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14화 (81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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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마법진이 그려져 있는 방 중심부에는 무시무시하게 생긴 괴물이 쇠사슬에 묶여 있다. 마치 개 줄에 묶여 있는 개처럼 얌전히 누워 있었기에 전체적인 크기를 짐작하기는 어려웠지만, 초대형 몬스터라고 할 수 있는 오우거(Ogre)와 비슷한 크기가 아닐까 짐작되었다.

괴물은 지금까지 알려져 있는 그 어떤 몬스터와도 상이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체형에 비해 비정상적일 정도로 입이 컸고 강철도 뚫어버릴 듯한 무시무시한 송곳니들이 잔뜩 튀어나와 있다. 더군다나 괴물의 몸체를 보호하고 있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털이 잔뜩 덮인 가죽 같은 게 아니었다. 마치 게딱지 같은 두터운 갑옷판 같은 것이 괴물의 온 몸을 뒤덮고 있었다.

그런 괴물을 사랑스럽다는 눈길로 바라보고 서있는 후덕한 인상의 노인. 괴물의 기괴한 생김새와 그의 애정 어린 눈빛이 묘한 불일치를 일으키고 있었다. 이때, 그의 뒤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노인은 자신만의 시간을 방해받은 게 불쾌하다는 듯 싸늘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인가?”

곧이어 맑으면서도 굉장히 조심스러워 하는 듯한 음성이 들려왔다.

“보고드릴 것이 있습니다, 소장님.”

연구소장은 곧이어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기억해 냈다. 외곽 경비를 책임지고 있는 여마법사, 마를린의 목소리였던 것이다. 연구소장은 천천히 뒤로 돌아섰다. 그의 눈빛은 괴물을 바라보고 있을 때와는 달리 아주 차갑게 굳어 있었다.

“무슨 일인데, 내 휴식 시간을 방해한 건가?”

만약 하찮은 일이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눈빛이었기에 마를린은 어깨를 한껏 움츠렸다.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오늘 아침에 동굴 초입 부근에서 있었던 침입자의 흔적에 대해 보고했다. 침입자들을 처리하기 위해 휘하의 키메라 오크들을 보냈는데,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것도 말이다.

키메라의 엄청난 이동 속도로 봤을 때, 임무를 마치고 돌아올 때가 한참 지났던 것이다.

“흠, 3명의 침입자라……?”

겨우 셋이서 20여 마리가 넘는 키메라들을 상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물론 여섯 마리를 처치한 것도 의외의 일이긴 했지만, 마지막에 출동시킨 20여 마리는 격이 다르다. 그 숫자도 숫자거니와 키메라 오크 부대를 이끌고 있는 CE004는 CE003과는 격을 달리할 정도로 강한 놈이다.

3명의 침입자 중에 그래듀에이트급 실력자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 이상, 키메라들을 당해 낼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렇기에 마를린은 키메라 부대로부터 연락이 없자 곧장 연구소장에게로 달려온 것이다.

잠시 미간을 찌푸리던 연구소장이 싸늘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연구소 안까지 침투해 들어온 건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동굴 입구 쪽에서 불을 피워 음식을 해 먹으려 한 것으로 보아, 비를 피하다 우연히 들어오게 된 것 같습니다.”

이때, 한 사내가 황급히 달려와 연구소장에게 보고했다.

“소장님, TG086이 갑자기 폭주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사내의 보고에 연구소장의 인상이 확 일그러졌다. 지금까지 실험에 투입된 여러 몬스터들 중에서도 가장 많은 실패를 기록한 게 트롤이다. 그리고 키메라화에 성공한 후 1개월 이상 정상 작동했을 때에만 부여받을 수 있는 게 ‘G’ 인식번호였다.

“젠장. 6개월이나 지났기에 성공한 줄 알았더니, 지금에야 폭주를 시작하다니…….”

G 인식번호를 부여받을 정도라면 안정화에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고, 그 실험체의 제작법을 기준으로 대량생산 체제를 구축하는 게 상례다. 그런데 또다시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트롤 키메라들 중에서 G 인식번호를 부여받은 후에 문제가 터진 게 벌써 20여 마리에 달했다.

키메라 트롤의 엄청난 힘에 생각이 미친 연구소장은 다급히 물었다.

“피해는?”

“그리 크지는 않습니다. 다행히도 폭주 초기 단계에 눈치챘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그건 불행 중 다행이로군.”

“간신히 제압하긴 했습니다만, 진정제가 전혀 먹혀들지 않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폐기처분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며 조장님께서…….”

