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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두목의 갑작스런 잠적 명령에 조직원들이 허둥지둥 몸을 피할 때, 각 지부의 지부장들이 비상거점에 숨은 부두목을 찾아왔다. 현재 조장 네 명은 라이와 함께 다란툼에 가 있었기에, 부두목을 찾아온 것은 그들을 제외한 세 명이었다. 스팅과 알리는 부두목의 지시를 수행하기 위해 밖에 나가 있었기에 여기에 참석하지 못했다.
“갑자기 잠적하라니…,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부두목.”
부두목은 짐짓 침통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두목께서 돌아가셨다.”
뜬금없는 말에 지부장들은 어이가 없는 모양이다.
“예? 두목께서요?”
“어떻게 하다가 돌아가신 겁니까?”
부두목은 두목과 함께 생각했던 비밀작전을 실행하기 위해 그가 달톤 등 조장 넷을 소집해 다란툼으로 보낸 후, 그 결과를 보고하기 위해 두목의 방을 찾았을 때 이미 두목은 죽어있었다고 설명했다.
“어떤 놈이 감히 두목을?”
“믿기지 않겠지만 루크일세.”
“루, 루크가요? 아니, 왜 그놈이 두목을……?”
부두목은 미리 재구성해 둔 정황을 지부장들에게 알려주었다.
그들이 듣게 된 정황은 이랬다.
두목이 암살당한 것을 발견하자마자 부두목은 급히 스팅을 정문으로 보내 본부를 빠져나간 사람이 있나 조사하게 했다. 그런데 그 시간대에 정문을 빠져나간 건 루크가 유일했다.
그래서 혹시 루크가 뭔가 알고 있는 건 없나 물어보기 위해 스팅을 보냈더니, 루크가 당혹스런 표정으로 잠깐 시간을 달라고 한 뒤 밖에 나간 후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고 했다. 게다가 그 부하들에게 물어보니 최근 정보를 수집하겠다며 샐러맨더 파나 블랙울프 파의 조직원들과 접촉하는 일이 잦았다는 말까지 나왔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으로 봤을 때, 범인은 루크 녀석이 확실해. 그리고 그 배후에는 샐러맨더나 블랙울프가 있을 가능성이 크고…….”
하지만 지부장들은 부두목의 말을 믿기 힘든 듯 모두들 고개를 갸웃하며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이상하군요. 녀석이 두목을 암살한다고 해서 뭘 얻을 게 있다고……?”
“나도 그게 궁금하다. 두목을 죽인다고 해서 녀석이 그 자리를 이어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오히려 우리 조직원들의 복수에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갈가리 찢겨 죽을 테니 말이야. 그걸 감안한다면 녀석은 샐러맨더나 블랙울프에 포섭되었다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지 않겠나.”
“그래서 조직원들에게 잠적을 명령하신 거였습니까?”
“그래.”
이때, 문이 벌컥 열리며 스팅이 뛰어들어와 보고했다.
“두, 두목! 큰일 났습니다.”
지부장들은 스팅이 부두목을 두목이라고 부르는 것을 들었지만 애써 못 들은 척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어차피 부두목이 두목의 자리를 이어받게 될 것이 확실했으니까.
“도대체 무슨 일인데 이렇게 호들갑이야!”
“두목의 예상이 맞았습니다. 본부에 루크 녀석이 샐러맨더 파의 돌격대장 미친개와 함께 들이닥치는 걸 확인했습니다. 삼십여 명의 중무장한 졸개들을 이끌고 말입니다.”
스팅의 보고에 다른 지부장들은 믿기 싫어도 루크의 배신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어쩌면 좋죠? 두목님의 지시대로 일단 조직원들에게 무작정 몸을 피하게 하긴 했습니다만, 결국 꼬리가 잡힐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꽁꽁 숨어 봐야 이 바닥이 그렇게 넓은 것도 아니고…….”
그런데 이때, 이번에는 알리가 황급히 뛰어들어오며 소리쳤다.
“두목! 크…, 큰일 났습니다.”
부두목은 인상을 찡그리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침착하게 보고해!”
