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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구 속의 인물은 짙은 불쾌감을 감추지 않고 으르렁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시간은 새벽 4시. 단잠을 방해받은 데다, 설상가상으로 보고받은 내용조차도 마음에 들기 않았기 때문이다.
「그 자를 놓쳤다고?」
“예, 그렇습니다.”
순간 단장의 얼굴에 짙은 불쾌감이 떠올랐다. 몰몬트 분견대에 내려진 지시에 대해서는 부단장의 보고를 받았기에 이미 알고 있었다. 길드의 요청에 따라 적의 첩자를 체포하는 임무. 주도권이 길드에 있는 만큼 실패했다고 해서 별 문제될 것은 없었다.
그를 불쾌하게 만든 건 그런 하찮은 보고를 위해 자신의 단잠을 깨웠다는 것이다. 이런 건 부단장, 아니 그 밑에 있는 참모에게 보고해도 충분하다고 봐야 했다.
하지만 저 망할 스트론 녀석은 자신의 단잠을 깨웠고, 그것 때문에 단장은 바짝 독이 올라 있는 상태였다. 통신을 그냥 끊어 버리려던 단장은 마음을 바꿔 화풀이를 하기 위해 스트론을 질책하기 시작했다.
「귀관은 평상시에 부하들의 훈련을 어떻게 시킨 건가? 그래듀에이트를 넷씩이나 보냈는데, 마법사들이 주문을 외우는 그 짧은 시간동안 놈의 발을 붙잡는 것도 못했다는 게 말이 되나?」
질책성 말을 듣고서야 스트론은 아직 단장에게 첩자가 오너라는 보고가 올라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기야 그럴 수도 있으리라. 첩자가 오너라는 건 그도 마지막 순간에 길드로부터 들은 것이었으니까.
“모르셨습니까? 상대는 오너였습니다. 그래서…….”
「호오, 오너였다고? 그래, 사상자는 없었나?」
단장은 스트론의 말을 다 듣지도 않은 채 말을 끊었다. 방금 전과 달리 질책어린 음성이 아닌 흥미롭다는 듯한 말투였다.
“다행히 사상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입이 찢어지도록 하품을 한 후, 단장은 졸음이 가득한 음성으로 물었다.
「대단하군 그래. 상대가 타이탄을 꺼냈는데도 불구하고 사상자가 나오지 않았다니 말이야. 그래, 그 자가 꺼낸 타이탄의 종류는 뭐였지?」
“그놈은 타이탄을 꺼내지 않았습니다.”
「타이탄도 꺼내지 않았다면서 그 자가 오너라는 것은 어떻게 안 거지?」
“출동하려는 순간에 길드로부터 첩자가 오너라는 급보가 날아왔기에 제가 직접 부하들을 모두 이끌고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첩자는 타이탄을 꺼내지도 않았다. 거기에 비해 이쪽은 분견대 전체를 다 동원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첩자는 이쪽의 포위망을 돌파하고 도망쳤다. 결국 이런 말이나 마찬가지다.
스트론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구차한 변명만 늘어놓고 있다고 느낀 단장의 얼굴에 더욱 짙은 불쾌감이 어린다. 그걸 재빨리 눈치챈 스트론이 다급히 말했다.
“하지만 첩자가 코린트의 기사라는 것을 알고만 있었더라도…….”
스트론의 말에 졸음이 가득했던 단장의 얼굴 표정이 경악으로 바뀌었다.
「코, 코린트라고? 그 말 책임질 수 있나?」
“물론입니다. 한밤중이라고는 하지만 제가 직접 검을 맞대봤습니다.”
잠시 혼란에 빠져있던 단장은 곧 뭔가를 떠올린 듯 여유를 되찾았다. 그는 콧방귀를 뀌며 대꾸했다.
「검형(劍形;Form)이나 스텝의 특징 따위야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지. 코린티아 검법을 연구한 게 우리나라뿐일 거라고 생각하나?」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하지만 생과 사를 가르는 그 찰나의 순간에서까지 그런 연극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지요.”
