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21화 (817/930)

얼추 10분이 된 것 같자 선임 마법사는 허둥지둥 옥상(屋上)으로 달려갔다. 공간이동 마법진이 마법탑 옥상에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채 숨을 고르기도 전에 마법진 위에서 희뿌연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빛이 멈춘 순간, 40여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서있는 게 보였다.

선임 마법사는 깡마른 체구의 사내에게로 달려가 고개를 조아렸다. 짧게 다듬은 콧수염과 얇은 입술 탓에 아주 냉정하게 보이는 사내였다.

“어, 어서 오십시오, 부단장님. 저는 분견대의 선임 마법사인 레스터 클라인이라고 합니다.”

부단장이 거느리고 온 부하들의 숫자는 몇 되지 않았지만, 그 전력은 엄청났다. 오너의 숫자만 무려 20명! 타이탄 숫자로만 따진다면 거의 4개 분대 급이다. 그런데 이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워낙 다급한 상황이었기에 호크 기사단의 핵심인원만 데리고 온 것이었고, 나머지 대원들은 준비가 되는 대로 이쪽으로 공간이동해 올 것이라고 했다.

부단장은 마중을 나온 클라인의 인사조차 받지 않은 채 곧바로 물었다. 그의 음성에는 탐탁지 않은 심정이 그대로 묻어나온 듯 차갑기만 했다.

“스트론은 지금 어디에 있나?”

“대장님은 현재 추적 현장에서 대원들의 지휘를 하고 계시는 중입니다.”

이곳은 요새에서 가장 높이 솟아올라 있는 마법탑의 꼭대기다. 아직 해가 뜨지는 않았지만 점차 어슴푸레하게 밝아오고 있었기에 주변을 바라보는 데 있어서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클라인은 저 멀리 보이는 산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보고했다.

“다행히도 키메라가 첩자의 흔적을 찾아냈습니다. 지금 놈을 맹추격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클라인의 보고에 부단장의 싸늘하게 굳은 얼굴에서 일순 안도감이 스쳐지나갔다.

“그래? 그나마 다행이로군.”

부단장은 데리고 온 기사들을 돌아보며 지시했다.

“너희들은 빨리 달려가서 스트론을 도와주도록 해라.”

“옛.”

부단장과 함께 온 마법사들이 클라인에게 모여들어 공간이동 좌표를 물어봤다. 그리고는 저마다 공간이동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하는 마법사들. 그런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부단장은 고개를 돌려 클라인에게 물었다.

“길드에서 정령사는 도착했나?”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망할 녀석들. 단장님께서 직접 요청을 하셨는데도 아직까지 보내지 않고 있다니!”

단장에게 듣기로는 첩자 놈은 탐색마법으로는 찾아낼 수가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추적을 하기 위해 정령사는 필수가 아니겠는가. 그걸 뻔히 알고 있을 텐데도, 자신이 기사단 전력의 절반을 이끌고 여기까지 올 동안 정령사 몇 명 보내주는 것조차도 하지 않고 있다니……. 더군다나 이번 일이 길드 쪽에서 지원요청을 한 탓에 벌어진 일이 아닌가.

“그래도 놈의 흔적을 찾았다니 다행이긴 하지만…….”

이때, 통신실에 있던 마법사 한 명이 헐레벌떡 달려 나와 클라인에게 보고했다.

“서, 선임 마법사님! 흔적을…, 흔적을 놓쳤답니다.”

클라인이 뭐라고 대꾸하기도 전에 부단장이 끼어들었다.

“그건 또 무슨 소리냐? 자세하게 보고하도록 해라.”

마법사는 방금 전에 들어온 소식을 전했다. 첩자의 흔적을 놓쳤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대원들은 서로간의 간격을 넓히며 새로운 흔적이 없는지 그 인근을 샅샅이 뒤지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지금까지는 혈흔을 남기며 도망쳤기에 추적이 용이했다고 합니다만, 무슨 수를 썼는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혈흔이 사라져 버렸다고 합니다.”

