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32화 (828/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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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이이익! 삐익!

귀를 찢는 듯한 호각음에 마를린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놀랍게도 또다시 침입자가 침투해 들어온 것이다. 그녀는 아직 자신의 가마를 들고 되돌아오던 키메라들과 감찰부의 선발대가 충돌했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교활하기 짝이 없는 키메라들이 푸짐한 한 끼 식사를 한 후, 그 사실을 그녀에게 보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대비는 되어 있었다. 얼마 전에 침입자가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설마 이런 외진 곳에 위치한 연구소에 침입해 들어올 자가 있을 거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간혹 식인식물이 슬그머니 들어왔다가 키메라 오크들에게 죽임을 당하거나 쫓겨났을 뿐, 사람은 연구소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으니까.

세브롱 요새에서 출발한 용기사들도 연구소 근처로는 아예 접근조차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산세가 험한 오지 중의 오지를 택해 연구소를 비밀리에 건설해 놓은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침입자가 침투할 수도 있다는 게 확인된 후, 연구소의 경비는 비약적으로 강화되었다.

지금의 호각음이 그렇다. 예전에는 키메라 한 마리가 입구를 지키고 있었지만, 지금은 2마리로 증강되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성능이 좋은 호각까지 주어졌다. 침입자를 발견하면 곧바로 경고성을 발할 수 있도록.

호각 소리를 듣자마자 마를린은 휴식을 취하고 있던 여분의 키메라 오크들을 몽땅 다 이끌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그녀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침입자는 이미 도망친 후였다. 제3통로를 지키고 있던 키메라 오크 둘은 이미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녀보다 앞서 현장에 도착한 키메라 여섯 마리가 사체들을 중심으로 빙 둘러앉아서 막 뜯어먹으려고 하고 있던 참이었다.

“잠깐! 너희들 거기서 뭐 하는 거야?”

마를린의 접근을 안 키메라들이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슬금슬금 뒤로 물러섰다. 그제야 그녀의 시야에 들어오는 두 마리 오크의 사체. 마를린은 오크의 사체들을 보자마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깨끗하게 절단된 상흔!

더군다나 어깨부터 시작해 허리까지 뼈 채로 단숨에 벤 자국은 마를린의 몸에 소름이 끼치게 만들었다. 놀라운 실력자가 들어왔다 간 것이다. 그리고 동굴 입구 쪽에 찍혀 있는 여러 명의 발자국들. 이번 침입자의 숫자는 저번보다 두세 명이 더 많은 듯했다.

마를린은 지체하지 않고 대지의 기억을 읽어 내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일단 적의 정체를 정확히 파악하는 게 우선돼야 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앤트러스 특무대의 마법사인 지크펠은 대지의 기억을 읽기 위해 장시간 주문을 외우며 마나를 컨트롤해야 했지만, 마를린은 그걸 단시간 내에 해냈다.

대지의 기억을 읽어 들이기 위해 설정한 면적이 지크펠이 할 때의 1/10도 채 되지 않았다는 게 가장 큰 원인이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그 둘의 실력 차가 워낙 큰 탓이었다. 지금 마를린이 이런 오지에서 돌대가리 키메라들을 데리고 경비를 서고 있긴 하지만, 사실 그녀는 이런 일에 쓰기에는 아까운 재원(才媛)이었다. 엄청난 경쟁을 뚫고 원로원 직속의 연구소에 채용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보통의 실력을 가지고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마법사?”

키메라들을 향해 검을 뽑아들고 달려드는 두 사람. 그리고 그 뒤에서 한 명이 화살을 날릴 준비를 하는 게 보였고, 또 다른 두 명은 제일 뒤쪽에 처져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검을 들고 달려드는 두 사람의 앞쪽에서 환하게 빛나고 있는 구체였다. 자연적인 발화가 아닌 인공적인 빛을 뿌리는 구체, 바로 마법이었다.

“이런 젠장!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

침입자에 마법사가 끼어 있다면 절대로 시간 여유를 줘서는 안 된다. 마법통신으로 이곳에서 발견한 것을 누군가에게 보고할 수도 있고, 마법을 이용하여 어딘가로 공간 이동해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여유롭던 마를린의 안색이 이 사실을 깨닫자 다급하게 바뀌었다.