「첩자를 그렇게까지 몰아붙였다고?」
“예. 뭐 그건 어렵지 않았습니다. 수적 우세도 우세였지만, 만반의 준비를 갖춘 상태에서 기습해 버렸거든요.”
기습공격이라는 스트론의 말에 단장의 얼굴이 점차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그 자가 잠자리에 든 것을 확인한 후에 마법으로 일제사격을 퍼붓고…….”
단장은 더 이상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으르렁거렸다.
「코린트의 기사를 상대로 그런 짓을 하다니! 자네 제정신인가?」
스트론은 어쩔 수 없었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저는 그자가 코린트의 기사인 줄 전혀 몰랐습니다. 그저 길드를 도와 그자를 포획하라는 지시만 받았을 뿐입니다. 가급적이면 생포하되, 그게 여의치 않으면 죽여도 무방하다고 부단장님께서 직접 명령하셨거든요. 그래서 저는 확실하게 처리하려고 노력했을 뿐입니다.”
거침없는 스트론의 대답에 단장은 난감하다는 듯 말했다.
「휴우, 아무리 부단장이 그렇게 지시했다고 해도 그렇지. 그리고 기습공격을 했으면 잡기라도 했어야지, 이렇게 놓쳐 버리면 아주 곤란해지는데…….」
잠시 어떻게 해야 할지 이리저리 고민하던 단장은 한숨을 푹 내쉬며 명령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놈을 잡아! 이 사실이 코린트에 알려져서는 절대로 안 된다. 알겠나?」
“이곳 분견대 인원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더군다나 그 자는 기척을 완벽하게 숨기는 마법도구까지 지니고 있단 말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쯤 녀석의 시체와 함께 코린트의 타이탄을 가지고 단장님을 찾아뵈었겠죠. 어쨌거나 그 망할 놈의 마법도구가 문젭니다. 덕분에 길드에서 나온 마법사들은 눈 감은 장님들처럼 쓸모가 없게 됐습니다. 요새 사령관에게 말해서 보유하고 있던 키메라들을 전부 다 동원하긴 했습니다만, 별로 도움은 되지 않고 있습니다. 워낙 날쌘 놈이라 나뭇가지를 타고 도약해서 움직이는데, 제아무리 키메라의 후각이 뛰어나다고 해도 그런 흔적을 따라 추적할 수가 있겠습니까?”
심각한 표정으로 스트론의 보고를 듣고 있던 단장이 이윽고 입을 열었다.
「내 생각에는 키메라보다는 정령사 쪽이 추적에 훨씬 도움이 될 듯싶군. 길드에 협조를 구해서 최대한 많은 숫자의 정령사들을 보내달라고 하겠네.」
“가급적이면 빨리 보내 주십시오. 이러다 자칫 놈을 놓칠 수가 있습니다.”
단장은 못마땅하다는 눈빛으로 스트론을 한참동안 노려보더니 수정구에서 모습을 감췄다. 통신을 끊은 것이다. 단장의 매서운 눈초리를 봤음에도 불구하고 스트론은 태연하기 짝이 없었다. 단장의 표정을 보니 자신의 변명이 제대로 먹혀들어갔다는 것을 눈치챘으니까.
그는 잠시 기지개를 켠 후 선임 마법사를 불렀다. 통신실에서 대원들의 추적 작업을 총괄하고 있던 선임 마법사는 피곤에 지친 안색이 역력했다.
“용기사들은 아직 안 일어났겠지?”
야간 시력이 별로 좋지 못한 와이번은 밤에 날아오르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그 때문에 주위가 어둑해질 무렵 스페슈라 마을에서 철수해서 요새에 돌아와 있었다. 와이번 덕에 용기사와 마법사들 역시 한숨 자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중이다.
“예, 대장님. 모두들 깨울까요?”
