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27화 (927/930)

“문제는 0.8짜리를 두 개 붙인다고 해서 1.6의 출력을 안정적으로 낼 수 있느냐 하는 거겠지. 만약에 그게 된다면 이건 획기적인 발명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야. 고출력 엑스시온을 개발하는 건 그만큼 어려운 문제니까.”

알카사스 왕국은 엑스시온 및 타이탄을 타국에 대량으로 판매함으로써 마도왕국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2.0을 상회하는 고출력의 엑스시온 개발에는 번번이 실패하고 있었다.

기사들의 실력까지 뒤떨어지다 보니 요 근래에 이르러서는 코린트, 크라레스, 크루마의 삼대 강국에 비해서 한 수 뒤처지는 전력을 지니고 있다며 폄하되고 있을 정도였다.

그런 상황이니 차세대 초고성능 타이탄의 개발에 있어 두 개의 엑스시온 장착을 하는 기법은 새로운 돌파구를 제공해 줄지도 모른다.

“저…, 대화 중에 죄송합니다만, 엑스시온이라는 게 뭡니까? 수석마법사님.”

“간단하게 타이탄의 심장이라고 알고 있으면 될 걸세.”

“아…, 예.”

수석마법사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타이탄이 뭔가 특별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라이였다.

수석마법사는 다른 타이탄들과 달리 케이론에는 심장이 두 개 달려 있다고 했다. 지금껏 의식하지 않았었지만 케이론의 목소리가 뭔가 두 사람이 동시에 얘기하는 것처럼 묘하게 울리는 게 아마도 그 때문인 모양이다.

하지만 그런 부분에 대한 생각은 곧이어 라이의 뇌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심장이 둘이건, 셋이건 그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자신이 사용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말이다.

라이에게 자신이 호위로 데리고 갔던 오너와 타이탄 모의전까지 시켜본 후, 수석마법사는 통신실로 달려가 자신의 오랜 친구에게 오랜만에 연락을 넣었다.

마르코는 마법진에 탁월한 재능을 보여 지금은 알카사스 왕국의 타이탄 생산 쪽에 종사하고 있는 마법사였다.

“마르코, 잘 있었나?”

「어? 자네가 웬일인가?」

“오랜만에 이런 걸 물어봐서 미안하긴 한데, 내 주위에 자네 말고는 물어볼 만한 사람이 있어야 말이지.”

「호오, 대단하신 기사단 수석마법사님의 부탁인데, 기밀사항이 아니라면 도와줘야겠지. 그래, 대체 알고 싶은 게 뭔가?」

인사를 나누자마자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버리는 마르코. 두 사람이 무척 친했기에 스스럼이 없는 걸 수도 있었지만, 마르코가 워낙 바쁘기에 붙은 습관이기도 했다. 오랜만에 보는 익숙한 친구의 모습에 수석마법사는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번에 아르곤 제국에서 만든 걸로 추정되는 타이탄을 한 기 입수하게 되었는데 말이지…….”

아르곤 제국의 타이탄이라는 말에 마르코의 흥미가 급격히 떨어지는 게 표정에서 고스란히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아르곤 제국에 수출되는 타이탄이라고 해봐야 2선급의 타이탄뿐이었기 때문이다.

“쯧쯧, 아직 내 말 끝나지 않았으니 그런 표정 짓지 말게. 자네에게도 꽤나 흥미가 있을 만한 주제니까 말이야.”

지금껏 오랜 친구인 수석마법사가 빈말은 결코 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기에 마르코는 애써 표정을 갈무리하며 입을 열었다.

「알았어, 계속 말해봐.」

“자네, 혹시 아르곤 제국이 우리 왕국에서 엑스시온을 수입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나?”

「우리 공장이야 싸구려 엑스시온은 생산하지 않기에 그쪽과 거래가 없지만, 들리는 소문으로는 조금씩 수입해가고 있는 모양이더군. 뭐, 타이탄 생산이 가능한지 시험해보고 있는 거겠지. 완성체를 수입하는 것보다는 엑스시온만 수입하고, 나머지는 자신들이 만드는 쪽이 훨씬 싸게 먹히니까.」

“흐흐, 그건 그렇지. 그러면 최근 아르곤에서 어느 정도 수량의 엑스시온을 수입해 갔는지 전체적인 수량을 알아봐 줄 수 있나?”

「그런 건 알아서 뭐 하려고?」

“그러지 말고 좀 알아봐 줘. 곧 재미있는 사실을 알려줄 테니까 말이야.”

「쳇, 별 쓸데없는 데 호기심이 발동한 모양이군.」

그렇게 투덜거리면서도 마르코는 수정구 옆쪽으로 고개를 돌려 누군가에게 지시를 내렸다. 몇몇 공장들의 이름을 나열하며 그곳에 연락을 넣어 아르곤에 판매한 엑스시온의 수량을 집계해 오라고 말이다.

