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22화 (818/930)

감찰부의 척살대

알카사스의 수도 다란스에서는 마도왕국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마법에 관련된 물품들을 아주 손쉽게 구할 수 있었다. 각종 마법서적은 물론이고, 시약이나 재료 등등……. 산지(産地)에 직접 가도 구할 수 없는 것들 역시 이곳에서는 쉽게 구할 수가 있을 정도였다.

전 대륙에서 다란스만큼 마법사들의 인구 밀도가 높은 곳이 없을 정도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법사들만 득실거리는 것은 아니었다. 검사나 상인, 모험가 등 마법물품을 구하거나 팔고자 하는 수많은 여행객들이 더 많았다. 마법사가 많은 만큼, 그들이 생산한 각종 마법물품들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륙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리는 만큼 다양한 의복의 여행객들이 뒤엉켜 상점을 둘러보며 한가롭게 걷는 게 다란스 중심가의 평상시 풍경이다. 그러다가 마음에 드는 물품이 있으면 상인과 흥정을 벌이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그들 사이로 앞만 똑바로 보고 걸음을 서두르고 있는 무리가 지나갔다. 뭔가 급한 일이라도 있는 듯. 하지만 주변에 넘치는 게 모험가고 마법사들이었기에 아무도 그들에게 흥미를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곧바로 공간이동 마법진이 설치되어 있는 공간이동 문으로 향했다. 다섯 명으로 이뤄진 모험가 파티가 공간이동 마법진이 설치되어 있는 건물로 가고 있는 모습에, 그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행인들이 관심을 가지는 건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신관과 마법사들뿐이다. 하지만 이들의 경우 복면으로 얼굴을 가려 눈만 내놓고 있었기에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이다.

공간이동 마법진에 배치된 경비병들이 꽤나 많았지만, 아무도 그들이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송신 마법진은 저쪽입니다.”

경비병이 가리키는 쪽으로 걸어가니 곧 매표소가 나왔다. 예쁘장한 아가씨가 손님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손님들. 어디로 가시나요?”

상큼한 목소리로 손님을 맞았음에도 그녀에게 돌아온 건 무뚝뚝한 음성이었다.

“그렉시아.”

“이용료는 사람은 30실버, 말은 40실버입니다. 사람 다섯 명, 말 다섯 필이니, 합계 7골드입니다.”

거금을 지불한 것에 비해 공간이동은 너무나도 허무하게 끝이 났다. 잠시 눈앞이 흔들리며 약간 어지러운 듯한 느낌이 전부였으니까. 하지만 그 잠깐 사이에 엄청난 거리를 이동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되면 마법의 경이로움에 감탄사가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일반 사람들로 하여금 마법의 위대함과 편리함을 가장 확실하게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장치가 바로 공간이동 마법진이었던 것이다.

“그렉시아에 도착했습니다. 이쪽으로 나오세요.”

마법진 밖으로 나오면 경비병들이 대기하고 있는 공간으로 연결된다. 십여 명에 달하는 경비병들이 도열해 있었고, 그 중 지휘관인 듯 보이는 자가 다가오며 말했다.

“그렉시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자, 모두들 복면을 벗고 각자의 신분증명서를 보여 주시기 바랍니다.”

여행객에 대한 신분 검사가 이뤄지는 것은 공간이동이 끝난 직후다. 수신 마법진에 한동안은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하도록 하는 마법이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아무런 저항 없이 검사가 가능했던 것이다.

일행 중 한 사내가 복면을 벗고 앞으로 나섰다. 꽤나 인상이 좋은 사내였다. 그는 지휘관에게 자신의 신분증과 마법진 이용권을 내밀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수고가 많으시군요. 자, 여기 있습니다.”

지휘관은 신분증에 기록된 내용과 여행객의 얼굴이 맞는지 꼼꼼히 살펴보며 질문을 던졌다.

