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쪽입니다, 스승님.”
아르티어스가 노마법사와 함께 숙소에 도착해 보니, 조원들 모두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월급 수령을 위해 행정부에 갔던 호위 조장까지도.
조원들이 아르티어스와 함께 숙소로 들어오는 노마법사에 대해 호기심 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을 때, 아르티어스가 급조된 스승을 모두에게 소개했다.
“이분은 어릴 적 내게 마법을 가르쳐 주신 스승님이시다. 내가 여기서 이름을 떨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함께 모험을 하시고자 오셨으니 잘 모시길 바란다.”
아르티어스의 말에 호위들은 잠시 곤혹스런 표정을 짓긴 했지만 어쨌거나 대답은 했다. 하늘 같은 상관의 명령이었으니까.
“여부가 있겠습니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잘 부탁하네. 나는 랄프 디겔의 스승인 리오 프라이스라고 한다네.”
랄프 디겔 같은 하급 마법사 제자들만 배출한 걸 보면 이름이 알려진 실력 있는 마법사는 아니었다. 더군다나 용병들이 유명한 마법사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호위들은 존경하는 마법사인 아르티어스를 가르친 그의 스승에게 격식을 갖춰 자신의 직책과 이름을 소개했다.
“저는 호위 조장을 맡고 있는 데리라고 합니다.”
“저는 로이드라고 합니다. 특기는 궁술이죠. 만약 전투가 벌어지면 얼른 제 곁으로 오시면 됩니다.”
뒤따라 롤랑, 말로, 매튜도 자신의 소개를 했다. 그들은 칼과 방패를 함께 사용하는 방어전에 특화된 용병들이었다.
통성명이 끝난 후, 아르티어스는 호위 조장 데리에게 물었다.
“갔던 일은 어떻게 됐나?”
데리는 품속에서 통장을 꺼내 아르티어스에게 건네줬다.
“여기 있습니다, 마법사님.”
별생각 없이 통장을 주머니 속에 넣으려던 아르티어스는 곧이어 생각을 바꿔 통장의 내용을 살펴보는 척했다.
레어 안에 쌓아놓은 수많은 황금들을 생각한다면 이깟 푼돈은 어찌 되어도 상관이 없었지만, 통장의 액수조차 확인하지 않고 그냥 주머니에 넣는다면 주위의 용병들이 그를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어디 보자…, 제대로 계산이 됐나?”
이곳으로 와서 첫 달에 받은 월급은 그리 많지 않았다. 고블린 사냥을 떠나는 용병 중대와 함께 다녔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월급은 아르티어스가 호위대만 이끌고 신속하게 이동하며 마법진만 설치하고 다녔기에 전멸시킨 고블린 무리의 숫자 단위부터가 달랐다.
그 숫자는 무려 열여섯.
각 무리당 임무 참가수당과 성공수당이 따로 책정된다.
무리가 열여섯이다 보니 수령액이 워낙 커서 아르티어스의 기본급은 그야말로 새발의 피밖에 되지 않는다.
웬만한 용병이라면 그가 수령한 액수를 보기만 해도 입에 거품을 물것이 분명했지만, 아르티어스는 별것 아니라는 듯 중얼거렸다.
“수당이 제법 짭짤하긴 하군.”
호위 조장이 급히 행정부에서 들은 말을 전달했다.
“행정부 쪽 말로는 설치하신 마법진들 중에서 세 개가 아직 기동하진 않았지만, 지금껏 단 한 번도 실패하지 않으셨기에 그것까지 포함해서 계산했다고 하더군요.”
아르티어스가 설치한 마법진은 자연의 마나를 흡수하여 그 마력으로 작동한다. 그렇기에 날씨가 얼마나 좋으냐에 따라 발동에 걸리는 시간차가 아주 컸다.
“제자야, 월급을 얼마나 수령했는지 내가 한 번 살펴봐도 괜찮겠느냐?”
노마법사의 말에 아르티어스는 능청스럽게 연기를 펼쳤다. 두 손으로 공손히 통장을 노마법사에게 건네주며 고개를 숙인 것이다.
“물론입니다, 스승님. 이 모든 것이 다 스승님 덕분이니까요.”
통장에 기록되어 있는 액수를 확인한 노마법사의 눈이 일순 휘둥그레져지며 잔경련을 일으켰다.
