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24화 (820/930)

“소장님, 급히 보고 드릴 게 있습니다.”

마를린은 방금 전에 자신이 직접 본 광경에 대해서 보고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연구소장의 이해를 돕기 위해 수정구에 자신이 봤던 장면이 떠오르도록 했다. 사체들의 모습은 물론이고, 대지의 기억을 읽어서 보게 된 영상까지도…….

“흐음…….”

역시, 그녀의 예상대로 연구소장의 안색도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한동안 말을 꺼내지 못하고 뭔가 고민하던 연구소장이 문득 입을 열었다.

“자네는 저게 뭐라고 생각하나?”

“사람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연구소장의 생각은 달랐다. 사람이 저런 괴력을 발휘한다는 게 가능할까? 그것도 막강한 전투력을 지닌 고성능 키메라를 상대로 말이다.

‘엘프라고 생각될 정도로 재빠른 몸놀림. 하지만 엘프에게는 저런 파괴력이 없지. 사람처럼 생겼지만, 사람은 아닌 것 같아. 물론 격투술의 달인이라면 저런 움직임이 가능하긴 하겠지만, 키메라들을 상대로 무기도 사용하지 않고 저런 미친 짓을 하고 있을 이유가 없잖아.’

“어쨌거나 그 부분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 보는 게 좋겠군. 그래, 사체의 뒤처리는 깨끗하게 했겠지?”

“예, 소장님.”

“좋아. 그럼 가서 볼 일 보도록 하게. 나는 일이 좀 있어서 말이야.”

“그럼 나가 보겠습니다, 소장님.”

마를린을 내보낸 후 연구소장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설마…, 드래곤은 아니겠지?”

충분히 가능성은 있었다. 이곳 몰몬트 산맥에 서식하고 있는 게 확인된 드래곤만 다섯 마리다. 그 외에도 더 많을 수도 있었다. 밖으로 나와서 그 흉포함을 드러낸 놈들만 계산된 숫자였으니까.

연구소장은 지도 앞으로 걸어가 마를린에게서 방금 전에 들었던 좌표의 위치를 찾았다. 다행히도 그곳을 영토로 하고 있는 드래곤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금 전의 영상에서 봤던 그것(?)이 드래곤이 아니라는 증거는 될 수는 없었다.

‘그러고 보니 드래곤일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키메라들은 침입자들을 쫓고 있는 중이었어. 그놈들이 드래곤의 둥지 쪽으로 키메라들을 유도했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우리도 아직 알아내지 못한 드래곤의 둥지를 다른 자들이 알고 있다는 게 가능이나 한 일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해답을 얻기 힘들자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연구소장은 걸음을 옮기며 중얼거렸다.

“어쨌거나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얘기를 좀 해 두는 게 좋겠군.”

연구소장은 품속에서 수정구를 꺼내 마법사 길드장의 개인 채널에 접속했다.

반가운 얼굴을 하고 있는 길드장에게 연구소장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며칠 전에 연구소에 침입자가 발생했던 탓에 부하가 신세를 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에 대한 감사인사도 드릴 겸, 겸사겸사 해서…….”

「아, 자네 연구소에 침입자가 있었다는 얘기는 들었다네. 내가 중앙지부장에게 지시해 뒀으니, 조만간에 처리될 걸세.」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뭘, 그 정도를 가지고…….」

“그런데 이번에 외곽 경비를 맡은 부하가 입수한 정보가 한 가지 있어서 말이지요. 아무래도 알려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급하게 통신을 넣게 되었습니다. 이걸 한번 보시지요.”

연구소장은 마를린이 보여 줬었던 영상을 길드장에게로 보냈다. 그의 기억 속의 내용을 그대로 보낸 것이었기에, 길드장의 수정구에 나타난 영상은 그가 바라보는 시점이 될 것이다.

연구소장은 이 영상을 보내면서 길드장이 격한 반응을 보여줄 거라고 예상했었지만, 그의 기대와 달리 반응은 미적지근하기만 했다.

‘설마…, 뭔가 알고 있는 건가?’

그렇다면 자신에게 알려 주지 않은 다른 정보가 있는 게 확실하다.

영상을 모두 본 길드장은 난처하다는 듯 턱수염을 쓱 쓰다듬더니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

「어차피 조만간에 자네도 알게 될 것이기에 말해 주는 건데…, 자네쪽 연구소에 침입했다는 그자 말일세.」

여기까지 말한 길드장은 한층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혹시 주변에 엿듣고 있는 사람은 없겠지?」

“걱정 마십시오. 여기는 제 방입니다.”

「자네 연구소에 침입했던 자들 중 하나가 코린트의 기사였다네. 그것도 오너 급의 기사 말일세.」

“오너 급이라고요?”

「그래. 놈을 잡으러 나갔던 부하들에게서 올라온 보고서를 읽어 보니, 굉장했었던 모양이야. 자네도 알고 있지? 세브롱에 호크 기사단의 분견대가 주둔하고 있는 거 말일세.」

“예, 알고 있습니다.”