“동부지역의 관문인 그렉시아에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몰몬트 산맥에 사냥을 하러 왔습니다.”

사내는 손바닥을 펴서 슬그머니 옆으로 그으며 대답했다. 지휘관의 시선이 자신도 모르게 사내의 손바닥을 따라 움직였다.

“혹시 국경을 넘어가실 겁니까?”

“사냥이 순조롭게 이뤄지면 넘어갈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는 게 있으니…….”

그러자 사내를 향해 지휘관이 딱딱한 어조로 경고했다.

“혹, 국경을 넘어가시게 되면, 필히 그쪽 나라의 검문소에 등록을 하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자동으로 우리 쪽에도 통보가 되도록 되어 있으니까요. 만약 신고도 하지 않고 국경을 들락거린 게 밝혀지면 큰 곤욕을 치를 수도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경비병들이 보기에는 힘든 각도에서 연신 손을 움직이고 있는 사내. 그리고 그런 손을 홀린 듯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는 지휘관. 대화 중 연신 손을 움직이는 사내에게 왜 자꾸 손장난을 하냐며 짜증을 낼 만도 하련만, 지휘관은 사내의 행동에 이상함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다.

신분증 확인이 끝나자 지휘관은 사내를 향해 말했다.

“평안한 여행되시길 바랍니다. 그럼 안녕히 가십쇼. 통과!”

일행들 전부의 신분증명서를 확인해야 했지만, 지휘관이 확인한 건 단 한 명뿐. 도열해 있던 경비병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당황해 했다. 부하들이 주춤거리기만 할 뿐, 자신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있자 지휘관은 짜증어린 어조로 외쳤다.

“뭣들 하나! 빨리 비켜서지 않고.”

“대장님, 신분 확인은 아직 한 분밖에 하지를…….”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빨리 비켜!”

상관의 명령에 일제히 통로를 내주는 부하들. 다섯 명의 모험가들은 무표정하게 말을 끌고 그들 앞을 지나갔다. 그들이 밖으로 나가자마자 경비병들은 상관에게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자신들이 보기에는 분명히 한 명밖에 신분 확인을 하지 않았다고. 방금 지나간 모험가들이 뭔가 이상한 마법이라도 쓴 게 아니냐고. 하지만 상관은 말도 안 된다는 듯 단호하게 말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공간이동 마법진을 방금 빠져나온 자가 무슨 짓을 할 수 있다는 말이냐? 나는 확실하게 모두의 신분증 검사를 끝냈어. 되먹지도 않은 소리 할 시간 있으면, 이 근처 청소나 해 둬.”

상관의 불호령에 의문을 제기했던 경비병들은 입을 꽉 다물어야 했다.

복면의 모험가들은 검문소를 통과하자마자 전속력으로 말을 달렸다. 급하긴 했지만, 이곳에서 공간이동 마법을 쓸 수는 없었다. 역장이 미치지 않는 거리까지 벗어나야만 하는 것이다.

도시에 설치되어 있는 역장 발생기에 얼마나 많은 마나가 공급되느냐에 따라 역장이 미치는 범위가 달라진다. 모험가들이 받은 기밀문서에 따르면 그렉시아의 마법탑에서는 평균 50킬로미터 내외의 범위에 걸쳐 역장을 발산하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안전하게 공간이동하려면 마법탑에서 최소한 60킬로미터는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밤새도록 말을 달려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그들은 목표로 했던 1차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폴른이라는 영지에 소속되어 있는 작은 마을이다. 그들은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여관부터 찾아 들어가 식사를 주문했다.

“식사는 조금 있다가 나올 겁니다.”

이렇게 말한 점원은 손님들의 옷에 먼지가 잔뜩 묻어있는 걸 발견했다.

“쉬다 가실 건가요? 마침 빈방이 몇 개 남아 있습니다, 손님.”

“아니, 식사만 하고 갈 거다. 그런데…, 여기에 말을 며칠 맡겨 두고 싶은데…….”