“돈벼락에 중무장한 괴한들이 들이닥쳤습니다. 놈들은 몇 명 되지 않으니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간다면……!”
여기까지 말하던 알리는 모두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걸 느끼고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부두목은 알리의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지부장들을 둘러보며 침중한 음성으로 말했다.
“아마 돈벼락에 들이닥친 놈들도 샐러맨더 파 조직원일 게 뻔해. 우리 조직을 아예 뿌리째 거덜 내겠다는 속셈이겠지. 어쩌면 다른 지부들 역시 비슷한 상황일 거야.”
“루크 이 개자식!”
“내 그 개자식의 목을 비틀어 버릴 테다.”
지부장 셋은 루크의 배신에 치를 떨면서도 이 긴박한 상황에 면밀히 사태를 분석하고 조직을 챙기는 부두목의 카리스마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 사람은 서로 눈길을 주고받으며 의견이 일치됨을 확인하더니 부두목 앞에 무릎을 꿇으며 외쳤다.
“두목! 저희들을 이끌어 주십시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두목.”
동료들의 갑작스런 행동에 멍하니 서 있던 알리와 스팅도 부두목의 눈짓에 서둘러 같이 무릎을 꿇으며 충성을 맹세했다.
자신의 예상대로 일이 흘러가자 박스터는 웃음이 터져 나오는 걸 참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두목이 죽고 조직이 박살 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웃는 모습을 지부장들에게 보여 봐야 좋을 게 전혀 없다.
박스터는 애써 웃음을 참으며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지부장들의 몸을 일일이 붙잡아 일으켜 준 뒤 부드럽게 말했다.
“자자, 어서 일어서게. 못난 내게 충성을 다짐하니 이거 참 난감하기 짝이 없구만.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조직을 위해 내 거절하지 않겠네.”
“뭘요, 두목 외에 누가 우리를 이끌 수 있겠습니까.”
“루크 그 개새끼도 두목께서 계신 한, 자신에게 차례가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샐러맨더 놈들에게 붙은 거겠죠. 나쁜 새끼!”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알리가 스팅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샐러맨더?”
“응, 루크 개새끼가 샐러맨더 놈들에게 붙었어. 조금 전에 미친개가 이끄는 돌격대와 함께 본부에 들이닥치는 걸 내가 직접 봤다니깐. 망할 놈의 새끼!”
“최악이로군. 얼마 전에 여왕벌의 둥지가 박살 났다고 하던데……. 설마, 그 새끼가 그걸 우리한테 홀랑 뒤집어 씌운 건 아니겠지?”
사건의 내막을 잘 알고 있었던 박스터의 안색이 순간 딱딱하게 굳었지만, 다행히도 다른 사람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감히 자신들과 같은 작은 조직이 샐러맨더와 같은 대조직을 건드릴 수 있을 리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병신 새끼!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그놈이 우리가 여왕벌의 둥지를 박살 냈다고 말한들 그 누가 믿겠어? 뭔가 딴 꿍꿍이속이 있겠지. 어쩌면 흉수의 탈출로를 우리가 도와줬다고 하던가 하는 정도 말이야. 게다가 루크 그놈은 우리 조직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잖아.”
박스터를 제외한 나머지 지부장들은 몰랐다. 알리가 무심코 한 말이 거의 진실에 근접한 것이었다는 것을.
샐러맨더 파에서 루크의 밀고를 진심으로 받아들여, 신속하게 포위작전을 전개했다면 블루썬더 파의 조직원들은 오늘 단 한 명도 빠져나가지 못하고 전멸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소매치기나 정탐에 이용되는 꼬맹이들까지 모두 다 합친다고 해 봐야 100명을 채 넘지 못하는 작은 도적집단에서 보낸 행동대원 한 명이 자신들의 정예가 지키고 있는 여왕벌의 둥지를 박살 내고, 지부장 칼릭스까지 참살해 버렸다는 걸 믿는 쪽이 오히려 제정신이 아니라고 봐야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덤프는 공격대를 이끌고 블루썬더 파의 본거지와 돈벼락 상점을 급습했다. 왜냐하면 지부장 칼릭스가 죽은 뒤 자신이 범인을 잡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본부에서 파견되어 나올 간부급에게 바칠 뇌물 마련에도 도움이 될 것이고…….
