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29화 (929/930)

그건 아주 위험했다. 연구원들은 마법사들이다. 경계심이 없는 상태에서 갑작스러운 기습을 당하게 된다면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실험하던 인간 키메라에 문제가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골치가 아파진 로므렌은 인상을 찡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정신제어 술식이 정상 작동하고 있는지를 어떻게 점검할 수 있지?

그런 로므렌을 바라보던 소장이 심드렁한 말투로 물었다.

“표정이 왜 그렇게 엉망이지?”

속마음이야 ‘네놈이 자꾸 일을 만드니 그렇지!’ 하며 소리치고 싶었지만, 직속상관에게 차마 그렇게 말은 못 하고 로므렌은 억지로 웃음 지으며 대답했다.

“그런 문제가 있다는 걸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보니, 어떻게 술식이 깨졌는지 테스트를 해야 할지 난감해서 말입니다.”

그러자 연구소장은 마치 별것 아니라는 듯 곧바로 입을 열었다. 

“뭘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나? 실험체를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극한까지 몰아붙여 보면 금방 드러날 텐데 말이야. 예를 들면 고문을 하던지, 잠을 재우지 않고 뭔가를 시켜보던지……. 

만약 술식이 깨지지 않은 정상적인 키메라라면 무슨 짓이든 태연하게 시키는 대로 하겠지.”

그 말에 침울하던 로므렌의 안색이 금방 환하게 바뀌었다. 그런 기발한 방법이 있을 줄이야…….

“아,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이 정도 문제쯤은 금방 해결책을 내놓으실 정도로 소장님은 역시 현명하십니다.”

“그건 네가 멍청해서 그런 거지! 이런 사소한 문제까지 내가 일일이 가르쳐 줘야 하나! 빨리 인간 키메라의 정신제어 술식의 안정성을 확인하도록 해. 참, 그건 그렇고 일전에 나한테 실험 삼아 몇몇 개체에 무술을 가르쳐 봤는데, 꽤 효과가 좋았다고 보고했었지?”

“예, 소장님.”

“아직도 무술 교육을 시키고 있나?”

“아닙니다. 다른 것도 실험할 게 많은 데다, 실력 있는 무술 교관도 없고 해서 지금은 그만둔 상태입니다.”

각 무기술의 기본기는 정신제어 술식을 통해 키메라의 뇌에 각인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기본기를 응용하는 고급 부분은 따로 가르칠 교관이 필요한 것이다.

심드렁한 로므렌의 대답과 달리 연구소장은 아주 만족스러운 안색으로 고개까지 주억거리며 말했다.

“그건 잘했군. 무술 쪽은 키메라의 안정성이 입증된 후에야 하는 게 좋을 테니까 말이야. 일단, 안정성을 입증하는 걸 최우선 과제로 삼고 철저하게 쥐어짜 봐. 참, 기왕에 실험체들을 쥐어짜는 김에 어느 정도까지 근육을 강화할 수 있는지 그것도 함께 알아보는 게 좋겠군.”

“그렇게 하겠습니다, 소장님.”

자신의 연구실로 돌아가며 로므렌은 소장의 유연한 사고에 다시 한 번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혼자 연구를 진행하다 보면 사고가 편협된 방향으로 흐를 수밖에 없었다. 특히 소장처럼 나이가 많아지면 일단 형성된 편견은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이다. 자신조차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야 할

지 몰라 머릿속이 멍했었는데, 즉시 해결책을 생각해 내다니. 과연 이런 독립 연구소를 꿰차고 있을 만큼 충분히 능력 있는 사람이었다.

하긴 오랜 세월 키메라 연구를 한 사람이라면 실험체의 정신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신경조차 쓰지 않게 된다. 정신제어 술식이 워낙에 막강한 탓에 주인의 명령 한 마디라면 목숨까지도 서슴없이 던져버릴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연구소장의 말은 충분히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묘책이었다.