“걱정 마십쇼, 손님. 제 말처럼 잘 돌봐드리겠습니다.”

사근사근하게 말하는 점원에게 사내는 은화 한 개를 던져 주며 말했다.

“우리가 돌아왔을 때, 말들의 상태가 좋으면 한 개 더 주마.”

“여부가 있겠습니까, 손님.”

점원이 식사를 가지러 주방으로 들어가자 사내는 품속에서 수정구를 꺼냈다. 마법사들이 통신용으로 주로 쓰는 물건이었다. 사내의 인상이 좋기는 했지만 결코 잘생긴 얼굴은 아니다. 그걸 보면 이 마법사는 다른 마법사들과 달리 자신의 얼굴을 마법으로 뜯어고치지 않은 모양이다. 오히려 그 때문에 그가 마법사라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아채기가 힘든 것이었지만…….

마법사는 탁자 위에 수정구를 올려놓은 후, 품속에서 숯가루가 든 주머니를 꺼냈다. 약간의 숯가루를 수정구 위에 솔솔 뿌린 후, 그는 수정구 위에 손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주문이 끝났을 때, 숯가루가 저절로 움직여 수정구를 중심으로 한 마법진이 완성되어 있었다.

한순간 밝게 빛나는 듯하던 수정구에서 빛이 점차 사라졌다. 하지만 수정구 속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이럴 리가 없는데 하는 표정으로 수정구를 들여다보고 있는 마법사. 그런 마법사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온화한 표정의 중년사내가 더 이상 참지 못하겠는지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 있는 것 같군. 이렇게까지 통신을 받지 않을 리가 없는데 말이야.”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마법사는 품속에서 숯가루 주머니를 다시 꺼내며 말을 이었다.

“본부에 한번 물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방금 전에 접속이 안 된 것이 마법사의 실수로 실패한 게 아니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번에는 수정구 속에 영상이 맺혔다. 검은색 로브를 입은 음침한 분위기의 상대방을 향해 마법사는 고개를 조아리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앤트러스 특무대(特務隊), 예정대로 1차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해밀턴 팀과 연락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혹시, 아시는 바는 없으십니까?”

상대편 마법사는 아직 모르는 일이었던 모양이다. 곧바로 당황한 목소리가 수정구에서 흘러나왔다.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이때, 지금까지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중년사내가 끼어들었다.

“해밀턴이 마지막 연락을 보냈을 때 보내 온 좌표가 있나?”

자신의 수정구에 중년사내의 모습이 보일 리 없을 텐데도, 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상대방 마법사의 표정이 급격히 바뀌었다.

「물론 있습니다, 앤트러스 각하.」

“그 좌표를 불러 주게. 그곳에서부터 찾아가는 수밖에 도리가 없지 않겠나.”

상대방 마법사는 다급히 좌표를 불러준 후, 공손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마법사 길드의 중앙지부에서 수백 명에 달하는 마법사들을 몰몬트 산맥으로 이동시켰다는 긴급 정보가 입수되었습니다.」

“설마…, 그들도 배신자들을 찾고 있는 건가?”

「해밀턴으로부터의 보고에 따르면 그건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들은 마을을 중심으로 외지인을 본 적이 있는지 탐문하고 있다고 했으니까요. 어쨌거나…, 그들의 목적이 뭐건 간에 각하와 동선이 겹칠 가능성이 있기에 보고 드리는 겁니다.」

“알겠네. 조심하도록 하지.”

「건투를 빌겠습니다, 각하.」

마법사가 통신을 끝마치자 앤트러스는 함께 온 일행을 둘러보며 말했다.

“식사를 끝마친 후 곧바로 출발하겠다. 모두들 피곤하겠지만 아무래도 해밀턴 팀과 연락이 안되는 게 마음에 계속 걸려서 말이야.”

“예, 대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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