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라이는 조장인 라이놀 페리는 물론이고, 323정찰조원 전원과 비무를 해야만 했다.
비무 결과 라이는 단 한 명에게도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검술에 대해 더욱 많은 걸 얻을 수가 있었다.
첫 번째 패배자가 되지 않기 위해 조원들이 몸을 사리지 않고 전력을 다해 라이를 상대해줬기 때문이다.
라이는 현재 자신에게 가장 부족한 게 뭔지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건 바로 실전경험이었다.
정상적인 사제관계 속에서 검술을 전수 받았다면 이런 문제가 일어나지도 않았겠지만, 라이는 지금껏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상대와 전력을 다해서 싸워본 적이 없었다.
얼마 전에 싸웠던 워커가 그나마 대단한 실력자이긴 했지만, 엄밀히 말한다면 워커는 풍부한 실전경험으로 라이를 누른 것일 뿐, 검술 수준에 있어서는 몇 수 뒤처지는 게 사실이었다.
‘젠장, 이런 식으로 초식을 흘려버리고 찔러올 줄이야…….’
산속에서 몬스터들을 상대로 검을 휘둘렀을 때는 이런 일이 없었다. 막강한 방어력을 자랑하는 장갑도마뱀의 외피를 간단하게 찢어발겼던 자신의 검술이 이토록 간단히 막혀버릴 줄이야.
도대체 이곳이 어디이기에 이런 강자들이 득실거리고 있는 걸까? 323정찰조라고 했으니, 최소한 323개의 정찰조가 있을 거라 추론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숫자와 정찰조의 수와는 별 상관이 없었지만 라이는 그 사실을 몰랐다.
라이가 생각했을 때, 각 조당 일곱 명씩 323개 조가 있다고 한다면 물경 2천 명이 넘는 강자가 이곳에 득실거리고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2천 명……. 여기까지 생각한 라이는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꿈속의 검술을 연마하며 마치 천하무적이라도 된 듯 기고만장했던 자신이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여러 명을 상대로 격렬한 비무를 진행한 만큼, 라이의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워커는 가쁜 숨을 내쉬며 헐떡거리고 있는 라이의 등을 토닥이며 칭찬했다.
“잘했어. 자네는 미래를 잡은 거야.”
그의 표정이 어딘가 씁쓸하게 느껴진 것은 라이의 기분 탓이었을까?
“자네는 일단 여기서 며칠 기다려야 할 거야. 윗사람들 간에 몇 가지 협상할 일이 남아있으니까 말이야. 그리고…….”
워커는 손을 쑥 내밀어 라이의 손을 붙잡고는 힘차게 흔들며 말을 이었다.
“오늘 자네가 전력을 다해 싸우는 모습을 보고 내 선택이 옳았음을 다시 한번 확신할 수 있었다네. 행운을 빌겠네.”
워낙 말수가 적었던 워커였기에 그동안 믿지를 못했었는데, 그의 허심탄회한 말에 라이는 상대의 본심이 어떤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랬기에 라이는 고개를 조아리며 감사한 마음을 드러냈다.
“잠시 의심했던 거 죄송합니다. 그리고 배려에 감사합니다.”
“뭘. 자네라면 충분히 꿈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괜한 오지랖이었을 뿐이야.”
그 말을 끝으로 워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버렸다. 그의 발걸음은 그동안 함께 하며 라이가 봤던 것 중 가장 가벼워 보였다.
“자네가 라이 폰 로티넨인가?”
되는대로 가져다 붙인 성씨였기에 로티넨이라는 성에는 이질감이 느껴졌지만 라이라는 이름은 친숙하다. 그 때문에 둘 다 바꿔 촌장 아들 이름으로 하려다가 라이 폰 로티넨으로 했다. 혹시라도 워커가 자신을 불렀을 때 못 알아듣는 사태가 일어나면 난감하니까.
하지만 그때의 그 선택 덕분에 라이는 실수하지 않고 곧바로 사내의 부름에 응할 수가 있었다.
“예, 제가 라이 폰 로티넨입니다.”
