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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를린은 키메라 손실분을 보충받기 위해 지원팀으로 달려갔다. 이미 연구소장이 지시를 해 둔 덕분인지 키메라들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보고서는 별도로 쓰지 않아도 되었다.
“소장님께서 내주라고 지시하신 분량입니다. 키메라들은 저쪽에 준비시켜 뒀습니다. 여기에 서명하시길…….”
명세서에는 CE004 5개체, CE003 32개체라고 되어 있었다. 외곽경비대가 전멸당한 것에 연구소장도 내심 적잖이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이렇게 대폭적으로 전력을 증강시켜 준 것을 보면.
“각종 테스트에 사용되고 있던 개체들까지 몽땅 다 긁어모은 겁니다. 재생산을 시작하긴 했습니다만, 당분간은 보충이 힘드니 그 점 유의하시길 부탁드립니다.”
“알겠어요. 조심해서 쓰도록 하겠어요.”
외곽경비대가 경비해야 할 비밀통로는 무려 여섯 개. 주변을 둘러봐야 온통 숲밖에 없는데 비밀통로를 왜 이렇게 많이 뚫어놨나 싶겠지만, 다 이유가 있었다. 그것들은 처음부터 사람이나 물자의 이동을 위해서 뚫은 게 아니었다. 물자는 공간이동 마법진을 통해 운반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그럼에도 비밀통로를 이렇게 많이 뚫은 이유는 연구소가 지하에 있다 보니 원활한 환기를 위해서였다.
새로운 부하들을 충원 받은 마를린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연구소의 외곽 경비망을 재구축하는 것이었다. 꽤 오랜 시간 외곽 경비에 구멍이 뚫려 있었던 셈이지만, 그녀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내부 경비대에서 연구소로 침입자가 들어왔다는 통보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새로 부하들을 지급받은 이상, 외곽 경비망을 재구축한 뒤 행방불명된 키메라를 찾아 그 사체들을 확실히 처리해야만 했다. 이번 추적 작업에 동원될 키메라들은 마를린이 직접 지휘할 생각이었다.
“너희들은 내가 갔다가 올 동안, 연구소 주변을 철저하게 경계하고 있도록 해. 알겠어?”
“취익!”
“만약 조금의 실수라도 있었다가는 오늘 저녁밥은 아예 없을 줄 알아.”
그녀의 협박에 험악하게 생긴 키메라들이 풀이 죽은 표정을 짓는다.
‘훗, 꼴 같지 않게 시무룩한 표정을 짓기는…….’
키메라들에게 일침을 가한 후, 마를린은 가마를 향해 걸어갔다. 경비를 맡긴 키메라들을 제외한 나머지가 그녀가 탑승할 가마를 중심으로 나란히 도열해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가마는 꽤 멋이 있었다. 마치 달걀을 눕혀 놓은 것처럼 납작한 유선형의 형태를 하고 있었고, 새하얀 겉 표면은 물방울조차 또그르르 굴러 떨어질 정도로 매끄러웠다. 키메라 두 마리가 앞뒤에서 잡고 운반하게 만들어 놓은 것으로, 그녀의 전임자가 아이디어를 짜내서 제작한 물건이다.
숲속을 헤치고 움직이기 좋도록 만들어 놓은 것인 만큼, 좌우 폭은 그리 넓지 않았다. 하지만 앞뒤로 길게 만들어 놨기에 편안한 자세로 반쯤 누워서 갈 수 있었다. 마를린은 푹신한 의자에 다리를 쭉 펴고 앉은 후 문을 닫았다. 동그란 유리창이 여러 개 뚫려 있었기에 바깥의 동정을 관찰하는 데 있어서 전혀 어려움이 없다.
외곽 경비대장에 임명되었을 때,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이 근사하게 생긴 가마에 감탄했었다. 시대를 앞서가는 듯한 멋진 외형은 물론이고 안락한 실내까지. 그야말로 무엇 하나 마음에 안 드는 게 없는 최고의 명품! 이런 멋진 물건을 자신에게 남겨주고 간 전임자의 마음 씀씀이에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실제로 직접 타 보기 전까지는…….