부단장은 답답하다는 듯 뒤로 돌아서서 난간을 짚었다. 그의 눈앞으로 광대한 몰몬트 산맥이 한눈에 펼쳐져 있다. 문제는 지금 보이는 이게 몰몬트 산맥의 전부가 아니라는 데 있었다. 지금 그의 시야에 보이는 것은 산맥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설혹 마법의 힘을 빌린다고 해도 저 넓은 산맥 안에서 첩자가 마음먹고 숨는다면 사막에 떨어진 바늘을 찾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곳에 배치되어 있는 용기사가 일곱 명이었나?”

“옛, 부단장님.”

이때, 마법탑 중앙에 마련되어 있던 사각형의 문이 열리더니, 승강기를 타고 와이번이 올라오는 게 보였다. 와이번이 일곱 마리나 되었기에 승강기는 제일 꼭대기 층인 와이번 우리에서 옥상으로 몇 번이나 오르락내리락 해야만 했다.

출동 준비를 하고 있는 용기사들을 향해 부단장이 다가갔다. 자신을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는 용기사들에게 부단장은 힘들겠지만 적 오너의 수색 작업에 한층 힘을 쏟아 달라며 격려 겸 당부를 했다.

그런 부단장을 뒤에서 바라보며 클라인은 난처하기 짝이 없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떻게 용기사들에게 배신자를 찾으러 가라며 지시를 내릴 수가 있겠는가.

그는 머리가 아픈지 이마를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러다 동부지구장의 부탁을 이행하지 못할 경우, 그 후환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용기사와 마법사를 등에 태운 와이번은 날개를 앞발 삼아 네 발로 엉금엉금 기어가 마법탑 가장자리로 가서는 아래로 뛰어내렸다.박쥐 날개처럼 생긴 거대한 날개를 활짝 펼치며 거대한 와이번이 순차적으로 날아오르는 장면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이 뛰게 만들 정도로 장관이었다. 그것도 한두 마리가 아닌 일곱 마리가 날아오르자 곧바로 하늘이 꽉 차는 듯한 느낌이었다.

손을 흔들며 용기사들을 배웅한 부단장은 그들의 모습이 멀어지자 클라인에게로 시선을 돌린 뒤 지시했다.

“지금 당장 길드 본부로 통신을 넣어라. 10분 내에 정령사를 보내 주지 않으면 우리들은 이번 임무에서 손을 뗄 거라고.”

손을 떼겠다는 단호한 말에 클라인의 안색이 일순간 파랗게 질렸다. 첩자가 코린트의 기사일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기사단이 손을 떼 버리면 그 뒤는 어떻게 될지 뻔했으니까.

“서, 설마 진짜로 손을 떼실 건…….”

“쓸데없이 토 달지 말고, 지금 당장 내가 시키는 대로 해.”

“예…, 옛. 부단장님.”

통신실을 향해 허둥지둥 달려가는 클라인의 뒤통수를 노려보던 부단장은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욕설을 내뱉으며 투덜거렸다.

“멍청한 놈들! 대가리는 좋은지 모르겠지만, 당최 일의 선후를 몰라.”

마법사 길드의 어설픈 일처리에 짜증이 나 욕설을 내뱉기는 했지만, 지금 그의 주위에는 마법사들이 너무 많았다. 부단장은 자신이 데리고 온 마법사들 중 선임을 불렀다.

“루카스.”

“예, 부단장님.”

“저 녀석 하는 거 보니, 아무래도 안심이 안 되는군. 자네가 통신실을 책임지도록 하게.”

“그렇게 하겠습니다.”

분견대 선임 마법사의 지위가 부단장이 데려온 루카스보다 높을 수는 없다. 그런 만큼 굳이 부단장이 지시를 내리지 않아도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의 모든 마법사들은 루카스의 지휘 하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단장이 굳이 루카스에게 그런 명령을 내린 것은, 방금 전의 욕설이 ‘길드의 마법사들’을 향한 게 아니라 허둥지둥 달려간 ‘선임 마법사’를 향해 한 것처럼 꾸미기 위해서였다. 방금 전 자신의 언사가 길드 쪽 귀에 들어가면 귀찮아지기 때문이다.

