지상을 향해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지상에 도착한 마법사는 방금 전 마법을 통해 목표물들을 찾아낸 곳으로 달려갔다. 좀 더 잘 달릴 수 있도록 보조마법까지 사용했음에도 현장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상황은 종료되고 난 후였다.
“벌써 끝내셨습니까?”
마법사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본 도튼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리 좀 와 봐. 뭔가 좀 이상해…….”
이때, 도튼에 의해 제압당해 땅바닥에 쓰러져 있던 사내들이 악을 쓰며 발악하기 시작했다.
“네놈들은 도대체 누구냐? 법무부 조사관들이냐?”
“천하에 악독한 개자식들! 주군께 무슨 죄가 있다고 이러는 것이냐? 브란덴 공작새끼에게 아부하기 위해 있지도 않은 죄를 만들어 모함을 하다니……. 부끄러운 줄을 알거라.”
도튼은 찜찜한 표정으로 마법사에게 속삭였다.
“우리를 보고 법무부 조사관이냐고 하잖아. 저것들, 정체가 도대체 뭘까?”
마법사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알게 뭡니까. 법무부 조사관 찾는 거 보니, 그리 떳떳한 놈들은 아닌 것 같은데요.”
“그건 그렇지만…….”
“대장님이 저놈들의 신분이 뭔지 전혀 얘기해 주지 않으셨다면서요?”
“그래. 단지 한 놈이 전직 레인저라고만 했어.”
레인저, 그리고 법무부 조사관. 이런 단어들로 유추해 봤을 때, 분견대장은 법무부 쪽의 의뢰를 받아 저들을 체포하라고 명령을 내린 것이라 보는 게 맞으리라. 그리고 악을 쓰는 저놈들의 얘기대로라면 저들이 모시던 주군은 권력투쟁에 밀려 반역죄를 뒤집어쓴 것 같았다.
마법사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랍다는 듯 말했다.
“우리 대장, 생각보다 발이 넓으신데요? 브란덴 공작이라면 요즘 들어 실세로 떠오르는 귀족이 아닙니까?”
“젠장, 술 마실 때마다 자신의 인맥이 대단하다고 주절거렸던 게 허풍이 아니었던 모양이야. 잘하면 이 지긋지긋한 촌구석에서 벗어나겠군, 대장은.”
“그나저나 셋이나 싣고 우리 귀염둥이가 날 수 있을까요?”
“다 실을 필요 없어.”
도튼은 한쪽에 엎어져 있는 사람을 손짓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 어린놈은 데려갈 필요가 없거든. 대장이 늙은 놈 둘만 잡아 오래.”
마법사가 다가가 엎어져 있는 사람을 바로 눕혔다. 과연 두 사람에 비해 확연히 어린 소년이었다.
소년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는 마법사를 향해 도튼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죽이지는 않고 기절만 시켰어. 그런데 이놈들 굉장히 시끄럽네. 어차피 귀염둥이에 실으려면 조용히 시키는 게 낫겠지.”
마법사가 뭐라고 채 말을 꺼내기도 전에 등 뒤쪽에서 퍽퍽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법사가 급히 고개를 돌렸을 때는 이미 상황은 끝난 후였다. 독기 가득한 욕설을 퍼붓고 있던 둘을 기절시켜 놓고 나니 주위가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도튼은 휘파람을 불며 그들의 갑주부터 벗겼다. 정원 외에 둘씩이나 더 태우는 것인 만큼, 귀염둥이가 힘들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물론 그들의 품속을 샅샅이 뒤져 묵직한 돈주머니를 자신의 품속에 챙기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도튼은 돈이 될 만한 것을 모조리 챙긴 뒤 그 중 몇 개를 마법사에게 던져 주며 빙그레 웃었다.
“이건 자네 몫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