가마를 타고 이동하기는 절대로 싫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가자!”
그녀의 명령에 키메라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키메라들이 걸어가는데 따라서 부드럽게 흔들리기 시작하는 가마. 주위를 지나가던 마법사들이 모두들 입을 헤 벌리며 부러운 듯 보고 있다. 정말 어깨가 으쓱해지는 순간이다.
동굴을 벗어난 후, 그녀는 키메라들에게 속도를 내라고 지시했다. 마냥 느긋하게 걸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하지만 속도를 내자마자 가마에 숨어있던 문제점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전임자가 최대한 안락하게 만들어 놓았다고 하지만, 사실 이건 사람이 탈만한 물건이 아니었다. 한눈에 봐도 상당한 액수를 들여 만들었음직한 가마를 전임자가 오죽하면 그냥 놔두고 가 버렸겠는가.
키메라들이 숲속을 질주하자, 가마 안은 가만히 앉아 있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멍청하기 짝이 없는 키메라들이 탑승자의 사정 따위 전혀 고려해 주지 않았기에 생기는 어쩔 수 없는 결과다.
앞뒤좌우로 흔들리는 것도 고역이지만, 더 큰 문제는 소음이었다.
투다다닥!
끼기긱!
주위의 나뭇가지들이 사정없이 가마에 부딪치며 만들어 내는 굉음! 튼튼한 외피가 막아 주고 있는 덕분에 나뭇가지에 얻어맞을 염려는 없었지만, 나뭇가지가 딱딱한 외피와 부딪치는 소리는 여과 없이 실내로 전해져 들어온다. 키메라들이 운반하기 쉽도록 가벼운 재료로 만들었기에 그 소리가 더욱 크게 울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빌어먹을!”
주변의 소리를 차단할 수 있는 마법을 익혔다면 얼마나 좋았겠느냐마는, 아직 그녀는 그 정도 실력이 되지 못하니 환장할 노릇이다. 어쩔 수 없이 그녀는 귀마개 두 개를 만들어 귓구멍을 틀어막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미쳐 버리겠네.”
처음에는 귀청을 때리는 소음이 문제였지만, 차츰 시간이 지날수록 흔들림이 더욱 큰 문제가 되기 시작한다. 가마가 흔들흔들하는데 따라서 속도 울렁울렁……. 더군다나 좁은 공간 안에 갇혀 있다 보니 그 상태는 더욱 심해진다.
“자…, 잠깐만 쉬었다 가자.”
기어들어가는 듯한 마를린의 목소리를 못 들었는지 키메라들은 계속 내달린다. 그녀는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배를 움켜쥐고 뾰족한 소리로 외쳤다.
“그만! 서! 서라고, 이 망할 새끼들아!”
키메라들이 급정거를 하자마자 노랗게 질린 얼굴을 한 마를린이 급히 문을 열어젖혔다.
“우웨에엑! 우웩!!”
이렇게 미친 듯이 흔들리는 가마에 타고 있으니 멀미가 날 수밖에.
가까운 거리였다면 키메라들의 뒤를 쫓아 비행마법으로 따라가던지, 아니면 속도 증가 마법을 활용하여 달려갔을 것이다. 하지만 먼 거리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녀의 체력으로는 장거리를 고속으로 이동하는 키메라들을 뒤따라간다는 게 무리였던 것이다.
“내가 이래서 가마를 타고 싶지 않았던 거였는데…….”
갑자기 눈물이 핑 돈다. 이러려고 마법사가 된 게 아니었는데……. 키메라들만 보내서 사체를 처리해 버리라고 할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키메라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그 사체를 확인해야만 했던 것이다.
마를린은 요동치는 가마 안에서 축 늘어진 채 연신 헛구역질만 하고 있는 중이다. 일어나 앉을 힘도 없다.