로므렌이 집무실 밖으로 나가자마자 방금 전까지 딱딱하게 굳어있던 소장의 얼굴에 음흉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로므렌이 좀 맹한 구석이 있긴 했지만 항상 밤을 새워가며 열심히 연구하더니, 결국 근사한 결과물을 만들어 낸 것이다. 문제는 자신이 예상한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결과가 도출되었다는 점이었지만.

“흠, 보고서를 어떻게 써야 할까?”

로므렌의 보고대로라면, 몬스터를 굳이 키메라로 만들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능력 향상률이 그리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걸 인간인 병사들이 쓸 수 있는 강화약물과 같은 형식으로 발전시킬 수만 있다면 엄청난 능력 향상률을 보여주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이번에는 능력 향상률이 너무 과하다는 게 문제였다. 능력 향상률이 높으면 정신제어 술식이 깨질 가능성 또한 비례하여 증가하게 된다는 게 밝혀졌으니까.

“그래. 성능을 약간 낮추고, 대신 안정성을 대폭 높이는 방향으로 나가는 게 좋겠어. 강화물약으로 능력이 강화된 10만 명의 병사와 전투마! 그 정도면 전장을 지배하는 건 일도 아니지. 혹시 그래듀에이트를 강화하는 것도 가능할까? 정말 필요한 건 그쪽인데 말이야. 흠, 문제는 이딴 약물로는 마나 운용력을 강화할 수가 없다는 거지. 그것만 가능하다면 원로원에 진입하는 것도 꿈은 아닐 텐데 말이야.”

마나에 관계된 능력을 강화할 수 없다는 게 안타깝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성된 약물을 써먹을 곳이 없는 건 아니었다.

가장 먼저 실험대상으로 써먹어 볼 만한 건 소규모 용병단이 적합할 것이다.

효과가 좋으면 원로원에 보고하고, 그렇지 않으면 깨끗하게 증거를 인멸해버리면 그만이다. 그 정도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으니까.

최근, 링카 변경백이 사막민족들을 정벌하고 무역로의 주도권을 쥐려고 한다는 소문은 들었다.

상당히 대규모 전쟁이 벌어질 듯싶은 만큼, 2차적인 테스트는 거기에서 진행하는 것도 좋을 듯싶었다. 소규모 인원 동원으로는 알아낼 수 없었던 데이터를 많이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막인 만큼, 증거인멸이 용이할 것이라는 것도 마음에 든다.

2차 마도대전이 끝난 지도 벌써 수십 년. 당시 입은 막대한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각 나라마다 정신이 없다 보니 대륙은 어쩔 수 없이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후 복구는 이미 다 끝났고, 그동안 쌓여왔던 막강한 국방력은 흘러넘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만약 어떤 일이든 작은 계기만 생긴다면 거대한 전쟁의 소용돌이가 거칠게 불 거라고 연구소장은 예측하고 있었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로므렌이 개발한 약물은 뜻밖에도 쓸만할지도 모른다.

소수의 초강력 키메라보다는 대량의 병사들의 능력을 획기적으로 강화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니까.

두려움도 모르고, 상관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는 엄청난 신체 능력을 가진 막강한 병사들. 그야말로 전쟁의 향방을 일순간에 바꿀 수 있는 최강의 병사들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약물을 개발해 낸 자신은 단숨에 원로원에 입성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용병대부터 시작해볼까?”

✻        ✻        ✻

드래곤이 적일 가능성이 있는 이상, 한 곳에 모든 전력을 집중시켜두는 건 좋지 않다.

그걸 잘 알고 있는 그루시아 후작은 자신의 호위분대를 제외한 모든 전력을 링카 영지 여기저기로 분산하여 배치했다. 그리고 휘하의 정찰조들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사막에 대한 장거리 정찰은 팔콘 기사단 분견대의 용기사들이 맡고 있었기에, 굳이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사막 깊은 곳까지 강행정찰은 하지 않고 있었다. 무엇보다 초대형 샌드 웜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이렇게 어느 정도 배치를 해둔 뒤 상부의 새로운 지시를 기다렸다. 언제쯤 공격 지시가 내려올까? 그건 누구도 알 수가 없었다.

