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18화 (918/930)

어린놈이 변태인가?

거대전갈이 마법사 한 명을 뒤쫓고 있다는 걸 안 와이번들은 맹렬한 속도로 거리를 좁혀왔다.

급격히 가속한 데다, 고도를 줄이며 얻은 중력가속까지 붙었기에 와이번이 거대전갈 상공에 도착했을 때쯤 그 속도는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용기사들은 그 기세를 이용해 일제히 창을 투척했다. 

“퍽! 퍽! 퍽!”

와이번의 비행속도까지 더해진 용기사들의 창은 거대전갈의 두꺼운 등껍질을 꿰뚫고 관통해 들어가는 무시무시한 위력을 과시했다.

일제히 공격을 날린 용기사들은 와이번의 고도를 높여 두 번째 공격을 가하기 위한 기동을 하는 대신에, 급격히 속도를 줄이며 더욱 비행고도를 낮췄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용병들은 그들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곧이어 알 수 있었다. 와이번의 제일 뒤쪽에 타고 있던 기사들이 아래로 뛰어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용병들은 자신도 모르게 두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저 속도로 사람이 지면에 메다 꽂히면 그다음은 불 보듯 뻔했다. 달걀을 바위에 집어던진 것과 같이 피떡이 되어 지면에 흩어지게 될 게 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음 순간 용병들이 눈을 떴을 때 놀라운 광경이 그들의 눈에 들어왔다.

“우와아아!!”

모두들 환호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놀랍게도 와이번에서 뛰어내린 기사들은 모두 무사했다. 아니, 무사한 정도가 아니라 놀라운 속도로 거대전갈을 향해 달려들며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용기사들의 투창 공격에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있던 거대전갈은 계속된 기사들의 공격에 거의 저항도 하지 못한 채 급격히 생기를 잃어갔다.

용기사들은 기사들을 강하시킨 후, 곧장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날아가 버렸다.

전투 결과조차 보지 않고 빠른 속도로 멀어지고 있는 걸 보면, 저들은 오로지 기사들을 수송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인 모양이다.

와이번에서 뛰어내린 기사들이 거대전갈을 향해 달려가는 것을 보며 아르티어스는 비행마법을 멈추고 지면에 내려섰다. 짐짓 힘든 척 헐떡거리면서…….

그런 그를 향해 와이번에서 뛰어내린 기사 한 명이 다가왔다.

“어디 다친 데는 없나?”

“없습니다. 도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정말 한계였기 때문에…….”

“잘 버텨줬군. 덕분에 우리도 상부의 지시를 이행할 수 있었고 말이야.”

기사는 아르티어스에게 이상이 없다는 걸 확인한 후 곧바로 거대전갈 쪽으로 달려가 버렸다.

아르티어스의 시선은 거대전갈과 전투를 벌이는 기사들 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아르티어스의 눈길을 끌고 있는 건 기사들의 전투 모습이 아니었다. 거대전갈을 향해 달려간 기사들 중 한 명의 모습이 아무리 봐도 왠지 친근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다른 기사들에 비해 작고 왜소한 체형의 기사였다.

물론 그의 관심을 끈 건 그의 체형이 아니다. 그렇다고 그에게서 느껴지는 마나의 기운도 아니고.

‘이상하군……?’

와이번에서 뛰어내린 기사들은 모두 갑주로 단단히 무장하고 있었기에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커다란 덩치들 속에 작고 왜소한 체형이 한 사람 섞여 있다면 당연히 그쪽으로 시선이 간다.

여자 기사인가? 여자라면 일단 얼굴부터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게 노소를 막론한 사내들의 공통 관심사였다.

하지만 사람이 아닌 드래곤인 아르티어스는 다른 이유 때문에 그 여성 기사를 눈여겨보고 있

었다. 작고 왜소할 뿐 아니라 거대전갈을 공격한답시고 빨빨거리는 움직임이 어딘가 다크를 연상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설마……?’

그렇다고 아주 비슷한 건 아니었다.

