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69화 (865/930)

기분전환 겸 내려갔던 식당에서 월터는 꽤 재미있는 정보를 엿들을 수 있었다. 손님들로 가득 찬 식당 안은 소란스러웠고, 그들은 나름대로 주변 사람들이 엿듣지 못하도록 목소리를 낮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월터의 귀를 피해가지는 못했다.

“아깝게 됐어.”

“여왕벌은 최고의 중개인이었는데 말이야.”

“나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아. 아무리 지하 조직들 간의 세력다툼이라고 해도 그렇지. 중무장한 사내 수십 명이 지키고 있는 거점을 하룻저녁 사이에 씨몰살을 시킬 수 있다는 게 가능이나 한 일이야? 그것도 그쪽 요새의 주둔군은 모두 다 그놈들 편이나 다름없는 상황인데 말이야.”

“아직 흉수가 누군지도 밝혀내지 못했다면서?”

“흉수를 잡아낼 때까지 요새 내에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틀어막고 있다고 하더군. 그 때문에 거기 들어갔다가 발 묶인 사람이 한둘이 아냐.”

“밀무역 좋아하더니 그거 쌤통이네. 큭큭…….”

그 외에도 이런저런 잡다한 얘기가 오고 갔는데, 그중에서 월터의 관심을 잡아끈 게 바로 ‘여왕벌’에 대한 얘기였다.

“여왕벌?”

궁금증을 참지 못한 월터는 파벨을 향해 슬쩍 물었다.

“혹시, 여왕벌이 누군지 아는 거 있어? 최고의 중개인이었다고 하는데 말이야.”

대답이 돌아올 걸 바라고 질문을 던진 건 아니었다. 식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있는 상황에서 딱히 할 얘깃거리가 없었기에 던진 질문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파벨은 고개를 끄떡이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이웃한 다란툼 영지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 자그마한 요새도시 델카의 암흑가를 휘어잡고 있는 인물이에요. 샐러맨더 파라고 다란툼에 본거지를 두고 있는 깡패조직의 핵심 간부이기도 하고, 그가 운영하는 사업체가 ‘여왕벌의 둥지’라는 고급 술집이기에 그를 여왕벌이라는 별칭으로 부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제법 상세한 내용이었다. 파벨이 하던 일이 알카사스 쪽에서 수집된 정보를 처리하는 것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파벨은 알카사스 쪽 정보에 대해 상당히 많은 걸 알고 있었고, 월터를 보좌해 알카사스로 오게 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월터로서는 어이가 없었던 게 여왕벌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게 매력적인 여인이 아니라 시커먼 사내놈이었다는 것이다.

‘이 여자가 아니었다면 커다란 착각을 할 뻔했군.’

파벨이라는 존재가 약간이기는 하지만 마음에 들기 시작한 월터였다. 그런데 파벨의 설명을 다 들은 월터는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거라면 몰라도 격투 쪽에 있어서는 일가견이 있는 그였으니까.

“이해할 수가 없네.”

“뭐가 말씀이십니까? 뛰어난 실력을 지닌 어쌔신이라면 한 명만 보내도 깡패들 따위야 쉽게 쓸어버릴 텐데요.”

월터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꾸했다.

“물론 그 말이 옳아. 하지만 그 정도 실력이 있는 놈이라면 변두리 깡패들 패싸움에 동원하기에는 몸값이 너무 비싸거든. 그런데 자네 얘기를 들어보니 그렇게까지 엄청난 자금을 동원할만한 상대는 없는 것 같은데……?”

“밀무역자들의 상당수가 다란툼 영지 인근을 애용하고 있어요. 거기에 주목해서 대도시의 조직이 군침을 흘린 거라면, 실력 있는 어쌔신을 고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물론,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여왕벌과 그 둥지만 파괴한다고 해서 그걸 흡수할 수 없으니, 그게 문제지. 그가 샐러맨더 파의 보스라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그는 다란툼의 일개 지부장일 뿐이잖아? 아무리 생각해도 아귀가 안 맞는단 말씀이야…….”

왠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안 그래도 심심하던 월터였기에, 잠시 짬을 내서 그곳에 갔다 와도 괜찮을지 궁리를 해 봤다. 이웃 영지인 만큼 짧으면 하루, 늦어도 이틀이면 충분할 것이다.

물론 덫을 놓은 상황에서 지금이 꽤 중요한 시기라는 것쯤은 그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목적은 미끼를 포획하러 온 자들과 싸우는 게 아니었다. 그들의 뒤를 추적하여 이 일에 어떤 자들이 관여하고 있는지 그것을 알아보려는 것이다. 더불어 이쪽의 정보를 팔아넘기는 배신자들이 누군지까지 알아내면 금상첨화라고 할 수 있었고.

그런 만큼 현 상황에서는 파벨만 있어도 충분하다고 봐야 했다.

“다란툼이 여기서 그리 멀지 않다고 했지?”

“예, 월터님.”

“무슨 일인지 잠깐 다녀오겠다. 그동안 내가 없어도 괜찮겠지?”