“우에에엑! 우웨엑!”
처음 몇 번인가는 구토가 치밀어 오를 때마다 가마를 세워서 밖에 토해 버렸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뱃속에 있는 걸 몽땅 다 토해 버린 것인지 이제는 아무리 구역질을 해대도 신물만 조금 올라올 뿐이다. 그녀는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기만을 빌며 키메라들이 계속 달리도록 놔두고 있었다.
‘끄으억! 주, 죽을 거 같아…….’
끝날 것 같지 않았던 흔들림이 갑자기 멈췄다. 그리고 밖에서 들려오는 껄끄러운 목소리.
“취익! 도착했다.”
마를린은 황급히 문을 열고서 기다시피 밖으로 굴러 나왔다. 다리에 힘을 줘 간신히 몸을 일으키려던 그녀는 하마터면 주저앉을 뻔했다. 장시간 흔들리다가 갑자기 탄탄한 대지를 밟고 서니, 이번에는 오히려 땅바닥이 흔들리는 듯한 진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실은 그녀의 다리가 후들거리고 있는 것이었지만.
“후우, 후우~”
심호흡을 몇 번하며 마음을 진정시키자, 그제서야 주위의 사물이 차츰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던 그녀의 눈에 띈 고깃덩이들, 키메라의 사체였다.
“잠깐! 너희들은 그쪽으로 가지 마! 저쪽으로 가!”
그녀의 눈치를 힐끔힐끔 살피면서도 군침을 흘리며 사체 쪽으로 조금씩 다가가고 있던 키메라들이 멈칫하는 게 보였다.
“저쪽으로 가라니까! 나중에 배 터지게 먹게 해 줄 테니까. 안 그래도 힘없어 죽겠는데, 날 자꾸 고함지르게 할 거야?”
그래도 꼼짝하지 않고 사체를 바라보며 침을 흘리고 있는 키메라들. 급기야 마를린은 신경질적인 어조로 놈들을 위협했다.
“내가 셋 셀 동안에 저쪽으로 안가는 놈은 한 조각도 못 먹게 할 거야. 알겠어? 하나…….”
그제서야 황급히 뒤로 물러서는 키메라들.
‘멍청한 새끼들…….’
사체에게 다가간 마를린은 한눈에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사체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그래듀에이트가 저지른 짓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손이 뽑힌 놈, 머리통이 잘린 놈, 심장에 구멍이 난 놈……. 상처는 제각각이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상처 자국이 매끄럽지 못하다는 것. 뭔가 엄청나게 강력한 몬스터가 키메라들을 붙잡고 잡아 뜯어 버린 것 같은 그런 모습이었다.
그녀는 다급히 마법을 써 ‘대지의 기억’을 읽어 가해자가 누군지 알아봤다. 대지에 저장되어 있는 데이터는 그리 많지 않았다. 깨끗한 영상을 얻을 수는 없었지만, 인간형의 뭔가가 키메라들을 학살했다는 것만은 알 수가 있었다. 그것도 단 한 마리가.
“이럴…, 수가…….”
마를린은 눈으로 직접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혹시 대지의 기억이 잘못된 것일까? 그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본 그녀는 곧이어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법사가 의도적으로 기억을 왜곡시켜 놨다면 혹 모르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잠시 고민하던 마를린은 사체를 바라보며 침을 질질 흘리고 있는 키메라들에게 명령했다.
“여기 있는 거 깨끗하게 최대한 먹어치우고, 도저히 먹지 못하겠는 건 가지고 돌아와. 알겠어?”
“취익!”
“그리고 저 가마, 부서지지 않게 조심해서 가져다가 창고에 넣어 둬.”
키메라들에게 지시를 내린 후, 그녀는 연구소를 향해 곧바로 공간이동했다. 이리로 올 때는 목적지를 알 수가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가마를 타고 와야 했지만, 돌아갈 때도 그 생고생을 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급히 연구소장에게 보고할 사항도 있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