자신의 아들은 검 한 자루만으로 절대자의 경지에까지 올라선 놀라운 호비트였다. 그에 비해 저 여기사는 아들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허접한 실력이었지만, 왠지 자꾸 시선이 갔다. 어쩌면 그건 이곳에서 검을 쓰는 일반적인 호비트들에게서 보지 못한 특이한 뭔가가……?

하지만 곧이어 아르티어스는 그 여기사와 함께 온 다른 기사들도 그녀와 비슷한 움직임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젠장, 내가 착각한 모양이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르티어스는 여기사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초조한 모습으로 전장을 바라보던 홉킨스는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미하엘을 발견하자 곧장 그쪽으로 말을 몰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만날 수 있었다. 

“피해는 어떤가?”

“거대전갈의 기습을 당한 것 치고는 경미한 편입니다. 사망자가 다섯 명이 나왔지만 그건 초기 기습 때 당한 것이고 제 휘하의 크레스터 중대장의 용기 덕에 나머지 부하들 전원 무사히 후퇴할 수 있었습니다.”

“나도 봤네. 정말 대단한 녀석이야. 아! 끝난 모양이군.”

홉킨스는 미하엘의 보고를 듣고 있다 갑자기 말을 몰아 거대전갈 쪽으로 달려갔다. 기사들의 공격에 생명을 다했는지 축 늘어져 버린 거대전갈을 봤기 때문이다.

거대전갈 근처에까지 가깝게 다가간 홉킨스는 곧이어 상상도 하지 못한 장면을 볼 수 있었다. 격렬한 기사들의 공격에 단단한 외피가 구멍이 나 있었는데 그 안쪽이 텅 비어있는 게 아닌가. 놀랍게도 거대전갈은 언데드 몬스터였던 것이다.

홉킨스는 거대전갈을 살펴보고 있는 기사들에게 다가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만약 이들이 적시에 오지 않았다면 자신의 부대가 얼마나 큰 피해를 당했을지 가슴이 써늘했기 때문이다. 부대를 이끄는 지휘관으로서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도움을 주셔서 정말이지 감사합니다. 저는 이 부대를 이끄는 홉킨스라고 합니다.”

“수고가 많소. 나는 콘도르 기사단 323정찰조장 라이놀 페리라고 하오. 링카 변경백의 요청에 따라 귀하들의 퇴각을 도와주기 위해 왔소.”

“안 그래도 콘도르 기사단에서 지원이 있을 거라는 건 링카 본부로부터 이미 전달받았습니다.”

라이놀의 정찰조가 이렇듯 사막 깊숙한 곳까지 오게 된 건, 기사단장 그루시아 후작이 용병단을 도와주기 위해 투입한 5개 정찰조의 조장들 가운데 그의 지위가 가장 낮았던 탓이다.

하지만 덕분에 언데드 거대전갈과 격전을 펼치며 근래 습득한 검법을 마음껏 펼쳐볼 수 있었기에 그는 꽤나 만족하고 있었다.

라이놀은 홉킨스와 인사를 나눈 뒤, 짐짓 겸연쩍은 미소를 흘렸다. 

“와이번을 여덟 마리밖에 지원받지 못해서 신관이나 마법사는 데려오지 못했소. 게다가 무게를 줄여야 한다고 닦달을 하는 바람에 식량조차 제대로 챙겨오지 못했는데…….”

“아, 그건 걱정마십시오. 식량과 물은 충분합니다. 그리고 신관이나 마법사도 부대 내에 있습니다. 물론 기사단에 소속된 분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겠지만, 최선을 다해 기사님들을 지원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핫핫, 그럼 신세 좀 지도록 하겠소.”

“신세라니요. 저희야말로 기사님들의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상황이 잘 풀리자 당연하게 분위기는 화기애애하게 흘렀다. 하지만 그들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자신들의 복귀 경로에 알파17이 매복시켜 놓은 대량의 언데드가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재수가 없다 보니 우연히 거대전갈과 조우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우연이 아니

었다. 그 전갈이 매복지에서 살짝 벗어나 있었기에 먼저 맞닥뜨린 것일 뿐이다.