심심했던 월터가 잠시 바람이나 쐬겠다고 세운 즉흥적인 계획이었지만, 파벨은 그걸 다르게 받아들였다. 상대는 고위급 마법사. 그리고 그가 자신을 이리로 데리고 온 것은 미끼로 쓰기 위해서라고 그녀는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 때문에 월터의 말을 듣고 파벨은 이제 자신을 미끼로 쓰기 위해 버리려 한다고 생각하고는 살며시 입술을 깨물었다. 속셈을 뻔히 아는데 저렇게 능청스럽게 둘러대다니……. 가증스럽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계급이 깡패라고, 말단인 그녀로서는 단 한 마디도 불만을 털어놓을 수 없었다. 소심한 것도 있었고.

“알겠습니다, 월터님.”

“내일 점심때쯤에는 돌아올 거야. 혹시 좀 더 걸릴지도 모르겠지만, 그리 많이 늦어지지는 않을 거야.”

“알겠습니다.”

“만약 수상쩍은 놈이 나타나면 괜히 나서지 말고 은밀히 뒤를 쫓는 정도만 하도록 해.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그것도 하지 않아도 되고.”

“…….”

더 이상 장단을 맞춰 주기에도 짜증이 난 파벨은 그냥 입을 꽉 다물었다. 속셈을 뻔히 아는데 뭘 저렇게 잔소리가 많단 말인가. 그냥 나가면 될 것을.

하지만 그런 파벨의 속마음을 알 리 없었던 월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쾌활하게 말했다.

“그럼 다녀올게. 망 잘 보고 있어.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하고.”

월터의 모습이 사라진 후에도 파벨은 그가 나간 쪽을 불안한 눈빛으로 계속 바라보기만 했다.

“별 이상은 느끼지 못했는데…, 저 사람은 뭔가를 눈치챘단 말인가? 이렇게 서둘러 떠나는 걸 보면…….”

겉보기에는 상당히 쾌활한 사내였다. 그리고 아주 점잖은 신사였고. 단둘이 그토록 오랜 시간을 함께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해를 살법한 말은 물론이고 음흉스런 눈길조차 보내지 않았었다. 만약 상대의 속셈을 몰랐다면 꽤나 괜찮은 사내라고 착각했으리라.

“일단 올라가서 대비를 좀 해야겠어. 앉아서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파벨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잡화점으로 가서 말린 육포와 햄, 그리고 맛있어 보이는 빵을 구입하고 곧바로 자신의 거처로 돌아갔다. 오늘 밤은 잠자긴 틀렸다고 생각하면서…….

✻ ✻ ✻

라이는 아버지에게 검술을 배울 때 오로지 반복 숙달만이 최고라고 배웠다. 그로 인해 어렸을 때부터 전혀 의미도 없어 보이는 동작을 하루에도 수백, 수천 번씩 수도 없이 되풀이해야만 했었다.

처음에는 반발도 많이 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라이는 깨달았다. 왜 이런 식의 훈련을 해야만 하는 것인지를. 무수한 반복 숙달로 인해 자신이 점차 강해지고 있다는 것을 친구들과의 대련을 통해 체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진짜 무기를 가진 채 대련이 시작되면 단 한 번의 실수만으로도 생사가 갈린다. 지금까지 그가 받았던 훈련은 일 검으로 수십 명을 벨 수 있는 그런 엄청난 비기(秘技)가 아니었다. 그저 단순한 동작을 수없이 반복 숙달하며 적시에 그 동작을 반사적으로 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적의 공격이 있을 때, 자신도 모르게 피하고 또 반격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그 저력. 그건 오랜 세월 아버지의 잔소리를 들어가며 반복해서 검을 휘둘렀었던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그게 지금껏 그의 목숨을 지켜주고 있었던 것이고.

지금까지 라이는 검술이라는 게 그런 것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꿈속의 검술을 익히기 시작한 후,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엄청난 비기……. 상대도 자신과 동등한 수준의 검술을 익힌 게 아니라면, 알고 있어도 절대로 막을 수가 없다. 이건 요행으로 어떻게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의 공격이 아니었던 것이다.

단 한 번의 도약으로 몇 미터씩이나 되는 간격을 단숨에 제로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이어지는 무시무시한 검격! 아름드리나무조차 간단히 토막 내 버린다. 이 정도면 가벼운 무게로 인해 흔히들 애용되고 있는 나무와 가죽을 혼용해서 제작되는 가죽방패 따위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웬만한 갑옷조차도…….

‘맞아. 그때 중대장이 성벽 위를 날아가던…, 아니 뛰어 올라갈 수 있었던 게 바로 그것 때문이었어. 그도 꿈속의 검술을 알고 있었던 거야.’

올란도도 꿈을 통해 검술을 배웠던 것일까? 아니, 그럴 리는 없다. 어렸을 때 들었던 수많은 영웅담들 중에서 꿈을 통해 검술이나 마법을 배웠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 그렇다면 그는 어디에서 그런 검술을 배웠던 것일까?

여기까지 생각하던 라이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뭐, 그건 내 알 바 아니지. 어디서 배웠건 간에 꿈속에서 이런 검술을 배웠다고 다른 사람에게 말한다면 미치광이 취급당할 것만큼은 확실해. 어쨌거나 지금은 이걸 내 것으로 만드는 게 중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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