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98화 (894/930)

“모두들 빨리 나와. 배고파! 밥 먹으러 가자!”

마지막으로 목욕을 끝낸 다이아나가 준비를 끝내자마자 복도에서 외쳤다.

대공가 영애인 만큼 최고 품질의 가죽옷으로 몸을 감싸고 있다.

갑옷과 로브를 벗으면 좀 여성스런 몸매로 바뀌지 않을까 싶었지만, 기대와는 달리 오히려 옷에 감춰져 있던 근육질이 뚜렷이 드러나며 더욱 남성화되어 있었다.

그에 비해 황급히 방에서 뛰어나온 라디아나 파벨은 로브로 몸은 물론이고 얼굴까지도 가리고 있었다.

그녀들의 미모는 보자마자 마법사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었기에 스스로 알아서 조심하는 것이다.

“안에 갑옷 입었어?”

라디아의 물음에 파벨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응.”

“여기는 호텔 안인데 갑갑하게 갑옷은 왜 입어? 이럴 때 월터에게 그 사랑스런 몸매를 보여줘야 할 거 아냐.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빨리 벗고 나와.”

“계속 놀리면 나 화낼 거야!”

파벨이 분개한 척 해보지만, 그녀의 소심함을 라디아가 모를 리 없었다. 아마 한동안은 안에 입은 가죽옷으로 놀려댈 게 뻔했다.

“크크, 다음에 둘이서만 오붓이 즐길 수 있는 시간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해 볼게. 오늘은 사막을 횡단한 후 기념비적인 첫 식사니까 모두 함께 먹자고.”

뒤따라가던 다이아나가 라디아에게 속삭이듯 물었다.

“둘이서만 오붓한 시간이라니, 그거 무슨 말이야?”

“아, 그런 게 있어. 셀리나는 몰라도 돼. 그건 그렇고 뭐, 맛있는 게 있으려나?”

“나는 맥주! 더울 때는 시원한 맥주가 최고지!”

그리고 그 뒤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따라가고 있는 파벨.

‘아, 정말…….’

감히 신경질을 내진 못했지만, 그래도 다행이라면 이 자리에 월터가 없다는 것.

만약 월터 앞에서 라디아가 저런 소리를 하면 어떻게 해야 하지? 파벨로서는 고민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모두 함께하는 식사라고는 해도 같이 온 상인들과 용병들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들은 다이아나나 월터의 진정한 신분을 아직 모르는 상태였다.

둘의 첫 격돌 때 두 사람이 보통 실력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보긴 했지만 거기까지였다.

두 사람의 신분 때문이라도 그들과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식사를 하게 되었기에 모두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기름진 음식과 향기로운 술을 잔뜩 시켜놓고 포식을 즐기기 시작했다.

사막을 건너오면서 먹은 것이라고는 바짝 마른 빵조각과 육포 조각, 그리고 말린 대추야자 열매가 전부였다. 그러니 제대로 된 음식을 먹고 싶어 안달이 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기가 막히군. 최고야. 이렇게 맛있을 수가…….”

월터의 과장된 호들갑에 라디아가 새침한 어조로 반박했다.

“냉정하게 음식 맛을 평가한다면 그리 대단한 건 아니야. 지금까지 워낙 부실하게 먹었기에 이게 맛있게 느껴지는 것일 뿐이지.”

“누가 들으면 사막 건너기 전에는 정말 맛있는 음식들만 먹고 살았는 줄 알겠다. 이거 꽤 맛있네.”

그에 반해 다이아나는 식사가 꽤 마음에 든다는 듯 커다란 고깃덩이를 우적우적 씹어먹은 후, 맥주를 한 번에 들이켰다.

그러던 다이아나는 파벨을 힐끔 쳐다본 후 우려 섞인 질문을 던졌다.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그녀는 식사가 입에 맞지 않은 듯 깨작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파벨은 음식이 입에 안 맞아?”

음식은 맛있었다. 하지만 작금의 상황이…, 그것도 특히 라디아 때문에 식욕이 뚝 떨어진 상태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곧이곧대로 말할 수는 없었기에 파벨은 월터의 눈치를 살짝 살피며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 맛있어.”

“맛있다면서 그것밖에 안 먹어?”

“충분히 먹었어. 배불러.”

“그렇게 새 모이만큼 적게 먹으니까 체력이 없는 거야. 봐, 라디아도 마법사인데 잘 먹잖아. 엄마가 그랬어. 여자는 근육이라고. 잘 먹어야 근육도 붙는 거야.”

“마법사가 근육 키워서 뭐하게? 마법사라면 역시 두뇌지. 두뇌를 원활하게 움직이려면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다는 건 상식이야. 그래서 우수한 마법사가 되려면 잘 먹어야 하는 거야.”

설마 공작부인이 그런 무식한 말을 했으려고? 하지만 곧 주변국 요주의 인물 중 하나인 치레아 공작부인의 특징을 떠올릴 수 있었다.

오크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우람한 덩치…, 그렇다면 다이아나의 말은 거짓이 아닐 것이다.

순전히 그쪽 집안의 개인적 편견이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지만.

파벨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식당 안을 휙 둘러보았다.

국경 마을에서 제일 큰 식당이라고 들었던 만큼, 꽤나 넓었고 손님도 많았다.

파벨이 아무리 살펴봐도 걱정스러운 얼굴로 쑤군거리는 사람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모두 식사를 즐기는 활기찬 얼굴로, 예상했던 전쟁의 기운이라고는 손톱만큼도 감지할 수 없었다.

‘잘못 온 거 아닐까?’

그 개고생을 하면서 건너온 사막이다. 그런데 초장 분위기부터 우려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파벨은 자신의 느낌이 잘못된 것이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그렇지 않다면 여기까지 오느라 그 고생을 한 게 완전히 허사가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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