라이가 속한 정찰조는 362정찰조와 함께 141분대를 서포트하라는 지시를 받고 작은 요새에 배치되었다.

1개 분대당 2개 정찰조. 이게 타이탄 분대의 표준적인 조합이었다.

141분대는 작은 요새에 둥지를 틀고는, 2개 정찰조를 주위에 포진시켜 주변의 탐색에 집중하고 있었다.

초대형 언데드 샌드 웜이 타이탄마저도 삼켜버릴 수 있다는 정보가 하달된 이상, 대비에 만전을 기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수석마법사는 친구의 호기심에 불을 지피긴 했지만, 설마하니 마르코가 이렇게 빨리 자신을 찾아올 줄은 몰랐다. 마르코는 한 공장의 수석책임자였다. 그것도 상급 타이탄만을 제작·생산하는 그런 공장을 총괄하는 마법사였던 것이다. 그런 그가 자리를 비운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조수 여덟 명까지 함께 대동하고 달려온 것이다. 그것도 각종 고가의 장비들까지 잔뜩 짊어지고서.

“어서 오게나. 연락하고 겨우 1주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내 생각보다 빨리 왔군.”

“궁금해서 도저히 참을 수가 있어야지. 아르곤 놈들이 당최 타이탄에 어떤 짓을 해놨는지 말이야. 그 타이탄과 계약을 맺은 기사를 빨리 이리로 데려오게.”

일전에 마르코와 말할 때, 그 타이탄과 모의전을 했다는 얘기를 해줬었다. 모의전을 하려면 누

군가가 계약을 하지 않으면 안 되니, 그 타이탄의 주인을 찾고 있는 것이다.

오랜만에 처음 만나서 하는 얘기가 타이탄 얘기라니. 친구의 급한 성격을 뻔히 알고 있었으면서도 한숨을 푹 내쉬는 수석마법사였다.

“이봐, 가서 라이를 데려오게.”

아르곤의 신형 타이탄에 대한 실험은 사막에서 진행됐다. 사막 쪽으로 조금만 나가면 사람이 아무도 살지 않는 지역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마르코 일행은 자신들이 가져온 각종 장비들을 라이의 타이탄 조종석에 설치했다.

“그럼 한 번 움직여보게.”

그리고는 약간 떨어진 곳에서 다양한 동작들을 취해보라며 계속 주문을 넣었고, 라이는 그 요청에 맞춰 타이탄을 움직였다.

마르코 일행이 없는 시간을 쪼개서 링카 성까지 쫓아온 만큼, 테스트는 자잘한 건 패스하고 핵심적 요소만 강도 높게 진행되었다.

그중에는 대 타이탄 간의 전투도 포함되어 있었다. 

1시간 정도 쉴 틈도 없이 진행되던 테스트가 얼추 끝났을까? 마르코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라이에게 소리쳤다.

“수고했네. 일단 이 정도면 충분해. 이제 조정석에서 내려와도 좋네.”

타이탄에서 내리는 라이에게 마르코가 가까이 다가와 제안을 던졌다.

“이 타이탄을 나에게 양도해 줄 수는 없겠는가? 물론 공짜로 달라는 소리는 아닐세.”

마르코는 지금까지 라이와 연습전을 했던 타이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방금 전까지 싸워봤으니, 자네 타이탄보다는 저 타이탄이 훨씬 더 좋다는 것쯤은 잘 알겠지?”

라이는 자신과 연습전을 펼쳤던 카르마2급 타이탄을 힐끗 바라봤다. 자신의 타이탄보다 훨씬 덩치도 크고 무거웠다. 기사 간의 실력 차이도 큰 데다, 타이탄의 성능까지 차이가 나다 보니 연습전은 일방적으로 밀렸었다.

“예. 충분히 공감합니다.”

