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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데 있어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가구조차 거의 놓여 있지 않은 작은 방. 어둠에 가려진 덕분에 그런대로 깨끗하게 보였지만, 벽에 가까이 얼굴을 대고 보면 벽면이 꽤 낡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싸구려 여관방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미약하게나마 여성의 향기가 감돌고는 있었다. 한 번씩 자신의 방을 찾아오는 두목을 위해 예쁘게 꾸미려고 노력한 흔적이다.
루산나는 침대 위에 드러누워 아직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잠을 자고 있는 것도 아니다. 요즘 들어 잠을 자려고 해도 도통 잠이 오지 않는다. 자려고 애써 눈을 감으면 자꾸만 그때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리고 그 망할 놈의 얼굴도…….
그날 이후로 놈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면 어쩌면 그녀도 그때의 치욕적인 기억을 점차 잊어버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놈은 같은 패거리로 받아들여졌고, 두목은 놈에게 뭔가 일을 시키고 있는 모양이다. 놈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이곳 델카에 놈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안 이상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젠장! 두목은 왜 그딴 개자식을 받아들여 준 거지?”
처음에는 자신의 복수를 해주기 위해 받아들이는 척한 줄 알았다. 하지만 그날 이후 두목은 자신의 방에 찾아오지 않고 있었다. 어쩌면 잭의 그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두목이 받아들인 것인지도 모른다. 생긴 건 그래도 두목은 마음이 넓고 다정한 사람이었으니까. 물론 그건 순전히 눈에 콩깍지가 씐 루산나의 생각이었지만 말이다.
“두목 몰래 그놈을 죽여 버려?”
하지만 두목이 그걸 미리 방지하고자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놈의 행방을 그날 이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한스도 모른다고 했고, 루크에게 물어봐도 그건 똑같았다. 두목은 놈을 어디로 보낸 것일까? 또 무슨 임무를 맡긴 것일까? 아니, 어쩌면 자신을 위해 이미 놈을 죽여 버린 뒤 시치미를 뚝 떼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으아아, 그냥 속 시원하게 말해주면 좋잖아. 이렇게 사람 피 말리게 하지 말고.”
이때, 누군가 요란스럽게 그녀의 방문을 두드려 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쾅쾅쾅!
“루산나! 여기 있어?”
한스의 목소리였다.
루산나는 침대에서 급히 일어나 문을 열어줬다. 자신의 등 뒤쪽을 연신 힐끗거리며 황급히 방안으로 들어오는 한스를 향해 루산나는 물었다.
“무슨 일이야?”
평소 같았으면 하늘과도 같은 두목의 애인에게 혹시라도 밉보일까 조심조심 행동했던 한스였는데, 오늘은 그렇지가 않았다. 마치 정신이라도 나간 듯 굉장히 흥분한 모습이다.
“크, 큰일 났어. 두, 두목께서 돌아가셨어.”
한스의 말에 루산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내가 제대로 들은 건가? 두목이 죽었다니…….
“뭐? 제리코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멍하니 중얼거리는 루산나를 향해 한스가 다급히 말했다.
“일단 이곳을 벗어나야 해. 부두목께서 최대한 빨리 피신하라고 명령하셨거든.”
“누가…, 누가 제리코를 죽인 거야? 설마…, 그 잭이라는 놈은 아닐 테지?”
한스는 씹어 먹을 듯 분노어린 어조로 대답했다.
“루크, 그 개새끼가 조직을 배신했어.”
루크가 범인이라는 말을 루산나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루산나가 두목과 친밀해진 이후, 루크는 그때부터 가끔씩 그녀에게 값비싼 물품들을 선물해 주곤 했었다. 당연히 루산나는 루크를 아주 좋게 보고 있었다.
“루크가? 설마…….”
멍하니 고개를 가로젓고 있는 루산나를 향해 한스는 정신을 차리라는 듯 어깨를 쥐고 흔들며 큰 소리로 소리쳤다.
“설마가 아니야. 이러고 떠들 시간 없어. 빨리 준비해. 한시가 급하다고! 그놈이 샐러맨더 파 조직원들을 이끌고 우리들을 잡으러 돌아다니고 있단 말이야.”
그 말에 루산나도 더 이상 딴 생각할 시간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루크가 샐러맨더 파에 붙었다면, 정말 사력을 다해 몸을 숨겨야만 한다. 마을 전체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소문을 조합해 쓸 만한 정보들을 걸러내던 녀석이 바로 루크였으니까. 그만큼 조직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자도 드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루크가 두목 암살에 대한 모든 죄를 홀딱 뒤집어 썼기에 그녀가 살아있을 수 있었다는 것을.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 그녀를 찾아온 사람은 부두목의 명령을 받고 그녀를 처치하러 달려온 사람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