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의 최고의 로망
마도왕국 알카사스를 움직이는 실세가 국왕이 아니라 원로원이라는 것은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는 공공연한 사실이다. 원로원이 지닌 힘은 마법사들에게서 나온다. 왕국 내 마법사들의 대부분을 회원으로 거느리고 있는, 마법사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단체인 마법사 길드가 원로원이 지닌 힘의 원천이었던 것이다. 길드에서 성장한 마법사들이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가 바로 원로원 의원이었기에 그런 권력의 고리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원로원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마법사 길드장. 그런 그에게 커다란 공로를 세울 기회가 뜻하지 않게 찾아왔다. 원로원 직속의 비밀연구소들 중 한곳에서 길드 본부에 협조 요청을 보내온 것이다. 비밀연구소에 침투하려고 한 첩자들을 잡아달라는 것이었다. 그 어떤 댓가를 치르더라도…….
길드장은 중앙지구장에게 그 일을 맡겼다. 자신도 공을 세우고, 또 자신의 오른팔인 중앙지구장도 공을 세울 수 있도록. 그래야 자신이 원로원으로 들어갈 때 그가 길드장이 되어 자신의 뒤를 받쳐 줄 수 있을 게 아닌가.
명령을 받은 중앙지구장은 곧바로 엄청난 현상금을 내건 뒤 휘하 길드원들을 총 동원해 몰몬트 산맥 주변을 샅샅이 뒤져 비밀연구소에 접근했음직한 모험가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가 수색에 투입한 마법사의 숫자만 무려 5백여 명. 마법사 한 명당 몇 개의 마을만 살펴보면 산맥 전체의 마을을 다 훑어볼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인원이었다. 더군다나 마법사들은 기동성이 좋다. 각자 공간이동 마법을 통해 꽤 먼 거리까지도 이동이 가능했으니까.
물론, 왕국 내에는 개인이 임의로 공간이동을 하려면 커다란 제약이 뒤따른다. 왕국 곳곳에 빈틈없이 세워진 마법탑에서 역장을 방출하고 있는 탓이다. 하지만 왕국 내의 모든 마법탑은 길드의 손아귀에 있었다. 공간이동에 방해가 되는 마법탑들에 연락을 보내 잠시 역장 방출을 중지시키면, 최단시간 내에 마법사들을 필요한 지점으로 공간이동을 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
마을에 도착한 마법사가 가장 먼저 뒤질 곳이 여관일 것은 뻔한 일. 이런 상황에서 타지에서 들어온 투숙객을 잡아내지 못하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한 것이다.
수상쩍은 타지 사람을 가장 먼저 찾아낸 것은 ‘스틴’이라는 마법사였다. 그는 곧바로 자신이 알아낸 사실을 상부에 보고했다. 그런 다음 그가 두 번째로 통신을 보낸 사람은 자신의 친구였다. 자신의 행운을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다.
“야, 엉뚱한 곳에서 헛물켜지 말고 이쪽으로 와.”
「무슨 헛소리야. 나 지금 바빠.」
“바쁜 소리 하고 자빠졌네. 거긴 아무리 뒤져 봐야 나올 게 없거든.”
수정구 속에 비치고 있던 친구의 표정이 왈칵 일그러지는 게 보였다.
「그건 또 무슨 헛소리야? 혹시 상부에서 무슨 연락이라도 받았냐?」
“에헴! 그게 아니라, 그놈을 조금 전에 내가 찾아냈다는 말씀이지.”
친구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거 정말이냐?」
스틴은 짐짓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당근이지.”
「이런 빌어먹을! 좋겠다. 좋겠어.」
부러워하는 친구에게 스틴은 음흉한 목소리로 말했다.
“할 일도 없을 텐데 이쪽으로 넘어와라. 나랑 같이 있다 보면 콩고물이라도 주워 먹을 수 있을지 모르잖아.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스페슈라라는 마을이야.”
「스페슈라?」
“응.”
「알았어. 조금만 기다려. 금방 간다.」
몰몬트 산맥에 도착한 중앙지구 소속 마법사들은 자유자재로 공간이동 마법을 쓰고 있는 중이었다. 타국에서는 아직 모르고 있었지만, 초대형 마법진을 통해 생산된 대량의 마나가 집결되는 장소인 마법탑에서만 공간이동 마법을 방해하는 역장을 뿌릴 수가 있다. 즉, 마법탑이 없는 이런 산골짜기에서는 자유롭게 공간이동 마법을 쓸 수가 있다는 말이다.
