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57화 (853/930)

루크의 배신

“이런 젠장, 대체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치밀어 오르는 성질을 도저히 참지 못하겠다는 듯 옆에 있던 탁자를 철퇴로 박살 내 버린 사내의 행동에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혹시라도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 두려워서다.

“그, 그게 정말입니다. 정말 어린놈이 그랬다니까요.”

여왕벌 둥지의 지배인의 말에 요새도시 델카의 부지부장이자 돌격대장인 덤프의 안색이 더욱 붉어졌다.

“그래, 네놈 말대로라면 그 쪼그만 놈이 행패를 부리다 갑자기 지부장님이 계신 지하로 달려 들어가 그 참상을 일으켰다는 말이지? 게다가 당시 경비를 서고 있던 우리 조직원들은 덤이고.”

“그, 그렇습니다. 제가 본 사실 그대로 말씀드린 겁니다.”

지배인은 덤프의 질책에 고개를 팍 수그리며 대답했다. 물론 다 말한 것은 아니었다. 그 어린놈이 누나를 농락한 자신을 찾으러 왔다 그 사태가 벌어졌다는 말을 어떻게 하겠는가. 아마 덤프의 성격상 그 말을 듣자마자 저 무시무시한 철퇴로 자신의 대가리를 박살 낼 게 뻔했으니까. 미친개라는 덤프의 별명이 그냥 생긴 게 아닌 것이다.

“씨발, 그 개소리가 사실인지는 일단 그 애새끼부터 잡은 뒤 얘기하자.”

덤프는 시뻘게진 눈으로 옆에 서 있는 사내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그러자 사내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

“조직원들을 풀어 도시 전체를 샅샅이 수색하라 지시해 두었습니다. 그리고 델카의 경비대장에게도 협조를 구해 수상쩍은 놈을 발견하면 곧바로 연락을 달라고 했고, 블랙울프 파 쪽으로도 몇 명 보내 그쪽 분위기를 살펴보라고 했습니다.”

“젠장, 본부에는 괜히 알렸어. 범인을 잡는 건 고사하고 어떤 놈이 그런 짓거리를 벌인 건지 감도 못 잡고 있다니…….”

“그래도 알리신 건 잘하신 겁니다. 오리무중인 상태에서 보고까지 늦어졌다는 게 밝혀지면 자칫 목이 날아가실 수도 있는 일입니다요.”

“그건 그렇지만……. 하지만 본부에서 지원부대를 보냈을 게 뻔하고, 지원부대를 누가 이끌고 올지는 네놈도 알 거 아니냐.”

지원부대를 이끌고 달려올 사람은 평소 칼릭스와 사이가 안 좋던 잭슨이 될 가능성이 컸다. 칼릭스와 쌍벽을 이룰 정도로 교활하기 짝이 없는 인물이었으니까. 그런 그가 이곳에 오면, 칼릭스의 오른팔이라고 할 수 있는 덤프를 가만히 놔둘 리가 없는 것이다. 어쩌면 부지부장 자리에서 쫓겨나는 건 물론이고, 자신의 대가리가 몸통과 분리될 우려조차 있는 것이다.

‘씨발! 이 자리에 어떻게 올라왔는데, 이렇게 끝날 수는 없어.’

그때 방문이 거칠게 열리며 조직원 하나가 급하게 안으로 들어왔다.

“부지부장님, 범인과 그 배후세력을 알고 있다는 놈이 밀고를 하러 왔습니다.”

부하의 말에 덤프는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외쳤다.

“뭐, 그게 정말이야! 당장 데리고 들어와!”

덤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또 다른 조직원 한 명이 사내 하나를 끌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 사내는 바로 루크였다.

덤프는 루크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만약 네놈의 말에 거짓이 있다면 내 친히 네놈의 혀를 뽑고 사지를 절단 내 주마. 정말 범인이 누군지 알고 있느냐?”

“헤헤, 범인이 누군지 그 배후세력이 어디인지까지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요. 그런데 정보에 대한 보상은 있겠지요?”

이 바닥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루크였다. 부두목이 행동에 나선 이상, 두목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컸다. 두목을 암살하지도 않고, 자신부터 먼저 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으니까.

죽지 않으려면 샐러맨더 파를 찾아가 밀고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운이 좋다면 두둑한 보상까지 받아내 델카를 뜰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도 다 자신이 상대의 눈치를 잘 살펴 행동해야만 가능하겠지만…….