홉킨스 이하 지휘부 장교들은 기사들의 지휘관인 라이놀 페리에게 커다란 관심을 집중하고 있었지만, 아르티어스 어르신은 작고 왜소한 체형의 여기사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투구로 얼굴을 가린 데다 갑옷으로 몸매를 숨기고 있었기에 외형만으로 성별을 구분하기는 힘들었다. 작고 가녀린 체형으로 봐서 아르티어스는 그가 여기사라고 판단한 것이다.

아르티어스는 여기사를 바라보며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다른 기사들 역시 여기사와 비슷한 검법을 쓰는 것 같긴 했지만, 뭔가 풍기는 분위기가 아들을 계속 연상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흠, 암컷이라서 그런가?’

여덟 기사들 중에서 여기사는 그녀 한 명뿐인 게 사실이긴 했지만, 여자라고 해서 다크의 모습이 떠오른다는 건 아무래도 이상했다. 지금껏 그가 만났던 여기사가 어디 한두 명도 아니었고…….

‘정말 신기한 일이로고……?’

얘기나 좀 나눠볼까 해서 그녀에게로 천천히 다가가고 있는데, 아르티어스를 발견한 홉킨스가 갑자기 그를 라이놀에게 소개했다.

“아, 저 사람이 우리 부대 마법사입니다. 디겔, 이리 와서 인사하게.”

아르티어스는 억지로 미소 지으며 가볍게 고개만 숙였다.

“랄프 디겔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난 323정찰조장 라이놀 페리요. 귀하의 활약상은 상공에서 봤소. 한동안 신세를 질 거 같은데, 잘 부탁하오.”

라이놀과 인사를 나누면서도 아르티어스의 시선은 여전히 여기사를 힐끗힐끗 쫓고 있었다.

이때, 뜨거운 사막 더위에 지쳤는지 그 여기사가 투구를 벗는 게 보였다.

순간 왠지 모르게 아르티어스의 기대감이 한껏 고조됐다. 하지만 곧이어 그의 얼굴에는 짙은 

실망감이 떠올랐다.

땀에 푹 젖은 머리카락은 아들이 지녔던 화려한 금발이 아닌, 금발이 되다만 듯한 어중간한 색깔이었다. 그리고 상대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의 기분이 더욱 시궁창으로 떨어졌다. 머리카락 색깔만큼이나 흔해 빠진 평범한 얼굴의 사내놈이었기 때문이다.

여자가 아니라 체구가 작은 남자라는 것을 안 순간, 아르티어스는 아예 시선을 돌려버렸다.

자신의 아들은 여자였고, 저런 변태적인 성 정체성을 가진 놈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다크의 외모는 일종의 성형미인이라고 할 수 있는 신관의 것이라 생각될 만큼 환상적이었다. 안 그래도 미적 심미안이 높은 아르티어스였기에 다크 정도쯤 되어야 봐줄 만했고, 그 이하는 오크가 씹다 뱉은 고깃덩이처럼 보였던 것이다. 

‘에휴~, 다크에 대한 그리움이 너무 컸나? 저런 눈이 썩을 것 같은 놈을 보고 아들 생각이 났다니……. 어쨌거나 너무 보고 싶구나, 내 아들아. 조금만 더 기다려라. 내 기필코 전생한 너를 찾아낼 테니 말이다.’

아르티어스가 라이를 살펴보며 한눈을 팔고 있는 동안, 양쪽 수뇌부의 대화는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저희 부대가 앞장서겠습니다. 뒤에서 지켜보시다가 이번처럼 어려운 사태가 벌어졌을 때만 도와주시면 됩니다.”

