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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급히 동굴 밖으로 나간 후에도 앤트러스의 달리는 속도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모두들 헐레벌떡 그의 뒤를 쫓아 죽어라 달려갔다.
“이봐, 내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말일세.”
“헉헉…, 마…, 말씀하십쇼.”
앤트러스의 뒤를 쫓아가는 지크펠은 지금 숨이 턱까지 차서 죽을 지경이었다. 근력증가 마법을 자신에게 걸긴 했지만, 그렇다고 지치지 않는 건 아니다. 자신의 기본적인 체력은 마법을 걸건 말건 변함이 없었으니까. 즉, 단거리라면 어떨지 몰라도 이렇듯 장거리 달리기가 되면 마법사의 허약한 체력이 버티지를 못하는 것이다.
“이런 산골짜기에 저런 엄청난 키메라를 만들 만한 연구소를 건설할 수 있는 단체가 뭐가 있을까? 뭐, 생각해 보나마나겠지. 원로원 말고 그 어떤 단체가 저런 능력을 가지고 있겠나? 그런데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왜 저런 훌륭한 성과를 내고도 가만히 있었던 걸까?”
웬만한 상처는 즉시 회복해 버리는 막강한 재생력! 그것만 해도 놀라운데, 강인한 근력에 민첩성, 그리고 죽기 살기로 달려드는 흉포함까지……. 비록 자신의 국왕파와는 시시때때로 대립각을 세우곤 하지만 원로원 역시 마법왕국 알카사스를 지탱하고 있는 커다란 축이었다. 나라에 엄청난 전력이 될 수 있는 이런 특급 정보를 모든 정보를 총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감찰부에서 아직 모른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
앤트러스의 질문에 연신 숨을 헐떡거리면서도 지크펠은 망설임 없이 곧바로 대답했다.
“모르죠. 어쩌면 저런 흉악한 놈들을 몰래 대량으로 생산해 우리 뒤통수를 치려고 했는지도 말입니다.”
지크펠의 말에 앤트러스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쫙 돋는 걸 느꼈다. 그렇다. 권력이란 그만큼 인간의 본성을 뒤바꿀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욕망의 원천이다. 지금껏 권력에 눈이 어두워 나라를 배신한 놈들을 한두 명 본 게 아니다. 원로원 역시 다를 게 없다. 그런 마음이 없다면 이런 놀라운 성과를 거두고도 감찰부조차 알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숨겼을 리가 없는 것이다. 저런 엄청난 능력의 키메라들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만 있다면 지금껏 균형을 이뤄오던 권력의 추가 단숨에 원로원 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크다고 봐야 할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앤트러스는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그를 따라 달려가던 대원들은 앤트러스를 따라 걸음을 멈췄다. 그 잠시의 틈을 이용해 체력이 약한 사람들은 헐떡거리며 연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심지어 주저앉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다.
“아무리 생각해도 상황이 너무 안 좋아. 일단 공간이동을 할 수 있게 빨리 마법진을 그리게. 분명 추격자들이 따라붙을 테니 말이야.”
“예? 그건…….”
머뭇거리는 지크펠에게 앤트러스는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왜, 무슨 문제라도 있나?”
지크펠은 얼굴을 살짝 붉히더니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대지의 기억을 읽는 대마법을 쓴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도중에 간단한 보조마법도 몇 가지 썼고 말입니다. 이렇게 보여도 지금 저는 정신적으로 아주 피곤한 상탭니다. 저 혼자라면 몰라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공간이동 시키는 건 솔직히…, 자신 없습니다.”
“짧은 거리라도 상관없네. 우리의 흔적만 차단하면 그걸로 족하니까.”
“죄송합니다.”
어지간하면 상관의 요청을 들어주고 싶었지만, 공간이동 마법이라면 얘기가 틀리다. 작은 실수 하나만이라도 떼몰살을 당할 수 있었으니까. 물론 강압적으로 공간이동을 시킨다면 자신은 빠지고 할 것이다. 그만큼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지친 지금 쓰기에는 위험한 마법이 공간이동 마법이었다.
앤트러스는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어쩔 수 없지. 공간이동이 가능할 때가 되면 내게 말하도록. 그때까지는 최대한 빠르게 이곳을 벗어나도록 한다.”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면목없습니다.”
“뭘. 오크들이라고 만만하게 보고 그냥 쳐들어간 내 잘못이 크지. 어쨌거나 만일을 대비해 현 상황을 본부에 보고해 두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지크펠은 품속에서 수정구를 꺼내 숯가루를 뿌렸다. 통신마법으로 본부에 현 상황을 보고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카렙이 손가락으로 방금 전 자신들이 빠져나왔던 동굴 쪽을 가리키며 외쳤다.
“대장님, 저것 보십쇼!”
황급히 시선을 돌린 앤트러스는 동굴 안에서 수십 마리에 달하는 키메라 오크들이 괴성을 질러대며 달려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런 젠장!”
잠시 고심하던 앤트러스는 곧 결단을 내렸다는 듯 지크펠에게 물었다.
“자네 혼자라면, 이곳에 남아서 통신을 끝낸 다음에 탈출할 수 있겠나?”