이때, 저 멀리 장대하게 펼쳐진 산맥 쪽이 조금씩 붉어지기 시작했다. 해가 떠오르려 하는 것이다. 그쪽으로 시선을 돌린 부단장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딴 건 모르겠지만 정말이지 경치 하나는 끝내주는 곳이군…….”

마법탑 옥상에서 본 그날의 일출은 부단장의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을 정도로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부단장이 호크 기사단 전력의 절반을 데리고 와서 합류했다고 해도 상황은 전혀 호전되지 않고 있었다.

‘젠장, 재수 더럽게 걸렸어.’

넓디넓은 몰몬트 산맥 안으로 도망친 기사 한 명을 잡아들이는 일이다. 호크 기사단 전력 절반을 쑤셔 넣는다고 해도 쉬울 리가 없다. 그리고 그만한 전력을 투입하는 일인 만큼, 임무에 실패했을 때는 호된 질책이 뒤따를 것은 뻔한 일. 그것을 잘 알고 있는 부단장이었기에 이번 임무를 맡지 않으려고 별별 핑계를 다 준비했었다. 하지만 핑계를 채 말해 보기도 전에 단장은 부단장을 직접 지명하면서 명령했다.

“스트론에게 들으니 생사불문이라도 상관없다는 지시를 자네가 내렸다며? 그 책임을 지게.”

자신이 내뱉은 말이었기에 그로서도 어쩔 수가 없었던 것이다. 부단장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연신 찻물을 들이켰다. 이곳에 와서 벌써 여섯 잔째 마시고 있는 차다.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속을 달래는 데는 술이 좋겠지만, 부하들은 꽁지 빠지게 수색 작업을 하고 있는데 지휘관이라는 자가 태평하게 술을 마시고 있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것도 평소 규율을 그렇게 강조해 왔던 그가.

이때, 가볍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그러자 루카스가 안으로 들어오며 방금 전에 수신한 마법통신에 대해 보고했다.

“정보부에 문의해 본 결과, 행방을 알 수 없는 오너의 숫자는 약 50여 명 정도라고 합니다.”

그 말에 부단장의 인상이 왈칵 일그러졌다. 그는 이곳으로 출발하기 전에 정보부에 코린트의 오너들 중에서 현재 행방을 알 수 없는 자들의 숫자와 그 명단을 알려달라고 요청했었다. 스트론의 보고가 확실하다면 그 행방불명인 인물들 중의 하나가 지금 자신들과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 녀석일 가능성이 컸으니까.

그런데 행방을 알 수 없는 오너의 숫자가 무려 50여 명씩이나 될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왜냐하면 오너들은 전략적 파괴력이 엄청나기에 정보부에서 적국 오너들의 일거수일투족까지 치밀하게 조사하고 있었을 거라고 믿었었다.

물론, 오너 급 실력자들의 뒤를 몰래 추적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더군다나 실력이 높기로 명성이 자자한 코린트의 오너들인 만큼 접근조차 쉽지 않을 거라는 것 정도는 부단장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50여 명씩이나 되는 오너의 위치 파악이 전혀 안되고 있다는 건 문제가 크다. 코린트 기사단의 주력인 고성능 타이탄 50기라면 웬만한 국가쯤은 하루아침에 멸망시키기에 충분했으니까.

이제는 외교적 마찰 따위를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자칫 잘못하면 알카사스가 뒤집어질 수도 있는 위기 상황인 것이다. 부단장은 신경질적으로 탁자에 찻잔을 내려놓으며 으르렁거렸다.

“24시간 줄 테니, 그 숫자를 최대한 줄여 보라고 해. 그리고 이 상황을 상부에 지급으로 보고하도록.”

“예, 부단장님.”

“멍청한 새끼들! 50기? 50기가 옆집 똥개 이름인 줄 아나.”

만약 코린트의 타이탄 50기가 한꺼번에 왕국의 수도 다란스에 나타난다면 어떻게 될까? 4대강국에 들어간다는 알카사스였지만, 왕실이 파괴되고 나라 전체가 뒤집어질 가능성이 컸다.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 산맥 속에 숨어 있는 쥐새끼를 잡아 정보를 캐내야만 했다. 코린트에서 왜 오너 급 기사를 보냈고, 뭘 알아보려고 했었던 것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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