“아니, 조금이라도 푹 쉴 수 있도록 놔둬. 대신, 새벽에 일어나면 모두들 배신자 수색에 복귀시키도록 해.”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단장님께서 이번 일을 아신다면…….”
스트론은 선임 마법사를 향해 장난스럽게 한쪽 눈을 찡긋해 보이며 말했다.
“뭐 상관없잖아? 그놈이 마법도구를 이용해서 기척을 숨기고 있는 통에 용기사들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하면 그만이니까. 흠, 아니면 놈이 워낙 빨라 넓은 지역까지 수색을 확대했다고 하면 되지. 안 그래?”
“그, 그건 그렇습니다만…….”
이때, 수정구를 통해 통신을 받던 마법사 하나가 흥분한 목소리로 스트론에게 보고했다.
“제5수색조가 첩자의 흔적을 찾아냈답니다.”
“위치는?”
“145구역에서 180구역으로 넘어가는 경계선 부근입니다.”
스트론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선임 마법사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럼 그쪽은 자네한테 맡기겠네.”
“수색조와 합류하시려는 겁니까?”
“상대가 상대인 만큼, 그러는 게 좋지 않겠나? 그러니 배반자 놈들을 부탁하네.”
“염려 놓으십쇼.”
통신실을 뛰쳐나온 스트론은 요새에 남아있던 마지막 전력까지 박박 긁어 제5수색조와 합류하기 위해 출발했다.
1개 분대급의 기사단 분견대가 배치되어 있는 세브롱 요새였지만, 지금 이곳 요새에 남아있는 기사단 요원이라고는 통신실에 있는 마법사 몇 명이 전부였다. 부대의 효율적인 통제를 위해 마법통신망을 유지시켜야 한다는 필요성이 없었다면 이들까지도 모두 다 추적 작전에 동원되었으리라.
어젯밤부터 시작된 추적 작전은 지금까지도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그 때문에 통신실에 있는 모든 마법사들은 수면부족으로 두 눈에 핏발이 서 있는 상태였다.
“전원 참고할 것. 목표는 342구역을 벗어나 256구역으로 들어섰다. 반복한다. 목표는 342구역을 벗어나 256구역으로 들어섰다, 이상 통신실.”
수정구를 향해 다급하게 전달 사항을 말해 주던 마법사는 전송을 끝내자마자 짜증스런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이런 젠장, 답신이 오지 않으니까 제대로 수신이 되었는지 알 수가 없잖아.”
이때, 외부 통신을 받기 위해 놔둔 두개의 수정구 중 하나가 점멸하기 시작했다. 채널을 열자 호크 기사단의 정식 복장을 한 마법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십니까. 몰몬트 분견대 당직 마법사 루트 도미네스입니다.”
「수고가 많다. 10분 후, 부단장님께서 지원부대를 이끌고 그쪽 공간이동 마법진으로 이동하실 예정이다. 그에 대한 준비를 부탁한다. 알겠나?」
“옛.”
통신을 옆에서 엿들은 선임 마법사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버렸다. 첩자의 소속이 소속인 만큼 상당한 규모의 지원부대가 달려올 줄은 알고 있었지만, 부단장이 직접 올 거라고는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번 작전의 성격상 성공하더라도 외부에 공표조차 할 수 없는데다가, 실패했을 때는 혹독한 책임 추궁이 뒤따를 게 뻔했기 때문이다.
잠시 후 겨우 정신을 차린 선임 마법사가 다급히 부하에게 명령했다.
“자네는 빨리 가서 역장 발생장치를 끄도록 하게.”
“예.”
“그리고 자네는 귀빈실을 점검하도록 하게. 부단장님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었겠지? 안 그래도 기분이 썩 좋지 않으실 텐데, 괜한 꼬투리 잡히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란 말이야!”
“예.”
이제 남은 시간은 겨우 10분! 부단장을 맞이할 준비를 하기에는 턱도 없이 모자랐다. 그 탓에 선임 마법사는 꽁지에 불이 붙은 것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녀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