지시를 다 내린 후, 마르코는 수정구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아르곤에 수출이 허용되는 건 저급 엑스시온 뿐이야. 그런 걸로 타이탄을 만들어봐야 훈련용으로나 쓸까, 제대로 된 타이탄은 만들 수 없다고.」

“나도 그 정도쯤은 알고 있다네. 하지만 이번에 아르곤에서 꽤 쓸만한 걸 만들어낸 모양이야.”

「아르곤 놈들이 어떤 쓰레기 같은 타이탄을 만들어냈건 내가 알 게 뭐야. 전혀 궁금하지 않으니 빨리 진짜 용건이나 말해. 안 그럼, 나 통신 끊는다.」

이때, 수정구로 마르코에게 쪽지 하나가 전달되는 게 보였고, 그걸 읽던 마르코의 두 눈이 일순 휘둥그레졌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저급 엑스시온의 수입량이 왜 이렇게 많아?! 0.7짜리 84개, 0.8짜리 145개, 0.9짜리가 74개씩이나 되잖아. 이 정도 양이면 국내에 남은 저급 엑스시온 재고를 몽땅 다 긁어갔다는 말인데…….」

놀라운 일이었다. 그 짧은 시간에 다른 공장에 연락을 넣어 수출량에 대한 정보를 집계한 모양이다.

마르코는 수석마법사를 쏘아보며 급하게 물었다.

「자네 뭔가 알고 있는 게 있지? 빨리 말해보게. 왜 이렇게 많은 저급 엑스시온을 아르곤 놈들이 수입해 간 거지?」

“이번에 내가 입수한 타이탄에는 특이하게도 엑스시온이 두 개나 장착되어 있더군. 0.8짜리로 말이야.”

그 말에 마르코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타이탄 한기에 엑스시온을 두 개씩 넣는다면 그렇게 엄청난 수량의 저급 엑스시온을 수입해 갔다는 게 납득이 된다. 하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으로는 그건 말도 안 되는 짓이었다.

「엑스시온을 두 개씩이나 장착한다고? 그게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수석마법사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가능하니까 자네한테 말을 꺼낸 거지. 내게 그 증거물이 있거든.”

「증거물이 있다고? 어디에?」

“처음에 내가 말했었잖나. 아르곤 제국에서 만든 걸로 추정되는 타이탄을 한기 입수했다고 말이야.”

그제서야 통신 초반에 그 말을 했다는 걸 기억해 낸 마르코는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수긍했다.

「참, 그랬었지.」

“좀 전에 타이탄끼리 모의전까지 치르도록 하고 자세히 살펴봤네. 그럭저럭 잘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더군. 물론, 0.8짜리 두 개를 넣었다고 해서, 1.6의 출력이 나오는 것 같지는 않았네. 그보다는 훨씬 출력이 낮은 것처럼 보였거든. 뭐, 조종하는 기사의 실력이 떨어져서 그런 것처럼 보인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야.”

엑스시온 2개를 장착하고도 잘 움직인다는 수석마법사의 말에 마르코의 호기심이 급상승한 모양이었다.

「내가 그쪽으로 가면 자세히 살펴볼 수 있도록 힘을 좀 써 주겠나?」

“누구의 부탁인데 거절하겠나. 시간 날 때 언제든 오게. 참, 지금 내가 있는 곳은 링카 성일세. 당분간 여기에서 주둔하게 될 거야.”

「링카 성? 알았어. 장비 챙겨서 그쪽으로 가도록 하지.」

그 말이 끝나자마자 통신은 뚝 끊겨버렸다.

“거, 급한 성질머리하고는…….”

자신이 원하던 것을 모두 얻은 수석마법사는 집무실로 돌아가며 환하게 웃었다. 친구인 마르코의 타이탄에 대한 탐구욕을 알기에 이 정도 떡밥이면 친구가 절대 가만히 앉아있지 못할 거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흐흐, 궁금해서 미치겠지? 더군다나 시간을 낼 수 없으니 더 미치겠을 걸? 킥킥.”

마르코는 굉장히 바쁜 사람이었다. 시간을 내서 그를 찾아가도 느긋하게 얘기를 나누기조차 힘들 정도였다. 그걸 미루어 생각한다면 링카 성에 있을 때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 임무가 끝나면 바로 연락을 해주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래야 이쪽으로 쫓아오는 헛걸음을 방지할 수 있을 테니까.

✻        ✻        ✻

월터와 다이아나는 각자 본국으로 돌아오라는 지시를 받았다. 타이탄을 삼켜버릴 수 있을 정도의 거대한 언데드 몬스터의 존재에 상부는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월터나 다이아나 둘 다 손꼽힐 만큼 강한 기사들이다. 그런 둘이서, 그것도 둘 다 타이탄을 꺼내야만 상대가 가능할 정도의 괴물이 존재할 거라고 그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어떻게 할 거야?”