“상부에서 허가가 떨어졌다. 자네는 콘도르 기사단에 입단할 의사가 있나?”
콘도르 기사단이라는 말에 라이는 경악했다.
워낙에 강자들이 많이 있는 곳이었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건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황실 직속 기사단의 이름을 들을 줄이야. 더군다나 기사단 쪽에서 먼저 자신에게 입단 권유를 하고 있지 않은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죽을 것을 걱정하며 하루하루를 사는 노예 신분이었는데 말이다.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마치 꿈이라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예? 콘도르 기사단이라고요? 설마…, 4대 기사단에 들어간다는 황실 직속의 그 콘도르 기사단 말씀인가요?”
라이의 반응을 살펴보던 사내는 어이가 없다는 듯 물었다.
“설마…, 자네는 그것도 모르고 이곳에 왔나?”
“저는 그냥 여기서 테스트만 받으라고 해서…….”
“크크, 이거 어처구니가 없군. 어쨌든 이곳은 자네가 알고 있는 바로 그 콘도르 기사단이 틀림없다. 그리고 테스트 결과 입단 허가가 떨어진 거지. 입단할지 말지의 선택권은 자네에게 있다네. 어떻게 할 건가? 며칠 고민할…….”
시간적 여유를 주겠다는 말을 사내가 채 꺼내기도 전에 급히 대답하는 라이. 혹시라도 사내가 마음을 바꿔 입단을 취소할까 두려웠던 것이다.
어릴 때부터 꿈꿔왔던 라이의 오랜 꿈이 지금 이뤄지려 하고 있었다.
“입단하겠습니다.”
사내는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 지으며 말했다.
“좋아. 그럼 지금부터 자네의 입단 수속을 내가 도와주지. 참, 한 가지 문제가 있네. 이름은 괜찮지만 로티넨이라는 성을 그대로 사용하는 건 너무 위험해. 크라레스 쪽에서 냄새를 맡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혹시 따로 쓸 성을 생각해 둔 게 있나? 없다면 우리 쪽에서 만들어 주겠네.”
라이는 생각할 것도 없이 곧바로 대답했다.
“위너스로 하죠. 라이 위너스.”
뻔뻔스럽게 자기 진짜 본명을 말하는 라이.
하지만 그걸 알 리 없는 사내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위너스라…, 어감이 괜찮군. 그리 희귀한 성씨도 아니고 말이야. 명심하도록 하게. 앞으로 로티넨이라는 성은 두 번 다시 쓰면 안 된다네. 아무리 친밀한 사이가 됐다고 해도 본명을 가르쳐 줘서는 절대로 안 돼. 알겠나?”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나를 따라오게.”
라이는 그 사람을 따라가 기사단 입단 수속을 밟았다. 일단은 수습기사로 들어간 후, 단계를 밟아 정기사가 되는 모양이었다.
온몸의 치수를 재면서 기사단 제복이 완성되려면 최소한 이삼 주일은 걸린다고 했다.
대신 그동안 착용할 수 있도록 창고에 있는 여분의 옷들 중에서 세 벌을 꺼내줬다. 병영 안에서 민간인 복장으로 어슬렁거리도록 놔둘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복이 나올 동안 지금 입고 있는 허름한 옷만으로 지내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고향을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라이는 또래 친구들에 비해 전혀 뒤지지 않는 체격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한창 성장할 때 오크 굴에 갇혀 제대로 영양 섭취를 못한 탓에 지금은 또래에 비해 훨씬 왜소한 체격으로 바뀌어 있었다.
만약 병영 밖이었다면 어린애들도 많은 만큼 그의 체격이 왜소한 게 별로 표시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병영이다. 주위에 걸어 다니는 사람들은 모두 다 단련을 거듭한 당당한 덩치의 사내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라이가 입을 만한 여분의 제복은 그나마 체격이 비슷한 여성용이었다. 다행이라면 하의가 치마가 아니라 바지라는 것 정도일까.
“젠장, 어딜 가나 여자 옷이군…….”