사실, 어느 정도 실력 있는 마법사라면 그 정도 액수는 그리 큰돈은 아니었다. 하지만 삼류 마법사인 그에게 있어서는 엄청난 액수였던 것이다. 마법사에게 있어서 수입은 곧 실력을 말해준다.
자신의 기습공격을 간단히 취소시켜 버리는 걸 보고 상당한 실력자인 건 이미 짐작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하지만 그는 모르고 있었다. 이게 다 고블린을 때려잡아 번 돈이라는 것을.
“조장, 다음 임무에 대한 얘기는 있었나?”
“아뇨. 아직 후속 임무가 정해지지 않았으니 대기하라는 지시였습니다. 얼마나 대기하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이번 기회에 푹 쉬시라는 전갈이었습니다.”
“그럼 자네들은 좀 쉬도록 하게. 나는 스승님을 모시고 용병단 본부 안을 구경시켜 드리고 올 테니.”
아르티어스의 말에 호위대 전원이 환히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예, 좋은 시간 보내시길 빕니다.”
부하들을 모두 밖으로 내보낸 후, 아르티어스는 노마법사에게 말했다.
“이곳에서 뭔가 필요한 게 있으셔서 구입하실 때는 제 이름으로 하도록 하십쇼. 방금 전에 확인하셨듯 돈은 꽤 넉넉하니까 말입니다.”
이미 탐색마법으로 주변 확인을 다 했음에도 노마법사는 조심스럽게 주위를 두리번거린 후 아르티어스에게 속삭였다.
“근처에 아무도 없으니 하는 말인데, 우리 둘만 있을 때는 굳이 스승으로 대해 주지 않아도 괜찮다네. 나도 염치가 있지, 어떻게 그것까지 바라겠나.”
그러자 아르티어스는 별것 아니라는 듯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아, 너무 신경 쓰지 마십쇼. 이왕 할 거면 제대로 하는 게 좋으니까요. 대신 함께하는 동안만큼은 최대한 스승님으로 모시겠지만, 하루 종일 옆에 붙어있을 수는 없다는 것만 양해해 주셨으면 좋겠군요.”
“걱정 말게. 일이 있으면 난 신경 쓰지 말고 언제든 일 보시게.”
“혹시 용병 일은 해보신 적 있으십니까?”
“부끄럽게도 이 나이 되도록 사회 경험은 거의 없다네.”
“그럼 따라 나오시죠. 이곳 용병단 본부를 구경시켜 드리겠습니다.”
“너무 고맙구먼.”
“저도 돌아가신 스승님을 다시 만난 듯하여 반갑기 그지없습니다. 자, 일단 밖으로 나가시죠. 규모가 큰 용병단이다 보니 소소한 볼거리가 제법 있습니다.”
제자와의 모험을 꿈꾸는 노마법사
아르티어스가 스승이라는 노마법사와 함께 영내를 돌아다니는 것을 확인한 용병단 수석마법사는 재빨리 단장에게 달려가 그 사실을 보고했다.
“놀랍게도 디겔 본인이 맞는 모양입니다. 스승이라는 늙은 마법사를 안내하며 여기저기 구경시켜주고 있답니다.”
뜻밖의 보고에 용병단 단장은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예상과는 달리 전혀 의외의 상황이었으니까.
“늙은 마법사를 협박하거나 포섭했을 가능성은?”
수석마법사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두 사람의 분위기로 봤을 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는 듯합니다. 저도 도저히 믿겨지지가 않아 직접 가서 살펴봤는데, 노마법사가 디겔을 보는 눈빛에 아주 꿀이 뚝뚝 떨어지던데요.”
수석마법사의 말에 용병단 단장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가짜인 줄 알았는데…….”
보기 드물 정도의 미남인 건 그렇다 치고, 불타오르듯 새빨간 머리카락은 너무 눈에 띄었다.
신분증과 지금의 얼굴 모습이 너무 다르지 않냐는 추궁에 여자에게 호감을 얻기 위해 마법으로 좀 바꿨다는 뻔뻔한 변명은 아무리 생각해도 첩자나 도망자가 할 행동은 아니었다.
그리고 용병단에 입단하자마자 저렇게까지 두각을 드러낸다는 것도 이상하다.