현 상황이 그만큼 위급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만약 자신들이 잘못되더라도 키메라에 대한 정보만큼은 반드시 본부에 알려야 했다. 지크펠은 주문을 외우고 있는 중이었기에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럼 부탁하네. 우리 걱정은 하지 말고 통신만 끝나면 곧바로 탈출하도록 하게. 그럼 우리는 먼저 가 보겠네.”
카렙이 그런 지크펠을 걱정스럽다는 듯 바라보며 브레이에게 속삭였다.
“차라리 통신이 끝날 때까지 보호하고 있다가 함께 탈출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쯧, 네 걱정이나 해. 마법사는 도망치려고 마음먹으면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도망칠 수 있는 족속이니까. 그것보다 우리가 문제군. 저 망할 오크 새끼들 내달리는 속도를 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따라 잡히겠어.”
앤트러스와 대원들은 지크펠을 놔둔 채 죽어라 도망치기 시작했다. 지크펠에 대한 미안함은 빠른 속도로 희석되어 사라졌다.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없을 만큼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기 시작했으니까.
간신히 통신마법이 완성되었다. 주변 상황이 워낙에 급박하게 돌아가다 보니 신경이 분산되어 하마터면 주문이 실패할 뻔한 상황. 평소보다 조금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주문이 성공한 게 어디겠는가.
주문이 성공했다고 해서 곧바로 상대가 수정구에 비치는 건 아니다. 상대가 받아 줘야 하는 것이다. 그 몇 초의 시간이 그렇게 길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지크펠은 수정구와 동굴 쪽을 번갈아 바라보며 초조하게 중얼거렸다.
“이런 씨팔! 빨리 좀 받아라. 허억! 이런 젠장!”
이때, 지크펠의 두 눈이 경악으로 인해 휘둥그레졌다. 동굴 속을 빠져나오자마자 곧바로 날아오르는 여자 마법사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실수였다. 키메라 오크들이 워낙 흉흉하게 쫓아오다 보니, 원로원 소속 마법사들이 이렇듯 빠르게 대응할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게다가 비행마법을 저렇게 빠른 속도로 실행하는 것만 봐도 자신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마법사일 게 뻔하다. 지크펠의 얼굴에 짙은 절망감이 어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수정구가 희미한 빛을 내뿜는 듯하더니 그 빛이 사라지는 순간, 수정구 속에 검은 제복을 입은 늙은 마법사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는 지크펠이 자기 쪽을 보지도 않고 어딘가 다른 데를 보고 있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며 물었다.
「어? 자네는 지크펠이로군. 그래, 무슨 일인가?」
그제야 통신이 연결된 걸 알고 곧바로 수정구에 얼굴을 들이밀고 보고를 시작하는 지크펠. 비록 비행마법을 쓰며 날아오른 마법사가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설혹 이곳에서 죽는다 하더라도 맡은 임무만큼은 완수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긴급 보고입니다. 현 상황은…….”
바로 그 순간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통신마법진이 깨진 건 물론이고 그 중심축에 있던 수정구조차 튕겨 날아가 버렸다. 보고를 시작하던 지크펠은 멍한 표정으로 통신마법진이 있던 곳을 바라봤다. 이렇게 정확하게 통신마법진부터 날려 버리다니! 다시 한 번 상대 마법사와의 수준차를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상대는 일격에 통신마법진은 물론이고, 지크펠조차도 가루로 만들어 버릴 수 있을 정도의 실력자였다. 만약 허접한 마법사였다면 이런 큰 주문을 외우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을 테고, 그동안 지크펠은 중요한 정보를 어느 정도는 상부에 보고할 수 있었을 것이다.
“최악이로군…….”
자신을 향해 쏜살같이 다가오고 있는 여마법사의 악귀와도 같은 모습을 보며 지크펠의 얼굴에 절망이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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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밀턴 팀은 어처구니없을 만큼 허무하게 키메라 오크들에게 짓밟혀 버렸지만, 앤트러스와 대원들은 그렇지 않았다. 오크들이 비정상적일 정도로 재생력이 좋은 키메라라는 것을 미리 파악한 상태였기에 방심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놈 한 놈 확실하게 모가지를 날려라. 그렇지 않으면 되살아난다.”
대원들 모두 잘 알고 있긴 했지만,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키메라 오크들 역시 본능적으로 자신의 약점이 어딘지 잘 알고 있었기에 목에 대한 방어에 만전을 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오크만 뒤쫓아 왔다면 그리 큰 피해 없이 도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그만한 실력의 소유자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오크들의 뒤를 쫓아 모습을 드러낸 놀과 코볼트 떼는 대원들을 절망으로 몰아넣었다.
특히 그들에게 절망을 안겨 준 것은 코볼트 떼였다. 생긴 것은 놀과 그리 다르지 않았지만, 놀과 달리 입에 독샘이 발달하지 않은 것은 그럴 필요성을 못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덩치가 놀의 두 배쯤 큰 만큼 훨씬 더 막강한 공격력을 지니고 있었고, 놈들의 송곳니는 가죽갑옷쯤은 쉽게 꿰뚫어 버릴 만큼 날카로웠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