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00화 (896/930)

또다시 마왕이 강림한 건가?

월터 일행은 지금껏 다이아나를 따라 함께 이동하고 있던 상인들과 헤어졌다. 그들과 함께 이동하는 게 별 득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루라도 빨리 도시국가에 도착해서 분위기를 살펴보고 싶은데, 상인들과 함께 이동해서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게 된다.

월터 일행은 준비를 마치자마자, 곧바로 도시국가 연합을 향해 출발했다.

마음이 급하긴 했지만, 사막을 통과할 때와 달리 이번에는 경로상에 있는 모든 오아시스 성읍들에 들리기로 했다.

전에는 물과 식량을 보충할 때 외에는 오아시스 성읍에 들리지도 않았으며, 설혹 들렸다 하더라도 보충이 끝나는 즉시 출발했었다.

그 때문에 사막 부족들의 분위기가 어떤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자신들이 뭘 놓치고 있는지 깨달은 이상,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할 수는 없다.

그랬기에 아직 식량과 물이 충분한데도 불구하고 사막 위에 조성되어 있는 성읍이 보이자마자 월터 일행은 그쪽으로 달려갔다.

사막 중심부에 비해 물과 풀이 풍부한 지역인 만큼, 무역로에 위치해 있는 성읍에 비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규모가 꽤 커 보였다.

성벽 밖에 외지인을 위한 숙소가 지어져 있는 것도 보였다.

다른 나라와 달리 여행객들을 위한 숙소가 성밖에 지어져 있는 이유는, 가급적 외지인을 성안으로 들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단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도적떼일 수도 있지 않는가.

그렇기에 이렇듯 숙소를 밖에 지어두고, 성벽 안으로 들어오고 싶은 사람이나 가축은 그 숫자만큼의 통행세를 받았다. 그리고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성 안으로 들어온 외지인은 어두워지기 전에 다시 성 밖으로 나가야만 했다.

여행객들 입장에서도 성 밖이긴 해도 시원한 잠자리를 제공 받을 수 있었기에 그다지 불만은 없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사막을 횡단하는 여행객들은 뜨거운 햇볕을 피해 밤에 이동하고 낮에 쉰다.

구덩이를 파던지, 천막을 치던지 해서 노숙을 하는 것에 비한다면 이건 호화로운 잠자리라고 봐야 했다.

그리고 필요하면 성안에 들어가서 물품을 구입할 수도 있는 데다, 만약 위급한 일이 생기면 성안으로 들어가 주민들과 함께 싸우거나, 설혹 그들이 받아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성을 의지해서 싸우면 된다. 그 정도만 해도 충분히 이익인 것이다.

이전에 사막을 통과했을 때는 상인들만 보급을 위해 성 안으로 들어갔을 뿐, 월터 일행은 성 밖 숙소에서 휴식을 취했었다. 그 때문에 성내의 분위기가 어떤지 살펴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일부러 성 안으로 들어갔다.

파벨이 원주민들의 말을 할 줄 알았기에, 그녀에게 안내를 맡겼다.

성문은 커다란 마차가 들어갈 때만 큰 대문을 열고, 평상시에는 옆에 있는 작은 쪽문만을 열어둔다.

쪽문을 통과하면서 보니, 성벽 두께가 4미터는 족히 되었다.

이 정도라면 비록 진흙 벽돌로 만들긴 했지만, 어지간한 몬스터의 공격쯤은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밖에서 봤을 때는 몰랐는데, 안으로 들어와 보니 지금껏 그들이 봐왔던 성읍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모든 건물이 성벽에 바짝 붙어 지어져 있다.

이건 성벽을 강화하는 효과도 있을뿐더러, 이로 인해 중앙에 생긴 넓은 광장에 가축들을 보관할 수 있었기에 이런 형태로 성을 건설한 것 같았다.

지금껏 보지 못했던 색다른 주거 형식에 모두가 호기심 어린 눈길로 주위를 둘러본다.

그들 일행은 현지 상인을 찾아 식량과 물품들을 구입한 뒤 은근슬쩍 주변 분위기는 어떤지 물어봤다.

“급한 일정이 아니시라면 몬스터의 준동이 좀 잦아진 후에 떠나시길 권합니다. 요즘 들어 워낙 몬스터들의 습격이 심해져서…….”

상인의 말로는 며칠 전에도 양떼를 끌고 나갔던 사람 하나가 돌아오지 못했다는 것이다.