하지만 용병단 단장은 거칠게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수상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수많은 용병들을 부리며 살아왔던 그였기에 말로 설명하기 힘든 소위 「촉」이라는 게 발동한 것이다. 뭔가 상당히 수상쩍다는.
“어쩌면 그 스승이라는 노마법사조차 우리를 현혹시키려는 수작일 수도 있지 않나? 분명 어딘가에서 보낸 첩자일 게 분명해.”
“아직까지 디겔을 수상쩍다 생각하고 계신 모양이군요.”
단장이 자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본 수석마법사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에혀, 저 정도 실력자를 투입해 공을 들여야 할 만큼 그런 엄청난 정보를 우리 용병단이 가지고 있는 지가 더 의심스럽습니다. 솔직히 말이 좋아 십대용병단이라 불리지, 요즘은 용병단장이 촌구석 영주조차 되기 힘든 세상 아닙니까?”
과거처럼 용병단이 반란이라도 일으켜 왕실을 전복시킬 만한 힘이라도 지니고 있다면 혹 모르겠지만, 지금은 합법적인 일을 주로 하는 깡패집단과 별로 다를 것도 없는 상태였다.
만약 디겔 정도의 실력 있는 마법사를 첩자로 침투시킬 생각이라면 이런 용병단보다는 원로원 직속의 연구소에 침투시키는 쪽이 훨씬 더 가치 있는 정보를 빼낼 수 있을 건 자명한 사실이 아니겠는가.
잠시 생각해보던 단장은 마지못해 수긍했다.
“자네 말이 옳은 듯 하이.”
“그렇다면 이젠 대책을 생각해둬야 하지 않을까요?”
“무슨 대책?”
“스승 살해를 빌미로 협박하려던 게 무산됐으니, 이젠 어떻게 디겔을 붙잡으실 생각이신 거죠? 저 정도 능력이라면 사방에서 군침을 흘리며 자기들 용병단으로 오라며 달려들 게 뻔한데…….”
“크음…….”
처음과는 달리 상황이 너무 바뀐 게 문제였다.
만약 그저 그런 마법사였다면 신경조차 쓰지 않았겠지만, 그가 예상치도 못했던 엄청난 마법으로 고블린 둥지를 궤멸시켜줌으로 인해 그곳에 얽매여 있던 많은 부하들이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그는 모든 용병단이 원하는 보물과도 같은 존재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만큼 용병단에게 고블린 토벌은 골칫거리였기 때문이다.
“확실한 대책을 마련하기 전에 일단 무역로를 평정하는 임무에 그를 동참시키는 건 어떻겠습니까?”
수석마법사의 제안을 이해하기 힘들었던 단장은 인상을 찡그리며 되물었다.
“그곳에는 왜?”
“지금 모든 용병단의 이목이 디겔을 향해 있지 않습니까. 그들의 관심에서 디겔을 잠시라도 떨어뜨려 놓을 필요가 있다는 거죠.”
디겔의 활약상이 외부로 알려지게 된 건 순전히 용병길드 탓이었다.
페가수스 용병단에서도 디겔의 존재가 외부로 알려지지 않도록 그를 중심으로 한 독립부대까지 편성한 후 마법통신으로 직접 지시를 내렸었다.
하지만 고블린 사냥에 발목이 잡혀있던 많은 부대들이 요 근래 임무를 완료하고 새로운 임무를 하달받는 특이상황이 벌어진 걸 길드가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마법사가 파견되어 있지 않은 휘하부대들에 보내는 지시들은 모두 용병길드를 통해 전달되고 있다 보니 그건 당연한 결과였다.
수석마법사의 의중은 디겔을 일단 전쟁 임무를 수행하는 부대에 합류시켜 놓으면 디겔을 포섭하려는 타 용병단의 접근을 수월하게 차단할 수 있을 거라는 뜻이었다.
“그건 자네 말이 맞는 것 같군.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해.”
“예, 단장님.”
지시를 내린 단장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가려던 수석마법사를 불러 세웠다.
“잠깐만.”
“옛, 다른 지시 사항이라도 있으십니까?”
“디겔을 홉킨스의 직속으로 넣지는 말게.”
수석마법사는 단장이 왜 그런 지시를 내린 것인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음흉스런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가 공을 세워 이목이 더 집중되지 않도록 하라는 말씀이시죠? 제가 잘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부탁하네.”
“예, 단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