“크크, 어쩔 수 없지. 자네 덩치가 너무 왜소해서 그런 거야. 여기 들어오는 남자들 중에서 자네 같은 작은 체형은 처음이거든. 어쨌든 이삼 주일만 참고 입게. 그때쯤이면 옷이 완성될 테니까.”
새로운 신분증도 며칠 내로 만들어 지급해 준다고 했다.
이 모든 게 꿈인 것만 같아서 슬며시 허벅지를 꼬집어보는 라이였다.
썩 내키지 않았었는데, 박스터와의 의리 탓에 워커를 따라온 게 이런 행운을 안겨줄 줄이야.
라이는 전혀 예상조차 하지 못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기회를 안겨준 상대가 마인 테귤러였다는 것도…….
링카 변경백의 사막원정
과거 알카사스 부족연합은 동서 양쪽 대륙을 나누고 있는 거대한 티투스 대사막을 건너는 대륙간 무역을 통해 부를 쌓아, 그걸 기반으로 왕국으로 발전했다.
그들은 살기 좋은 동쪽을 점령하면서 점차 그쪽으로 기반을 옮겨갔고, 그들이 빠져나간 지역을 다른 사막 부족이 이주해 들어오면서 자리 잡았다.
그 때문에 지금에 이르러 티투스 대사막의 약 90%에 달하는 지역을 차지하고 있는 건 알카사스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사막 부족들이었다.
공간이동 마법진을 통한 무역이 정점을 달리고 있었던 때, 그때까지도 사막에 남아 육로나 해로로 무역을 하던 알카사스인들이 모두 경쟁력을 잃고 몰락해 버린 탓이다.
다른 운송수단들이 외부 세력에게 슬금슬금 점령되고 있는 걸 알카사스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냥 놔뒀다. 어차피 교역품의 절대다수는 자신들의 공간이동 마법진을 통해 운송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티투스 대사막 위로는 공간이동 마법진이 전혀 먹히지 않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때 떼돈을 벌기 시작한 게 해상 무역로를 차지하고 있던 도시국가 연합이다.
하지만 그들의 전성기는 그리 길지 못했다. 실버 드래곤들이 통행세를 과도하게 요구하기 시작해, 운송료가 폭등했기 때문이다.
부담을 느낀 상인들은 하나둘씩 예전의 고전적인 방식으로 다시 돌아가 티투스 대사막을 건너기 시작했다.
이에 쌍수를 들고 환영을 한 사람들이 바로 무역로 근처에 들어와 살고 있던 사막 부족들이다.
처음에는 상인들이 던져주는 푼돈만으로도 좋아하던 사막 부족은 돈을 따라 사람들이 모여들고 점차 그 세력이 커지자 이제는 무역로 전체를 장악하려는 욕심을 내비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뒤에서 족장들을 부추기는 건 도시국가 연합이었다.
알카사스로서는 이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안정적인 무역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역로를 자신들의 손아귀에 넣을 필요가 있었다.
그렇기에 이번 사막 부족에 대한 대규모 정벌이 계획된 것이다.
페가수스 용병단 단장은 부대 내에 남아있는 유일한 연대장인 조지 홉킨스를 집무실로 불렀다.
“링카 변경백이 사막원정을 단행한다고 한다. 우리 쪽에 원정군의 최선두에서 군을 이끌어 달라고 요청해 왔다.”
링카 영지는 알카사스의 서쪽 관문으로서 영지의 태반이 황량한 불모지와 접해있었고, 그로 인해 무역로의 치안까지도 유지해야만 했다.
그래서 필요하다면 국경 밖으로까지 군대를 이끌고 나가 전투를 행해야만 했기에 독자적인 병권을 행사할 수 있는 영주인 변경백이 링카 영지를 다스리고 있었다.
“변경백이 원하는 게 정확하게 뭡니까?”
“현재 무역로에 자리 잡고 앉아 자신들의 영향력을 키우는 세력을 일소하고, 예전처럼 변경백이 무역로를 장악하려는 거지. 물론, 그곳을 점령하는 건 아닐 거야. 반 알카사스 노선을 걷고 있는 족장들을 처단하고, 친 알카사스 파가 그 자리를 차지하도록 하는 정도겠지.”