“녀석들의 기습을 피해 조직원들이 대피하는 데는 성공했습니다만, 이런 행운이 계속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배신자 루크가 샐러맨더 파에 붙은 이상 조직원들의 도피처가 들통 날 확률이 높고, 게다가 조만간 병사들이 수색에 동원될 가능성도 크지 않겠습니까. 그 전에 요새 밖으로 탈출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두목.”
“숨어있는 조직원들에게 지금 당장 연락을 할까요?”
하지만 박스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 오히려 그건 녀석들이 바라는 걸 거야. 생각을 해봐라. 우리들의 얼굴을 알고 있는 건 루크 녀석 하나뿐이야. 그 녀석과 마주치지만 않는다면 우리가 샐러맨더 파 녀석들의 코앞을 지나간다고 해도 알아채지 못할걸. 안 그래?”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러니까 녀석들은 오늘 밤, 성벽을 뛰어넘는 자들이 있는지 그것부터 중점적으로 살펴볼 거다. 그게 우리들을 일망타진할 수 있는 가장 편한 방법이니까.”
두목의 말에 모두가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거나 최대한 몸을 숨기고 녀석들의 동태를 살펴보도록 하자. 자, 모두들 돌아가서 부하들 단속 단단히 하도록 해라. 특히, 루크 녀석의 조직원들을 철저하게 단속해라.”
“혹시 녀석들이 관리들의 협조를 얻어 시내를 뒤지기 시작하면 어떻게 합니까?”
“걱정마. 집이 한두 채도 아니고, 마을 전체를 어느 세월에 다 뒤지겠냐.”
“뒤질 수도 있지. 집들을 다 뒤지지는 못하겠지만, 여관이나 뭐 그런 곳만 뒤지는 거라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 몇 군데 되지도 않고 말이야.”
박스터도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원래는 비밀리에 마련해 뒀었던 은신처를 이용해야 했겠지만, 루크 녀석이 배신한 시점에 은신처로 기어들어가는 것은 죽여 달라고 목을 들이미는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이리라.
“부하들은 지금 어디에 숨어있나?”
“저희는 여관을 잡았습니다.”
“저희도…….”
“일단 다리 밑쪽에 숨어있으라고 했는데…….”
“할 수 없군. 각자 허름한 민가를 골라 피신해 있도록 해라. 여관에 있는 건 너무 위험해. 녀석들이 수색을 시작한다면 여관부터 뒤질 게 뻔하다.”
“알겠습니다, 두목.”
“두목께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도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하겠지. 일단은 몸을 숨겼다가 삼 일 후에 다시 만나자.”
박스터는 지부장 셋을 각자 따로 불러 접선할 장소를 별도로 알려줬다.
“그곳에 칼로 그림을 새겨놔라. 뭘 그려도 상관이 없지만, 태양 그림은 그리지 마라. 태양은 너희들이 위험을 느낄 때 그려라. 알겠냐?”
“예, 두목.”
“약속 시간은 한 시로 하자. 반드시 한 시에 그림을 그리러 나와라. 나는 멀리서 지켜보고 있다가 누군가 너를 미행하는 자가 있거나 하면 나가지 않을 테다. 알겠냐?”
“알겠습니다, 두목. 그럼 그때 뵙도록 하겠습니다.”
칼로 그림을 그리는 건 각 지부장들. 각자 약속된 장소에 1시, 2시, 3시에 그림을 그리러 나오라고 해뒀다. 그리고 그는 그걸 관찰한 후 나중에 접선하기로…….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서로가 서로의 위치를 알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야 만약에 샐러맨더 파 놈들에게 어느 하나가 포착되어 붙잡히는 한이 있더라도 일망타진 당하는 것만은 피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면 삼 일 후에 보자.”
“몸조심하십시오, 두목.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