「그들도 이번 작전에 동원되었었다네. 그들이 물샐틈없는 포위망을 형성한 후에 마법사들이 일제히 기습공격을 했다고 하더군. 그런데도 살아서 도망쳤다니…, 믿을 수가 있겠나?」

“기사들의 실력이 형편없었던 건 아닙니까? 소문을 들으니 분견대에 배치되는 기사들이 뭔가 문제가 있어서 좌천된 자들이라고…….”

「그렇게 선입견을 가지고 판단하면 안 된다네. 보고서의 내용대로라면 그들을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야. 완벽하게 포위망을 갖춘 상태에서 기습공격을 퍼부었는데도 살아서 도망친 걸 보면…, 놈의 실력이 그만큼 좋았다는 말이겠지. 더군다나 그자가 지니고 있는 마법도구들도 문제였고 말일세.」

“어떤 마법도구 말입니까?”

「안티 뷰 마나 포스를 구동할 수 있는 것과 안티 뷰 매직포스를 구동할 수 있는 마법도구를 지니고 있었다고 하더군. 그 둘을 동시에 구동시키고 있다 보니, 완벽하게 기선을 제압해 놓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자를 놓쳤다고 하더라고.」

반지 한 개에 그 두 가지 마법이 함께 새겨져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기절초풍했을 두 사람이었다. 그들은 놈이 마법도구 2개를 함께 가지고 있을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편이 훨씬 가격이 저렴할뿐더러 구하기도 쉬웠으니까.

“아주 용의주도한 놈이로군요.”

「어쨌거나 잠자고 있는 걸 기습했으니, 짐이고 뭐고 챙길 여유도 없이 알몸에 가까운 상태로 도망친 모양일세. 자네가 보낸 키메라들과 싸우고 있는 그 모습은 그 때문일 거야. 그런데 자네가 만든 키메라들은 아주 후각이 좋은 모양이구먼. 침입자를 곧바로 찾아낸 걸 보면 말이야.」

“감사합니다.”

「여력이 되면 몇 마리 수색 작전에 빌려줄 수는 없겠나? 크게 도움이 될 듯한데…….」

길드장의 말에 연구소장은 난처하다는 듯 말했다.

“죄송합니다, 길드장님. 아직 상부에서 사용을 허가받지 못한 녀석들이라서…….”

이 정도만 말했는데도 길드장은 곧바로 알아들었다. 비밀연구소에서 연구하고 있는 키메라들이다. 훌륭한 성능에도 불구하고 원로원에서 발표를 보류하고 있다는 건, 뭔가 말 못할 문제점이 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뭐,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그 자를 붙잡는다고 호크 기사단 전력의 절반을 동원했으니 조만간에 좋은 소식 들을 수 있을 걸세.」

그 외에도 길드장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긴 했지만, 연구소장으로서는 알고 싶었던 정보는 이미 다 얻은 셈이었다.

‘코린트의 오너 급 기사였다니……. 길드장에게 연락해 보기를 잘했어. 드래곤일지도 모른다고 괜히 걱정했잖아.’

하지만 그는 모르고 있었다. 방금 전에 길드장과 얘기를 나눴던 첩자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는 것을. 둘의 대화가 이렇게 겉돌 수밖에 없었던 것은, 길드장이나 그나 둘 다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모두 다 실토하지 않고 대략적인 수준에서 대화를 나눴던 탓이었다. 둘 다 숨겨야 할 게 너무 많은 사람들이었으니까.

어쨌거나 드래곤일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사라진 대신, 첩자가 코린트의 기사라는 더 큰 문제가 발생했다. 오너 급 기사를 코린트에서 연구소에 투입했다는 것은 그쪽에서 뭔가 냄새를 맡았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더군다나 이곳 연구소에서 연구하고 있는 마물은 절대로 세상에 알려져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아무래도 연구소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게 좋겠군. 아니, 연구시설이야 차츰차츰 기회를 봐 가며 옮긴다고 하더라도 마수만큼은 빨리 옮겨 버리는 게 좋겠어.’

연구소장은 새로운 연구소를 어디에다 다시 만드는 게 좋을지 궁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그의 머리에 번쩍 하고 떠오르는 게 있었다.

‘맞아. 코린트가 이미 이곳의 시설을 알고 있다면, 이곳을 폐쇄해서는 안 되지. 그러면 놈들이 더욱 의심할 테니까. 이런 때는, 허접한 연구를 진행하는 다른 연구소와 시설을 맞바꾸는 게 최선이야. 코린트 놈들은 포기를 모르니까 이곳에서 무슨 연구를 하는지 확실하게 파악해내기 전까지는 끊임없이 첩자를 보내올 테니까. 그렇게 되면 비밀은 비밀대로 지키고, 놈들에게 엉터리 정보까지 흘릴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아니겠어? 흐흐흣…….’

생각만 해도 재미있다는 듯 비릿한 웃음을 연신 짓던 연구소장은 다시금 지도 앞으로 다가가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우리가 사용할 만큼 거대한 시설을 지녔으면서도, 허접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는 연구소가 몇 개나 되는지 좀 알아봐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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