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데드 출현
월터 일행이 도시국가들로 가기 위해 사막을 다시금 횡단하기 시작한 후, 다섯 번째 성읍에 접근하고 있을 때였다.
해가 뜬 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에 아직 대지가 뜨겁게 달아오르지는 않은 상태였다.
더 더워지기 전에 여행자 숙소에 자리를 잡아야 했기에 월터 일행은 발길을 서두르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시야에 십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모래땅을 파고 있는 게 보였다.
남자들은 땅을 파고 있었고, 여자들은 하얀 천에 감긴 뭔가를 끌어안고 오열하고 있었다.
형태로 봤을 때 시체 같아 보였다. 그것도 다 큰 어른의 시체였다.
점차 거리가 가까워지고 있을 때, 월터 일행은 이해하기 힘든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땅을 다 판 사내들 중 한 명이 시체를 땅에 묻기 전에 도끼를 들고 거침없이 시체의 목을 잘랐던 것이다.
하지만 고인을 능욕하는 이런 미친 짓에도 주위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사내의 행동을 제지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슬피 울며 침통한 표정을 하고는 있었지만, 모두 당연한 장례 절차를 보고 있는 듯한 반응들이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도저히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월터는 낙타에서 내려 그들에게 따지듯 물었다.
“도대체 시체의 목은 왜 자르는 거요? 아무리 그 사람이 잘못했다고 해도, 이미 죽은 고인인데 목까지 자르는 건 너무 심하지 않소?”
그런데 파벨이 월터의 말을 통역하여 그들에게 묻자마자 시체를 끌어안고 울던 여자들 중 몇몇이 괴성을 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악을 쓰며 달려들었다.
달려드는 사람들의 두 눈은 분노로 인해 시뻘겋게 충혈이 되어 있었다.
그 거친 분위기에 심약한 파벨은 재빨리 뒤로 내뺐고, 그녀들의 분노를 월터 혼자 떠안아야 했다.
연약한 여인들에게 무력을 쓸 수도 없고, 왜 이러는지 알고 싶었지만 말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월터가 곤혹스런 표정으로 악에 받친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파벨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죽은 남편의 목을 자르는 것도 억울한데, 왜 그런 말을 하냐며 따지고 있습니다.”
당황한 파벨이 자신도 모르게 존댓말을 쓰고 있었지만, 황당하기 짝이 없는 작금의 상황에 월터는 그걸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억울하다면서 목은 왜 자르는 건데?”
월터가 고개를 파벨 쪽으로 돌리며 의아하다는 듯 묻자, 그녀는 유창한 사막 부족의 말로 여인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잠시 후, 여인들과의 대화를 끝낸 파벨은 머뭇거리며 월터에게 설명했다.
“믿기 힘들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시체가 다시 살아난다고 하네요.”
월터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시체가 다시 살아난다고? 살아나면 좋은 거잖아.”
하지만 파벨이 말한 살아난다는 건 정말 살아나는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파벨이 재빨리 월터의 의구심에 대한 답변을 해주었다.
“정말 살아나는 게 아니고, 언데드가 된다는 얘기 같습니다.”
월터는 어이가 없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얘기는 처음 들었으니까.
“언데드? 훗, 그럴 리가……. 시체가 언데드가 되어 살아나는 지역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그런 곳은 대부분 늪지대 아냐? 어디서 말도 안 되는 미신이 들어온 모양이군.”
미신이라 치부하며 가볍게 넘기려는 월터를 향해 파벨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뇨. 미신이 아니라 정말 언데드가 된다고 합니다. 지금껏 정보 분석을 해오면서 티투스 대사막에서 언데드가 나오는 지역이 있다는 보고서는 단 한 건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곳 주민들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곤혹스럽지만 말이죠.”
그 말에 월터는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물었다.
“미신이 아니라고? 그럼 땅에 묻은 시체가 정말 언데드가 되어 돌아다니는 걸 본 사람이 있다는 거야?”
“예. 목을 자르지 않고 그냥 묻으면 한 달도 채 안 돼서 무덤을 뚫고 나온다네요.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이나 짐승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한다고…….”
“사실이라고?”
잠시 생각하던 월터는 곧 파벨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분들에게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이것 좀 물어봐. 시체를 그냥 묻으면 언데드가 되는 게 저 옛날부터 그랬던 건지, 아니면 요 근래 그런 현상이 시작된 건지 말이야.”
“두어 달 전부터 이런 괴이한 현상이 시작됐답니다. 그전에는 이런 일이 전혀 없었다네요.”
월터는 낙타에 앉은 채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라디아 쪽으로 시선을 돌려 물었다. 마법 쪽은 파벨보다 라디아가 월등하게 뛰어났으니까.
“라디아, 탐지마법으로 주변을 좀 살펴봐. 뭔가 걸리는 게 있는지 말이야.”
파벨과 월터의 얘기를 듣고 있던 라디아는 말이 나오기도 전에 이미 주변을 탐지마법으로 훑었었다.
하지만 이상한 건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었다.
라디아는 난처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글쎄……. 이미 주변을 꼼꼼히 살펴봤는데 이상한 건 전혀 보이지 않아. 게다가 이런 건 신관 쪽이 전문 분야라서 말이야.”
이럴 줄 알았다면 신관도 한 명 데려왔으면 좋았을 텐데, 너무 때늦은 후회를 하는 월터였다.
“혹시 이 근처에서 신관을 고용할 만한 데는 없을까?”
사막을 지나치며 지금껏 그들이 접한 성읍들은 말이 좋아 성읍이지, 아주 작은 정착촌 정도 규모의 촌락이었다. 그런 작은 촌락에 정식 신관이 있을 리가 없었다.
“아마 무역로상에 있는 정도 규모의 큰 성읍이 아니라면 이 근처에서 신관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할 거야. 모험가 파티와 우연히 만난다면 또 모르겠지만.”
“공간이동도 되지 않는 이런 불모의 대지에 모험가 파티가 들어올 리가 없잖아.”
월터는 잠시 생각을 하다 다이아나에게로 고개를 돌려 물었다.
“어떻게 할래? 무역로 쪽에 있는 커다란 성읍이라면 신관을 구할 수도 있을 텐데.”
“그냥 가자. 그쪽으로 간다고 해서 제대로 된 신관을 만난다는 보장도 없고, 기껏 신관을 데리고 왔는데 별거 아니라면 너무 시간이 지체되잖아?”
다이아나가 이런 결정을 내린 건 일행의 막강한 전투력을 믿었기 때문이다.
타이탄을 소유한 오너급 그래듀에이트가 둘, 그리고 마법사가 둘이다.
부정한 대지에서 태어난다는 언데드 몬스터의 대명사인 좀비나 스켈레톤 따위가 그녀에게 심적 압박감을 줄 리가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