홉킨스는 썩 내키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지도를 쳐다봤다.
말이 좋아 무역로 장악이지, 그건 일개 용병단 정도의 힘으로는 해낼 수 없는 의뢰였다.
사막지대라고 해서 모든 지역이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불모의 대지는 아니다. 그런 곳은 사막 중심부의 극히 일부일 뿐, 나머지는 우기에 약간이나마 비도 내리고 풀도 자란다. 농사를 짓는 건 힘들지 몰라도 유목(遊牧)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말이다.
만약 몬스터의 존재만 없었다면 수백만, 아니 어쩌면 수천만의 인구가 거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튼튼한 방벽이 갖춰진 크고 작은 도시나 성읍을 중심으로 거주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던 탓에 사막의 인구는 겨우 200만 정도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그 200만 명은 수시로 출몰하는 몬스터들을 상대로 살아남은 강인하고 호전적인 족속들이었다.
무역로는 낙타나 말에 물과 여물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고, 몬스터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곳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대상들을 통해 식량과 상품이 꾸준히 유입되다 보니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그 규모도 커졌다.
특히 무역로의 핵심도시들 중 하나인 베이라 성 같은 경우 6만이 거주하는 거대한 성곽도시였다.
그에 비해서 무역로를 벗어난 위치에 있는 일반적인 성읍들의 규모는 아주 작았다.
유목을 하다 보니 10여 가구가 모여 살 수 있는 정도의 성읍을 네다섯 개 정도 보유하고 돌아가며 생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런 작은 성읍들이라 해도 그냥 놔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 성읍이 적으로 돌아서면 자칫 뒤통수를 맞을 수도 있고, 보급로가 끊길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모든 지역을 다 점령하려고 했다가는 페가수스 용병단 전체가 동원된다고 해도 점령이 불가능할 정도로 티투스 대사막은 넓었고, 성읍들의 숫자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제가 데려갈 수 있는 병사의 숫자는 얼마나 됩니까?”
“1천을 보내달라더군.”
용병단 단장의 말에 홉킨스는 황당하다는 듯 급히 되물었다.
“설마…, 원정부대가 그 1천이 전부는 아니겠죠? 아무리 기사단이 앞서가며 크고 작은 도시들과 성읍들을 파괴해 나간다 해도, 겨우 1천 가지고는 점령지 관리조차…….”
“먼저 한 가지 분명하게 해둘 게 있다네. 기사단은 동원되지 않아.”
“설마……?”
“순수하게 병력 대 병력의 전투가 될 걸세. 변경백 직속 병력 3만, 그리고 우리를 포함해서 10개 용병단 3만 정도.”
“6만이라……. 어려운 싸움이 되겠군요.”
홉킨스가 우려할 만했다.
사막은 평지가 주를 이루기에 매복이나 기습과 같은 작전을 짜기가 힘들다. 그리고 상대는 모두 성에 틀어박혀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거주하는 사막 부족들은 모두 몬스터와의 전투에 단련된 강병들인 것이다.
그런 성들을 타이탄도 없이 공성전을 통해 하나하나 제압해 나가려면 쉽지 않은 전투가 되리라.
“기밀 유지는 확실하겠죠?”
“원래는 그래야겠지. 사막 부족들이 대비하기 전에 가장 강력한 도시들부터 먼저 기습 점령해 버리는 게 최고니까 말이야.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니란 말이지.”
“어떤 문제인데 그러십니까?”
“변경백이 무역로를 장악하기 위해서 병력을 모으고 있다는 소문이 이미 링카 영지 전역에 쫙 퍼져있다는 사실이야.”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는지 홉킨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걸 보며 단장은 계속 말을 이었다.
“그리고 개전 당일, 대로를 행진하며 개전 행사를 벌여야 하니 전날 출동하는 병사들은 모두 링카 성 외곽에 집결을 완료해야 한다고 했어.”
