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31화 (827/930)

설마, 키메라?

오크의 소굴인 점을 감안한다면 오크 발자국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동굴 밖에 오크 발자국들이 거의 없었던 것은 며칠 전에 쏟아졌던 폭우에 씻겨 버린 거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동굴 내부에까지 발자국이 거의 없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이상한 건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이상하네. 오크가 이렇게까지 자신들의 흔적을 지운 이유가 뭘까?”

“혹시 비어 있는 동굴인지 알고 보금자리로 삼으려고 들어온 동물들을 잡아먹으려는 것인지도 모르죠.”

후미에서 천천히 따라오던 마법사 지크펠은 신관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반문했다.

“설마 오크들의 지능이 우리 인간과 비슷하다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뭐, 백번 양보해서 어쩌다 똘똘한 놈이 태어날 수도 있어. 하지만 그래 봐야 오크 소굴에서 얼마나 지독한 악취가 풍기는데 그걸 속일 수…….”

여기까지 말하던 지크펠은 주위를 둘러보며 빠르게 코를 킁킁거렸다.

“어? 그러고 보니 여기서는 오크 냄새가 하나도 안 나는데? 원래 오크가 서식하는 동굴 근처에만 가도 악취가 코를 찌르는데 말이야.”

지크펠의 의문에 앞서 가던 카렙이 곧바로 대답했다.

“지금 바람이 밖에서 동굴 안쪽으로 불어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오크 냄새가 나지 않는 건 아무래도 이상하긴 합니다.”

카렙은 레인저인 만큼, 바람의 방향 같은 것에 아주 민감했던 것이다.이때, 동굴 안쪽에서 갑자기 귀를 찢는 듯한 호각(號角)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삐이이익!

거의 반사적으로 칼을 뽑아들며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달려 들어가는 두 사람, 앤트러스와 브레이였다. 지크펠은 마법으로 만든 광구(光球)를 앞쪽으로 움직여 그들의 시야를 밝혀 줬다. 환한 빛을 뿜어내는 광구가 동굴 안쪽으로 움직이자 오크 두 마리가 그들의 시야에 들어왔다. 호각을 요란스레 불어대던 오크들은 사람이 접근해 오자 호각 불기를 멈추고 무기를 꼬나들었다. 아주 잘 제련된 창이었다.

“저런 창을 어디서 구한 거지?”

“모험가들을 해치우고 얻은 것인지도 모르죠.”

지크펠은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그렇다고 보기에는 상태가 너무 좋은 거 같은데…….”

“사람들을 붙잡아 놓고 노예로 부리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뒤에서 화력지원을 해 줘야 할 지크펠이 신관과 한가롭게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앞서 달려간 두 사람과 오크들과의 접전이 시작됐다. 브레이의 경우 암살조 조장이기에 그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을 거라고 사람들이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지만, 앤트러스가 보여준 놀라운 칼놀림은 지켜보는 이들을 압도했다.

발검과 동시에 오크의 오른팔을 잘라 버린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반전하여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며 왼쪽 어깨에서부터 시작해 오른쪽 허리로 이어지는 깊은 상처를 입혔던 것이다. 팔이 잘리는 순간 오크가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선 탓에 두 토막을 내는 데는 실패했지만, 즉사라고 판단해도 될 만큼 깊은 상처였다. 그 짧은 순간에 이렇게나 빠르게 오크를 숭덩숭덩 썰어 놨다는 것이 보는 이들에게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만들었다.

한 마리는 확실하게 해치웠다고 생각한 앤트러스는 동굴 속에서 다른 오크들이 달려 나오기 전에 브레이가 상대하고 있는 나머지 한 마리도 확실하게 해치워 버리기 위해 옆으로 돌아섰다. 일반적인 오크와 달리 이곳에 서식하고 있는 오크들은 덩치만 큰 게 아니라 무기를 다루는 솜씨도 뛰어났다. 물론 그래 봐야 브레이와 맞상대가 가능할 정도로 실력이 좋다는 건 아니었지만. 브레이는 여유롭게 오크를 밀어붙이고 있는 중이었다.