홉킨스의 제안에 라이놀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기왕에 귀 용병단을 돕기 위해 여기까지 왔소. 그리고 귀측이 앞장선다고 해봐야 이번과 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괜한 피해만 커질 뿐이요. 저런 초대형 언데드 몬스터를 귀하들의 전력으로 상대한다는 건 불가능하니까 말이오.”

짐짓 용병단을 배려하는 말처럼 들렸지만 라이놀이 솔선해서 선두에 서겠다는 속셈은 다른 곳에 있었다. 언제까지 용병단 호위에 매달려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는 최대한 빨리 임무를 마치고 본대에 합류하고 싶었다. 다른 용병단들은 사막 속으로 깊게 들어가지 않았기에 그들을 지원하러 간 동료 정찰조들은 훨씬 빨리 임무를 끝마치게 될 게 뻔했

실망감이 떠올랐다.

땀에 푹 젖은 머리카락은 아들이 지녔던 화려한 금발이 아닌, 금발이 되다만 듯한 어중간한 색깔이었다. 그리고 상대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의 기분이 더욱 시궁창으로 떨어졌다. 머리카락 색깔만큼이나 흔해 빠진 평범한 얼굴의 사내놈이었기 때문이다.

여자가 아니라 체구가 작은 남자라는 것을 안 순간, 아르티어스는 아예 시선을 돌려버렸다.

자신의 아들은 여자였고, 저런 변태적인 성 정체성을 가진 놈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다크의 외모는 일종의 성형미인이라고 할 수 있는 신관의 것이라 생각될 만큼 환상적이었다. 안 그래도 미적 심미안이 높은 아르티어스였기에 다크 정도쯤 되어야 봐줄 만했고, 그 이하는 오크가 씹다 뱉은 고깃덩이처럼 보였던 것이다. 

‘에휴~, 다크에 대한 그리움이 너무 컸나? 저런 눈이 썩을 것 같은 놈을 보고 아들 생각이 났다니……. 어쨌거나 너무 보고 싶구나, 내 아들아. 조금만 더 기다려라. 내 기필코 전생한 너를 찾아낼 테니 말이다.’

아르티어스가 라이를 살펴보며 한눈을 팔고 있는 동안, 양쪽 수뇌부의 대화는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저희 부대가 앞장서겠습니다. 뒤에서 지켜보시다가 이번처럼 어려운 사태가 벌어졌을 때만 도와주시면 됩니다.”

홉킨스의 제안에 라이놀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기왕에 귀 용병단을 돕기 위해 여기까지 왔소. 그리고 귀측이 앞장선다고 해봐야 이번과 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괜한 피해만 커질 뿐이요. 저런 초대형 언데드 몬스터를 귀하들의 전력으로 상대한다는 건 불가능하니까 말이오.”

짐짓 용병단을 배려하는 말처럼 들렸지만 라이놀이 솔선해서 선두에 서겠다는 속셈은 다른 곳에 있었다. 언제까지 용병단 호위에 매달려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는 최대한 빨리 임무를 마치고 본대에 합류하고 싶었다. 다른 용병단들은 사막 속으로 깊게 들어가지 않았기에 그들을 지원하러 간 동료 정찰조들은 훨씬 빨리 임무를 끝마치게 될 게 뻔했

그런데 기사들은 전갈 껍질은 쳐다도 안 보고 서로 모여 뭔가 쑤군거리더니 그냥 떠나버렸다. 그들이 가져간 건 전갈 껍질이 아니라 용병단 쪽에서 나눠준 물과 식량이었다.

기사들이 떠나자마자 용병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거대전갈에 달려들었다. 저걸 링카 성으로 가져가기만 하면 떼돈을 벌 수 있는 것이다. 거대전갈의 껍질은 가볍지만 그 강도는 강철을 상회한다. 방금 전까지는 창검도 통하지 않는 절망스러운 존재였는데, 껍질만 남은 지금은 보물이 따로 없는 것이다.

문제는 저걸 어떻게 자르느냐 하는 것. 통째로 옮기기에는 덩치가 너무 컸다. 마차에 실을 수도 없을 정도로…….

“뭐 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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