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16화 (916/930)

「귀 연대의 무사 귀환을 빌겠소.」

왕실 기사단의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소식에 모두의 사기가 하늘을 찔렀다.

“자, 빨리 준비해서 여기를 뜨자.”

그렇게 나대지 말라고 했거늘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억지로 여는 데 성공한 리오 프라이스는 힘겹게 주변을 둘러보며 신음성을 흘렸다.

온몸이 흔들흔들 흔들린다. 자신의 몸이 흔들리는 건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라 누워있는 바닥이 흔들리고 있었다.

“으윽…, 여기는…, 어디지?”

꼭 집어서 어디 아픈 데는 없었지만, 몸 전체가 천근만근인 듯 축 처져 꼼짝도 할 수가 없다. 혹여 병이라도 걸린 게 아닌가 싶어 자신의 얼굴에 손을 올려보는 프라이스. 역시 얼굴이 뜨겁다. 하지만 그 뜨거운 열기는 비단 얼굴뿐만이 아니라 몸 주변 전체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억지로 고개를 들어 올리니 포장마차의 뒷부분으로 주변 경치가 엿보인다. 그는 포장마차에 타고 있었던 것이다. 바닥이 흔들리는 건 포장마차가 움직이며 발생된 진동 탓이었다.

그리고 자신 옆에 마치 죽은 듯 축 늘어져 있는 마법사 둘이 시야에 들어왔다. 자신과 달리 두 마법사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알 수가 없군.”

지금껏 단 한 번도 기력을 강탈당해 본 적이 없는 프라이스였기에 이렇듯 축 처진 몸 상태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때, 마차 바깥에서 착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좀 더 쉬십시오, 스승님. 지금 무리하게 움직이시면 영영 자리에서 못 일어나는 수가 있으니까요.”

분명 자신이 억지를 부려 제자로 만든 사내의 목소리였다.

처음에는 그런가보다 싶어 자리에 다시 누운 프라이스였지만, 생각할수록 방금 전에 말한 사내의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비록 마차 밖에서 들려온 목소리였지만 사내의 음색이 비비 꼬여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할 프라이스가 아니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인간군상들을 겪어봤는데…….

“뭔가 심기가 불편한 듯하군. 무슨 일이 있었나?”

“아뇨.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부대는 현재 물을 잔뜩 보충한 후 다시 링카 성을 향해 이동 중입니다.”

물을 잔뜩 보충했다는 말에 프라이스의 뇌리에는 마법진 위에 올라섰던 일이 떠올랐다.

맞다. 내가 정신을 잃고 쓰러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했던 게 바로 그 마법진에 올라서는 것이었지.

“마법은 성공했나?”

“물론이죠. 스승님의 적극적인 협조 덕분에 겨우 식수를 보충할 수 있었죠.”

그 말에 프라이스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잠시 어이없다는 듯 마차 밖을 쳐다보며 아르티어스에게 물었다.

“성공적으로 마법이 성공했고, 식수까지 보충했는데 왜 그리 심기가 불편하지? 뭔가 다른 일이 있었나?”

“쯧, 부대 내의 모든 마법사들이 앓아누운 탓에 제가 연대장의 무전기 역할을 해야 하니 그렇죠. 이럴 줄 알았으면 한 명 정도는 빼두는 거였는데…….”

아르티어스의 대답에 일순 프라이스의 두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설마, 자네는 우리가 이렇게 될 걸 미리 알고 있었단 말인가?”

자신의 의문에 아르티어스는 당황했는지 황급히 변명했다.

“아, 그건 아닙니다. 펜달이 마법진 제어에 실패해서 이렇게 된 것뿐이죠. 설마 제가 이렇게 될지 알았겠습니까?”

프라이스가 아무리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변명이다. 비록 허접한 마법사라지만 평생을 마법

과 함께 살아온 프라이스다. 아르티어스의 변명이 뭔가 어색하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인지 그의 말투가 마치 추궁하듯 날카롭게 변했다. 

“마법은 성공했다면서? 제어에 실패했는데도 제대로 된 위력을 발현하는 마법이 있다는 얘기는 내 평생 들어보지 못했는데?”

“아, 그 얘기는 그만둡시다. 그나마 마법이 성공했으니 스승님께서 이렇게 마차에 편안하게 누워서 가실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하십쇼. 그럼 나는 이만 바빠서…….”

프라이스의 의문에 아르티어스는 더 이상 대화할 마음이 사라졌다는 듯 퉁명스레 대꾸하며 떠나버렸다.

“끄응,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마법진 자체가 악의에 가득 찬 것이었음을 전혀 알지 못했기에 프라이스로서는 방금 전의 아르티어스의 말을 의심하지 않고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뭐, ‘제자’인 그의 성격이 썩 좋지 않다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고.

아르티어스가 사라지고 난 뒤 포장마차 뒤편으로 용병들이 부지런히 행군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모두들 안색이 좋다. 어쨌거나 물을 확보하는 데는 성공한 모양이다.

이대로 무사히 링카 영지까지 퇴각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끄응…, 책과 현실이 이리도 다를 줄이야. 이런 짓으로 밥을 먹고 산다니 난 죽어도 못 할 짓이군. 모험가들의 사망률이 높은 것도 다 이유가 있었어. 이렇게 개고생할 줄 알았다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텐데…….’

후회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어버린 상태다. 도망을 가려 해도 사막 위에서 뭘 할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몸까지 이런 상황이니 더욱 절망적이었다.

여기저기 쑤셔오는 통증을 애써 참으며 프라이스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그저 한숨만 푹푹 내쉴 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심란함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갑자기 밖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전갈이다!”

“호위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라!”

“지원을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모두 자리를 지키고 연대장님의 지시를 기다려!”