양떼를 몰고 나간 주변을 샅샅이 뒤졌지만, 결국 그 사람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대신 그가 끌고 나갔던 숫자의 1/3 정도의 양떼만을 찾았을 뿐이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양떼, 그리고 남아있는 흔적으로 미뤄보아 바위도마뱀의 습격을 받은 것 같다고 했다.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마치 바위처럼 보인다고 해서 바위도마뱀이라 불리는 이 무시무시한 몬스터는 엄청난 덩치를 지닌 괴수였다. 마을 하나 정도는 간단히 먹어 치울 정도다.

그런 괴수가 성읍 주위에 나타났는데도 아직 사람 하나 실종된 피해만으로 끝났다는 건 정말 천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여기는 사막 변두린데도 바위도마뱀 같은 몬스터가 출몰하는 모양이죠?”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죠. 그런데 요 근래는 간혹 나타나고 있기에 모두들 경계에 만전을 기하고 있는 중 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사막지역의 몬스터는 수십, 수백씩 떼를 지어 습격해 오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식량 부족으로 인해 무리를 늘리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납품해야 할 기일이 촉박해서 말이죠.”

“아무리 그래도 목숨만 하겠습니까?”

월터는 상인에게 고마움을 표시한 뒤, 또 다른 현지인 몇 명과 대화를 나눠보았다.

그런데 그들이 하는 말은 거의 비슷했다. 모두 급한 일이 아니라면 어느 정도 상황이 안정된 후에 사막을 건너라는 거였다.

그 외에는 월터 일행의 흥미를 끌 만한 정보는 없었다.

✻ ✻ ✻

페가수스 용병단과 함께 행군하던 아르티어스는 문득 이상한 기운을 느낀 뒤 고개를 갸웃하며 사막 저쪽 지평선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느껴져서는 안 될 기운을 느낀 것이다. 부정(不淨)한 기운. 예전에 대마왕 크로네티오가 지배하던 크라레스에서 느껴지던 기운하고는 또 다르다.

크로네티오의 기운이 보다 사악하고 패도적이었다면, 사막 저편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뭔가 암울하면서도 끈적한 불쾌감을 더하고 있었다.

‘또다시 마왕이 강림(降臨)한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르티어스는 곧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왕급이 지상에 강림한다는 게 그리 쉬운 게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대마왕급이었던 크로네티오가 강림하는 데 성공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다른 마왕이 강림할 수가 있겠는가. 확률적으로도 말이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곳 티투스 대사막은 드래곤 중에서도 최강이라는 실버 일족의 입김이 강한 지역이다.

설혹 마왕이 몰래 강림하는 데 성공했다손 치더라도, 실버 일족이 그놈을 그냥 놔둘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이건 뭐지? 늪지대도 아니고, 사막지대에서 이런 부정한 기운이 생긴다는 얘기는 지금껏 들어본 적이 없는데…….’

아르티어스는 슬쩍 고개를 돌려 신관의 눈치를 살폈다. 이런 부정한 기운을 파악하는 건 신관의 전문 분야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용병단에 소속된 신관들의 등급이 낮아서 그런지, 자신이 느낀 부정한 기운을 감지한 신관은 없는 듯 보였다.

아르티어스는 곧바로 브로마네스를 호출했다.

“통신 괜찮냐?”

「아, 괜찮아. 이 시간에 통신이라니…, 무슨 일인데 그래?」

“너, 남쪽에서 이상한 기운 느끼지 못했냐? 아주 끈적하면서도 불쾌하기 짝이 없는…….”

걱정스런 아르티어스에 비해 브로마네스는 별것 아니라는 듯 쾌활하게 대답했다.

「난 또 뭐라고. 아마 사막폭풍에 동물들이 떼 몰살이라도 당한 거겠지. 원래 그런 죽음의 기운은 이런 사막하고 잘 어울리는 거잖아.」

“그렇긴 한데……. 하지만 늪지대도 아니고, 이렇게 건조한 사막에서 장기(瘴氣)라니, 말이 안 되잖아?”

「쯧쯧, 자네가 걱정할 거 없다네, 친구. 저 남쪽 바다는 실버 놈들의 영역이야. 뭔가 이상한 게 생겼다면 그놈들이 가만히 놔뒀겠나? 딴 건 몰라도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당하는 건 절대로 못 참는, 속 좁은 놈들인데 말이지.」

“그건 그렇지만…….”

「아, 바위도마뱀이다. 흐흐, 호비트 몸이다 보니 제법 사냥할 맛이 나겠는데? 엄청 크네! 친구, 나중에 얘기하세. 내가 지금 바빠서…….」

‘에구, 멍청한 놈. 이제 갓 유희에 나선 어린놈도 아니면서, 바위도마뱀 따위에 저렇게 정신을 못 차리다니…….’

속으로 투덜거리기는 했지만, 아르티어스는 브로마네스의 의견이 맞다고 생각했다. 사실,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러면서도 찜찜한 마음은 가시지를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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