너무나 한심스러운 작전 계획에 홉킨스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한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체 뭐 하는 짓이랍니까? 정말 이해할 수가 없군요. 이건 마치 우리가 이제 공격을 할 테니 얼른 대비를 하라고 광고를 하는 거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사방에 흩어져 있는 사막 부족들이 한곳으로 세력을 결집하면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요? 더군다나 그들에게는 동맹을 맺은 도시국가 연합도 있잖습니까?”
단장은 씨익 미소 지으며 말했다.
“바로 그걸세! 그걸 노린 작전이지. 변경백이 멍청하고 무능한 인물이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그는 아주 교활한 사람이야.”
단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지도 앞으로 다가선 뒤 사막 남쪽 해안에 위치해 있는 세 개의 도시국가들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세 개의 도시국가들은 사막 부족들의 오랜 동맹들이었다.
도시국가라고 해서 그 규모가 작은 건 아니었다. 그 셋을 모두 합한다면 주민 수가 무려 50만에 달할 정도였으니까.
그들과 사막 부족은 무역에 있어서는 서로 경쟁 관계였지만, 군사 부분에 있어서는 동맹 관계에 있었다. 사막에 군침을 흘리는 주변의 강대한 국가들로부터 자신들을 지키기 위한 자구책이었던 것이다.
“이쪽에서 구원부대를 보내오길 유도하는 걸 거라고 나는 생각했어.”
그제서야 홉킨스는 음흉스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흠, 제법 고민을 많이 한 작전이로군요. 어차피 도시국가로 쳐들어갈 수가 없으니 생각해 낸 게 적을 밖으로 끌어낸다라…….”
무역을 통해 부를 쌓아온 도시국가들은 실버 드래곤들에게 막대한 뇌물을 바치며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도시국가를 침공한다는 건 도저히 불가능했다. 실버 드래곤들의 분노를 감당할 수 있다면 몰라도 말이다.
“그래, 바로 그걸세. 변경백은 도시국가를 칠 생각이 전혀 없어. 대신 원병으로 출동하는 병력만 갉아먹을 생각이지. 내 생각인데…, 이번 원정의 핵심은 도시국가들을 손봐주는 거야. 사막 부족들은 그 후에 천천히 손봐줘도 된다는 거지.”
“그렇다면 사막 부족들을 공격하는 건 결과가 어떻게 나와도 상관하지 않겠군요.”
“물론일세. 가장 중요한 건 도시국가들을 향해 미친 듯이 구원병을 요청할 정도로만 하면 돼. 나머지는 모든 게 우리 마음이야. 이건 내 생각인데, 영주군은 용병들과 함께 행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 무역로 쪽으로 가는 척하다가 시야를 벗어나자마자 남쪽으로 이동하겠지. 그리고 매복 작전에 동원되는 것도 3만이 아니라 6만 이상일 거야. 그래야 한 번에 확실하게 끝장을 낼 수 있을 테니까.”
단장의 예상대로 영주군의 모든 병력이 남쪽으로 향한다면, 용병들에 대한 감시 감독은 없을 거라는 얘기였다.
무역로상에 위치한 성읍들이 다른 성읍들보다 훨씬 거주민도 많고, 성벽에 대한 보수도 잘 되어있어 점차 도시로 발전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거기를 약탈할 수만 있다면…….
순간 홉킨스의 눈이 탐욕으로 빛났다. 약탈만 허용된다면 나머지 조건은 들어볼 필요도 없었다. 용병으로서 목숨을 걸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 한 가지만 확실히 준비해 주십쇼.”
“말해보게. 뭐가 필요한가?”
“공성 병기를 대신할 만한 마법도구가 필요합니다. 현지에서 공성병기를 제작할 수 있을 만큼 쓸 만한 재료를 대량으로 구할 수 있을지 의문이고, 그렇다고 무거운 공성 병기들을 사막 위로 운반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테니까요.”
단장은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승낙했다.
“허긴~, 쓸 만한 게 있는지 수석마법사에게 물어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