잠시 후, 스틴의 말에 부리나케 공간이동 마법을 통해 현장에 도착한 친구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그놈 어디 있냐?”
“어디긴 어디겠어. 저기 보이는 여관에 있지. 무려 5일 동안, 밥 먹을 때 외에는 방 안에서 꼼짝도 안하고 있었단다.”
“이런 젠장! 기왕이면 내게 배정된 마을에 숨어 있을 것이지, 하필이면 이곳에 숨어 있을 게 뭐람. 그런지도 모르고 샅샅이 뒤지고 다니느라 개고생만 했네.”
연신 투덜거리는 친구의 모습에 스틴은 입 꼬리가 귀에 걸릴 정도로 환히 웃으며 말했다.
“흐흐, 행운의 여신께서 날 보고 방실방실 웃고 계시나 봐. 상금을 받게 되면 뭘 할까나? 그동안 돈이 없어 해 보지 못했던 실험이나 원 없이 해 봐야겠다.”
“쩝, 게다가 이번 일로 지구장님께 눈도장 확실하게 찍었을 테니. 부럽다, 부러워.”
스틴의 행운에 입맛을 다시던 그는 여관을 향해 ‘뷰 마나 포스(View Mana Force)’를 사용하여 목표물을 구경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눈에 잡힌 것은 일반적인 시민들뿐이었다.
“없는데? 네가 까불고 있는 동안에 혹시 놈이 도망쳐 버린 거 아냐?”
친구의 지적에 스틴은 ‘그러니 네가 안 되는 거야’ 라고 말하듯 혀를 차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쯧쯧, 첩자들을 그런 단순한 생각으로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하긴, 나도 하마터면 그놈을 놓칠 뻔했지.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법으로는 놈의 기척을 잡아낼 수 없어. 아마도 기척을 숨기는 마법 따위를 쓰는 모양이야.”
“그럼 ‘뷰 매직 포스(View Magic Force)’를 쓰면 되잖아?”
스틴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그것도 안 통해.”
“그렇다면 대탐색마법(對探索魔法) 2가지를 동시에 쓰고 있다는 말인데…….”
고개를 갸웃거리며 여기까지 말하던 친구는 문득 떠올랐다는 듯 스틴에게 다급히 물었다.
“혹시 첩자가 마법사 아냐?”
“아니야. 내가 패밀리어를 집어넣어서 확인까지 했어. 잘 발달된 근육을 지닌 건장한 사내놈이더라고. 내가 그런 기본적인 것도 확인해 보지 않고 상부에 보고를 했겠냐?”
“흠, 그렇다면 그놈이 틀림없…….”
여기까지 말하던 친구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갑자기 뭔가 떠오른 것이다.
“야, 너 저 녀석이 5일 동안 줄곧 여관 안에만 처박혀 있었다고 했지?”
“응. 그 덕분에 찾는 게 쉬웠어. 여관에서 일하는 꼬마 녀석이 오랜만에 찾아온 장기 투숙객이라며 떠벌여댔었거든.”
“설마…, 그 5일 동안 계속 마법도구를 돌리고 있었던 거 아냐?”
친구의 말에 스틴의 안색도 창백하게 질렸다.
“허걱! 그, 그렇구나…….”
5일 밤낮으로 마법도구를 구동시킨다?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법도구를 구동시키려면 엄청난 마나가 지속적으로 소비되기 때문이다. 그런 마나를 감당할 수 있다면 검사의 실력도 상당해야 하겠지만, 최고급 마법도구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효율이 나쁜 싸구려 마법도구라면 제아무리 그래듀에이트급 실력자라고 해도 채 1시간도 구동시키지 못하고 마나가 고갈될 게 뻔했으니까.
마법도구의 가격은 효율이 좋을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비싸진다. 그런 엄청난 물건을 소유하고 있는 인물이 하찮은 자일 가능성은 없다. 한번 쓰고 버리는 그런 소모용 첩자 나부랭이는 절대로 아니라고 봐야 했다.
스틴은 다급히 품속에서 수정구를 꺼내 상급자를 찾았다. 이 사실을 알리고 좀 더 많은 병력을 보내달라고 요청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