다급한 목소리들이 터져 나오자 뭔가 일이 생겼음을 짐작한 프라이스는 힘겹게 손을 뻗어 포장마차의 아래쪽 천을 옆으로 밀쳤다.

마차 옆에 긴장한 표정의 용병들이 서 있는 것이 보이자, 프라이스는 힘을 내어 그들에게 물었다.

“무슨 일인가?”

“아, 별거 아닙니다. 마법사님께서는 걱정마시고 푹 쉬시도록 하십쇼. 다른 분들은 아직 일어나지도 못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다급한 목소리가 계속 들리는 걸로 보아 그게 아닌 거 같은데……. 제발 숨기지 말고 사실대로 말해주게.”

“사막전갈이 나타났습니다.”

“사막전갈?”

“예, 집채만 한 크기의 거대한 전갈이죠.”

“끄응…, 몸 상태가 이렇게나 원통할 수가…….”

사막전갈은 즐겨 보았던 영웅담에 자주 등장하는 초대형 몬스터들 중 하나였다. 그게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몬스터였을 줄이야.

만약 자신의 몸이 이런 상태만 아니었다면 당장 밖으로 달려 나가 영웅담에서 읽었던 것과 실물과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직접 확인할 수가 있었을 텐데…….

자신의 이런 몸 상태가 억울했던 프라이스는 마차 밖 용병에게 불쑥 물었다. 자신이 기절한 지 얼마나 지났는지 알아야 언제쯤 일어날 수 있을지 예측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내가 이렇게 된 지 얼마나 시간이 지났지?”

“벌써 이틀이나 됐습니다.”

이틀이나 몸져누워있었다는 그 말에 프라이스는 충격을 받았다.

분명 마법은 성공했다. 그런데 왜 마법진에 참여했던 마법사들이 모두 뻗어서 이틀씩이나 정

신을 잃고 있을 수가 있단 말인가?

프라이스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선행하고 있던 정찰대가 기습 공격을 받았다.

가장 앞서가고 있던 정찰대원이 갑작스럽게 튀어 오른 모래 먼지 속으로 말과 함께 그 모습을 감춘 것이다.

자욱한 먼지 탓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뭔가의 공격을 받은 것만은 확실했다.

나머지 정찰대원 모두 황급히 뒤로 물러서며 방어태세를 갖췄다.

잠시 후, 자욱한 먼지가 걷히며 모래 속에서 튀어나와 있는 거대한 집게발을 볼 수 있었다.

기습을 가해 온 것은 사막 깊은 곳에서 서식한다고 알려져 있는 거대전갈이었다.

거대한 덩치만큼이나 두껍고 단단한 금속성 외피로 인해 화살 따위는 전혀 먹혀들지 않는 괴물이었다. 거대한 집게발도 무시무시했지만, 꼬리 끝에 달려 있는 독침은 더욱 공포스러웠다. 보검 못지않은 날카로운 금속질의 독침은 어지간한 두께의 강철판쯤은 가뿐히 뚫어버릴 가공할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대사막에 서식한다는 거대전갈이 크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저렇게까지 클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홉킨스다.

강철보다도 단단한 거대전갈의 뼈대가 고가에 거래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홉킨스는 저 거대전갈을 사냥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알에서 깬 나약하고 작은 유충이 저렇게 거대한 성체가 되려면 숱한 경험을 쌓아야만 한다.

당연히 저놈 또한 강력한 적과 싸워 봐야 좋을 게 없다는 걸 경험으로 이미 체득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쪽에서 굳이 공격하지 않는다면 기습으로 획득한 먹잇감에 만족하며 뒤로 물러설 것이라고 홉킨스는 생각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링카의 본부 쪽 마법사의 조언을 받아들여 주간행군을 하다가 거대전갈과 조우했다는 점이다.

만약 야간행군 중에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면 그 피해는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엄청났을 것이다.

“전방의 미하엘에게 전해라. 전투를 중지하고 놈과 최대한 거리를 벌리라고 해!”

최전선에 위치한 35대대장 미하엘에게 급히 전령을 보내 지시를 내렸지만 상황은 홉킨스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흘러갔다.

홉킨스의 명령이 채 최전선에까지 전달되기도 전에 이미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 버린 것이다.

거대전갈이 적극적으로 공격을 가해왔기에 벌어진 결과였다.

건들지 않으면 뒤로 물러설 거라는 홉킨스의 기대와는 달리 거대전갈은 굉장히 호전적이었다.

너무 굶주린 탓에 이성이 마비된 건가?

“젠장, 재수가 없으려니 잘못 걸렸군.”

대형 몬스터……, 그것도 거대전갈같이 두터운 외갑을 두른 종류는 어지간한 무기로는 상대가 아예 불가능했다.

마법사의 도움이라도 받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르티어스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뻗어버린 상태다.

성문을 박살내는 데 쓰고 남은 웜 킬러가 2개 있긴 했지만 그건 웜처럼 강력한 턱과 이빨로 공격하는 몬스터들에게나 탁월한 위력을 자랑했다.

거대전갈처럼 집게발과 꼬리로 공격하는 종류에는 제대로 된 효과를 보기 힘들다. 웜 킬러를 몬스터의 몸속에 집어넣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거대전갈이 저렇게 미친놈처럼 달려든다면 아무 피해 없이 병사들을 뒤로 물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최전선에서 거대전갈을 저지하고 있는 미하엘과 그 부하들에게는 미안한 노릇이지만, 그들을 미끼로 던져주고 그 틈에 다른 부하들을 이끌고 전력으로 도망치는 게 피해를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함께 오래 했던 미하엘과 병사들이 마음에 걸렸다.

“젠장, 어떻게 해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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