“침입자를 찾아라! 빨리!”

그녀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키메라 오크들은 괴성을 질러대며 밖으로 쏟아져 나갔다. 마를린은 오크들을 따라 쫓아가면서 품속에 손을 넣어 수정구를 꺼냈다. 수정구는 그녀와 긴밀하게 협조하며 작전을 펼쳐야 하는 내부 경비대장 롤프와 직통으로 연결시켜 주는 마법도구였다.

「무슨 일인가?」

느긋한 어조로 묻는 롤프에게 마를린은 황급히 대답했다.

“제3통로로 또다시 침입자가 들어왔어요.”

롤프는 심드렁한 어조로 투덜거리듯 말했다.

「그 정도는 자네 혼자서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지 않나? 그나저나 요즘 왜 이리 침입자들이 많아진 거야?」

“그렇게 쉽게 말할 사안이 아니에요. 이번에는 마법사까지 끼어 있단 말이에요.”

마법사가 있다는 말에 롤프의 표정이 순식간에 심각하게 바뀌었다.

「침입자들이 어디까지 들어왔나? 설마 연구소 내부까지 들어왔다 간 건 아니겠지?」

“그렇지는 않아요. 제3통로 입구 쪽만 기웃거리다 도망친 것 같으니까요. 그런데 입구에 보초로 세워 둔 키메라 두 마리를 깔끔하게 처치한 걸 보면 꽤나 실력이 있는 것 같아요.”

연구소 내부까지 들어오지는 않은 것 같다는 말에 롤프의 안색이 스르륵 풀린다.

「그건 다행이군. 어찌 되었든 이곳에서 키메라를 발견한 것을 외부에 떠들지 못하도록 철저히 막아야 해.」

“그래서 말인데, 1호와 2호의 사용을 허락해 주세요.”

1호는 놀로 제작된 키메라로 모델 번호 CE001을 뜻하는 것이었고, 2호는 코볼트로 제작된 키메라로 CE002를 말하는 것이다. 둘 다 소형 몬스터를 기반으로 제작했기에 저렴한 가격에 대량생산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치명적인 문제점 또한 지니고 있었다.

오크를 베이스로 제작한 키메라들에 비해 지능이 형편없이 떨어졌기에 간단한 명령 몇 가지 정도밖에 내릴 수가 없는데다가, 자기 절제력은 오크보다도 훨씬 더 떨어졌다. 즉, 피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리는 놈들인 것이다.

당연히 경비 임무에는 도저히 써먹을 수가 없었고, 그렇다고 비싼 돈을 들여 제작한 그것들을 그냥 폐기해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혹시 필요할 때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한쪽 구석에 처박아 두고 있던 참이었다.

「좋아. 사용하도록 하게.」

마를린이 요청한 CE001과 CE002의 숫자는 각기 200마리와 100마리였다. 승낙을 얻은 마를린은 옆에 대기하고 있던 키메라 오크에게 명령했다.

“너는 지금 가서 당장 1호와 2호들을 이끌고 나한테로 와. 알겠냐? 내 말 이해하겠어?”

“취익”

짧은 다리 탓에 뒤뚱거리며 동굴 속으로 달려 들어가는 키메라 오크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도 그녀는 도통 믿음이 가지를 않았다. 제어술식의 도움으로 사람의 말을 어느 정도 알아듣긴 했지만, 원활한 의사소통까지 되는 건 아니었다. 이 경우, 저놈이 자신의 명령을 제대로 못 알아들었으면 큰일인 것이다.

어쨌거나 마를린 역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저놈이 제시간에 맞춰 지원부대를 끌고 오던 그렇지 않건 그건 운명에 맡겨야 했다. 놈을 믿지 못하겠다고 그녀 자신이 직접 달려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침입자들을 쫓아간 키메라 오크들이 지닌 능력을 100% 발휘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직접 지휘해야만 했다.

‘잘 데리고 올 거야.’

솟구쳐 오르는 불신감을 애써 달래며 마를린은 자신의 몸에 근력증가와 속도증가의 보조마법부터 걸었다. 침입자들을 찾아내 끝장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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