“걱정 마라. 정보만 확실하다면 네놈이 만족할 만큼 챙겨 줄 테니까. 자, 그러니 빨리 말해!”

“세상이 워낙 흉흉하다 보니 미리 선불로 챙겨주시면, 헤헤헤. 그러면 제가 직접 놈들의 본거지까지 길 안내를 해드리겠습니다요.”

덤프의 얼굴이 왈칵 일그러졌지만 곧 희미하게 웃음이 떠올랐다. 그만큼 정보에 대한 자신이 있으니 저런 똥배짱을 부리는 거라 생각한 것이다. 덤프는 품 안에서 주머니 하나를 꺼내 그대로 루크에게 던져준다.

쩔그렁.

묵직한 돈주머니를 주워든 루크는 재빨리 안을 들여다본 뒤 금화가 가득 들어있자 만족스런 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범인은 18세 정도 되는 잭이라는 녀석이고, 그 배후세력은 바로 블루썬더라는 조직입니다요.”

“18살? 그리고 배후세력은 뭐, 블루썬더?”

덤프는 범인이 18살이라는 말에 어이가 없었지만 지배인이 말한 어린놈이 범인이라는 말이 떠오르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의 관심은 범인의 배후세력인 블루썬더라는 조직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어떤 거대 조직이기에 그런 가공할 살인 병기를 키워 낼 수 있단 말인가?

그때 말단 조직원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저, 부지부장님. 제가 그 블루썬더라는 조직을 아는데요. 시장에서 영세상인들 대상으로 보호세를 뜯거나 소매치기, 도둑질 같은 걸 업으로 하는 허접한 놈들입니다. 그리고 저놈 역시 그 블루썬더 조직원이구요. 소매치기하는 애새끼들을 관리하고 있는 걸 제가 직접 목격한 적도 있습니다.”

‘뭐야! 그렇다면 이 새끼가 지금 날 가지고 놀고 있다는 말이잖아?’

루크가 거짓말로 자신을 속였다고 생각한 덤프는 치밀어 오르는 성질을 못 참고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순식간에 방 안 전체에 짙은 살기가 흘러넘쳤다. 덤프는 자신의 애병인 철퇴를 손에 들고 천천히 루크에게로 다가갔다.

“이런 망할 새끼! 내 앞에서 천연덕스럽게 거짓을 나불거리다니, 그 배짱 하나만큼은 인정해주마. 그 보상으로 네놈을 갈가리 찢어 들개 먹이로 던져 주겠다.”

“그, 그게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저분이 말한 블루썬더라는 조직이 제가 몸담고 있던 조직이 맞긴 한데, 거기에는 그럴만한 사정이 캑캑…….”

루크는 말을 하다 덤프가 한 손으로 자신의 목을 잡아 올리자 죽음에 대한 공포에 눈앞이 새하얗게 변해 버렸다. 미친개 덤프의 악명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덤프의 옆에 서 있던 사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부지부장님, 일단 놈이 하는 말부터 들어보시죠. 어쩌면 블루썬더 뒤에 또 다른 조직이 있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놈이 말한 범인의 나이가 지배인이 말한 범인과 비슷하니 말입니다.”

그러면서 사내는 덤프의 귓가에 입을 가져간 뒤 작게 속삭였다.

“본부에서 지원부대가 오기 전에 뭔가 행동을 하셔야 합니다. 이렇게 손을 놓고 있다가 지원부대가 오면 그 모든 책임을 부지부장님께서 덮어쓰실 수도 있는 일입니다.”

덤프는 일리 있는 말이었기에 사내에게로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말이냐?”

“놈이 말한 정보가 진짜라면 범인을 잡아서 좋고, 아니라면 놈들에게 뒤집어 씌우면 되지 않겠습니까?”

좋은 생각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 덤프는 루크를 바라보며 으스스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네놈의 주둥아리가 어떻게 열리냐에 따라 네놈의 대가리가 곤죽이 되느냐 마느냐 결정이 되겠구나. 흐흐, 한동안 내 철퇴에 피를 먹여주지 못해 아쉬웠었는데 마침 잘 됐군. 그래, 한번 말해 보거라.”

루크는 덤프의 협박에 겁을 먹고 잭에 대해 자신이 알고 있던 모든 것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