연구소장은 사내의 말을 끊으며 짜증스런 어조로 버럭 언성을 높였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폭주의 원인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는데 마지막 남은 골드 넘버를 없애 버리자니. 대가리가 달렸으면 문제점을 찾아낼 생각을 해야지. 뭐, 폐기처분하는 게 낫겠다고?”

연구소장은 무시무시한 기세로 사내에게 명령했다.

“로므렌에게 전해! 무슨 짓을 해서라도 원상태로 만들어 놓으라고 말이야.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하면 그 쓸모없는 대가리를 오크에게 붙여 버리겠다고. 알겠나?”

“예, 소장님.”

사내를 내보낸 후에 연구소장은 답답한지 이리저리 서성이다 마를린에게로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아, 참. 무슨 말을 하고 있었지?”

최대한 평정을 유지하려고 하는 듯 했지만, 연구소장의 인상은 이미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마를린은 내심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이렇게 재수가 없을 수가. 하필이면 지금 그 빌어먹을 트롤이 폭주를 하다니……. 후덕한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연구소장은 겉모습처럼 결코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의 기대에 못 미치면 한없이 잔인해질 수도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하기야 그러니까 이런 비밀 연구소의 소장 자리를 꿰찰 수 있었던 것이겠지만.

마를린은 잔뜩 긴장해서 대답했다.

“침입자에 대해 보고를 드리고 있었던 참이었습니다.”

“아, 참 그랬었지.”

연구소장은 생각해 볼 것도 없다는 듯 마를린에게 지시했다.

“마법사 길드에 통보하여 이쪽으로 들어온 모험가들 중에서 그래듀에이트급 정도의 실력자가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게.”

3인의 침입자 중 그래듀에이트급이 한 명 정도는 끼어 있을 거라는 것은 그녀도 이미 짐작한 바였다.

“예. 그런데 만약 있다면 어떻게 처리하면 될까요?”

“그건 차후에 생각해 보기로 하지. 그 정도 실력의 모험가라면 우리 쪽에서 손을 쓰기 보다는, 길드 차원에서 해결하는 게 좋을 테니 말이야. 그런데 사체 수거는 어떻게 했나?”

사체 수거라는 말에 마를린은 속으로 뜨끔했다. 규정대로라면 피 한 방울조차도 흙 속에 스며들지 못하게 완벽하게 처리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녀는 용기사에게 들킬까 봐 그냥 놔두고 돌아왔던 것이다. 더군다나 마지막으로 파견한 24마리의 사체는 어느 산골짜기에서 죽었는지조차 확인이 안 된 상황이다.

“마지막으로 행방불명된 24마리의 키메라는 아직 처리하지 못했습니다. 모두 전멸을 한 것인지, 혹 전멸을 했다면 그 장소가 어디인지 알 수가 없기에……. 죄송합니다. 제가 처리하고 싶지만 이제 제 휘하에는 키메라가 단 한 마리도 남아있지 않아서…….”

“쯧, 마커스에게 말해둘 테니 길드 쪽 일부터 처리한 다음, 키메라를 보충 받아 마무리 짓도록 하게. 알겠나?”

“예, 소장님.”

“난 바쁜 일이 생겨서 이만 가 봐야겠네. 다음에 보세.”

마를린으로서는 다행스럽게도 소장은 더 이상 그녀와 대화를 나누고 싶은 생각이 없었던 모양이다. 하기야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지금 그의 신경은 온통 TG086에게로 쏠려 있을 테니 말이다.

연구소장이 허둥지둥 자리를 뜬 후에야 마를린은 안도의 한숨을 휴우 내쉬었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생각했을 때 매섭게 질책을 당할 줄 알았는데, 별 추궁도 당하지 않고 얼렁뚱땅 넘어가 버린 것이다.

‘재수 없게 일이 겹쳐 왕창 깨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 덕분에 쉽게 넘어가 버렸네.’

하지만 지금 안도의 한숨이나 내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연구소장도 그래듀에이트급 실력자의 개입을 걱정하고 있지 않은가. 그녀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중얼거렸다.

“그래듀에이트가 그리 흔한 것은 아니니, 곧 꼬리를 잡을 수 있겠지. 어쨌거나 단순한 모험가들이어야 할 텐데…….”

마를린은 왠지 찝찝한 마음이 드는 것을 참기 힘들었다. 그 정도 실력자가 용병이나 모험가 따위로 뛰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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