“자네 타이탄을 저 카르마2급과 교환해 주겠다는 말일세.”

카르마급은 국가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근위용으로 제작된 만큼 아주 멋지게 제작된 타이탄이었다.

근위대의 타이탄이 최신형인 카오스급으로 대체되며, 카르마급은 전량 레드 이글 기사단으로 보내졌다. 카르마급은 단 50기만 제작되었기에 남은 3개 기사단에 보급되려면 더 만들어야 했다. 카르마2급은 카르마급의 생산단가를 줄이기 위해 외형을 단순화시킨 모델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외형을 단순화시켰다고 해도 기본 뼈대가 근위대 납품용이었던 카르마2와 실험용으로 대충 디자인된 라이의 타이탄은 외형에서조차 비교 자체가 될 수가 없었다.

타이탄에 대해 거의 지식이 없었던 라이는 이 제안이 얼마나 파격적인 것인지 몰랐다. 하지만 겉모양만 봐도 저쪽 타이탄이 자신의 것보다는 훨씬 멋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정말이십니까?”

“물론일세.”

“…….”

너무 형평이 맞지 않는 거래 조건이다 보니 의심이 덜컥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겉모습은 저쪽이 훨씬 멋지지만, 알맹이는 자신의 타이탄 쪽이 훨씬 더 좋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밑지는 교환 얘기를 꺼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라이가 자신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걸 느낀 마르코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런 눈으로 쳐다볼 필요가 없네. 내가 자네 타이탄을 원하는 건, 저게 성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는 것을 미리 말해주지. 단지 지금까지의 타이탄은 엑스시온이 한 개 장착되어 있는 데 반해 자네의 타이탄은 두 개를 장착해 넣은 것일세. 두 개를 넣은 이유는 고성능 엑스시온을 구할 수가 없었기에 저성능 두 개를 장착해 그만큼의 성능 확대를 노린 것이라네.”

마르코는 설명을 하다 보니 목이 타는지 잠시 쉬었다가 다시 설명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자네의 타이탄은 아주 커다란 결함이 있어. 엑스시온 두 개가 완벽하게 일치해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보니 약간의 공명을 일으키고 있었네. 그 때문에 출력이 안정적이지를 못하고 낮았다가 높았다가 출렁이는 걸 반복하고 있었지. 자네가 그걸 느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물론 지금 같은 연습전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찰나의 순간에 생사가 오가는 실전이 된다면 그건 치명적인 결점으로 다가올 걸세. 그리고 출력이 출렁이는 와중에 손실되는 분량도 클 테니, 일반적인 타이탄에 비해 마나 소모도 훨씬 클 것이 분명해. 그 수치가 어느 정도인지는 좀 더 정밀하게 실험을 해봐야 알 수 있겠지만 말이야.”

설명을 끝까지 들은 라이는 힐끗 수석마법사를 바라봤다.

비록 자신이 계약을 했다고는 하지만 자기 마음대로 교환을 해도 되나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이 전투 중에 습득한 타이탄이기는 했지만 타이탄이 가지고 있는 가치는 그런 일반 관례를 가볍게 생략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가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라이의 눈길을 알았는지 수석마법사는 피식 웃으며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콘도르 기사단 소속의 기사가 습득한 타이탄이었고, 적국의 타이탄을 연구하기 위해 교환해 준다는 훌륭한 명분까지 있었다. 게다가 자신은 콘도르 기사단의 수석마법사이다. 이 정도 일쯤은 쉽게 처리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수석마법사의 승낙이 떨어지자 라이는 마르코의 유혹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교환을 제의한 상대는 수석마법사의 친구인데다, 아주 고위급의 마법사처럼 보였다. 입고 있는 옷이 아주 고급스럽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절대 자신에게 사기를 치려는 게 아닐 것이다.

당연히 이 제안을 승낙하는 게 좋다는 걸 라이는 알고 있었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뭔가?”

“만약 교환하게 되면 케이론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당연히 분해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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