앤트러스는 시간을 끌 것 없이 뒤쪽에서 칼을 날려 단숨에 오크의 목을 날려 버렸다. 그런데 그때 옆쪽에서 카렙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뒷쪽을 조심하십쇼!”

앤트러스는 반사적으로 재빨리 옆으로 피한 후, 자신의 뒤쪽을 살펴봤다. 놀랍게도 그곳에는 방금 전에 자신이 처치했다고 생각했던 오크가 상반신에서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창을 들고 서 있는 게 아닌가. 그놈이 앤트러스를 향해 창을 찌르는 것을 본 카렙이 경고성을 발한 것이다.

“어떻게 저럴 수가?”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는데도 불구하고 살아 있다는 게 놀라웠다. 하지만 그의 놀라움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깊게 베인 상반신에서 줄줄 흐르던 피의 양이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몸속의 피가 다 빠져나가게 되면 더 이상 나올 게 없으니 피의 양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사실. 하지만 앤트러스가 깜짝 놀란 건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트롤과도 몇 번이나 싸워봤던 앤트러스다. 몸속의 혈액이 모자라서 피가 그치는 것과 상처가 급속도로 아물며 흘러내리던 피가 지혈이 되는 것과의 차이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트롤?”

앤트러스는 그제야 어지럽게 얽혀 있던 모든 상황들이 한 마디로 귀결되는 것을 느꼈다. 오크의 형태를 하고 있으면서 트롤의 재생력을 지니고 있고, 또 잘 손질된 창뿐만이 아니라 제대로 된 창술까지도 익히고 있다. 그렇기에 해밀턴 팀이 당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이런 경우 떠오르는 단 하나의 이름, 그것은 바로 키메라였다!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지크펠의 머릿속에도 똑같은 생각이 떠오른 모양이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설마…, 키메라?”

앤트러스는 복잡한 상념을 억누르고 일단 자신에게 덮쳐오는 오크의 창을 피하며 가볍게 목을 잘랐다. 트롤과도 같은 재생력을 지닌 키메라라면 목을 잘라야 완벽하게 죽일 수 있었으니까. 브레이는 질린 얼굴로 쓰러져 있는 오크들의 시체를 발로 툭툭 차며 정말로 죽었는지 확인한 뒤에야 앤트러스를 향해 물었다.

“이게 키메라라고요?”

“어, 어쩌면 저 동굴 안쪽에 고대의 던젼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릅니다.”

브레이의 질문에 대답한 것은 앤트러스가 아닌 마법사 지크펠이었다. 그의 얼굴은 어느샌가 흥분으로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당장 동굴 속으로 달려 들어갈 기세였다. 그런 그를 앤트러스가 제지했다.

“던젼이 아닐세. 고대의 던젼이라면 키메라들이 가지고 있는 창이 저렇게 반짝거리는 새것일 수가 없지.”

그제서야 흥분이 가라앉았는지 고개를 끄덕이던 지크펠의 안색이 뭘 생각했는지 삽시간에 허옇게 질려 버렸다. 그런 지크펠의 얼굴을 바라보며 앤트러스는 침중한 음성으로 계속 말을 이었다.

“던젼을 지키는 키메라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던젼을 벗어나지 않아. 만들 때 그렇게 세뇌를 시켜놓으니 말이야. 그런데 이것들은 동굴에서 나와 맥스 팀을 추적하기까지 했어. 그 와중에 해밀턴 팀까지 학살하고 말이지.”

“던젼이 아니라면 이곳은 대체 뭐하는 곳이라는 말입니까?”

지크펠은 신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앤트러스를 향해 황급히 말했다.

“빨리 이곳을 벗어나는 게 좋겠습니다. 만약 저 안에 던전이 아닌 비밀연구소가 있는 게 맞다면 저희들을 가만히 놔둘 리가 없을 테니까요.”

앤트러스는 고개를 끄덕인 뒤 대원들을 향해 명령했다.

“내 생각도 그렇다네. 자, 빨리 여기를 벗어나자! 서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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