“명령을 받았으니 어쩔 수 없지.”

다이아나야 부모에게 욕을 들을 각오를 하고 강행할 수 있겠지만, 월터는 입장이 다르다. 상부의 지시를 어기는 그 순간 명령 불복종이 되는 것이다. 자칫 처형당할 위험성마저 있었다.

월터가 돌아가겠다고 하자 다이아나도 어쩔 수 없이 꼬리를 내렸다. 그녀 혼자서는 아무래도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만약 샌드 웜을 그녀 혼자 상대해야 했다면, 놈의 뱃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죽었을 가능성도 있었다. 월터가 밖에서 협공해줬기에 그나마 샌드 웜을 제압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하고 있었다.

“레이디, 돌아가셔야 합니다.”

라디아의 채근에 다이아나는 어쩔 수 없이 말했다.

“돌아가자. 링카 성으로 가려면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지?”

알카사스의 서쪽 국경 전체가 링카 영지로 할당되어 있다. 수비의 편리성은 물론이고 밀무역 등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였다. 서쪽 국경 전체를 자신의 지휘하에 둔 링카 변경백은 출입국은 오로지 링카 성을 통해서만 허용했다. 그쪽이 관리하기 편리하니까. 그렇기에 링카 성으로 가야 하는 것이다.

링카 성으로 돌아가는 길은 뜻밖에도 아무 일 없이 평온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지나가기 전에 그 일대에 있던 모든 언데드들이 알

파17에 의해 북쪽으로 이동배치 되었기 때문이다.

링카 성에 도착한 월터 일행은 예전에 이곳을 떠날 때와는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가장 큰 변화는 성내 수비군의 변화다. 그전에는 나른한 듯 하품을 하고 있는 병사도 눈에 띄었었지만, 지금은 경계병들의 눈빛에서 긴장감이 넘친다. 사막 저편에서 모습을 드러낸 행인들을 모두들 노려보듯 세심히 살펴보고 있다. 아무래도 이들도 사막에서 언데드 떼가 발생했다는 것을 알아챈 듯 느껴졌다.

“떠났을 때와는 뭔가 분위기가 다르네.”

링카 성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기에 월터 일행은 곧바로 병사들 앞에 도착했다.

병사들 중에서 가장 지위가 높아 보이는 듯한 사람이 앞으로 나서며 일행을 제지한다.

“멈추시오. 사막을 건너왔소?”

“그렇습니다.”

월터 일행의 짐은 거의 없다. 낙타 등에 실린 거라고는 담요하고 약간의 식량, 물통 정도다. 무역상이 아님을 알아본 병사들이 더욱 수상쩍게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서쪽 대륙에서 오는 길이오?”

“서쪽 대륙으로 가려다가 언데드가 나타났다는 얘기를 듣고 되돌아오는 길입니다. 그 고생을 하고, 막대한 돈까지 썼는데도 건진 건 하나도 없다니……, 에휴~.”

“아, 그러셨군요. 간단한 검문을 해야겠으니 협조 부탁드립니다. 전원, 신분증을 주십시오.”

각자 지니고 있는 신분증을 꺼내 병사에게 내준다. 진짜 신분증은 아니었지만, 각 국에서 정식으로 발행된 것이기에 위조 신분증은 아니었다. 월터는 자작, 다이아나는 남작. 그런 식으로 하급 귀족으로 되어있었다.

예전에 이곳을 통과해서 사막으로 나갈 때도 이 신분증을 썼었기에, 출국한 사람들의 명부를 확인해 봐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이아나는 여성이라고 하면 오히려 눈에 띄므로 남자라고 되어 있었다.

상대가 하급이긴 하지만 귀족이라는 걸 안 병사의 태도가 정중하게 바뀐다.

“이쪽은 코린트, 그리고 이쪽은 크라레스 제국 분들이셨습니까.”

“우연히 사막에서 만나 동행하게 된 사입니다. 언데드 떼와 만난다면 사람 숫자가 많은 게 유리하니까 함께 동행하게 된 거죠.”

“아, 그러셨군요. 언데드와 접전은 하셨습니까?”

모두가 무장을 갖추고 있는 데다, 사내 둘은 특히나 강해 보였기에 묻는 말이다.

“아뇨. 얘기는 들었지만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여행객의 행색을 보면 전혀 전투를 한 흔적 따위 찾아볼 수가 없다.

쓱 훑어보며 일행의 행색을 확인한 병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운이 좋으신 분들이군요. 자, 들어가십쇼. 알카사스 왕국에 돌아오신 걸 환영합니다.”

검문을 통과하자마자 다이아나가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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